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85)
흑백무제 1287화(1286/1320)
1287화. 전설이 되다 (12)
구조는 코웃음을 쳤다.
“어찌 그것을 알아봤는지는 모르겠다만, 무사는 무공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법이다!”
지이잉! 지이이잉!
마치 시퍼런 전광이 몸 전체를 누비는 듯했다.
푸른 뇌광과 함께 시뻘건 화염이 몸 이곳저곳을 넘나들었다. 황홀하기 그지없는 광경, 불과 번개의 신이 강림한 것 같았다.
“어디 제대로 싸워 볼까!”
“제대로는 무슨.”
콰아앙!
삼십여 명이 합동으로 쏘아 낸 염신검의 경력을 튕겨 내니 상반신을 넘어 하반신까지 흔들렸다.
저들 하나하나가 절정고수의 내력을 지녔다. 그런 고수 서른 명이 한마음으로 내력을 집중해 공격해 오고 있다.
내공의 질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한들, 절대 무시할 만한 힘이 아닌 것이다. 단순한 고수끼리의 합공이 아닌, 신화통령진이라는 진법으로 하나 된 내공이라 더욱 받아 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연호정의 표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사음교의 마공을 익혔다는 말을 들은 순간 일그러지기 시작하던 표정, 그 얼굴 그대로였다.
부우우웅!!
염신검의 경력을 받아 낸 즉시 회전하며 횡격을 가했다.
하단에서 상단으로 올려 치는 호쾌한 초식 승공세가 횡참으로 펼쳐졌다. 뜨거운 공기를 한껏 담아 발산되는 승공세는 단숨에 구조의 상반신을 휩쓸어 갔다.
구조가 하얗게 웃었다.
쩌어어어어엉!
흘려 낸다.
월극의 창대로 힘을 받아 내며 그대로 유공(柔功)을 펼쳤다. 무당파의 태극권과 유사한 기공술이었지만, 연호정이 발산한 힘을 흘려 낼 만한 고수는 온 천하를 뒤져도 흔치 않을 터.
구조의 무공은 빠르고 격정적일 뿐만 아니라 부드러움마저 갖춘, 실로 완성도 높은 무공이라 할 수 있었다.
콰아앙!
그는 피해가 없었지만, 흘려 낸 힘까지 완벽히 조절하진 못했다. 승공세 일격으로 퍼진 힘은 그대로 신화령을 덮쳐 십여 명의 검사들을 황천으로 보냈다.
구조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엄청난 힘이구나!”
“시끄럽다.”
파팡!
순간적으로 접근한 연호정이 금룡번천장을 펼쳤다.
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황금빛 장력, 마치 거대한 비단이 망처럼 퍼져 구조를 에워싸려는 것 같았다.
구조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역시 대단하다.’
굳이 힘을 더하지 않고 장력을 넓게 퍼트려 휘감으려 한다.
상대의 진기는 그 질이 자신보다 높다. 어지간히 파괴적인 공격이 아니면 찢거나 부수기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토록 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장력이라면 유공으로 흘릴 수도 없다. 상대는 자신이 구사한 수법을 단 한 번만 보고 곧바로 유연한 대책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넌 알아야 할 것이다. 이 내가 다른 화왕들보다 후배인데도 어찌 두 번째 서열이 될 수 있었던 건지.’
구조의 좌장이 마주 질러졌다.
훅!
시뻘건 화염의 구체가 묵직하게 밀고 들어왔다.
무게 없는 불에 태산 같은 중량을 실은 듯했다. 넓게 퍼트린 번천장력이 분천마장(焚天魔掌)의 살초 중 하나, 염산포(炎山砲)의 장력을 맞고 일그러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번천장력을 밀고 나아간 염산포는 그대로 연호정의 가슴팍까지 들어왔다.
상대의 장력을 파괴하거나 찢지 않고 고스란히 담아 밀어 내는 상승의 무학이었다. 단순히 진기의 집속 능력이 높다고 가능한 것이 아닌, 상대의 힘과 나의 힘을 정확하게 계량할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가능한 놀라운 무도였다.
연호정의 입가가 꿈틀거렸다.
‘제법.’
그가 뻗은 좌장을 그대로 내리눌렀다.
콰아앙!!
염산포의 장력이 폭발하며 번천장력 이곳저곳을 마구 들쑤시다가 소멸했다.
구조의 눈이 흔들렸다.
‘어떻게?’
넓게 편 가죽보다 꽉꽉 눌러 응축한 가죽이 더 단단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진기도 그와 같다. 상대의 내공 질이 더 높대도 염산포만큼 응축된 힘을 소멸시키긴 어렵다. 상대의 장력까지 통째로 밀어 버려야 정상인데 중간에 소멸해 버린 것이다.
치이이이익!
번천장력 곳곳에서 시뻘건 화염과 연기가 치솟았다. 동시에 주변의 습도가 텁텁할 정도로 올라갔다.
황룡수기로 염산포의 힘을 절반 이상 줄여 버린 것이다. 기공 조절 능력은 물론 오행(五行)의 기운을 전부 다루는 연호정에게 있어 구조의 장력은 조금 독특한 힘일 뿐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터어엉!
언제 던졌는지, 허공에 뜬 광룡부를 발로 차 버린다.
창대 끝을 차니 거대한 광룡부가 구조를 향해 화살처럼 쏘아졌다. 마치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거대한 박쥐를 보는 것 같았다.
구조는 분천마도, 화연일도(火燃一刀)를 펼쳤다.
쩌어어어엉!
중량감이 대단했다.
광룡부를 쳐 낸 월극 전체에 진동이 올라온다. 분천마기가 뿌리부터 뒤흔들리는 듯했다.
‘이상하군.’
파아아앙!
광룡부를 쳐 내자마자 돌진하는 연호정, 그리고 그런 연호정의 행동을 읽고 측방으로 접근한 구조가 재차 분천마장을 터트렸다.
붉은색 분천마장과 황금빛 금룡번천장이 부딪치며 일대에 무시무시한 충격파를 일으켰다.
‘이놈은 지금 승부에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다.’
신화령 때문이다.
신화령 중 일부는 연호정을 피해 전진하고 있었고, 대부분은 호시탐탐 연호정을 노렸다. 천하제일을 논하는 무력이라도 삼제급의 무력을 지닌 고수와 수백의 신화령을 압도하긴 힘든 일이다.
그건 연호정을 상대하는 구조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연호정의 움직임은 지극히 빠르고 효과적이었지만, 그때마다 사위를 휘감는 염신검의 경력에 한 번씩 박자를 잃고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구조는 상대가 자신보다 강자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강자라 하여 승리를 보장할 수 없는 것이 천화에 이른 고수들의 싸움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처럼 강한 고수가 한 번씩 박자를 잃고 온전히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쪽이 승기를 잡을 수 있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런 발경력을……?!’
퍼퍼퍼펑!
연환장으로 쳐 낸 분천마장의 공력이 상대의 기묘한 장법으로 인해 폭음을 내며 흩어졌다.
이전 염산포도 그렇고, 눈앞의 저 젊은 초고수는 말도 안 되는 발경술을 쓴다. 힘이나 내공력의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압도적인 차이는 아닐 텐데, 기와 기가 부딪칠 때마다 자신의 힘은 산산조각이 나고 상대의 힘은 그대로 밀고 들어온다.
힘의 차이였다면 곧장 이해했을 것이다. 내공의 질적 차이는 상대의 기파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걸 다 염두에 두고 내치는 공격인데, 어찌하여 이리 무력하기만 한가?
‘이놈은 수기(水氣)를 구사할 줄 안다. 화기와 수기는 상극, 그러나 단순히 상극이라고 이런 것이 가능하지는…….’
그때였다.
구조를 월극과 함께 튕겨 낸 연호정의 눈이 번쩍였다.
“왔군.”
‘뭐?’
구조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들고.
연호정은 씨익 웃으며 그대로 신화령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저런 미친!’
구조는 기겁했고, 그런 구조보다 더 놀란 것은 신화령이었다.
콰콰쾅!!
전신에 황룡수기를 두른 채 금룡진악권과 금룡번천장을 연달아 구사하는 연호정의 모습은 늑대 떼 사이로 들어간 호랑이를 보는 듯했다.
치이이이익!
사방으로 하얀 수기가 일어났다. 수기가 화기와 만나 증발하고 있는 것, 그 양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일순간 신화령 일부와 연호정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신화령은 거리를 벌려 흩어져라!”
그때였다.
‘……?!’
구조는 등줄기를 훑는 섬뜩함에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다.
사악!
섬뜩한 소리, 그리고 그 소리보다 더 섬뜩한 감각이 옆구리를 타고 흘렀다.
검상이다. 놀랍게도 구조 정도 되는 고수가 암습을 당한 것이다.
‘암살자?!’
연호정과의 싸움에 너무 집중해서 암살자가 다가오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화왕은 화왕이라, 어지간한 암살자였다면 반경 이 장 안쪽으로 들어온 즉시 존재를 알아챘을 터. 피육만 베였다고는 하나 옆구리에 일격을 당할 때까지 몰랐다는 건 상대의 실력이 천화수조차 경시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파바바바박!
사방의 허공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무형의 검기가 구조의 전신을 노렸다. 마치 그물처럼 빽빽하게 겹쳐진 그 검기의 망은 날아다니는 새조차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구조의 두 눈에 살기가 어렸다.
“이놈들이!”
부우우우웅!!
월극이 고속으로 회전하며 엄청난 도기를 발산했다.
콰콰쾅!
그 질긴 검기의 망이 그대로 찢겨 날아갔다.
분천마도, 분천화망(焚天火網)이었다. 전방위를 베어 초토화시키는 광역기였다.
‘암살자, 그것도 최고급!’
후우웅.
그 많은 암살자가 움직이는데도 소리가 없다.
난전 중이라 약간의 바람 소리는 들린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이렇게 소란스러운 전장에서 저들의 존재는, 어떤 의미론 천화수에 육박할 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웬 놈들이냐!”
그때였다.
피슉!
구조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무려 이십 장 밖에서 날아온 무형검기가 그의 볼을 찢고 나아갔다. 미세한 공기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면 머리에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구조가 저 멀리 서 있는 검객을 바라보았다.
두건으로 눈 아래를 전부 가린 사내였다. 유령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척이 없는데, 또 눈을 마주하니 묘한 기백이 느껴졌다.
그는 바로 흑제성주의 최측근 호위 부대인 호종대(護宗隊)의 대장 한중명이었다.
“이놈이!”
구조가 한중명을 향해 뛰어들려는 순간.
콰아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신화령 이십여 명이 하늘을 날았다.
쾅! 콰쾅! 콰앙!
신화령 안으로 들어가 미친 듯이 날뛰던 연호정이 구조의 빈틈을 읽고 신화통령진을 직선으로 뚫고 달려오고 있었다.
당황한 구조가 분천마도를 펼치려는 순간.
후우우우웅.
안개처럼 스며드는 검기의 망이 그의 하반신을 휘감으려 했다.
호종대의 무형살진(無形殺陣), 무형사(無形死)의 수법이었다. 어둠에 몸을 숨긴 채 적을 도살하는 흑도 제일의 암살진이었다.
“이익!”
쩌저저저저정!
월극으로 무형사의 검기 망을 모조리 박살 낸 구조.
그 순간 연호정은 그의 일 장 앞에 도달해 있었다.
파아앙!
거리를 벌리며 분천마장을 날렸지만, 연호정은 이미 백룡부를 꺼내 휘두르고 있었다.
쾅!
장력을 통째로 쪼개자마자 황룡보법을 발휘, 순식간에 구조의 측방으로 돌아간다.
신화령의 염신검이 날아오지 않는 이상 그 무엇도 연호정을 막을 수가 없었다. 구조는 놀라서 월극을 횡참으로 휘둘렀다.
동시에, 백룡부가 반월을 그렸다.
서걱!
구조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분천마기로 가득한 월극의 창대가 상대의 손도끼에 베여 날아갔다. 다급한 만큼 있는 대로 내공을 퍼부었는데도 그대로 잘려 나간 것이다.
“마공을 연성한 순간, 너는 이미 진 거야.”
구조만을 죽일 생각이었다면 진즉 죽일 수 있었다.
문제는 상처를 입느냐 마느냐다. 기천웅과 기우환의 싸움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도 모르는 판국에 내 살을 깎아 가며 서둘러 죽일 필요는 없다.
한중명의 전음을 들은 순간, 이미 그는 거기까지 전술을 세워 둔 것이다. 구조를 묶고 신화령의 전력을 깎아 내는 소모전을 펼친 후, 단박에 구조를 참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그때가 바로 지금이었다.
콰앙!
금룡진악권에 맞은 구조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부러진 어깨로 인해 손에 들린 부러진 창대도 바닥에 떨어졌다.
퍼버버벅!
신들린 연환장으로 구조의 중심을 무너트린 연호정이 냉정하게 백룡부를 쳐들었다.
구조의 얼굴에 다급함이 깃들었다.
“안……!”
“안 되긴.”
콰득!
백룡부가 구조의 머리를 수직으로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