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93)
흑백무제 1295화(1294/1320)
1295화. 전설이 되다 (20)
콰릉!
검에서 천둥소리가 터져 나왔다.
거대한 연녹빛 검기가 폭출되며 전투선의 중앙을 갈랐다.
콰득! 퍼펑!
“으아악!”
“아아아악!”
단 일검에 전투선 하나를 반쪽 내 버린다.
제국의 전투선보다 작은 건 물론이요, 저 장강수로채의 전투선과 비슷한 크기라도 그 안에 열 명은 탈 만큼 크다.
그만한 전투선을 일검에 쪼개 버렸다. 집채만 한 바위도 갈라 버릴 만한 검기이니 나무와 철판을 덧대어 만든 전투선이라고 버틸 재간이 없었다.
연위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푸푸푸푸푹!
절대의 참격 직후 화살처럼 쏟아지는 자격검기(刺擊劍氣)다.
섬광처럼 빠른 검기는 바다에 빠진 사음교도들의 가슴팍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순식간에 바다가 핏빛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연위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파아아아악!
박살 난 선체를 밟고 나아가니, 엄청난 진각에 바닷물이 부서지듯 커다란 포말을 만들어 냈다.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 다다른 곳은 또 다른 전투선 앞이다. 철썩이는 배들 사이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물방울이 튀고 있는데도 연위의 몸은 옷자락 하나 젖지 않았다.
우우우웅!
차오르는 검극사기.
눈을 뜨는 연가신단.
하단과 중단을 담당하는 검극사기는 지고의 영역에 들어서 주인의 검과 완벽하게 공명했다. 극도로 발달된 상단전에 자리한 연가신단은 검극사기의 활용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주었고, 미간에서 퍼트린 상단 신기가 전신으로 뻗어 나가 연위의 힘과 속도를 불가해(不可解)의 영역으로 이끌었다.
제국검이 좌우로 두 번씩 휘둘러졌다.
끊어 치듯 휘두른 검격, 맹렬하게 터져 나온 반월형 검기가 전투선들을 뒤집어 놓는다.
콰쾅! 콰앙!
곡경보다 훨씬 더 예리하고 발 빠른 파괴 행위다.
단순히 병장기로 구사하는 무공이라서가 아니었다. 정통 중의 정통이라 불리는 연가의 무공이 분노 가득한 판관검의 깨달음 아래, 어떠한 마공 못지않은 위력을 자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쏴라!”
“공격해라!”
파파파팡!
사음교도들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영역 안으로 들어온 연위를 향해 수십 개의 작살이 날아왔다.
사음교의 위치는 아직도 정확히 특정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들의 본거지가 바다나 강과 인접한 곳이 아니란 건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만한 전투선들을 만들고, 또 작살까지 던졌다. 쏘아지는 작살의 속도와 정밀함을 보면 장강수로채의 수귀(水鬼)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았다.
‘역시.’
그 짧은 순간, 연위는 생각했다.
‘이놈들이 가장 위험하다.’
광혈교는 광혈교다운, 신화교는 신화교다운 특색이 있다. 직접 싸워 보기도 했고 수많은 정보와 소식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사음교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익힌 무공의 특질은 분명하지만, 이놈들에게는 한계가 없었다. 육지전(陸地戰)에 특화된 고수들은 물론 진법, 암살, 집단전, 소수전은 물론이거니와 침투, 암약에 이르기까지 적을 상대하는 수많은 방법을 알고 있다.
하물며 이제는 수전(水戰)에 수중전(水中戰)까지도 넘본다. 천하 어떤 조직이라도 이처럼 다채로운 전투 능력을 보여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대체 이놈들은 어디서 이처럼 놀라운 전투 능력을 배울 수 있었던가.’
생각은 거기까지다.
허공에 뜬 연위가 제국검을 부드럽게 휘둘렀다. 마치 무당파의 태극검을 보는 듯했다.
후우우웅!
그 많은 작살이 구름을 타듯 부드럽게 휘어졌다.
사음교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공에 뜬 채 검무(劍舞)를 추는 이방인, 그 검 끝을 따라 움직이는 수많은 작살은 마치 바닷속을 유영하는 해어(海魚) 무리를 보는 듯했다.
서서히 하강하던 연위가 불현듯 직선으로 검을 휘둘렀다.
파파파파팡!
검을 따라 회전하던 작살들이 화살처럼 빠른 속도로 좌측 전투선 두 척을 향해 쏘아졌다.
퍼퍼퍼퍼퍼퍽!
“크아아악!”
“아악!”
수많은 작살에 꼬치 꿰듯 당한 교도들은 즉사하거나 바다에 빠져 버렸다.
믿을 수 없는 신위다. 일검에 전투선을 쪼개 버리는 위력은 물론 허공을 자유자재로 누비는 신법에, 상대의 공격을 흘리거나 받아 내는 유검(柔劍)의 극치까지 선보인다.
완성형에 이른 검사다. 궁극에 이른 무인이 어떤 존재인지 여실히 보여 준다.
당대 벽산연가의 가주 연위.
고향을 지키기 위해, 적을 섬멸하기 위해 불타오르는 한 남자의 무력은 더 이상 오르기 어려운 경지까지 올라 있었다.
퍼퍼퍼펑!
정신이 번쩍 드는 소리였다.
‘화포!’
저 멀리 장군선에서 화포를 쐈다.
방향은 다름 아닌 이곳, 자신을 향해서였다.
정말이지 미친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노렸다고는 해도 화포는 정밀한 타격이 불가능하다. 아군 전투선을 공격해서라도 자신을 잡겠다는 것, 아군의 목숨 따위는 썩은 짚단보다도 못하게 생각하는 놈들이기에 가능한 짓이었다.
우우우우웅!
연가신단이 고속으로 회전하며 연위의 사고 능력과 인지 능력을 두 배, 세 배로 끌어올렸다.
‘보인다.’
수십 발의 화탄 중 육신에 위험을 줄 만한 것은 세 발이었다.
이 정도면 꽤 정확하게 날린 셈이었다. 그 주위를 화망처럼 두르고 있는 포탄들로 회피할 곳도 막혔다. 수백, 수천 번을 연습한 포병들이 쏘는 것 같았다.
연위의 좌수가 저절로 움직였다.
손을 뻗는 그 짧은 사이 알아서 형(形)을 만든다. 군자팔검세의 군자지검(君子之劍)이었다.
휘이잉!
호선을 그린 세 개의 포탄이 미세하게 휘어졌다.
삼각의 형태에서 위로 아래로 꿈틀거리더니, 거의 상중하의 일자로 변했다.
연위가 허공에서 주먹을 쥐었다.
지이이이잉!
그간 둑으로 막고 있던 상단신기가 폭포수처럼 튀어나오며 포탄 세 발의 속도를 무섭게 늦추었다.
터엉!
등평도수로 해면을 박차고 날아오른 연위가 힘차게 일검을 휘둘렀다.
철검대연삼십육식, 일필종단검(一筆縱斷劍)이었다.
번쩍! 콰앙!
막강한 발경과 함께 쪼개진 세 발의 포탄이 그대로 박살이 났다.
보는 이를 얼어붙게 만드는 무공이었다. 극에 이른 허공섭물과 막을 수 없는 검격으로 포탄 세 발을 단번에 쪼개 버렸다.
하지만 그 아름답고도 무시무시한 파괴 장면을 마냥 감상하고 있기에는 교도들의 상황이 좋지 못했다.
콰콰콰쾅!
수십 발의 포탄으로 인해 전투선 여섯 척이 박살 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려던 연위는 순간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사방 천지를 거미줄처럼 휘감은 연가신단의 힘, 그 신안(神眼)은 해수면을 넘어 해중(海中)까지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잠수?!’
포탄에 맞기도 전에 이미 뛰어내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 멀리 곡경이 맡은 영역에서도 수많은 적이 바닷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모양새는 대응이 불가능해서 뛰어내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것 같았다. 힘차게 바다로 뛰어내린 교도들 수백 명이 무서운 속도로 해안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연위의 눈이 번뜩였다.
‘놀라운 수공(水功)!’
잠수하여 헤엄치는 속도가 무시무시했다. 절정고수의 신법 못지않았다.
그 움직임을 포착한 순간 연위는 확신했다.
‘수중전에 능한 수귀들을 전면에 포진한 후 바닷속으로 이동하여 해안가부터 공략할 생각이었구나.’
감탄이 절로 나오는 전술이다.
물론 저만한 수귀들을 훈련시킬 수 있었기에 가능한 전술이지만, 본디 뛰어난 전술은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허를 찌르는 법이다.
‘저들만이 전부가 아니야.’
풍덩!
여기저기서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적들이 보인다.
그 수가 순식간에 일천을 넘어 이천을 헤아렸다. 수중전 한정으로는 절정고수 이상의 능력을 선보이는 수귀 이천이 엄청난 속도로 해안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전투선 하나하나에 별다른 무장이 되어 있지 않다. 오직 빠르게 나아가기 위한 쾌속선이었을 뿐.’
연위와 곡경의 공격으로 죽은 교도의 숫자는 일백이 되지 않고, 파손된 전투선은 열다섯 척 정도다.
적들에게는 거의 타격이 없는 셈이나 다를 바 없었다. 적의 숫자는 얼핏 봐도 이만 이상, 거의 삼만에 이르는 대군이었다.
하지만 연위는 실망하지 않았다.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무극에 이른 신체다. 체력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고 내공 역시 충만하다. 상단신기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 힘을 불려 나가고 있었다.
‘우리가 허를 찔렀다면, 너희도 허를 찔렀다. 초전이 시작되었을 뿐, 아직 끝난 것이 아니야.’
연위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디 얼마나 준비했는지 볼까.’
파팡! 콰득! 파파팡!
그의 두 발이 바닷물을 밟다가 부서진 선체 조각을, 그리고 다시 바닷물을 밟았다.
발밑에 뭐가 있든 달려 나간다. 거센 포말을 일으키며 직선으로 나아가는 그의 몸에는 어느새 반투명한 연녹빛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곡경이 외쳤다.
“연가주!”
파아아앙!
엄청난 속도로 전투선의 진형을 뚫은 연위 앞으로 마침내 누군가가 날아왔다.
장군선 한쪽에서 날아온 미지의 고수, 그 무력이 무극에 이르러 있었다.
연위의 눈이 번뜩였다.
파아아아앙!!
누구도 제지하지 못한 직선의 움직임이 급격하게 횡으로 꺾였다.
자신이 이룬 무력에 자신은 있지만 결코 무모하지 않다. 그는 그저 전투선의 진형을 뛰어넘어 수중전에 능하지 못한 고수들을 노리고자 했을 따름이었다.
“막아라!”
콰득!
한 자루 검이 되어 쏘아진 그의 몸이 이 층으로 된 중형 전선 하나를 꿰뚫고 들어갔다.
잠시 후.
콰콰콰쾅!!
전선 안에서 터져 나온 거대한 검기들이 연녹빛 꽃처럼 피어났다.
전선 하나를 안에서부터 박살 내는 신들린 무력이었다. 그 안에는 포병도, 고수도 많았지만 군자팔검세의 파상공세에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콰득! 파아아앙!
순식간에 전선을 박살 낸 연위가 수직으로 상승하여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동시에, 연위를 향해 수십 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하나같이 빠르고 위력적인 화살들이다. 궁술(弓術)의 고수들까지 배치된 것이다.
연위가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막아라!”
적측 고수와 똑같은 말.
그의 사자후는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 묵비의 귀에도 닿았다.
그리고 진즉 준비를 마쳤던 묵비는 바닷속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발했다.
퍼퍼퍼퍼퍼펑!!
내공 소모를 최소화하면서도 칼날처럼 뾰족한 무형탄(無形彈)을 날린다.
묵비 앞 바다가 순식간에 빨갛게 변했다. 엄청난 속도로 잠영해 오던 수귀들이 그녀의 무형탄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어렵다.’
물은 빛을 굴절시킨다. 아무리 안력을 높이고 움직임을 예측하며 쏘아 냈다 한들, 수중에서 움직이는 자들을 맞히기는 힘들었다.
지금도 쏘아 낸 무형탄 중 삼 할만 적중했다. 나머지는 모조리 빗나간 것이다.
‘침착하자.’
실제 화살을 걸어 쏘는 게 훨씬 더 막강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무형탄은 무형탄 나름의 장점이 있다.
‘홍천기는 오행 중 수기(水氣)와 가장 가깝다. 온전한 수기는 아니어도 그 특성이 비슷해. 하물며 무형탄 자체가 기(氣)의 일종이기 때문에 수기의 흐름을 읽고 쏘아 내면 맞힐 수 있다.’
실제로 강 속을 유영하는 물고기들을 화살로 잡아내는 훈련 역시 많이 해 봤다.
그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지금, 그녀가 맞히지 못하는 표적 따위는 없었다.
‘다시.’
시위를 건 홍련궁이 무섭게 진동했다.
‘맞힌다.’
피피피핑! 퍼퍼퍼펑!!
바다가 뒤집히며 수십 명의 수귀들이 둥둥 떠올랐다.
무형탄에 맞아 죽은 시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