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94)
흑백무제 1296화(1295/1320)
1296화. 전설이 되다 (21)
“제법이군.”
사음해군(邪淫海軍)의 총사령으로 온 일사왕(一邪王) 단공의 눈에 이채가 번뜩였다.
“우리가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과연, 호법장(護法長)의 말에 반신반의했거늘 대륙 놈들의 지략도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군.”
그뿐만이 아니었다.
초전다운 초전은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전투는 벌어졌다.
그 전투의 시작을 병사들이 아닌 지휘자급의 초고수들이 벌였다. 사왕들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고수 둘과 신들린 궁술을 지닌 궁사가 뛰어와 해군 첨병부터 와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건 단순히 지략이 뛰어나거나 전술안이 트였다고 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본인들의 힘을 잘 이해하고 있어. 그렇지 않고서는 이처럼 파격적인 수는 쓸 수 없지.”
단공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 몰라 사음수병들을 전방에 깔아 둔 것은 역시나 올바른 처신이었던가.”
제국의 해병들은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 해병들을 쾌속선으로 접근해 물리칠 만큼 사음수병들의 실력은 뛰어난 것이었다.
게다가 수병들은 수공(水功) 실력 또한 대단히 뛰어나서, 잠영 속도가 어지간한 해어들보다 훨씬 빨랐다. 그 속도로 해안가에 침투해 전장을 여는 것 역시 수병들의 역할이었다.
“고작 궁수 하나로는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설령 극사의 경지에 오른 궁수라도 그 많은 숫자를 처리할 수는 없어.”
맞는 말이었다.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화살을 무한으로 날릴 수 있대도 저 많은 수병 군단을 어찌 다 처리하겠는가.
“하지만 놈들이 이대로 설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지. 오사왕(五邪王)과 휘하 군단에게 일러라. 눈앞의 저 두 고수부터 잡아내라고.”
“예!”
잠시 후.
번쩍!
좌측 장군선에서 날아오른 한 사람이 빛살처럼 허공을 갈랐다.
그 신법 속도가 가히 백미였다. 신법의 속도만으로도 성천에 이름을 올렸던 광혈의 세작 비왕(飛王)만큼은 아니어도, 그에 크게 뒤지지 않는 속도라 하겠다.
파파파팡!
그 뒤를 따라 몇 개의 군선에서 수백의 교도들이 몸을 날렸다. 하나같이 신법의 대가 소리를 들을 만한 속도요, 자유로움이었다.
오사왕이자 단공의 동생인 단향이 직접 훈련시킨 오백의 뇌영군(雷影軍)이었다.
단공이 소리쳤다.
“당황하지 마라! 싸움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쩌렁쩌렁하게 퍼져 나가는 그의 음성은 바다 전체를 진동시킬 만큼 대단했다.
연위의 눈이 번뜩였다.
‘강자다.’
목소리에 깃든 내공력이 전율을 일으킬 정도였다. 내공의 질만 보면 곡경이나 기존의 양천 수준을 상회하는 듯했다.
‘저만한 고수가 직접 싸움에 나섰다면 많이 힘들어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대장선에서 병사들을 독려하고 있다면, 실질적인 총사령관이라 할 수 있겠지.’
사실 저게 정상이었다.
무극수는 어떤 전투에서도 절대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을 비축해야 하고, 결정적인 순간 나서서 대국의 흐름을 바꾸어야만 한다.
말하자면 연위와 곡경이 초전부터 나선 것은 기책(奇策)이라 할지언정 합리적인 병법이라 볼 수는 없었다.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효과를 낸다면 그 또한 좋겠지만, 초전 중에는 전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양군 모두 알 수가 없다.
‘머리싸움은 우리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파파팡!
해면을 박차는 소리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렬했다.
적은 한 명이 더 있었다. 처음 연위가 직선 돌격을 포기하고 곧장 방향을 꺾게 만들었던 남자, 육사왕(六邪王) 번요경이었다.
‘바다는 이놈들의 영역이다. 똑같이 나섰다 해도 불리한 것은 우리야.’
이 정도면 충분한가? 빠져야만 하는가?
“연가주!”
곡경의 목소리가 연위의 머리를 흔들었다. 다소 이르긴 해도 지금 퇴각하자는 뜻이었다.
‘아직이다.’
제국검이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실로 오랜만에 봉인이 풀린 그 검이 적을 맞아 더 싸울 수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먼저 퇴각하시오!”
파팡! 콰앙!
도주하듯 해수면을 박차며 전투선 세 척과 교도 이십여 명을 척살한 연위.
파아앙!
기가 막힌 움직임으로 선회하여 돌아온 번요경이 연위를 향해 돌진했다.
뒤에서는 오사왕 단향이 뇌영단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앞뒤로 적을 맞아 싸우게 된다.
연위의 눈이 빛났다.
퍼엉!
번요경과 단향의 눈이 흔들렸다.
충격적인 선택이다. 연위는 곧장 바다로 뛰어들어 수중 깊숙이 나아갔다.
한 가문의 수장이요, 정통 무공과 빈틈없는 가법으로 유명한 연가의 가주가 적과 싸워 보지도 않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연가의 가주임을 떠나 그 정도 경지에 오른 고수가 보일 법한 전술이 아니었다. 최소한 몇 합이라도 겨뤄 보고 택할 방법을, 제대로 부딪혀 보기도 전에 택한 것이다.
“연가주!!”
그때였다.
퍼어어어어엉!!
무지막지한 물보라와 함께 솟구친 수십 개의 검기가 연꽃처럼 피어나며 사방팔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 검기 다발이 어찌나 거대하고 예리한지 단향과 번요경은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그때였다.
훅!
바닷속인데도 불이 꺼지는 듯한 소리가 수면에 파랑을 일으켰다.
매서운 청색의 광채를 뿜으며 쏘아진 무언가가 바다 수면 아래에서 직선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한데 그 속도가 실로 빨랐다. 달인이 쏜 화살처럼 빠른 속도로 대장선을 향해 돌진했다.
단향의 얼굴에 다급함이 일었다.
“피해라!”
콰득! 콰득! 퍼엉! 콰앙!
수면을 가르며 쏘아진 연위의 어검(馭劍)은 무자비한 파괴력으로 전투선과 군선 십여 척의 선골(船骨)을 박살 내며 기어이 대장선 밑까지 도달했다.
그때, 단공의 주먹이 휘둘러졌다.
콰르릉!
폭음을 내며 쏟아진 권풍이 어검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해수면을 강타했다.
콰앙!
거대하게 솟구친 물보라가 수십 척의 군선을 적셨다.
쿠웅!
단공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시기적절한 일격이었다. 어검이 대장선의 밑창을 뚫기 전을 정확하게 노렸다.
그런데도 선체의 바닥이 뚫려 버렸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강하다!’
속도는 예상한 대로였다. 하지만 검에 실린 파괴력이 예상을 웃돌았다.
수면이 충격을 상쇄할 것까지 감안하고 내쏜 권풍인데도 어검을 막지 못했다. 그로 인해 대장선 바닥에 구멍이 뚫려 버린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콰득! 콰드드득!
힘을 잃었음에도 기어이 선체를 뚫고 올라온다. 연위가 바닷속에서 어검을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일사왕님!”
“사령관님! 위험합니다!”
단공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야말로 제대로 한 방 맞은 격이었다. 설마하니 저만한 고수가 수병처럼 바다 아래로 뛰어들 줄도 몰랐고 어검으로 대장선을 노릴 줄도 몰랐다.
몰랐어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걸 막지 못한 것이다.
전투 시작부터 큰 실책을 저질렀다. 이러면 화포 수십 문을 장착한 대장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퍼어엉!
바닥을 뚫고 올라온 어검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다가 순식간에 바닷속을 향해 휘어졌다.
“어검이 향하는 곳에 놈이 있다! 지금 여기서 잡아라!”
퍼어엉!
단향과 번요경 역시 곧장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쿠르릉!
마치 해룡이 움직이는 듯 묵직한 소리와 함께 선두의 전투선 쪽으로 향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철썩!
해면을 박차고 날아오른 것은 연위였다. 난전 중인 데다가 수중에 있는 사람의 기운을 읽기 힘든 점을 노리고 제국검으로 고수들을 따돌린 채 다른 곳에서 뛰쳐나온 것이다.
이변은 또 있었다.
퍼퍼퍼펑!
그대로 후퇴하려던 곡경은 연위를 구하고자 다시 날아왔고, 두 명의 고수가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았다.
그 직후 쏟아지는 화살과 작살의 포위망을 절묘하게 피해 낸 곡경의 눈에 뇌영군이 보였다.
“좋구나!”
콰르르릉!
쌍장에서 뿜어져 나온 사이한 공력이 뇌영군 십여 명을 단숨에 휩쓸었다.
쾅!
전투선 하나를 무자비한 박투술로 탈취한 연위가 눈을 질끈 감으며 어검을 조종했다.
슉!
바다에서 빠져나온 제국검이 뇌영군 이십여 명의 몸통을 꿰뚫곤 그대로 연위에게 날아왔다.
“쏴라! 죽여!”
“놈을 막아라!”
피피피피핑!
수백 대의 화살이 하늘을 날았다.
곡경의 몸이 벼락이 되었다.
파파팡!
등평도수로 날아온 그가 어검을 조종하는 연위의 방패가 되어 주었다.
콰르릉! 콰드드득!
허공을 휩쓰는 흑사신장의 장력이 화살 수백 발의 경로를 흐트러트렸다.
푹! 푹!
하지만 완벽하지는 못했다. 두 대의 화살이 연위의 좌측 어깨와 상박에 박혔다.
“연가주! 퇴각해야 하오!”
“알겠소!”
퍼펑!
그제야 속은 것을 알고 뛰쳐나온 두 명의 사왕이 바다 전체를 뒤집어 놓을 듯 파멸적인 살기를 드러냈다.
치리리링!
돌아온 제국검을 납검한 연위가 곡경과 함께 해안가를 향해 돌진했다.
“미리 말 좀 하고 일을 치시오!”
“미안하오.”
“당연히 미안해야지. 하지만…….”
힐끔 뒤를 돌아보는 곡경의 얼굴에 쾌감이 어렸다.
“한바탕 제대로 휘저었군.”
비록 바다로 잠영한 수병들이 많았지만, 전투선 수십 척이 파괴되었다. 일반 전투선보다 큰 군선 몇 척도 와해되었다.
가장 큰 소득은 적의 대장선이었다. 거대한 만큼 당장 망가지진 않았지만, 바닥이 뚫렸으니 침몰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대장선에는 각종 화포와 식량들이 많을 것이오. 옮긴다 해도 한계가 있을 터, 적의 전력을 크게 줄였소.”
“이제 시작이오.”
그때, 연위의 눈에 묵비가 보였다.
파파파파파팡!
손이 보이지도 않는다.
동체 시력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무아지경으로 적을 포착하며 무형탄을 날리는 묵비의 궁술은 천하의 연위와 곡경조차 감탄할 수밖에 없을 만큼 빠르고 정확했다.
“비야!”
“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뜻이 통한다. 묵비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곧장 해안가로 뛰었다.
이미 해안가 근처에는 수많은 수병이 도달해 있었다. 이제 해안가가 전쟁터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때였다.
연위와 곡경은 해군의 특수 화포가 깔린 곳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치이이익!
도화선이 불에 타는 소리.
이미 포병들과 지휘관은 위로 올라가 있었다.
연위의 얼굴에 놀라움이 일었다.
‘화포를 포기해?!’
그 순간, 수백의 수병들이 해안가 위로 올라섰다.
지휘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기가 빗나갔다! 던져라!”
십여 개의 검은 화탄이 화포가 비치된 곳을 향해 날아갔다.
잠시 후.
콰콰콰쾅!!
해안가에 있던 화포들과 그 안에 모아 둔 온갖 화약이 폭발하며 수병들의 몸을 찢어 놓았다.
그 폭발이 어찌나 거셌는지 중원 무림 병력은 물론 해안가로 돌진하는 사음교 병력 일부까지도 귀를 막았다.
화르르르륵!
거대한 불길이 해안가를 횡으로 달렸다.
습한 바닷바람으로 인해 그 불길도 곧 사그라들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신형 화포조차 포기할 각오로 화약을 모아 터트린 해군 지휘관의 결단과 그 파급력이었다.
중원 병력과 싸움을 벌여야 했을 수병 중 삼분지 일이 화약 폭발로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바로 화약의 무서움이었다. 해군 전선들에 지급한 화약들을 제외한 남은 화약을 몽땅 쏟아부어 초전의 축포를 터트렸다.
남은 화약은 없으니 이제부터는 진짜 싸움의 시작일 것이다. 하지만 그 한 번의 폭발로 적에게 준 타격이 엄청났다.
“역시.”
연위의 얼굴에 감탄이 어렸다.
“이것이 무림인과 군인의 차이인가.”
쓸 수 있는 수를 다 쓴다. 필요하다면 화포를 박살 내서라도 적을 섬멸하는 것, 무림 문파나 명문가들은 쉽게 떠올리지 못할 전술을 숨 쉬듯 자연스레 구사했다.
“일단 저 수귀들부터 막겠소! 연가주는 들어가서 화살을 뽑고 운기하시오! 앞으로의 싸움을 대비해야 하오!”
“부탁하겠소.”
파파팡!
세 고수가 한순간 해안가에 도달했다.
초전의 승리는 무림 병력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