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99)
흑백무제 1301화(1300/1320)
1301화. 피에 젖은 영광 (1)
“…….”
모용군은 서늘한 얼굴로 전장을 바라보았다.
공공대사가 말했다.
“어려운 걸음 해 주어 고맙소. 모용가와 상무 연합이 와 주어 마음이 든든하구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섬서 전쟁은 반나절 전에 끝이 났다.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달려왔는데, 이미 전쟁이 마무리된 것이다.
모용군은 말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모습이 조금은 실망한 듯도 보여, 공공대사가 말을 이었다.
“가주의 용단을 맹주인 내가 직접 보았소이다.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하오. 이만한 전력이 체력을 온존한 채로 유지되었으니 앞으로는…….”
“오해하실까 싶어 말하는데, 저는 지금 실망한 게 아닙니다.”
모용군이 쓴웃음을 흘렸다.
“전투가 빨리 끝났다면 좋은 일이지요. 하물며 승리한 전투라면 더더욱.”
공공대사는 솔직하게 물었다.
“하면 어찌 그리 표정이 좋지 않소이까?”
“이상해서요.”
다시 눈살을 찌푸리는 모용군, 그의 얼굴에 묘한 의혹이 깃들었다.
“이렇게 광범위한 사기(邪氣)의 흔적은 처음이군요. 마치 사마기에 홀린 광인들이 집단으로 발광하기라도 한 것 같습니다.”
공공대사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그걸 어찌 아셨소?”
싸움이 끝나고 한 시진도 채 되지 않아 일대의 사기는 단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증발했다. 소림사자후의 힘이었다.
한데 모용군은 그것을 읽은 것이다. 아직 무극에 이르지 못한 실력으로.
“흔적이라기보다는 악취라고 해야 할지…… 여하간 지독했겠습니다.”
지잉. 지잉.
모용군의 몸에서 휘몰아치는 뇌기가 그의 두뇌를 자꾸만 자극했다.
비록 연위만큼은 아니어도 그의 상단전 역시 경지에 비해 광활하고 예민했다.
차이가 있다면 연위의 상단전은 구름과 같았고, 모용군의 상단전은 말 그대로 벼락이었다. 크기와 방대함에 있어서는 연위를 따라갈 수 없지만 직감에 있어서는 그도 연위 못지않은 것이다.
더불어 그가 보유한 뇌기(雷氣)는 천지자연에서 가장 파괴력 있고 빠른 속도를 지닌 기운이었다. 그 뇌기는 그 성질대로 그의 몸과 신경까지도 예민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공공대사는 모용군의 안목에 감탄하며, 이번 전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었다.
묵묵히 그의 설명을 들은 모용군의 얼굴에 의아함이 일었다.
“그러고 도주했단 말입니까?”
“그렇소.”
“……그건 좀 이상하군요.”
공공대사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도 찝찝함을 느꼈소만, 이번 전투의 사상자가 워낙 많아서 쫓을 수도 없었소. 그나마 흑제성의 신장 둘이 말릴 새도 없이 쫓아갔지.”
모용군의 눈이 깊어졌다.
‘타당한 결단이긴 했지만.’
적측에 생존한 무극수가 몇 명이던가.
물론 퇴각하는 적의 후미를 친다면 적의 병력을 많이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선택하기엔 아군 측 무극수들이 너무 많이 지쳤다.
만약 양측 전력이 공멸했다면 그거야말로 중원 무림의 크나큰 패배다. 우르르 쫓아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나.
‘너무 수상해. 무얼 얻자고 이만큼 큰 판을 벌인 것이지? 제아무리 사교도라 해도 죽어 나간 목숨이 만 단위가 넘어간다. 이건 그냥 한번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전쟁을 벌인 게 절대 아니야.’
결정적으로, 사기로 만들어진 그 기묘한 진법이 마음에 걸렸다.
모용군이 남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애를 쓴 건 알겠지만, 너무 안이했다.’
싸웠던 주체들이니만큼 전투가 끝난 직후 안도감이 들었을 것이다. 그건 당연했다.
하지만 이곳에 군략가라 불릴 만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혹은 전투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있었다면 결코 저들을 그냥 보내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흑제성의 신장들이 간 것인가.’
강량과 진양.
진양은 몰라도 그 강량이라는 검사는 연호정을 제외하면 중원에서 손에 꼽힐 만한 천재다. 그 나이에 무종을 넘고 완숙에 이른 검결을 구사한다는 것부터가 괴물 같은 재능을 지녔음을 뜻한다.
하지만 그의 진짜 능력은 재능이 아닌 경험에 있다. 연호정과 숱한 전장을 전전하며 쌓아 간 경험과 배움은 강량의 감각을 날카롭게 벼려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는 것이다. 이 싸움에 무시할 수 없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적에게 뭔가 의도가 있다는 걸 알았음에도 일단 내부부터 안정시킨 이들의 판단 역시 틀린 건 아니지만, 강량과 진양처럼 한 걸음 더 나아갔어야만 했다. 말을 해도 통할 것 같지 않으니 둘이서 따로 그들을 추격했을 게 분명했다.
‘혹은, 저희들도 확신하기 애매했을지도 모르지. 뭐가 됐든 그들을 이대로 놔둬선 안 돼.’
모용군은 함께 온 흑제성 병력에게 말했다.
“자네들의 신장이 적들을 쫓아갔어. 이곳 전장은 전투가 끝났으니, 자네들의 상관을 지키러 가는 게 알맞지 않을까 싶네.”
“…….”
“흑도의 정보력은 중원 제일을 논하지. 다만 섬서와 산서 인근에선 상무 연합의 정보단도 보통이 아니니,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적의 이동 경로를 읽고 신장들을 찾아 함께하도록 하게.”
모용군이 품에서 패 하나를 꺼내 전투 부대장에게 건네주었다.
“이 패를 보여 주면 상단 정보원들에게 즉각적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걸세.”
“그럼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이것만 명심하게. 자네들도 봤듯, 이곳에서의 전투는 엄청나게 치열했어. 만에 하나 적과 조우한다 하더라도 결코 싸우지 말고 후퇴하게. 싸움은 신장들과 접선한 후에 벌여도 늦지 않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흑제성 병력은 빠르게 북부로 향했다. 흑제성 총병력의 이 할 가까운 숫자이기에 꽤 많은 인원이 대이동을 했다.
공공대사가 물었다.
“모용가주. 뭔가 걸리는 거라도 있는 것이오?”
“맹주님께서도 이상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물론 그렇소. 하지만 지금은…….”
“만 단위의 희생자가 난 싸움에서 서로 끝을 본 게 아닌데도 퇴각한 놈들입니다. 놈들의 행태가 의아했다면 무림맹 측에서도 최소한 정보단을 보냈어야 합니다.”
“그것은…….”
“따라잡아 섬멸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놈들의 의도가 뭔지 알아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전투가 끝나자마자 해결했어야 할 일로, 자칫 중원 전쟁의 판도를 뒤흔들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
“아군을 돌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상대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수백도, 수천도 아니고 수만입니다. 그만한 병력이 치고 들어왔다가 어정쩡한 순간에 빠졌습니다. 이곳까지 치고 들어오는 데 들인 수고를 생각하면, 놈들은 섬서를 반드시 끝장을 냈어야 합니다.”
공공대사의 눈이 흔들렸다.
그렇게 말하니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만큼 전투의 피해자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하은교는 물론 막원과 당관 역시 크고 작은 내외상을 입었다. 적들과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
모두가 목숨을 걸고 싸웠으니 반드시 휴식을 취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전력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당연한 판단이라고 보았다.
한데 모용군의 말을 들으니 생각이 바뀌었다.
‘그렇구나. 우리는 어찌 이리 느긋했을까.’
느긋했던 건 아니었다. 다만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을 뿐.
이것은 그들의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전국(全局)을 순간적으로 짚어 낼 능력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 기량만 따지자면야 그들 중 누구라도 부족함이 없었다.
“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아니, 지금은 안 됩니다. 흑제성만으로도 충분해요.”
우우우웅.
모용군의 눈에서 벼락이 쳤다.
타고난 군략의 재능과 온갖 정쟁으로 연마된 안목,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하는 뇌정공이 그의 두뇌 능력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곧장 사람을 보냈다면 모를까, 지금쯤이면 놈들도 숨은 다 돌렸을 겁니다. 만 단위 군세를, 심지어 초원의 이민족을 동원해 칠 만한 놈들이라면 병사들을 제어하는 능력도 뛰어날 터. 괜히 사람만 많이 보냈다간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먼 곳으로 달아날 확률이 높습니다.”
“정녕 흑제성의 병력만으로 충분하단 말이오?”
“전력을 논하기 이전에 그들이 여기 있어 봤자 좋을 게 없습니다. 비록 연합했다지만, 흑과 백의 골은 깊습니다. 하물며 무림맹 측 병력은 부상까지 입었지요. 괜히 신경질적으로 나서면 앞으로의 공조가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
“나아가, 지금 이곳에는 흑제성 병력을 통제할 만한 장수가 없습니다. 흑도 무림은 백도 무림보다 훨씬 더 빠르고 기민하지만, 수장 없이는 효율적인 움직임을 내기 힘듭니다. 연 성주는 저를 믿고 그들을 딸려 보냈지만, 저보단 자신들의 상관이 훨씬 더 나을 겁니다.”
보는 눈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공공대사는 자신의 눈을 찌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림맹주로서 먼저 생각했어야 할 부분까지 다 잊고 있었으니, 정녕 맹주 자격이 없긴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게 부끄러웠고, 그래도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면 어쩌면 좋겠소?”
모용군의 대답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일단 부상자 관리에 힘을 써야겠지요. 그리고 무림맹 자체 부대들은 모조리 귀환시키십시오.”
“귀환시키라니? 지금 당장 말이오?”
“무림맹 병력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좋았지만, 각 지역에는 지역을 지키는 대표 문파들이 있습니다. 무림맹이 할 일은 그들을 하나로 만들어 적의 공격을 일차로 막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지, 지역 문파들과 똑같이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잊지 마십시오. 무림맹은 백도 무림에서 황궁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전쟁이 났으니 한 번쯤 황궁군이 출동하여 외세를 막을 수 있지요. 하지만 누가 황궁을 지킬 부대를 군벌처럼 써먹습니까?”
제갈문호가 했던 말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무림맹 병력이 과감하게 이곳으로 치고 올라온 것은 멋진 한 수였다고 말한다.
맹주와 군사, 주인과 군략가의 재능을 다 갖춘 걸물의 시선이었다.
이제는 진정 한 조직의 수장을 맡기에 부족함이 없는 안목이다. 정쟁이 아닌 세상을 위해, 나의 보신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해 발휘되는 모용군의 안목은 이제 천하 정점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림맹은 지금부터 중심을 지킵니다. 도주한 적들은 어떤 식으로든 북부로 침공해 올 터, 지금부터는 정보전(情報戰)의 영역으로 적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이 옳습니다.”
공공대사는 물론 멀리 떨어져 있던 하은교, 막원까지도 홀린 듯 그의 말을 들었다.
“섬서가 초토화되었다지만, 아직 모두를 잃은 것은 아닙니다. 당장 상무 연합 병력부터가 섬서 북부에 상존하여 적의 동태를 파악하고, 북부 전선 전체의 정보망을 구축할 겁니다.”
“산서는 어떻게 하면 좋겠소?”
“산서에는 연 성주가 갔습니다. 그쪽을 걱정하는 것은 괜한 전력 소모입니다. 안 되면 함정을 만들어서라도 백날 천 날 묶어 둘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딱 잘라 말한다. 연호정의 존재 자체를 승리와 동의어로 보는 듯했다.
“문제는 하북입니다. 하북 무림이 초토화가 된 지금, 놈들은 하북으로 밀고 들어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용군의 눈이 번뜩였다.
“이제부터 하북은 우리 모용세가가 막도록 하겠습니다. 인원을 정비하고 반나절 뒤 출발할 테니, 최대한 질 좋은 식량과 식수를 구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