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302)
흑백무제 1304화(1303/1320)
1304화. 피에 젖은 영광 (4)
파아아아앙!
무서운 속도로 전진하는 연호정, 그리고 그의 뒤를 따르는 일백의 무사들이 있었다. 바로 호종대였다.
거리가 거리인지라 최고 속도를 내지 않았다고는 해도, 연호정의 뒤를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따라오는 호종대의 역량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적어도 신법과 체력만큼은 중원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연호정과 나란히 보조를 맞추는 암무단주 허백 역시 대단하긴 마찬가지였다.
‘이상하군.’
연호정의 눈이 깊어졌다.
‘점점 피 냄새가 짙어져. 설마하니 벌써……?’
허백에게 받은 보고에 따르면, 산동에 삼교의 세력으로 추측되는 무리가 날뛰고 있다 했다.
당장 병력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단순한 병력으로는 상대할 수 없을 거란 예감, 반드시 자신이 가야만 한다는 예감에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달리고 있는 것이다.
‘확실해. 최소한 내가 가야 하는 길이다. 그 정도로 피 냄새가 짙어.’
산서에서 남하해 하남 북부를 지나 산동으로 향하는 길이다.
천하는 넓고 광활하여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다 알 수가 없다. 어느 지역에 왔다고 해서 그 지역에서 무슨 일이 터지는지 알 수 없고, 그곳에 있다 하여 다른 지역의 일을 모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아버지도 나와 같은 과정을 겪으셨겠지.’
때때로 아버지는 불안하다고 하셨고, 무엇 때문에 불안한지 모른다고 하셨다.
이제는 연호정도 안다.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영기(靈氣)가 알려 주는 것이다. 하늘이 알려 주고 있어.’
상단의 영기를 연마하기 위해서는 백회(百會)를 통한 천기(天氣)의 유입이 필요하다.
당연히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무극수라도 까딱 잘못하다가는 과도한 천기의 유입으로 미쳐서 광인이 되거나 즉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천기 유입으로 영기를 직접적으로 단련하는 자들이 술사들이다. 그런 그들도 타고난 신기가 강한 자들을 선별해 연마할 뿐이며, 극히 미세한 천기로 상단전을 씻어 내며 조심히 힘을 불린다.
무극에 오른 고수들은 또 달랐다.
그들이 이룬 경지는 실로 반선(半仙)이라 칭해도 무방한바. 이미 인간보다 하늘에 더 가까워진 존재라, 자연스레 천기를 받아들이되 그것으로 영기를 키우는 게 아니라 신체 발달과 내공의 질적 향상을 도모한다.
연호정과 연위는 그런 와중에도 또 다른 경우라 볼 수 있었다.
연호정에게는 황룡신왕공이 있었고, 연위는 타고난 신기가 술사의 재목이라 불릴 만큼 대단했다.
황룡신왕공은 연호정의 수십 년 깨달음에 더해 스승과의 만남, 번뇌를 씻어 가는 과정에서 천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는 신통력에 가까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연위는 극에 이른 깨달음으로 심검(心劍)을 얻었고, 심검은 그가 지닌 본연의 신기를 더 크고 왕성하게 불려 나갔다. 영기 자체가 천기를 원했기에 그의 예지와 직감은 연호정을 능가할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아마도 연가신단을 형성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광인이 되었거나 혼이 육신에서 이탈해 버렸을 것이다. 그것이 그의 경지였다.
뭐가 되었든 연호정은 이제 연위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으며, 그 힘은 그를 산동으로 이끌고 있었다.
하늘의 명령이 아닌 부름이다. 하늘이 저곳에 가지 않으면 크게 후회할 거라고 말해 주고 있다.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직감을 무시하고 움직인다면 필시 후회로 몸부림을 칠 터.
‘도무지 모르겠군.’
동시에 그는 신선이 아니다. 하늘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는 하나 명백한 인간이기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인간에게는 이성과 논리, 이유와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달리 말하면, 그 모든 과정을 무시할 정도로 연호정의 직감이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성주님.”
“다녀와.”
“예.”
파아아앙!
달리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대열을 이탈한 허백이 다시 돌아온 것은 반 시진 후였다.
“현재 삼교의 잔당으로 추측되는 이들의 숫자는 일천을 넘는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무극에 이른 고수로 추정되는 자들도 있으며, 벌써 태산 앞까지 진군했다고 합니다.”
무극, 무극.
“적의 정체는?”
“아직 모호하다고 합니다.”
“모호하다고? 특성이나 그런 것도 없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다 파괴하며 전진하는 중이라 합니다. 도시는 쑥대밭이 되었고 불타 사라진 마을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 하였습니다.”
“…….”
“그들과 맞서 패사한 산동 무림인의 숫자가 수천에 이르렀으며, 적은 여전히 기존의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연호정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산동 무림인들의 패사도 패사지만, 도시가 궤멸되고 수많은 마을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그를 분노케 하였다.
하지만 분노한 와중에도 그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산동…… 그래, 어쩐지 너무 쉽다 했어.”
연호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놈들, 양동 작전이 아니라 세 갈래로 나눠서 왔군.”
섬서로 고수들과 병력을 파견했으며 강소성에는 해군을 보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보았다. 아니, 충분한 게 아니라 그게 가장 효율적이다. 병력이란 게 많이 쪼갠다고 좋은 게 아니니까.
하지만 실상은 둘이 아니라 셋이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전력이 더 많았던 건가.”
상황도 상황이지만, 전력을 둘로 나누었다고 판단한 것은 연호정이 사음교의 전력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흑암제 시절, 사음교 하나만으로도 무림이 밀렸다.
물론 사전에 수많은 일이 있었다. 무극에 이른 고수들이 대거 암살당했고, 광혈교가 사천을 거의 장악했으며, 신화교 역시 황궁을 초토화시켰으니 무림의 힘이 지금보다 훨씬 더 약해져 있었다.
그걸 감안해도 사음교의 힘은 강한 것이었다. 단순 총전력만 생각하면 광혈이나 신화교를 넉넉히 추월할 지경이었다.
다만 그때보다 더 이르게 전쟁이 터졌으니, 당시보다 더 많지는 않을 거라 예상했다.
그래도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거늘.
‘심지어 산서에는 신화까지 보냈다. 양동 작전을 할 필요도 없었다는 뜻이다. 차라리 허를 찔러 한곳에 모든 전력을 퍼부었다면 더 나았을 것인데.’
전략적으로 보면 당연히 한곳에 힘을 실어 두는 게 좋다. 사음교 입장에서 이용해 먹을 거라면 신화교를 이용해 먹지, 굳이 힘을 나눌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심지어 둘도 아니고 셋으로?
‘원하는 게 확실히 있어.’
당장 사기에 홀린 기마병들의 존재부터가 의문이었다.
‘산서 전장에서 놈들은 패배했다. 뭘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게 분명해. 단순한 전력 분산을 원했다면 성공했다고 봐도 좋겠지만…….’
그때였다.
“자, 잠시만 멈추십시오!”
목소리는 익숙하지 않지만 기도가 익숙했다.
연호정 일행이 속도를 멈추었다.
잠시 후.
“헉헉! 저, 정말 엄청나게 빠르시군요!”
“개방이오?”
“하남 개봉 분타주입니다! 흑제성주님을 뵙습니다!”
“시간이 없소. 용건만 짧게.”
“아, 현재 흑제성주님께서 산동으로 향한다시기에 중부에 주둔 중이던 개방의 모든 병력이 산동으로 이동 중입니다! 성주님의 뒤를 받쳐 드리기 위함이지요.”
연호정의 눈에 기광이 떠올랐다.
순간 개봉 분타주는 저도 모르게 무릎이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괴물이다, 괴물이야.’
달리 기파를 터트린 것도 아니다. 그냥 한순간 눈빛이 바뀐 것뿐인데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달아나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른 그가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무림맹 측에서도 산동으로 고수를 보냈답니다. 총군사께서 한층 빨리 손을 쓰셨어요.”
“무림맹에 남은 고수가 있었소?”
“생각보다 많습니다. 아, 물론 지금 오는 고수들은 정식 무림맹 소속이 아닙니다만.”
“누구요?”
“북해빙궁입니다.”
연호정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소식을 들은 빙궁주께서도 직접 오신다고 합니다. 우궁주인 모웅백을 비롯한 빙궁의 전력이 화룡단의 안내를 따라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들이……?”
“동맹을 맺었던 터라 참고 있었지만, 사방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데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생각보다 호전적인 사람들인 모양이더군요.”
맞다. 모자선이나 모웅백이나 대화보다는 칼로 서로를 알아보려 하는 이들이었다.
‘그럴 만도 한가.’
그들과 상극인 신화교가 거의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 소문이 벌써 무림맹까지 전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있어 주적은 신화교였다.
신화교가 없어졌다면 사음교와 광혈교가 남는데, 광혈은 무모한 진격으로 중원 무림인들에게 박살이 나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사음교밖에 없다. 그들로서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성급했어. 마음은 알겠지만, 결국 궁전을 버리고 중원까지 온 것은 궁인들을 살리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진즉 출발했다는데 어쩌겠는가. 게다가 이쪽 역시 하나의 전력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알겠소. 알려 줘서 고맙소.”
“아, 그리고 하나 더…….”
개봉 분타주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일었다.
순간 연호정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왜인지 그의 얼굴만 봐도 이어질 말을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소성 전투는 어떻게 됐소?”
“헉! 아, 알고 계셨습니까?”
“모르니까 묻는 것이오. 그 싸움은 어떻게 되었소?”
분타주가 한숨을 쉬었다.
“그것이……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만, 초전의 기세와 다르게 전선에서 밀렸다고 합니다.”
“밀려?!”
“그렇습니다. 예상되는 적의 피해는 총 삼만 중 일만이 넘지만, 아군 역시 삼천이 넘는 사상자가 났다고 합니다.”
연호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전력이 분산되었기에 강소성에 보낼 수 있는 전력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흑제성 병력의 팔 할을 보낸 것이다.
전투 가용 인원만 일만이 훌쩍 넘으니, 해안가에서 방어를 하는 상황에선 충분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했다.
한데 전선이 밀렸단다. 그곳에 연위와 곡경, 양천이 있음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놈들 측 고수의 숫자가 많았소?”
“그렇기도 합니다만…….”
“……?”
“그게…… 연가주님께서 적장과의 싸움에서 크게 패하셨다고 합니다.”
우우우우웅.
광룡부가 미친 듯이 울렸다.
분타주가 떠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다, 다행히 전사하진 않으셨지만 고수전에서의 힘의 추가 무너졌고, 기세를 탄 적들을 막지 못해 태주(泰州) 인근까지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태주 뒤에는 장강이 있다.
만약 적들이 기세를 몰아 밀고 들어오면 무림 병력은 배수진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끝장이란 말이다.
심지어 장강을 넘어가면 남경이 있다. 그리고 남경에는 황궁이 있었다.
‘대체 어떻게……?!’
아버지는 결코 무모한 싸움을 하실 분이 아니다. 전투에 변수가 많다지만, 아버지가 패퇴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빌어먹을.’
당장이라도 강소성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곳에는 자신의 집이 있었다.
하지만…….
“알려 줘서 고맙소.”
연호정이 외쳤다.
“다시 진격한다! 지금부터 최고 속도로 산동으로 향할 터, 뒤처지는 놈들은 두고 갈 것이다!”
“존명!”
불안함을 뒤로한 채 향하는 또 다른 전장.
중원이 신음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