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307)
흑백무제 1309화(1308/1320)
1309화. 피에 젖은 영광 (9)
호연율의 눈에 살기가 일었다.
“사령관님. 저희에게 저 무도한 작자를 제거할…….”
“어째서 가지 않았느냐.”
“예?”
단공은 호연율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너희들에게 내린 명령이 있을 터인데.”
사음괴를 지키라는 명령을 뜻함이었다.
호연율이 고개를 숙였다.
“뇌현단 삼백 인원이 철통같이 보호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저…….”
“내 분명.”
그제야 호연율을 돌아보는 단공의 두 눈은 위험한 사기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명을 내렸을 터인데.”
순간 호연율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죄, 죄송합니다! 명을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호연율과 뇌현단은 후방으로 돌아갔다. 사음괴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피식 웃은 단공이 연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대단하긴 한 모양이다. 지금껏 저 녀석은 단 한 번도 내 명령을 어긴 적이 없었어. 불 속에 뛰어들라 해도 대꾸 한마디 없이 땅을 박차는 녀석이지.”
“…….”
“그런 녀석이 이백의 뇌현단을 이끌고 다시 이곳으로 왔다…… 네놈에게 뭔가를 느낀 것 같아.”
“그런가.”
“저 녀석은 교주님의 수많은 씨 중 하나다. 씨 중 쓸모없는 것들도 많지만, 보다시피 저 녀석은 몹시 괜찮은 재능을 타고났어. 직감도 수준급이라, 교주님의 피를 제법 진하게 이었다고 볼 수 있겠지.”
단공의 얼굴이 점점 차가워졌다.
“만약 그 직감으로 인해 온 것이 아니라면, 네놈의 짓인가?”
“…….”
“너의 존재가 저 녀석들의 이성을 마비시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알 수 없는 말은 사절이다.”
우우웅.
제국검이 검명을 터트렸다.
“나는 강소성 무림 병력의 수뇌 중 하나로, 적장의 목을 베어 이 사태를 속히 끝내고자 찾아왔다. 내 목적은 그것뿐이다.”
“그런가.”
단공의 눈이 가늘어졌다.
“정녕 그것뿐인가?”
“…….”
“네놈의 눈에선 검기(劍氣)가 쏟아져 나오고, 전신에는 상서로운 신기(神氣)가 감돌고 있다.”
“…….”
“상단전을 그 경지까지 연마한 자를, 나는 교주님을 제외하고 본 적이 없다. 저 사괴술사조차 네놈에 비하면 부족하기 짝이 없어. 상단전을 다루는 방식이 다르다고는 하나, 이 정도로 거대한 상단전을 지녔다면 필경 우리가 상상도 못 할 무언가를 읽어 냈을 것이다.”
단공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내 직감이 맞았군. 처음 너와 싸울 때부터 알았지. 저 멀리 용과 호랑이 같은 적장들이 본교의 사왕들을 상대하고 있지만, 이 싸움의 핵은 너다. 너를 죽이면 손쉽게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
“넌 나를 죽여 전쟁을 끝낼 생각으로 찾아왔다 했지만, 결국 스스로의 목숨과 함께 패배의 깃발을 내게 전하러 온 것이다.”
아무도 없는 공터도 아니요, 적군이 진을 치고 있는 곳 한복판이다.
심리적인 압박감, 실질적인 전력의 차이로 인해 동수라도 이기기 힘들 터. 하물며 연위는 단공에게 한 번 패배하기까지 했다.
누구라도 연위의 행동을 무모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적진을 뚫고 여기까지 도달한 능력은 대단했지만, 결국 전국을 놓고 보면 안 하느니만 못한 짓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웅! 우웅!
제국검의 검명이 점점 강해졌다.
“…….”
가만히 연위를 보는 단공의 얼굴에 살기가 일었다.
처음 몇 마디를 제외하고 대답하지 않는 그였다.
단공의 말에 심란해져서도, 압도를 당해서도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연위는 오직 단공을 죽이기 위해 집중하고 있었다.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힘을 불리는 그의 제국검은 언제든 상대의 심장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만한 준비를 갖추었다.
‘걸물은 걸물이야.’
연가의 가주, 판관검 연위.
그 위명은 대륙 바깥까지 들려올 지경이었다. 특히나 황궁에서의 활약이 원체 대단하여, 일각에서는 그를 성천십삼좌의 사왕에 비견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기묘한 자다. 그러나…….’
화아악!
단공의 몸에서 폭발적인 사기가 뿜어져 나왔다.
연위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상대의 무시무시한 기파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한 번 패배한 고양이가 발톱을 갈았다고 늑대를 잡을 수는 없지.”
쿵!
힘찬 진각.
땅을 밟은 발 위로 싯누런 연기가 피어올랐다.
“잘 왔다, 연위.”
그 순간, 연위가 움직였다.
훅.
언제나처럼 요란하지 않은 그의 움직임은 한 줄기 바람과도 같았다.
단숨에 거리를 좁혀 단공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정직하고도 단순한 일검이었다.
하지만 단공은 그 검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한 번 이겼다고는 해도 위험한 상대다. 당장 이놈에게 당한 검상이 다 낫지도 않았다.
만반의 준비를 한 단공, 그의 좌장이 호선을 그리며 상승했다.
콰릉!
폭발과 함께 제국검이 갈 길을 잃었다.
연위의 눈에 기광이 떠올랐다.
‘역시 강하다.’
실로 막강한 경력이다. 적어도 힘에 있어서만큼은 단공이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단공에게 없는 많은 것이 연위에게 있었다.
파라락!
펑퍼짐한 장삼에 풍신(風神)이 깃든 것 같았다. 요란스럽지 않고도 화려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는 움직임이었다.
절묘한 움직임으로 단공의 좌측면에 도달한 그가 제국검을 짧게 두 번 끊어 쳤다.
파팡!
빗장뼈와 늑골을 노리는 검기(劍技).
거리를 격하고 쏘아 내는 검기(劍氣)가 실리진 않았다.
그런데도 무섭도록 예리했다. 일격을 허용하면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단공의 양손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원을 그렸다.
우우우웅!
대기를 빨아들이는 두 개의 원이 연위의 검로를 미세하게 뒤틀었다. 음황신장(陰荒神掌)의 보옥상벽(寶玉相壁)이었다.
그 순간, 제국검에 푸른 기운이 솟구쳤다.
쾅!
늑골을 노린 검력을 휘감아, 빗장뼈를 노리는 검력에 힘을 더 실어 냈다.
허초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법이었지만, 일순간 두 배의 힘이 된 제국검은 보옥상벽의 방패에 금을 만들어 냈다.
단공의 눈이 번뜩였다.
쿵!
강한 진각이 음황무, 산음일보(山陰一步)의 구결을 통해 일대를 뒤흔들었다.
콰쾅!
단공을 중심으로 사방에 무시무시한 경파가 번졌다. 반경 삼 장을 아우르는 그 경파는 회오리치다가 오 장, 십 장 너머로까지 뿜어져 나갔다.
화아아악!
멀리 떨어진 막사조차도 경파에 휘말려 갈기갈기 찢겨 날아갔다. 그 안에 있던 침상과 각종 기물 역시 태풍에 휩쓸린 것처럼 깨지고 박살 나며 날아가 버렸다.
처음부터 전력을 발휘하는 단공이다. 전장에서 적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탐색전을 벌이는 것만큼 무모한 짓은 없는 법, 그는 최대한 빨리 연위를 죽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건 연위 역시 마찬가지였다.
파팡!
천종운행비를 보법처럼 펼친다.
산음일보의 광혼진(狂魂震)에도 밀려 나가지 않았다. 그의 몸은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용처럼, 폭풍을 무시하고 나아가는 교룡처럼 단공의 주위를 맴돌다가 벼락처럼 검을 내쳐 왔다.
군자팔검세(君子八劍勢)의 군자지검.
갈지자처럼 휘어지는 검 끝이 대기를 조종했다. 휘황찬란하게 퍼져 나가는 음황의 경파가 그의 검로를 따라 일그러지며 차츰차츰 맥이 끊어지고 있었다.
‘훌륭하구나.’
적이지만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태껏 음황무의 기공술을 형(形)으로 제압하려 든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한 번 승리했다고 하여 방심해선 안 되는 이유를 여지없이 보여 주는 놈이다.
단공의 두 주먹이 빠르게 움직였다.
파파파파팡!
언덕 위 공기가 요동을 쳤다.
저 하늘에 구름 조각이라도 있었다면 그 조각들마저 흩어질 정도로 막강한 경력이 쏟아져 나왔다. 일격 일격이 필살이다. 바위고 뭐고 다 갈아 부숴 버릴 듯한 패력의 강권(强拳)이었다.
사악!
위력적인 권압에 연위의 의복 곳곳이 찢어지거나 가루가 되었다.
연위의 눈이 깊어졌다.
‘절대적인 내공력이다. 그때도 느꼈지만, 이자의 내공에는 한계가 없어. 내공의 깊이만 따지면 저 권신 무허대사에 필적할 정도다.’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깊이다. 이 정도 위력의 권법을 몇 시진이고 퍼부어도 지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후우우웅!
제국검이 멋들어진 곡선을 그렸다.
화선지 위를 일필휘지로 가르는 붓질과 같았다. 장엄하고도 엄격한 와중에 끊어짐이 없는 검로가 화공의 그림을 보는 듯했다.
우르릉! 쾅! 쾅!
검로를 따라 제멋대로 휘어진 권경이 저희들끼리 부딪치며 막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로 인해 대지에 금이 가고 뜨거운 열기가 솟구쳤다.
‘내공량으로 승부가 정해졌다면, 나는 진즉에 죽었을 것이다.’
군자팔검세 검필화극(劍筆畵劇).
단공의 주먹이 활짝 펴지며 강렬한 장력을 뿜었다.
훅!
권법이 망치와 같다면 장법은 두꺼운 돌벽과 같다. 묵직하게 밀어 내듯 다가오는 장력은 검필화극의 초식으로도 몰아낼 수가 없다.
하지만 연위는 군자의 춤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이 장법에 대처할 무공이 그에겐 몇 가지나 있었지만, 그럼에도 군자팔검세를 펼치려 했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카가가각!
돌벽을 긁는 검처럼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진다.
군자팔검세의 중검대도(中劍貸道)였다. 방어와 반격에 특화가 된 초식인 만큼 활로를 여는 순간에 제격이었다.
그러나 음황신장의 힘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콰앙!
연위의 입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두 발은 땅에 박힌 채 그의 몸을 고정하고 있었다.
회피하면서 구사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겠지만, 연위는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일부러 서서 막았다.
콰릉!
또 한 번 공세를 취하려던 단공은 대경했다. 흩어진 음황신장의 장력이 소멸하지 않고 그대로 자신에게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이건?!’
찰나지간, 단공은 연위의 좌수가 자신을 향해 뻗어 있음을 보았다.
연가의 절학, 반룡장(反龍掌)이었다. 이 또한 반격에 특화된 장법이었다.
‘이놈, 뚫고 들어오기 위해 살을 내주었는가.’
중검대도로 피해를 최소화하며 버틴 것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한 것.
단공이 또 한 번 보옥상벽을 펼쳤다.
콰쾅!
자신의 장력을 자신이 막는 경험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다. 일부라고는 해도 음황의 공력이 실린 힘이라 받아 내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번쩍!
철벽처럼 상대의 무공을 막았던 제국검이 빛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군자팔검세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었다. 화룡점정의 성어를 그대로 따온 이 초식은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핵심적인 방위를 짚어 내는, 군자팔검세에서 가장 단순하고도 연마하기 어려운 초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단공의 얼굴에 처음으로 다급함이 어렸다.
서걱!
혼신의 힘을 다해 고개를 틀었지만, 제국검의 검경은 그대로 그의 볼살과 귓불의 반을 자르고 지나갔다.
푸화악!
상처가 꽤 깊었다. 뼈가 상하진 않았지만, 출혈량이 상당했다.
등골이 오싹해질 만한 일검, 단공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이놈!”
화악!
산음이보(山陰二步)로 쾌속하게 접근한 그가 연위의 복부를 향해 일권을 내질렀다.
화아아아악!!
일대의 공기가 모조리 주먹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엄청난 인력(引力)으로 모인 힘, 받아 낼 수 없는 파괴력이었다.
‘받아 낼 수 없다면.’
전신에 힘이 빠졌다.
극치의 탈력(脫力)이었다. 죽은 종리백이 본다면 무릎을 치며 감탄할 만큼 유연한 자세가 연위의 생명을 살린다.
‘흘린 후 벤다.’
음황신권이 연위의 복부에 작렬했다.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