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308)
흑백무제 1310화(1309/1320)
1310화. 피에 젖은 영광 (10)
타점에서 폭발하는 권력은 산이라도 뒤흔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한 위력이라면 어떠한 유공(柔功)으로도 막을 수 없다. 설령 저 검선 탁무자의 태극검이라도 흘릴 수 없을 것이다.
단공은 그렇게 자신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곧장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쿨럭.”
피를 토하면서도 뻗은 왼손이 단공의 손목을 잡아챈다.
맥문이다. 제대로 들어가면 무극수라도 온몸이 박살 나 죽을 수밖에 없는 권력을 해소한 채, 상대의 맥문을 잡아 날아가는 몸을 붙든다.
단공은 순간적으로 섬뜩함을 느꼈다.
맥문이 잡힌 것 자체가 죽음의 위기다. 맥문을 통해 타인의 기가 들어오면 내상을 입는다. 하물며 연위 정도의 고수가 침투경을 발하면 목숨이 위험할 것이다.
‘흡!’
서둘러 음황사기를 끌어 올려 맥문을 틀어막고 음황지(陰荒指)를 펼쳤다.
음황지가 노리는 곳은 연위의 심장이었다. 심맥을 파열시켜 내공의 흐름까지 끊어 버릴 요량인 것이다.
그때였다.
‘……?!’
송곳처럼 날카로운 음황지력이 나아가는 순간, 이미 완고해 보이는 검날이 자신의 빗장뼈를 갈라 오고 있었다.
서걱!
단공이 이를 악물었다.
‘묵직하다.’
음황사기의 가공할 호신강기 덕에 피육이 베이는 정도로 끝났다. 아니었다면 갈비뼈가 모조리 끊어졌을 것이다.
우우우우우웅!!
무섭게 들끓어 오르는 음황사기가 막강한 발경을 자아냈다.
쾅!
맥문을 잡은 연위의 손이 뒤로 튕겨 나갔다.
찰나지간 죽음의 위기를 겪은 단공, 그 두려움은 그대로 분노가 되어 더 강력한 내공력을 자아냈다.
“죽어라!”
쾅!
산음일보의 광혼진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흐트러트린 후 산음이보로 접근해 음황신권, 풍신일격(風信一擊)을 쏟아 냈다.
‘놀랍군.’
바람에 몸을 실은 연위의 두 눈은 흐릿했다.
‘엄청난 강권이다. 타점에 이르기까지의 영역을 전부 압력으로 파괴하고 있어.’
콰쾅! 하는 소리가 환상처럼 들려온다. 지나는 길 위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무적의 힘이었다.
‘아직인가.’
파괴력 넘치는 무공이라면 연위도 구사할 수 있다.
아니, 파괴력으론 천하 정점에 이른 무공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 펼치면 저 권경을 통째로 부수고 상대에게 내상까지 입힐 수 있을 것이다.
‘안 돼.’
지이잉!!
연가신단이 또다시 회전했다.
풍신일격의 권경이 다가오는 속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머리가 돌아가고 있었다.
‘여의파검은 뒤가 없는 무공이다. 두 번째까지는 가능하지만, 지금 상태론 일초만 펼쳐도 녹초다.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고서야 함부로 쓸 만한 무공이 못 된다.’
그렇다면 조정연검을 어떤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영력 파훼법을 쓰는 놈에게 제대로 들어갈지가 의문이다. 만약 그리되면 영력 없이 공력만으로 대항해야 할 터. 차라리 신기를 전부 내공력으로 돌려 신체와 진기 밀도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게 낫지 않겠는가.’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생각.
생각은 곧 전략이었고 전술이었으며 싸움법이었다.
‘아니, 그 또한 답이 아니다. 이놈 역시 결정적인 순간을 노리고 있어. 하물며 이 기묘한 사공은 파괴력만 높은 게 아니다. 진기 자체가 독(毒)이야.’
나른한 연위의 눈에 섬광이 번쩍였다.
‘이 무공의 진짜 위력은 침투경에 있다. 이놈은 아직 침투경이나 독기를 이용해 날 공격하지 않았어. 섣불리 공격했다간 곧장 대응책을 만들어 낼 걸 알기 때문이다.’
음황무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는 그였다.
동시에, 자신의 능력과 상대의 노림수를 전부 파악한다.
극에 이른 상단전의 힘, 나아가 오랜 시간을 두고 완성한 무(武)가 숱한 싸움을 거쳐 그의 실전 능력을 극치로 이끌고 있었다.
‘다시, 그 수밖에 없는가.’
아수라팔검.
내공 구결의 역회전을 이용, 일시적으로 마화(魔化)하여 상대를 잔혹하게 베어 버리는 궁극의 살인검.
그 살인검에 실린 사기(死氣)는 천하에서 가장 유부(幽府)에 가까운 기운이다. 그 검에 당한 상대의 팔은 아직도 다 낫지 않았다.
‘아니다.’
전부 다 아니다.
연가신단이 보여 주는 파훼법을 하나하나 살폈지만, 그 모든 것이 무소용이다.
‘하지만 난 이놈을 이길 자신이 있다. 이 전쟁을 끝낼 자신이 있어서 온 것이야.’
번쩍!
그 순간, 연위는 하늘에서 환한 섬광이 번뜩이는 것을 보았다.
오직 검이다. 검 한 자루가 환하게 빛나며 연위에게 이 싸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고 있었다.
연위가 웃으며 눈을 감았다.
훅!
밀려 나가던 그의 몸이 일순 세 배는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콰앙!
단공의 눈이 흔들렸다.
‘피했어?!’
광혼진의 경력에 휩쓸렸으니 내상을 입었을 것이요, 허공에 뜬 채로 풍신일격을 받아 낼 수 없을 테니 최소 중상은 입어야만 했다.
한데 상대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물러나더니, 풍신일격의 타점 밖에서 자세를 낮추고 있었다.
‘한 치, 아니 반 치 차이다. 반 치만 덜 물러났어도 놈의 상반신은 그대로 박살이 났을 터.’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풍신일격의 거리를 읽었다고?’
우웅! 우우우웅!
제국검이 또 한 번 울음을 토해 냈다.
성난 검을 다독이지도 않은 채, 눈을 감고 검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연위의 모습은 마치 검무(劍舞)를 추는 무희와 같았다.
단공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이 나를 두고, 감히 여유를 부린단 말인가.”
치이이이익!!
근육 한 올 한 올까지 실린 음황사기가 더 짙은 색을 발했다.
황야를 휘감는 모래 폭풍과도 같은 색이다. 음황사기의 진정한 힘을 끄집어내는 단공이었다.
“거리를 벌려라!”
한참 멀리 떨어진 호연율이 뇌현단에게 외쳤다.
“사왕께서 음황의 봉인을 풀었다! 자칫하면 다 죽을 것이다!”
서둘러 사음괴를 데리고 오십 장을 더 물러나는 그들의 얼굴에 경이로움과 공포심이 깃들었다.
호연율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음황사기의 독기를 해방했다. 일대가 죽음의 영역으로 변할 터…… 저 검사가 그만한 강자였단 말인가.’
우우우웅!
허공을 가르던 제국검의 검명이 조금 더 진중해졌다.
단공의 입가가 꿈틀거렸다.
“나를 우롱하겠다면 마음대로 해라.”
치이이익!
무언가 끓는 듯, 혹은 녹는 듯한 괴이한 소리가 난다.
음황사기로 가득한 손을 들어 올린 그가 툭 던지듯 장을 뻗었다.
‘……!’
연위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지독하구나.’
눈으로 직접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보이는 장력.
꿈틀거리는 태양이 날아오는 것 같았다. 장력의 여파만으로도 피가 끓어오르는 느낌, 심상치 않은 독기였다.
그러나.
‘나쁘지 않아.’
번쩍!
눈을 뜬 연위가 어느새 두 손으로 제국검을 잡았다.
‘이걸로 나는 너의 모든 것을 보았다.’
제국검이 반듯한 참격을 발했다.
순수한 일참, 철검대연의 일필종단검(一筆縱斷劍)이었다.
단공은 그를 비웃었다.
‘멍청한 놈. 해방된 음황무를 칼질로는…….’
그때였다.
서걱! 화르르륵!
반쪽이 난 음황신장의 장력이 시퍼런 불똥을 튀기며 사라졌다.
‘뭐?!’
단공의 눈이 부릅떠졌다.
‘내 장력을 베었다고?’
벨 수는 있다. 하지만 베어도 다시 합쳐질 것이며 결정적으로 독기가 남는다.
음황독은 천하에서 손에 꼽힐 만큼 지독한 독이다. 침투한 독은 무극수의 생명조차도 앗아 갈 만큼 잔인하고 끈질겼다.
그런 독기가, 상대의 내공력에 순식간에 불타 사라진 것이다.
“말도 안 돼!”
콰앙!
산음이보로 접근한 그가 음황신장, 황포산(荒砲散)을 펼쳤다.
후우우우웅!
무섭게 집약된 황색 구체가 소용돌이치며 날아간다. 종전의 장력과는 차원이 다른 힘이었다.
연위의 눈이 반짝였다.
‘이건 막을 수 없겠어.’
황색 구체가 지나간 길 위의 모든 것이 황폐화된다. 그 짧은 순간에 갈라진 땅이 썩어 들어가는 게 보였다.
‘하지만 받아넘길 수는 있다.’
힘을 뺀다.
탈력, 그리고 탈력.
어인 일인지 갑자기 종리백이 떠올랐다. 친분도 깊지 않은 그가 귓가에 뭐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힘을 빼게. 그리고 휘둘러. 검이 알아서 갈 길을 만들어 줄 것이야.’
‘검이 스스로 움직인단 말입니까?’
‘자네가 원하고 또 원한다면.’
훅!
부드러운 일 보로 전진한 연위가 눈을 감은 채 양손으로 제국검을 휘둘렀다.
하단에서 상단으로 올려 치는 수법이었다.
순간 연위는 등줄기가 짜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검 끝에 걸리는 묵직한 느낌, 마치 만근의 강철 덩어리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쿠르르릉!
폭풍이 대지를 할퀴고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제국검의 풍성한 검력을 받은 황포산의 장력이 묵직하게 사선으로 휘어 올라갔다.
‘나쁘지 않았어. 하지만 모자라. 하반신과 허리에 긴장이 들어갔어. 그래서야 형태도 죽고 힘도 살지 못하지.’
연위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극한의 경지에 이른 고수들끼리 기공전을 벌이는 와중이다. 한데 귓가에 울리는 소리는 형(形)을 말했고 힘(力)을 말했다.
그때였다.
화아아악!
절로 눈이 뜨일 수밖에 없는 기세다.
코앞까지 다가온 단공이 그의 머리통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엄청난 위압감, 풍압에 피부가 다 갈라질 것 같았다. 절로 몸에 힘이 들어갔다.
파박! 서걱!
신들린 보법으로 회전하며 단공을 넘어간 연위, 어느새 단공의 어깨에 검상이 새겨졌다. 그 짧은 순간에 베고 지나간 것이다.
“이놈!”
절호의 순간이다.
연위는 상대가 크게 분노했음을 알았다. 미세하지만 보법이 다소 딱딱해지고, 탄력도 예전보다 줄어든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 강하다. 위력만큼은 감당키 힘들 정도였다.
‘들어오기 전에 친다. 군자팔검세의 화룡점정을…….’
그때, 또 한 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힘을 빼. 다급해선 안 돼.’
연위가 다시 눈을 감았다.
잔뜩 힘이 들어갔던 몸이 순간적으로 흐느적거렸다. 마치 형태 없는 물이 되었다가 저항 없는 공기로 변한 듯했다.
‘칼이든 창이든, 결국 무언가를 움직인다는 것은 그와 하나 됨을 뜻한다. 기(氣)가 의념을 따른다면 기가 흐르는 통로 또한 의념을 따를 터, 병기 또한 그와 같다.’
정수리에 벼락이 떨어진 것 같았다.
‘기를 느끼기 위해선 몸에 힘부터 빼야 한다. 그래야 기가 통(通)한다. 기가 흐르는 통로인 병기 역시 마찬가지. 진정 검을 알려거든 힘을 빼라. 그리고 느껴 보거라. 검이 어느 길로 가고자 하는지, 네가 원하는 길은 또 어디인지.’
연위는 다시 눈을 떴다.
위이이이잉!!
고속으로 회전하는 연가신단이 그의 인지 능력을 밑도 끝도 없이 올려 주고 있었다.
단공의 공격이 날아드는 속도가 확 느려졌다. 동시에 자신의 움직임도 느려졌다.
그러나 사고의 속도는 벼락을 방불케 했다. 온 세상이 느려진 가운데, 그의 사고력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천지를 누비고 있었다.
‘이것이다.’
꿈에서 본 것.
아내에게서 본 것, 아내가 알려 준 깨달음의 실체.
오로지 검, 검만이 그를 채우고 있었다.
‘이것이 검의 목소리구나.’
말투가 자신과 닮았다.
‘그럴 수밖에. 검과 나는 하나이니, 검이 말하는 것은 결국 내가 말하는 것이다.’
연위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렇구나. 수많은 검법을 보고 스스로 창안도 했음에도, 나는 진정 검을 모르고 있었다.’
힘을 빼고 검을 휘둘렀다.
무기력한 움직임을 발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느릿느릿 나아가던 검은 어느새 단공의 주먹보다 빨리 그의 몸에 닿아 있었다.
마치 칼끝에 폭풍이 휘감긴 것처럼.
‘이것이 진정한 검리(劍理)다.’
연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나는 이 검리를 믿고 이곳에 온 것이다.’
느릿느릿 움직이던 시간이 일순간 폭풍처럼 빨라졌다.
쾅! 서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