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315)
흑백무제 1317화(1316/1320)
1317화. 하늘이 내린 숙적 (3)
“피폐하군.”
폐허가 된 하북의 한 마을을 보는 모용군의 얼굴은 지독히도 침중했다.
“모용헌.”
“예, 가주님.”
“통천단(通天團)과 천성검단(天星劍團), 지수단(地水團)을 이끌고 이십 리 밖으로 향하라. 적들이 온다면 반드시 저곳, 저 야산 뒤의 마을을 우회하여 올 것이다.”
통천단과 천성검단, 지수단은 모용세가가 자랑하는 사대 무력 집단 중 세 곳이었다.
“알겠습니다.”
모용군이 정환(鄭還)에게 말했다.
“자네는 상회 병력을 동북과 서북으로 보내 진을 치도록 하게.”
“모든 병력을 다 끌고 갑니까?”
“전부 끌고 가게.”
“알겠습니다.”
상무 연합의 병력은 남겨두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무림맹 휘하로 들어가기는 했으나 별도의 조직일 수밖에 없는 상무 연합은 무림맹 병력과 연수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상단의 전투 부대는 무림맹의 전투 부대와 싸우는 방법부터가 달랐다. 상계 특성상 온갖 암투가 난무하기 때문에, 상단 무사들의 전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어떤 의미로 흑도 무림의 전투 방식과 닮았기에 한창 날이 서 있는 그들에게 녹아들긴 힘들 것이다. 모용군이 상무 연합의 병력까지 하북으로 끌고 온 이유였다.
그렇게 가문 병력과 상무 연합 병력의 배치를 마친 모용군이 당관에게 다가갔다.
“몸은 좀 어떻소.”
“…….”
“당가주?”
“이상하군.”
“음?”
당관의 눈이 깊어졌다.
“머리 한곳에서 자꾸만 경종이 울리고 있소.”
모용군의 얼굴이 굳어졌다.
상단전이 기괴할 정도로 발달된 당관이 하는 말이었다. 그냥 넘길 수 없는 발언이었다.
“사방에서 위협이 느껴지는데,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소.”
“놈들이 벌써 온단 말이오?”
“놈들…… 그래, 한판 붙었던 그놈들의 살기가 느껴지기는 하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당관이 남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 아니, 조금 더 왼쪽인가.”
“……?”
“공기가 미친 듯이 떨리는군.”
당관의 눈이 떨려 왔다.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곳인데, 또 그리 멀지 않은 곳 같기도 하오. 그곳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소.”
“산동 방향이구려. 그쪽에서 삼교 측 병력이 나타났다는 소문은 들었소만. 개방의 병력도 산동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하오.”
“그게 아니오.”
우우우웅!
불그스름한 기운이 당관의 등 뒤에서 넘실거렸다.
“싸가지군.”
“……?!”
“싸가지의 기운이야. 한데 놀랍군. 이 먼 거리에서 느껴질 정도로 막강하다니…… 이렇게나 불타오른 적이 있었던가.”
모용군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뇌정공을 연마한 그의 육감도 인간의 영역을 벗어났다. 아예 무극수 수준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데 당관은 그 이상이다.
‘당가주가 느끼는 위화감이 산동에서부터 흘러온 것이라면, 이건 정말 엄청나군.’
하북과 산동은 인접한 지역이지만 중심부끼리의 거리가 엄청났다. 범부가 말을 타도 며칠은 걸릴 거리이며, 초절정고수가 쉬지 않고 최단 거리로 신법을 펼쳐도 하루는 넘게 걸린다.
그만한 거리에서 풍기는 기운을 느낀다는 것. 당관의 상단전이 상상을 초월하는 깊이를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연호정이 뿜어내는 기파 역시 무지막지하다는 뜻이었다.
‘괴물들밖에 없군.’
모용군의 눈이 깊어졌다.
‘내가 과연 저만한 깊이에 도달할 수 있을까.’
언제고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일지는 몰라도, 무극의 영역에 오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막상 초인들의 능력을 직접 보니, 이게 정말 가능한 것인가 싶었다.
“적들은 강소성 동해와 북부를 동시에 타격했소. 그것도 세 갈래로 침공했지. 그것만으로도 놈들의 작전과 병력은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었소.”
“…….”
“한데 거기서 또 쪼개어 산동에도 병력을 풀었으니, 사음교의 저력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도 가지 않는군.”
묵묵히 모용군의 말을 듣던 당관이 툭 던지듯 물었다.
“동해에 사음교주가 출현했을 확률은?”
“오 할이었지만, 지금으로선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소.”
“섬서도, 산서도 아니었소. 사음교주의 힘이 최소한 신화교주와 비슷하다면, 어느 전장이든 난리가 났을 것이오.”
“그렇다면 역시…….”
“산동이오.”
우웅! 우웅!
만류귀원신공이 무섭게 불타올랐다.
“산동에 사음교주가 나타났고, 싸가지도 그곳으로 갔소. 그리고 지금 난 이제껏 본 적 없던 싸가지의 기운을 느끼고 있소.”
당관의 얼굴에 격동이 일었다.
“사음교주와 싸우고 있는가.”
모용군 역시 알 수 없는 격정을 느꼈다.
‘참으로 자네답군.’
중원을 지키기 위해 수년 전부터 천하를 종횡하며 수많은 전투를 치렀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승리를 쌓아 올렸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광혈교주조차도 제거하는 업적을 세웠다. 실질적인 무력은 광혈교주가 우위였다고는 하나, 전장에선 실력이 뛰어난 것보다 싸워 이기는 게 더 중요한 법이다.
즉, 광혈교주를 죽인 시점에서 삼교의 수장급 고수를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셈이었다.
그런 그가 사음교주와 만난다.
‘솔직히 지금도 아쉽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어. 하지만 아무리 봐도…….’
모용군이 쓴웃음을 흘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네가 이 중원의 주역이군.’
더 기가 막힌 건, 연호정이 중원의 대표로 불릴 만한 인물이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 역시 든다는 것이다.
“흑제성주를 호위하는 호위 부대의 실력이 엄청나다고 들었소. 최악의 경우라도 어떻게든 그놈 하나만큼은 살릴 수 있겠지.”
“틀렸소.”
모용군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도 알겠지만, 그놈은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본인을 묻는 놈이 아니오. 필경 이길 자신이 있으니 나섰겠지.”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오만…….”
당관은 뒷말을 잇지 않았다.
‘과연 그럴까.’
연호정은 삼교를 증오한다.
중원인이라면 누구라도 그러겠지만, 연호정은 뭔가가 달랐다. 마치 부모 형제의 원수라도 되는 양,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삼교에 대한 맹렬한 증오를 불태웠다.
그중에서도 사음교는, 이승은 물론 저승에서조차 존재해선 안 될 절대적인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당연히 삼교 중에서도 가장 증오하는 대상이 바로 사음교였다.
그런 사음교의 수장이 나타났다?
이기든 지든, 연호정은 무조건 도끼를 휘두르려 할 것이다.
적어도 그가 아는 연호정은 그러했다.
‘무리하지 마라. 설령 교주 놈과 동귀어진을 한다 해도 손해야. 진짜로 죽일 자신이 있을 때만 나서라. 어떤 이유에서든 네놈이 죽어서는 안 된다.’
반나절 후.
“가주님!”
북부에 진을 치고 있던 통천단의 단주가 황급히 뛰어왔다.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안다.”
당관과 모용군이 전의를 불태웠다.
이쪽도 이쪽 나름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놈들이 하북으로 온 것은 하북을 점령하기 위함일 수도 있고, 산동으로 침투하려는 것일 수도 있소. 아마도 후자일 거라 생각하오.”
“내 생각도 같소.”
모용군이 힐끔 당관을 바라보았다.
“그 기운은 아직도 느껴지고 있소?”
“그렇소.”
당관이 흔들리는 눈으로 남쪽을 바라보았다.
“반나절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아니 더 격하게 싸우는 것 같소.”
* * *
사박사박.
사라진 안개 너머로 모습을 드러내는 세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호종대와 허백은 오직 한 사람만을 인지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쿠르릉! 쿠르르릉!
고요하기만 한 세상에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고, 지진으로 땅과 땅이 마찰하는 소리가 났다.
환청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현실 같은 환청이었다.
후우우우우웅.
불어오는 바람이 묘하게 습했다.
마치 유부(幽府)에서 사신(死神)을 보낸 것만 같다. 사기(邪氣)와 사기(死氣)가 범람하는 강물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이런.’
한중명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떤 순간에도 냉정을 잃지 않는 그조차 수십 장 밖에서 걸어오는 한 남자의 존재감 때문에 심신이 허물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가 그럴진대 호종대원들은 어떻겠는가.
우웅! 우웅!
백 명의 대원 중 절반 이상이 본능적으로 은신술을 펼치다가 실수를 깨닫고 풀었다.
흑제성주를 호위하는 그들의 충성심은 절대적이다. 그 절대적인 충성심마저 잊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은신술을 구사할 만큼, 덮쳐 오는 기세는 상상을 초월했다.
허백 역시 지독한 압박감에 호흡이 흐트러지는 것을 느꼈다.
‘다르다.’
연호정과 함께하며, 그리고 정보단을 운용하며 수많은 고수를 만났다. 당연히 무극수들도 몇 번 보았다.
‘성천의 무극수들과는 뭔가가 달라.’
기질, 존재감, 무공, 영혼, 걸음, 분위기, 눈빛, 호흡 등등.
세상 어떤 사람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없다.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냥 차원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또 사람다운 형상을 하고 있다.
사람의 경지를 벗어났음에도 사람의 형상을 한, 하지만 그간 만났던 어떤 고수와도 닮은 구석이 없는 이질적인 존재의 출현.
‘……!’
그 순간, 허백은 깨달았다.
‘강하구나.’
상대가 이질적으로 느껴진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다.
‘그냥 강한 거다. 성천의 무극수들보다도 더 강해. 그냥 한없이 강해서 느껴지는 차이였을 뿐이다.’
믿을 수가 없었다.
허백은 자신의 판단이 틀렸길 바랐다. 아직 무극에 오르지 못한 자신의 판단이니, 그냥 개인적인 느낌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게 아니었다.
칠 척에 달하는 저 거대한 사내의 강함은 고수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공 한 줌 없는 범부도, 심지어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저 남자의 강함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본인의 모든 것을 풀어 내는 자였다. 내공은 갈무리했지만, 타고난 영혼과 힘을 절제 없이 풀어 내며 본인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었다.
성천의 제일인이라는 권신 무허대사라면 상대할 수 있을까? 무공이 아닌 깨달음으로 싸운다는 검선 탁무자라면 어떨까?
‘안 좋다.’
허백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상대가 가까워질수록 심신이 불안정해져 내공조차 제어되지 않았다. 저절로 은신술이 펼쳐지다가도 확 풀리고, 멋대로 기파가 터지다가 또 홀연히 갈무리되었다.
타인의 존재감마저 마음대로 희롱하는 절대적인 힘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악한 힘을 지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신(武神)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다.
‘성주님!’
그리고 그런 인외(人外)의 존재 앞에서, 흑도 연맹의 수장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이백 장 밖으로 물러나라.”
연호정의 목소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담담했다.
“어서.”
“……성주님.”
“너희가 그러고 있으면 신경 쓰여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한다. 얼른 가.”
웃음기마저 어린 목소리였다. 긴장은커녕 오히려 상대에 대한 흥미마저 느끼는 듯했다.
허백은 경이로움을 느꼈다. 저 괴물 같은 존재를 앞에 두고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주군의 무심(武心)은 진정 하늘에 닿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호종대와 허백을 뒤로 물리니, 그곳엔 오직 연호정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앞.
마침내 오 장 거리 앞에서 걸음을 멈춘 칠 척 장신의 남자가 투명한 눈으로 연호정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보는군.”
사음교주 사문향.
죽음과 배신, 증오와 한으로 얼룩진 숙적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