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317)
흑백무제 1319화(1318/1320)
1319화. 하늘이 내린 숙적 (5)
연호정의 이마에 혈관이 돋았다.
우둑! 우두둑!
사문향의 두 발이 땅을 파고들었다.
광룡부로 어깨를 강타당했다. 본래라면 어깨를 뚫고 들어가 흉골을 가르고 고관절까지 몽땅 베고 지나갔어야 할 일격이었다.
그런데도 쪼개 버리는 데 실패했다. 그나마 피육이 베여 출혈은 있었지만, 광룡부에 실린 역도를 생각하면 실패한 일격이라 봐도 좋았다.
‘과연.’
절대로 담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연호정이 아닌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연호정은 이번 일격이 실패했음을 알고도 놀라지 않았다.
“강하군.”
사문향의 손이 올라왔다. 광룡부를 잡으려는 것이다.
파악!
광룡부를 회수하고 뒤로 물러난 연호정이 다시 황룡신왕공에 불을 지폈다.
화아아악!
전력으로 달아오르는 황룡신왕공.
등 뒤에서 솟구치는 황금빛 기운은 샛노란 황제(皇帝)의 색이다.
산불처럼 타오르는 기운이 어느새 거대한 용의 형상을 이루었다. 지옥공의 현현환상, 전설의 경지를 이어받은 황룡신왕공의 황룡현현(黃龍顯顯)이었다.
“실로 강한 일격이었다. 사황체(邪皇體)를 이룬 후 상처를 입은 것은 처음이야.”
사황체.
물론 연호정은 그 무공을 알고 있었다.
쩍!
종아리까지 땅을 뚫고 들어간 발을 하나씩 빼낸 사문향이 천천히 어깨를 돌렸다.
치이익!
어느새 광룡부가 내리꽂혔던 어깨가 완전히 나았다. 피육의 상처뿐이었다지만, 회복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완성했지만, 극에 이른 것은 아니지. 완벽과 완전은 끝이 아니야. 그 자체로 더 높이 성장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를 향한 증오와 한과는 별개로, 확실히 엄청난 고수임은 분명했다. 회귀까지 하며 무력을 쌓고, 심지어 황룡신왕공까지 깨친 이후에야 알게 된 무리(武理)를 사문향은 지금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걸 감안해도 사황체를 뚫은 것은 대단하다. 사황체는 무적으로 향하는 여러 길 중 하나, 너는 무적을 무적이 아니게 만든 것이다.”
굳은 얼굴, 딱딱한 목소리.
내뱉는 말과 전혀 다른 분위기라 위기감이 더욱 고조된다.
“권신이 혼신의 힘을 다해 공격했다면 피를 보았을까? 검선의 깨달음으로 검을 휘둘렀다면 베였을까? 그거야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네놈의 무공이 그 둘에 비해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알겠어.”
치이이익!
연호정의 눈이 깊어졌다.
투명했던 사문향의 두 눈에서 푸른 기운이 넘실거렸다.
어딘지 모르게 회색빛이 도는 푸른색이다. 보기만 해도 위험을 느낄 만큼 기괴한 기운이었다.
‘음황무(陰荒武).’
사음교주 사문향의 진신절기 중 하나.
최강의 무공은 아니지만, 사문향이 구사하는 음황무는 다른 고수들의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너는 비밀이 많은 자로구나. 단순한 숙적이라고만 하기엔 내가 모르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뭔지 궁금해졌다.”
“…….”
“뭔지는 몰라도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것만 알면, 나는 혈신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는 확신마저 든다.”
사문향이 오른손을 들었다.
쿠르르릉!!
대지가 울음을 토해 냈다.
공기가, 하늘이, 천하 전체가 뒤흔들리는 듯한 착각이 인다.
‘역시!’
실로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사문향의 음황무다.
그 힘은 천위룡의 쌍룡광세마공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쌍룡광세마공만큼의 파훼는 불가능할 것이다. 애초에 광세마공처럼 황룡신왕공과 하나의 가지에서 갈라져 나온 상극까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순수한 사공(邪功)의 정점. 마공보다도 우월해진 사공의 힘이다.
천위룡과의 싸움 후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면 황룡으로도 필패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만큼 압도적인 힘이었다.
“너의 혼과 육신을 찢어 내 그 비밀이 무엇인지를 파헤쳐 보리라.”
사문향이 움직였다.
훅.
공기가 묵직했다.
순간 연호정은 심해에 들어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느꼈다.
사방에서 짓누르는 압력이 눈 깜짝할 새에 올라갔다. 공격을 당하기도 전에 육신의 움직임이 제어되는 이 감각, 황룡신왕공으로도 밀어 내기 어려운 절대의 공력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치이이이이익!!
황금빛으로 물든 연호정의 진기에 조금씩 조금씩 불그스름한 기운이 섞였다.
살기(殺氣)였다.
사문향의 제대로 된 기파를 받으며 과거, 중원의 운명을 갈랐던 일생일대의 격전을 떠올리는 그였다. 몸의 기억이었다.
그 기억이 본능적으로 살기를 발하고, 스스로 살기를 발하고 있음을 깨달은 순간 균형을 이루던 감정이 온통 빨갛게 물들었다.
“사문향!”
연호정이 오른발로 땅을 찍었다.
쾅! 쾅!
진각이라기엔 너무나도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그 발길질에 반경 이십여 장의 땅이 쩍쩍 갈라졌다.
파바바바박!
연호정을 짓누르던 음황사기가 폭발을 일으키며 흩어졌다.
마공이 아니더라도 사공은 그와 유사한 힘이며, 상극이라 할 순 없어도 상극에 가까운 신공이 황룡신왕공이다.
모든 삿된 기운을 정화하고 파괴하는 궁극의 신공. 거기에 영혼 깊숙이 갈무리된 살기까지 드러내자, 황룡신왕공은 유례가 없을 만큼 매서운 힘으로 음황사기를 박살 내 버렸다.
사문향의 눈이 번쩍였다.
‘지독하구나!’
이렇게나 성스러운 기운을 발산하면서, 동시에 숨이 막힐 듯한 살기까지 드리우는 자는 처음이었다.
‘과연, 천위룡이 당한 이유가 있었군.’
마공과 상극인 신공만으로도 위협적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쌍룡광세마공을 완성시킨 천위룡을 죽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놈도 천재다.’
신공과 살기, 성스러운 기운과 사기(死氣).
결코 결합될 수 없는 기운들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합쳐 발산하는 것. 그 또한 하늘이 내린 재능일 것이다.
‘그렇다 한들.’
훅!
어마어마한 압박감을 너무나도 수월하게 헤치며 전진하는 사문향의 얼굴에는 일말의 긴장도 없었다.
‘아직은 부족해.’
우우우웅.
전진하며 손을 뻗는 동작이 너무나도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손에서 뻗어 나온 청색의 기운은 지나가는 길 전체를 죽음의 기운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음황무의 절학 음황신장(陰荒神掌), 음황령(陰荒靈)의 일초였다.
광룡부를 쥔 연호정의 손에 폭발적인 힘이 담겼다.
터어어엉!!
경쾌한 일 보로 전진하는 연호정 역시 언제나처럼 멋들어진 일격을 발했다.
부우웅!
팔십 근이 넘는 광룡부가 휘어질 정도로 강한 탄력을 보여 준다.
광룡공의 일초, 무참이었다. 황룡신왕공을 제대로 익힌 연호정, 그 극한의 상상력을 그대로 담아 휘두르니 천지도 반으로 가를 것 같은 힘을 드리운다.
광룡부와 음황령의 장력이 부딪쳤다.
콰앙!
폭음과 함께 연호정이 뒤로 밀려 나갔다.
내리쳤던 광룡부는 물론, 광룡부를 쥐었던 손까지 어깨 뒤로 넘어가 버렸다. 상반신이 활짝 열린 채 뒷걸음질 치는 연호정의 모습은 빈틈투성이였다.
사문향이 움직였다.
화악!
그의 움직임은 연호정처럼 요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조용하지도 않았다.
고요하면서도 왠지 듣기 싫은 쇳소리를 낸다. 그러면서도 빠르다. 실체 없는 유령이 움직이는 것처럼 순식간에 연호정의 영역 안으로 파고들었다.
쿵!
진각과 함께 사문향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소매를 털 듯 휘두르는 손짓 한 번에 두 줄기 장력이 연호정의 얼굴과 복부를 향해 짓쳐 들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였지만, 연호정은 상대가 접근해 올 때부터 어딜 노릴지 알고 있었다.
신왕기(神王氣)의 힘이었다.
쾅! 퍼어어엉!
회전하며 자세를 뒤트니 얼굴을 노린 장력은 뒤로 날아가 땅을 갈아 버리고, 복부를 노린 장력은 광룡부의 창대에 맞아 폭발을 일으켰다.
그 순간, 흩어진 장력이 저절로 모여들어 연호정의 신체를 향해 움직였다.
살아 움직이는 침투경, 이기어(以氣馭)의 깨달음이었다. 부서진 장력의 기운은 마땅히 자연으로 돌아가기 마련인데, 그 기운을 의지로 조종해 상대의 몸에 침투시키는 것은 누구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연호정의 좌수가 벼락처럼 움직였다.
콰콰쾅!
허공을 할퀴듯 휘두른 손에 금룡번천장의 기운이 담겼다. 무형의 기운으로 침투하던 음황사기가 그대로 소멸했다.
사문향의 눈이 굳어졌다.
‘음황무를 안다.’
상대가 흑백무제라 불리는 중원 최고수 중 하나라는 것은 등장하자마자 알았다.
삼교의 중원 침공을 최일선에서 막았던 고수이니 사음의 고수과 겨룬 적도 많았을 것이다. 당연히 음황무에 대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저놈의 대응은 단순히 아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 순간에 어기(馭氣)를 읽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는 건 어떤 식으로 후속타가 들어올지를 예상하였다는 뜻.’
음황무를 전수한 놈 중 어기로 침투경을 쓰는 놈은 아무도 없다. 설령 있다 한들, 이런 공방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즉, 상대는 음황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것이다.
‘도대체 이놈은 누구지?’
카가가각!
기괴한 소리와 함께 땅을 밟아 연호정의 측면을 점했다. 음황신보(陰荒神步)의 유령환(幽靈換)이었다.
너무나도 부드럽고 빠른 움직임이다. 격하게 움직이는 동작이 없는데도 벼락과 같다.
사문향이 다시 한번 음황신장을 펼쳤다.
전면으로 향하는 두 손, 펄럭이는 소맷자락 위로 청색의 장력이 강하게 부풀어 올랐다.
파팡!!
음황신장의 음황마혼(陰荒魔魂)은 틀림없는 살초다.
쌍장에서 뿜어진 공력이 제멋대로 꿈틀거리며 상대의 빈틈을 노린다. 음황무를 완성하지 못하면 그 장력이 상대의 어느 부위를 노릴지 시전자도 모른다.
말하자면 살기와 살의를 읽을 수 없다는 뜻이다. 거리를 벌려 육안으로 확인하지 못하면 설령 무극수라 해도 쉽게 막지 못하리라.
그러나.
퍼퍼퍼펑!!
초고속으로 움직이는 광룡부가 음황마혼의 쌍장 공력을 두 번씩 후려쳐 터트렸다.
음황마혼의 움직임을 읽은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힘의 밀도를 포착한 기감이다. 도끼질 한 번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읽고 두 번씩 휘둘러 깨부순 것은 정녕 놀라운 일이었다.
심지어 저 무거운 도끼를 쾌검술의 달인처럼 휘두르는 완력은 천하의 사문향의 눈에도 경이로워 보였다.
‘과연, 숙적은 숙적이라는 것인가.’
부아아아앙!!
그처럼 빠르고 파괴적인 무공을 구사하면서도 반격을 가하는 박자감이 기가 막힐 정도다.
음황마혼의 공력을 파괴한 광룡부가 태산도 쪼갤 힘을 담고 수직으로 떨어졌다.
‘……!’
사문향의 눈이 부릅떠졌다.
천하제일 명산이라는 태산 앞에서, 태산압정(泰山壓頂)이라 불리는 단순한 초식을 발한다.
하지만 투로가 단순할 뿐 위력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태산조차 쪼개 버릴 것 같은 괴력의 일격, 광룡공의 붕산세(崩山勢)가 산봉우리 하나를 무너트릴 만한 힘을 담고 사신(邪神)의 정수리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 사문향은 고민했다.
사황체를 이룬 육신의 자신감은 분명했다. 하지만 저 초식에는 극단적인 영력이 실려 있었다. 금강불괴의 사황체로도 쉽게 막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곧 사문향의 본능을 자극했고, 본능은 그의 육신을 초고속의 영역으로 이끌었다.
파앙! 후욱!
벼락처럼 측면으로 빠지니 붕산세의 힘이 사문향이 있던 자리를 통과했다.
그리고 광룡부가 대지로 떨어지는 그 순간, 사문향의 좌장이 연호정의 가슴에 정확히 꽂혔다.
퍼어어어엉!!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의 신형이 십여 장 밖으로 튕겨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