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318)
흑백무제 1320화(1319/1320)
1320화. 하늘이 내린 숙적 (6)
퍼펑! 훅!
십여 장 밖으로 튕겨 나갔지만, 힘을 못 이겨 날아간 것은 아니다.
‘제대로 들어갔다.’
사문향의 귀안(鬼眼)이 푸른빛을 머금었다.
‘생각보다 허무했군.’
음황신장의 음황폭(陰荒爆).
기존의 음황무에는 없는 수법으로, 상대의 내외를 그대로 파괴하는 살법이었다.
음황기는 그 자체로 치명적인 독이다. 그런 독력을 발경까지 실어 침투시키면 누구라도 무사할 수 없다.
말하자면 기존의 무공으로도 살상력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런 무공의 살상력을 수많은 경험과 무공을 통해 얻은 깨달음으로 발전시켜 창안한 것이 음황폭이라는 수법이었다.
침투경의 내부 폭발력이 실려 있으니 호신강기도 그대로 깨부술 것이요, 내부를 보호하기 위해 진기를 조이면 외부에서 밀고 들어온 폭발력으로 뼈와 살점이 날아간다. 방어가 불가능한 수법은 아니지만, 그것은 사문향 입장이지 적이라면 십중팔구 피격당할 수밖에 없다.
그는 그렇게 자신했고, 실제로 장력이 상대의 가슴에 그대로 닿았다.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쿠궁!
광룡부로 땅을 찍고 몸을 기댄다.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까지 숙인 연호정의 모습은 누가 봐도 패색이 짙었다.
푸스스스.
전신에서 황금빛 기운과 푸른 기운이 어우러져 넘실거렸다. 불안정한 기파였다. 딱 봐도 위험해 보였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던 사문향은 이내 눈을 부릅떴다.
치익! 치이익!
연호정의 몸 곳곳에서 푸른 연기가 새어 나왔다.
그 연기는 바로 음황사기의 잔재였다. 상대의 몸에 침투하는 순간 극심한 독기와 날카로운 발경력으로 혈맥과 내장을 갈기갈기 찢어 내는 음황사기가, 황룡신왕공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증발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사문향은 후속타를 날리지 않았다.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그는 궁금했다.
음황무는 천고의 사공으로, 그가 보유한 사음교 제일, 아니 혈교 제일의 무공을 제외하면 능히 천하를 오시할 만한 무공이었다.
그런 무공을 맞고도 죽지 않는다. 심지어 구사한 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었다.
“아프군.”
제각기 십 장 거리를 튕겨 나간 터라 이십여 장 가까이 떨어져 있었다.
한데도 연호정의 목소리가 사문향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오랜만에 맞으니 기분 더럽고 좋아, 아주.”
또 이해 못 할 소리였다.
오랜만이라니? 사문향은 한 번도 저런 놈과 싸운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역시나 사색광인이 새 몸으로 갈아탔다는 것이다. 사색광인의 무공은 저 오색지옥공처럼 사람이 익힐 수 없는 무공이니까.
하지만 상대가 사색광인이라기엔 그 신적인 무력을 구사하지 못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의아한 상황이다. 하물며 사색광인이라 한들, 음황폭에 직격당하고도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사문향은 솔직히 물었다.
“어떻게 멀쩡하지?”
연호정은 대답 없이 광룡부를 뽑아 들고 붕붕 휘둘렀다.
조금 어색했던 손놀림이 빠르게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팔십 근 넘는 중병이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무시무시했다.
‘뻐근하군. 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야.’
우웅. 우웅.
황룡기가 거칠게 울부짖고 신왕기가 고요하게 세상을 주시한다.
‘그래도 잘못 받아 내면 위험해.’
사신기(四神氣)는 완벽한 신공이다.
오장육부의 기능을 극단적으로 발달시킴은 물론 화수목금(火水木金)의 네 가지 기운을 조종해 공격과 반격, 방어와 회피를 완전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즉, 서로 어울리지 않는 상극의 기운과 극한의 융합인 상생의 기운을 동시에 다룬다는 것이다.
그러한 진기의 깨달음과 운용 방법은 음황사기의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되어 주었다. 외부에서 짓누르는 음황사기는 주작기(朱雀氣)의 공격성과 현무기(玄武氣)의 웅혼함으로 튕겨 내고, 침투한 음황사기는 해독의 극치인 청룡기(靑龍氣)로 분해한 후 강철 성벽과도 같은 추풍의 백호기(白虎氣)로 날려 버린다.
회귀 전, 사문향의 음황무를 거의 홀로 막아 낸 사람이 바로 연호정이었다. 그가 음황무를 막고 튕겨 내면서 전진하면, 모용군과 당관이 빈틈을 노려 사문향을 죽이는 것이 바로 그 싸움의 골조였다.
그리고 지금, 연호정은 흑암제 시절보다 더 완벽해졌다.
황룡기는 사신기를 포함, 오행기(五行氣)로 완전해져 삿된 외기의 침입을 완벽하게 방어하며, 설령 침투했다 한들 신왕기의 영력은 의지만으로 탁기를 제거할 수 있는 영역에 올랐다.
즉, 연호정에게 있어 음황무는 막강한 무공일 뿐 절대적인 살상력을 발하는 무공이 아니다.
과거에는 깨닫지 못했던 진정한 황룡신왕공의 힘이, 일생의 숙적을 상대로 비로소 제대로 된 역량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럼.”
스르륵.
재차 낮아지는 자세.
연호정의 눈이 번쩍였다.
콰앙!
이십 장 거리를 단 일 보(一步)로 줄인다.
놀라운 속도였지만, 사문향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피하지 않았다. 반신(半神)의 경지에 올라 내친 음황무가 통하지 않는 상대에 대한 의구심과 충격 때문이었고, 그만큼 상대에 대한 흥미가 더 깊어졌기 때문이었다.
이 기묘한 숙적은 과연 어떤 무공으로 자신을 놀라게 해 줄 것인가?
부아아앙!
광룡부가 폭풍을 이끌며 휘둘러졌다.
광룡공의 일초 무참이었다. 사문향 역시 받아 본 적 있는 초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무참은 그전과 달랐다.
콰릉! 콰르릉!
번갯불을 담은 폭풍과 함께하는 도끼질이었다. 일격을 막았다고 안심하다간 후폭풍에 맞아 전신이 분해될 것 같은 위기감이 들 정도로 막강한 일타였다.
사문향이 처음으로 주먹을 쥐었다.
음황신권의 풍신일격이었다.
콰쾅!!
타점까지 이어지는 영역 전체를 짓눌러 터트리는 풍신일격이 무참의 공격력을 분쇄하고 뒤이어 불어닥치는 폭풍까지도 날려 버렸다.
그러고도 여력이 남아 연호정의 상반신을 압박한다. 놀라운 공력이었다.
하지만 연호정은 당황하지 않았다.
상대가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 주기 시작한다면, 자신 역시 모든 것을 개방하면 그뿐.
튕겨 나간 광룡부가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하단에서 상단으로 솟구쳤다.
광룡공의 이초, 승공세(昇空勢).
부아아아앙!!
또다시 불어오는 바람은 폭풍이 아니라 태풍이었다.
천하의 사문향조차도 두 발을 땅에 박아 두고 있기가 힘들 수준의 바람이었다. 승공세의 우악스러운 참격과 함께 몸뚱이가 그대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쿵!
음황사기가 터져 나오며 사문향의 육신을 땅에 묶어 두었다.
동시에 수도(手刀)를 내리친다. 음황사기가 실린 투로, 사음교의 극사도(極邪刀)라는 수법이었다.
콰쾅!!
연호정이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사문향의 몸은 주춤했을 뿐, 일 보도 움직이지 않았다.
울컥!
무지막지한 압력에 코피가 나왔지만, 연호정은 이를 악물고 한 발 더 전진했다.
전진과 함께 내리치는 일초, 광룡공의 삼초인 붕산세였다.
콰아아앙!!
파괴의 향연이다.
안 그래도 금이 갔던 대지에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 땅을 부수고자 한 게 아니라 전방에 참격을 날리려 한 것임을 생각하면, 여력으로 땅을 부순 붕산세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알 수 있었다.
콰콰콱!
한 손으로 붕산세의 힘을 감당했지만, 사문향의 두 발은 땅을 부수며 고랑을 만들어 냈다. 붕산세의 힘이 그를 삼 장이나 뒤로 밀어 낸 것이다.
연호정은 멈추지 않았다.
번쩍!
마치 처음부터 연환기로 만들어진 듯, 붕산세로 내리친 즉시 저절로 허공에 뜬 백룡부가 고속으로 회전하며 사문향의 머리를 노렸다.
광룡공 사초, 광풍섬(狂風閃).
사문향이 부릅뜬 눈으로 백룡부를 노려보며 주먹을 휘둘렀다.
쾅!
이기어검의 비술로 날아간 백룡부가 허무하리만치 쉽게 튕겨 나간다. 고작 주먹질 한 번이었다.
그러나 연호정은 볼 수 있었다. 사문향의 주먹에서 터진 핏물을.
신왕기의 영력으로 상상력의 힘까지 담아 내친 광풍섬의 일초가 사문향의 주먹에 상처를 낸 것이다. 사황체를 완성한 육신에.
그 순간, 연호정의 상상력은 더 풍부해졌고 의지는 더 강렬해졌다.
‘죽일 수 있다.’
이길 수 있다에서 죽일 수 있다로.
죽일 수 있다에서 없애 버릴 수 있다로.
쿠쿠쿵!!
사문향의 눈이 흔들렸다.
‘더 강해졌다?’
일순간 폭발하는 황금빛 기파가 이전보다 더 넓게 퍼졌다.
동시에 공력의 밀도는 더 깊어졌다. 순간적으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상승한 신공력이었다.
그리고 광룡부가 하늘을 가리켰다.
그 순간, 사문향은 움직였다.
카카칵!
특유의 쇳소리와 함께 유령처럼 접근한 사문향이 음황신장, 음황신권에 이어 음황지(陰荒指)로 연호정의 요혈들을 노렸다.
화아아아악!
한순간 몰아치는 거력의 파도다. 같은 진기로 구사된 무공이지만 장력과 권경, 지풍의 투로와 성질이 판이하게 달랐다.
‘이대로면 늦어.’
의지가 이는 순간 광룡부에 실린 힘이 더 강해진다.
번쩍!
하늘 위로 퍼진 황금빛 진기가 유성이 되어 낙하한다.
내리치는 광룡부와 함께 쏟아지는 금빛 유성들은 폭우와도 같았다. 광룡공 오초, 폭우광룡(暴雨降龍)이었다.
콰쾅! 퍼어엉! 콰르르릉!!
쏟아지는 참격에 장력이 분쇄되고 권경이 폭발했으며, 지풍은 멋대로 쪼개져 땅과 하늘로 흩어졌다.
힘 대 힘의 대결에서 처음으로 우위를 점하는 순간이었다. 극한까지 달아오른 신왕기의 힘이었다.
하지만 사문향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의 육신에 상처를 낸 상대였다. 더하여 순간적인 영력 강화로 공력의 깊이까지 더했다.
이 정도 상대라면 여유를 부릴 수가 없다. 놀라긴 했지만, 이제야 제대로 승부를 겨뤄 볼 수 있다면 그 역시 오랜만에 진짜 힘을 꺼내 들 수밖에.
지이이이이잉!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진 음황사기로 인해 일대가 어두워졌다.
사문향의 오른손이 위에서 내려오고 왼손이 아래에서 올라왔다.
그리고 두 손이 정확하게 포개진 순간, 어두워진 세상 곳곳에서 수백 개의 창살이 쏘아졌다.
연호정의 눈이 번쩍였다.
‘음황마형살(陰荒魔形殺).’
음황신장의 비기 중 하나이며 무극에 오른 자라도 자칫 모든 진력을 소모해 죽을 수 있는 비술이었다.
애초에 펼치고 싶어도 펼치기가 어려운 것이, 시전과 발동 사이에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이면 절정고수라도 수십 번의 칼질을 가할 수 있다.
하지만 사문향의 음황마형살은 달랐다.
시전하는 순간 거의 즉시 발동한다. 게다가 피할 수 없는 영역으로 쏘아지는 창살 하나하나가 음황무의 정수에 닿아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펼쳤군. 제대로 죽여 볼 작정인 것이지.’
연호정이 광룡부를 두 손으로 쥐었다.
쾅!
그때, 튕겨 나갔던 백룡부가 어둠을 뚫고 들어왔다. 광풍섬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사문향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빛살처럼 날아든 백룡부가 초고속으로 회전하며 창살들을 공격했다.
콰콰콰콰쾅!!
이기어의 비술을 운용 중인데도 광룡부에 막강한 힘이 깃들었다. 실전으로 얻은 분심(分心)의 묘(妙)였다.
쾅!
언제나처럼 힘찬 한 걸음으로 전진한 연호정이 광룡부를 휘둘렀다.
‘……!’
순간 광룡부가 사문향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라졌다는 것을 인지한 즉시, 광룡부의 도끼날이 코앞에서 나타났다. 광룡공의 육초 질주광룡(疾走狂龍)이 사문향을 덮친 것이다.
그리고 그때.
쩌어어어어엉!!
엄청난 속도로 반월을 그린 수도가 광룡부의 도끼날을 파고들었다.
콰르르르릉!!
충격파와 함께 두 사람이 제각기 뒤로 밀려 나가고.
부서진 음황마형살의 영역을 배회하던 백룡부가 사문향의 목을 향해 쏘아지고, 밀려 나간 순간 날린 음황지풍 다섯 줄기가 연호정의 요혈을 향해 날아갔다.
두 사람의 얼굴 위로 난처함이 일었다.
퍼버버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