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322)
흑백무제 1322화(1321/1351)
1322화. 하늘이 내린 숙적 (8)
“엄청나군.”
까마득히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두 초고수의 충격파에 머리가 띵한 느낌이다.
호법장의 이마에 식은땀이 어렸다.
“교주님의 무공이 대단한 거야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능히 천하제일이라 할 만한 무력이다.”
“…….”
“하지만 진짜 놀라운 건 저 젊은 고수의 실력이야. 어떻게 교주님의 음황무에 맞설 수 있지?”
물론 음황무는 사음교 최강의 무공이 아니다.
정확히는, 교주지학(敎主之學)을 제외하면 능히 최강을 논할 만한 무공이라 할 수 있다. 아직 교주님께서 교주지학을 꺼내 들지 않으셨으니 적의 패배는 확정이다.
그래도 놀라웠다.
저 음황무만으로도 천하에 적수가 없는 분이 교주님 아니던가.
극사에 이른 교 내 초고수들도 교주님을 상대로 이십 합을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드러난 무력을 보니, 십 합도 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그 절대적인 무력을 상대로 지금까지 버티는, 심지어 반격까지 가하는 적의 존재는 놀라움 이상의 경이였다.
호법장이 무표정한 얼굴의 청년, 적흠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저자를 어떻게 보는가.”
적흠은 말이 없었다. 그저 투명하기 이를 데 없는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볼 뿐.
호법장은 찝찝함을 느꼈다.
‘언제 봐도 불편한 녀석이다.’
적흠은 교주님께서 총애하는 교도였다.
제자라고 하기엔 교주지학이나 음황무를 전수하지 않았으니, 뭔가 다른 능력이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능력이 무엇인지 호법장은 알 수가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내공만큼은 정말이지…….’
호법장의 눈이 형형해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마치 몸 전체가 진기로 꽉 차 있는 것 같아.’
완벽하게 갈무리되었지만, 중간중간 새어 나오는 기도의 일부만으로도 상상을 초월하는 내력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었다.
당장 극사에 오른 자신보다 훨씬 많은 양의 내공을 보유했다. 내공의 질은 모호했지만, 양만 보면 교주님을 제외하고 천하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놀라운 힘을 품고도 제대로 무공을 구사한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신법을 펼치는 것 정도일까.
심지어 뭔가를 제대로 섭취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멀쩡히 걸어 다니는데도 이게 살아 있는 사람은 맞는지 의심스러운 존재. 그게 바로 적흠이었다.
‘심지어 상단전의 영력조차 읽을 수 없다. 뼈와 살점으로 만든 인형이래도 믿겠군.’
호법장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때, 적흠의 입이 열렸다.
“……하나는 죽겠군.”
“뭐?”
“…….”
“지금 뭐라고 했지?”
적흠은 다시 입을 닫았다.
이런 적이 한두 번도 아닌지라 호법장도 화는 나지 않았다.
다만 궁금했다. 하나는 죽겠다? 그게 무슨 뜻일까?
‘그냥 미친 소리인 게지.’
콰아앙!
싸움이 재개되었다.
* * *
자세는 그대로지만 표정은 바뀌었다.
조금씩 조금씩 길쭉해지는 눈. 눈매가 그리 변하자 완전히 다른 사람을 보는 듯했다.
“‘그’는 내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안으로 들어오는 조건이 바로 최강자와의 싸움이었기 때문이지.”
“……?!”
“‘그’가 손을 쓰면 너는 금방 죽겠지. 그럼 또 언제 중원 최강자와 싸워 보겠느냐? 내가 지금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차가웠던 연호정의 두 눈에 점점 붉은 살기가 모여들었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하나의 육신에 여러 영혼이 있다…… 군령(群靈)?’
그가 아는 사문향은 하나가 아니었다.
아니, 사문향은 하나다. 다만 그 육신에 다른 영혼들이 들어차 있다.
마치 광혈교의 마귀들이 죽은 전대 사제장들의 혼을 불러와 이승을 배회케 만드는 것과 유사했다. 하지만 유사하기만 할 뿐, 방식은 달랐다.
광혈교는 초혼술(招魂術)로 죽음을 뛰어넘으려 했지만, 사문향은 생생한 자신의 육신에 여러 혼을 들였다.
영(靈)과 육(肉)은 하나라, 두 개념이 일치할 때 인간은 죽음이라는 결과로 나아갈 수 있다. 말하자면 순리대로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멀쩡한 육을 여러 영혼이 골라 쓰면 얘기가 달라진다.
몸이 순리를 거부한다. 순리를 거부하니 그 자체로 역천(逆天)이다. 역천의 극치는 불로(不老)이며, 불로가 극에 이르면 불사(不死)가 된다.
광혈교는 이미 죽은 영을 소환하는 방법을 택했지만, 사문향은 여러 영혼을 받아들여 육신 자체를 역천의 그릇으로 삼아 시간을 뛰어넘었다.
‘삼백 년…… 아니, 사백 년에 가까운 시간을.’
사문향의 미소가 짙어졌다.
마치 늑대가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길쭉한 주둥이가 쭉 찢어지며 살벌한 웃음을 짓는다.
“나는 네가 사색광인이든 누구든 관심 없다. 그저 너의 무공이 실로 막강하다는 것, 한판 시원하게 싸우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만이 중요해.”
“…….”
“자, 흑백무제라 불리는 천재의 모든 것을 보여…….”
파아아아앙!!
공기를 찢으며 쏘아진 주먹이 엄청난 경파를 일으켰다.
콰앙!
사문향이 주르륵 뒤로 밀려 나갔다.
그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양팔을 교차해 막았지만 팔뚝이 부러질 것처럼 아파 왔던 것이다.
사황체를 유지하고 있는데도 이렇다. 엄청난 일권이었다.
“내, 바다 같은 한과 증오를 내려놓고 천리(天理)로써 너를 죽이려 하였건만.”
놀라움으로 가득했던 사문향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치이익!
연호정의 발밑에서 탁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부글부글.
고체인 땅이 순식간에 녹아 부글거리며 끓었다.
천하 열양공의 정점에 있다는 신화교의 신공을 익혔다 한들 삽시간에 땅을 끓게 만들 화기를 뿜을 수 있을까.
황금빛 주작, 황룡화기(黃龍火氣)가 극성으로 타올랐다.
번쩍! 번쩍!
넘실거리는 황금빛 불꽃이 어느새 평야 전체를 집어삼킬 듯 거대해졌다.
단순한 화기가 아니었다. 연호정의 영혼 깊숙한 곳에 잠재되어 있는 천연의 살기를 원료로 타오르는 화기였다.
살기에 홀려 실수하지 않겠다는 다짐조차 잊을 정도로 분노한 그다.
푸스스스.
화기에 닿지 않았는데도 온갖 수풀이 꺼멓게 시들며 죽었다.
화기보다 살기가 더 지독하다는 뜻이었다. 신화교의 열양공조차 능가할 만한 화기를 뛰어넘는 살기는 이미 그 자체로 유형화된 경력과도 같았다.
사문향, 아니 사문향의 손자뻘인 사적심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런……!”
입조차 쉽게 열리지 않는다.
황룡신왕공을 완성하면서도 살기는 버리지 못했다. 그저 더 깊숙한 곳에 봉인해 두었을 뿐, 완전히 불사르지 못한 것이다.
오랫동안 묵혀 두어 숙성된 연호정의 살기는 이제 파멸적이라는 수식어로도 형용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섰다.
절정고수, 아니 초절정고수라도 이 살기를 대하는 순간 십중팔구 미쳐 버릴 것이다. 미치지 않으면 죽는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정신이 광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무극의 고수라면 멀쩡할까?
인간의 탈을 벗고 반선의 경지에 올랐으니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래 쬐면 정신이 황폐해지는 것은 비슷할 것이다. 어쩌면 내공 폭주로 내상까지 입을 수 있을 터.
그 정도로 연호정의 살기는 지독했다.
하늘을 불태우고 땅을 녹일 만큼 엄청났다.
“감히 나를, 일개 유희로써 대하는가.”
지이이이이이잉!!
광룡부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황금빛 기운이 어린 정도가 아니라, 그냥 도끼 자체가 다 황금색으로 빛난다. 세밀한 세공과 균열조차 보이지 않는 완전한 금빛 도끼, 지금껏 이 정도로 황룡기를 실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온 천하에 살육과 증오만을 남길 최악의 놈들을 때려잡기 위해 달려온 인생이었다.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 너희는 물론 키우는 개새끼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불살라 버리겠다며 이를 악물고 살아온 인생이었다.”
사적심은 저도 모르게 몇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그 자신이 물러난 것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시간을 뛰어넘어 이 자리로 돌아왔건만, 숙적이라는 단어로 희롱하며 정작 같잖은 떨거지를 앞세워 나를 모욕한단 말이지.”
사적심의 무공 역시 천하제일을 논할 만한데도 그리 표현한다.
눈에 보이는 게 없다. 팔방으로 뻗어 나가는 황금빛 기운과 달리 연호정의 두 눈은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눈동자와 흰자위의 경계조차 희미해질 정도의 붉은 안광.
회귀 후 처음 삼교의 교도를 만났을 때도 이렇게 분노하진 않았다.
“사문향.”
연호정이 발을 떼었다.
울컥! 울컥!
끓는 땅이 요동을 쳤다. 그러면서도 신발은 불타지 않았다.
연호정이 버럭 소리쳤다.
“나와라, 사문향!”
사적심 역시 마주 소리쳤다.
“닥쳐라!”
당황하여 갈라진 목소리였다. 연호정의 형용키 힘든 살기를 대하며 마음이 흔들리고 정신이 어지러워졌기 때문이었다.
“나오지 않는다면.”
번쩍!
황룡보법인가, 혈익휘천인가. 아니면 그저 본능적인 움직임인가.
어느새 사적심의 머리 위에서 나타난 연호정이 분노하며 외쳤다.
“영혼이라도 꺼내 갈기갈기 찢어 주겠다!”
광룡부가 허공을 갈랐다.
콰쾅! 콰아아앙!!
음속 돌파로 인한 충격파조차 애들 장난처럼 느껴질 만큼 막강한 참격이 뿜어졌다.
광룡공의 무참이었다. 하지만 그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콰드드드드드득!!
대지를 폭발시킨 일격에 이십여 장의 땅이 갈라지고 박살 났다.
단순히 파괴만 한 것이 아니었다. 부순 땅 위로 치솟는 수천 개의 발경은 제멋대로 꿈틀거리며 일대를 죽음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압도적인 힘이었다.
천하 누구도, 무허대사도 흉내 낼 수 없는 위력이었다.
중도(中道)의 깨달음을 내려놓고 오직 파괴와 죽음만을 담아 휘두른 일격이었다. 섬세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지만,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위력을 자아냈다.
치이이이이익!
신왕기가 초고속으로 회전했다.
신단(神丹)의 힘을 받아 순식간에 두 배, 세 배로 늘어난 신기가 연호정의 살기를 몇 배로 증폭시켰다.
“크윽!”
하늘로 날아오른 사적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세상 어떤 마인의 살기도 저놈의 발끝에도 이르지 못할 것 같았다.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이 폭발하면 누구 하나가 박살이 날 때까진 멈추지 않는 것처럼, 연호정의 살기 역시 온 천하가 불타 사라지지 않는 한 절대 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위험하다!’
이대로 있다간 저 살기에 홀려 혼이 타락하고 육신까지 썩어 들어갈 것 같았다.
절대적인 살기다. 사문향의 교주지학이 떠오를 만큼 기의 밀도가 대단했다.
“이 괴물 놈이!”
화아아악!
사적심의 몸 주위로 다섯 개의 청색 구체가 떠올랐다.
지모신룡세로 펼치는 음황신장의 음황폭, 오룡대포(五龍大砲)였다.
“죽어라!”
번쩍!
벼락처럼 쏘아진 다섯 줄기의 경력.
극한까지 압축된 발경이 포탄처럼 날아간다. 한 발, 한 발이 무극수의 목숨도 위협할 만한 위력을 지녔다.
부르르르.
머리가 하얘지는 것 같았다.
분노가 극에 이르러 웃음마저 나온다. 연호정이 하얗게 웃으며 광룡부를 휘둘렀다.
하단에서 상단으로 올려 치는 광룡공의 이초.
승공세가 황금빛 불의 폭풍을 일으키며 쏘아져 올라갔다.
콰르르르릉!!
딸려 올라가던 박살 난 돌 조각들이 열기에 녹아 용암의 파편처럼 비산했다.
사적심의 눈이 흔들렸다.
콰콰쾅!!
오룡대포의 경력을 모조리 찢어발기며 솟구치는 적의 참격이 어느새 수십 장 너비로 커졌다.
피할 곳이 없다. 막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사적심이 악을 지르며 주먹을 휘둘렀다.
퍼어어어어엉!!
승공세의 칼바람을 뚫지 못한 그의 몸뚱이가 하늘 높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