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323)
흑백무제 1323화(1322/1351)
1323화. 하늘이 내린 숙적 (9)
사적심을 오십 장 밖 하늘로 날려 보내며, 연호정은 생각했다.
‘신왕기.’
극단적인 분노와 차가운 이성이 분리되기 시작한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위력의 무공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힘을 발산할 수 있는 것은 신왕기 덕분이었다.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이며 멈추지 않는 힘의 발산은 또 다른 상상력을, 또 다른 무리(武理)를, 또 다른 깨달음을 불러온다.
지금 이 순간, 연호정은 깨닫는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심검(心劍)이라는 것을.
아버지인 연위의 심검이 의념으로 상대의 마음을 베어 의지를 박탈하고 내공 운용까지 멈추게 하는 음(陰)의 계열이라면, 연호정의 심검은 그와 완전히 달랐다.
그의 심검은 양(陽)의 심검이다. 상대의 의지를 베지 않고 자신의 껍질을 가른다. 무한의 상상력으로 극한의 출력을 끌어내 원하는 것을 구현하는 것이 연호정의 심검이었다.
이미 깨닫고 있었다. 자신에게도 심검이 있다는 걸.
아니, 어쩌면 무공을 연마한 모두가 심검을 익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심검을 깨달음으로 끄집어내 자신만의 무도(武道)로 발전시키는 사람은 온 천하에 열 명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무공이다. 내 무공의 궁극이야.’
스승의 황룡과 또 다른 황룡.
이십육 대 사신무장 연호정의 심검이 지금 이 순간, 완벽하게 개화했다.
콰아앙!
폭음을 내며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추락한 사적심의 몸은 피투성이였다.
치명상을 입진 않았다. 굳이 볼 필요도 없이 상대를 ‘인지’하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초고속으로 회전하는 신왕기, 신왕기를 보조하며 포효하는 황룡기.
연호정의 발이 움직였다.
콰콰콰쾅!!
너무나도 당연하게 음속을 돌파하는 속력을 낸다.
의지가 이는 순간 이미 그곳에 존재한다. 거의 순간의 이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적심이 흉흉한 얼굴로 쌍장을 휘둘렀다.
콰르릉!
음황신장의 비기와 살법들이 줄을 지어 쏟아진다.
광룡부가 움직였다.
부아아아아앙!!
허공을 불태우며 휘둘러지는 광룡부에는 붕산세의 힘과 광룡섬의 힘이 함께했다. 산을 허무는 파괴력 넘치는 참격에 어검의 깨달음을 실어 전방위로 쏟아지는 참격을 발했다.
일격, 일격이 필살인 광룡공의 초식들을 하나로 만들어 휘두른다. 놀라운 발상, 천재적인 무공 해석이었다.
음황무의 온갖 힘이 광룡공의 공세에 무너지는 것을 본 사적심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파아아앙!
거리를 벌린 사적심이 강하게 땅을 밟고 음황사기를 바닥부터 끌어 올렸다.
화아악!
어두운 청색 기운이 연호정의 황금빛 기파처럼 뻗어 나가며 천하를 물들였다. 순간적으로 죽음의 위기를 겪은 사적심이 혼신의 힘을 다해 사공력을 풀어 낸 것이다.
심검의 깨달음으로 몰아붙이고 있지만, 육신에 품은 내공량은 사적심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 무려 삼백 년 이상을 쌓아 온 내력에 수많은 영혼까지 담아낸 사문향의 몸은 그에 걸맞은 그릇으로 발전해 왔다.
내공량만으로는 천하제일을 넘어 고금 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넘치는 공력을 일타, 일타에 실어 내니 동수(同手)라 해도 필패다.
“지독한 놈!”
콰아앙!
음황신권의 대추정포(大椎正砲)의 권력이 황룡기의 방벽을 뚫고 연호정의 가슴을 타격했다.
콰콰쾅!
십여 장이나 땅을 가르며 밀려난 연호정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몸을 일으킨 순간, 연호정은 사적심의 측면에 나타났다.
사적심의 눈이 부릅떠졌다. 양손으로 쥔 광룡부를 한껏 젖힌 채 폭풍 같은 기세를 휘감은 연호정의 존재감, 공격하기도 전에 스며드는 살기에 오감이 무뎌지고 내공 흐름이 비틀리고 있었다.
연호정이 사선으로 광룡부를 휘둘렀다.
콰르르르릉!!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폭격 범위인지 가늠조차 되질 않는다.
비유가 아닌 진짜 폭풍이다. 사신기(四神氣)의 특성이 모조리 담긴 광룡공 육초, 참혼광룡(斬魂狂龍)이 고관대작의 거대한 집조차 날려 버릴 폭풍을 만들어 냈다.
사아아아아악!
허공으로 밀려 나가는 사적심의 몸 곳곳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사황체로도 막을 수 없는 공격이었다. 사황체가 아니었다면 이번 일격으로 온몸이 갈라져 죽었을지도 모른다.
“이……!”
도무지 상대가 되질 않는다.
황룡기, 나아가 신왕기의 한계를 풀고 살기를 기반으로 심검을 구사하니, 이건 움직이는 자연재해다. 천하 어떤 고수도 대자연의 분노를 이길 수 없다. 사적심의 상태가 그와 같았다.
하지만 사적심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
이건 무공 싸움이 아니다. 무공 이상의 뭔가를 쓰는 상대를 어떻게 이길 것인가. 그는 궁극에 이른 투로와 무력으로 뜨거운 승부를 겨루고 싶었지, 술법이라 해도 무방한 기공 싸움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사적심은 연호정이 기이한 술수를 쓰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그 부분에 대놓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알기 때문이다. 연호정의 무공이 어떤 경지에 이른 것인지.
‘심검!’
그렇다. 저것은 심검이다.
통상적으로 알려진 심검과는 다르지만, 본디 심검이란 의념의 궁극이요, 극한의 의지로 원하는 바를 현실에 구현하는 힘이다. 딱 정해진 격식이 없다는 뜻이다.
‘말도 안 되는 놈이다. 심검을 이런 식으로 써?’
군령의 육신 덕분에 선대의 깨달음을 전해 받아 살아생전보다 더 강해진 그였다. 게다가 이 육신은 펑펑 써도 마르지 않는 바다 같은 공력을 보유했다.
어떤 상대라도 절대 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런 깨달음으로 맞상대를 하니 당해 낼 도리가 없었다.
‘아니, 그렇지 않다.’
지이이이이잉!!
사적심은 또 한 번 음황사기를 증폭시켰다.
‘잠력을 격발시켜 힘으로 압도하면 충분히…….’
그때였다.
주르륵.
사적심의 코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화아아아아악!
또 한 번 벼락처럼 다가온 연호정이 붕산세를 펼쳤다.
콰아앙!!
눈앞의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힘이다.
진짜 산을 무너트리는 상상과 함께 내쳤다. 심검이라도 공력의 한계가 있으니 진짜 산을 무너트릴 순 없겠지만, 작은 언덕 정도는 일격에 초토화시킬 힘이었다.
그리고.
그 힘이 막혔다.
치이이이이이익!!
광룡부의 창대를 잡은 사적심의 손에서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바뀌었다.’
신왕기가 극성으로 달아올랐다.
육안으로 보이는 것이 다르다. 그는 사적심의 붉은 영혼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너머.
수면 아래에서 무섭게 부상하는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연호정의 살기가 더 진해졌다.
“이제 튀어나오느냐!”
그의 양팔 근육이 부풀었다.
콰득!
두 발이 땅을 파고들었다.
쏟아지는 살기, 파고드는 황룡기.
사적심이었던 남자의 몸에 깃든 음황의 기운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공력은 그대로지만 사기가 싹 날아간 것이다.
“나와라!”
콰드득! 콰드득!
두 사람의 다리가 정강이까지 땅을 파고들었다.
“이만 나와라, 사문향!”
그 순간, 사문향이 고개를 들었다.
그가 가볍게 광룡부를 밀었다.
훅!
순간 연호정은 세상이 멀어지는 착각을 느꼈다.
엄청난 속도로 밀려 나간다. 날아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등판의 피부가 갈라질 것만 같았다.
황룡수기로 북천십이벽을 세운 그가 몸을 회전하고 두 발을 땅에 박았다.
콰콰콰쾅!
땅이 두부처럼 으스러진다.
무려 이십여 장을 날아갔다가 겨우 멈춘 그였다. 두 발을 땅에 박지 않았다면 그보다 십 장은 더 밀려났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싸움이 아니었다.
괴력난신, 이승에 강림한 신(神)들의 싸움이라 해도 믿을 판이었다.
“후우.”
가벼운 한숨과 함께 천천히 고개를 뒤트는 사문향에게서 지독한 나른함이 묻어 나왔다.
우두둑! 우두두둑!
목과 척추에서 살벌한 소리가 울린다. 마치 뼈 자체를 재배열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우우우웅!
상처에서 불그스름한 연기가 번져 나왔다.
광룡부에 찢기고 베인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기 시작했다. 천위룡의 광세마공 이상, 그야말로 초고속 재생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능력이었다.
연호정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영력.’
저것은 단순한 사공의 육체 회복이 아니었다.
영력을 이용한 신체 수복이다. 강력한 의지로 진기의 회복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뼈를 붙이고 살점을 닫는, 시간을 역행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재생 능력이었다.
‘저 또한 심검의 하나.’
그렇다.
사문향의 저 회복력도 심검의 일종이다. 불로불사, 영생(永生)을 추구하는 삼교의 주구다운 심검 활용법이라 할 것이다.
“대단하구나.”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
이제야 비로소 돌아왔다.
“참으로 놀랍다. 사적심은 내 피를 진하게 이은 녀석 중 하나지. 천하제일이라 해도 무방할 그놈을 압도한 너의 실력은, 이제 당대를 넘어 고금을 논할 만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꺼움이 느껴지는 칭찬이었다.
화르르르륵!!
연호정의 살기가 더 짙어졌다. 주변 공기마저 죽일 것 같은 살기였다.
하지만 사문향은 담담했다.
“그 살기는 명백한 고금 제일이군. 그만한 살기를 담아 두고도 멀쩡한 정신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너의 그릇이 빼어남을 뜻한다. 과연 하늘이 내린 숙적이다.”
“개소리를 줄줄 늘어놓는 걸 보니 확실히 사문향이 맞는 모양이군.”
“하하하.”
너털웃음까지 짓는다. 연호정의 거친 발언에도 전혀 화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가만히 사문향을 노려보던 연호정은 이내 살기를 줄였다.
후우우우우우웅!
차갑고도 뜨거운, 날카롭고도 묵직한 살기가 사라지자 갑작스레 공기가 차가워졌다.
사문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살기를 거두는가? 그 살기가 아니면 내 상대가 안 될 텐데?”
“화는 다 냈다. 더는 살기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지.”
“놀랍구나. 감정을 마치 물건처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니, 너는 다른 의미로 인간 같지 않은 녀석이다.”
“너만 하겠느냐. 사백 년을 죽지도 않고 살아온 괴물인데.”
“그런 괴물은 나 하나가 아니야. 사색광인 역시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아왔지. 안 그런가?”
“그분을 너 따위와 비교하지 마라.”
“……흐음.”
사문향이 턱을 쓰다듬었다.
“확실하군. 네놈은 사색광인이 아니야. 사색광인의 제자가 분명해.”
“빨리도 아시는군.”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구나. 사색광인의 황색 신공을 정녕 이었단 말이지? 인간의 재능으로는 연마할 수 없는 무공이 분명하거늘.”
사문향이 활짝 웃었다.
“좋다, 좋아. 벌레를 밟는 것보다 범을 사냥하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는 법이지. 천리는 역겹지만, 너라는 존재를 내려 준 것에는 감사한다. 너를 제물로 혈신의 위에 올라 이 세상을 혈교천하(血敎天下)로 만들리라.”
화아아아악!
붉은 사기(邪氣)가, 마기(魔氣)가, 그 무엇도 아닌 기운이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연호정은 세상이 정지함을 느꼈다.
흩날리는 먼지도, 흔들리는 나뭇가지도, 바람도 전부 멈추었다. 그렇게 느껴졌다.
마치 전설의 마물 혈옥처럼.
시간을 다루는 그 역천의 마물을 몸에 박아 넣은 것 같이.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무공, 그 오색지옥공만큼 끔찍하고 기괴한 기운이 일대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연호정의 살기보다도 더 지독한 그 기운.
“지금에 이르러선 혈교 정통 마공 대다수가 맥이 끊어졌지. 남은 것들도 대부분 광혈교로 이어졌다. 하지만 혈교 제일의 마공은 내 손에 떨어졌지.”
불로불사는 물론, 인간의 정신을 유지한 채로 연마할 수 있도록 수많은 영혼을 받아 낸 사문향.
인고로 연마한 그 절대의 무공이 드러난다.
“혈제공(血帝功)이라는 것이다. 이 무공을 연마한 이후, 적을 상대로 구사하는 것은 처음이군.”
사문향이 웃으며 연호정에게 다가갔다.
한순간, 그의 신형이 연호정과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전설상의 축지성촌(縮地成寸)이었다.
연호정의 눈이 흔들렸다.
“받아 보아라.”
사문향의 손이 연호정의 어깨를 향해 떨어졌다.
하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