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욕심의 대가 (3)
“뭐라?”
“후우.”
“그러니까, 할 거면 독립유군의 수장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연위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연호정은 연신 차를 호호 불었다. 찻물이 유독 뜨거웠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는 연위는 내심 기가 막힌 것을 느꼈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단 말인가? 본인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모르고 있는 겐가?’
아들은 고작 말 몇 마디로 무림맹의 전투 부대 하나를 자신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직속 부하로 만들어 버렸다.
그것도 상대는 모용가주였다. 모용군, 모용세가 역사상 손에 꼽히는 위대한 가주라는 평가를 받는 거인이란 말이다.
“다시 묻겠다. 모용가주는 거기에 동의했느냐?”
“그렇습니다. 사람을 심겠다고 하긴 했는데, 그게 본인 사람은 아니랍니다. 부대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할 맹 측 사람을 붙여 두겠다는 뜻이겠지요.”
연호정의 눈이 반짝였다.
“그 정도는 어쩔 수 없습니다. 제아무리 자유로운 유군이라도, 결국엔 무림맹 소속이니까요. 백도무림맹의 정치판에 희생되지 않을 자유로운 부대가 된 것으로 만족합니다.”
“허어.”
“문제는 숫자입니다.”
“숫자?”
“그렇습니다.”
찻잔을 내려놓은 연호정이 한층 진지해진 얼굴로 말했다.
“모용가주와 담판을 지은 것은 독립유군의 존재, 그리고 그곳의 수장을 제가 맡겠다는 것까지입니다. 부대원의 숫자를 얼마로 둘지는 얘기하지 않았지요.”
“네 말은?”
“그렇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부대원이 십 단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부대라는 이름이 아까울 만큼의 소조직으로 운용될 수도 있지요.”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뭐, 그것도 괜찮지 않나 싶습니다. 관리할 사람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피곤해지는 건 수장이니까요. 다만 정말 그렇게 되면, 저 역시 모용가주에게 한 방 맞는 셈이 되겠군요.”
“…….”
“쩝, 그건 좀 기분 나쁘겠는데요.”
연위가 고개를 저었다.
“정말이지 대단하구나.”
“예?”
“네 눈이 천하에 이르러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만, 정쟁(政爭)에도 일가견이 있을 줄은 몰랐다.”
“아…….”
연호정이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대단한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실제 창검이 부딪치는 전략 전술은 활용할 구석이 많거든요. 다만, 정치라는 전장에선 창검이 혓바닥으로 변하는 것뿐입니다.”
“…….”
“뭐어……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끄러미 연호정을 보던 연위가 고개를 저었다.
“대단하다.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너무 그렇게 말씀하실 필요는…….”
“그리고 미리 말하마. 나는 반대할 것이다.”
“예?”
“너를 수장으로 하는 독립유군의 창설을 반대할 거란 말이다.”
연호정이 눈을 끔뻑였다.
“방해……요?”
“그렇다.”
“왜 그러십니까?”
“바르지 않으니까.”
“아니, 아버지. 이거 하나 따내려고 판돈을 제법 큰놈으로 썼는데…….”
연위는 단호했다.
“호정, 너의 능력은 출중하다. 무공도, 지략도. 그리고 이번에는 정쟁에 있어서도 누구 못지않은 수완가임을 증명했다. 아비로서, 그런 아들의 뛰어남은 분명 흐뭇한 일이다.”
“…….”
“하지만 독립유군의 존재는 무림맹 조직상의 혼란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나는 육대세가의 가주로서 그러한 조직의 창설에 찬성할 수가 없다.”
연호정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들, 나아가 가문의 힘이 될 수도 있는 조직의 창설을 반대한다고 한다.
연호정도 아버지의 이런 반응은 예상치 못했다. 그래서 당황스러웠고, 한편으론 과연 아버지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이전에, 내가 독립유군의 창설에 반대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결과가 옳지 않았습니다.”
연위의 눈이 커졌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연가의 가르침을 받은 무사로서, 올바르지 못한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그렇지요, 아버지?”
연위가 미소를 지었다.
“알고 있었더냐?”
“이제 알았습니다.”
“그래, 그것은 바르지 못한 일이다.”
무림맹 창설이 거의 확정된 상황이지만, 실제로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연호정을 전투 부대의 수장으로 만들어 자신의 휘하에 두고 감시하려 한 모용군도 비정상이지만, 그런 모용군에게 찾아가 독립유군을 만들어 달라고 협박한 연호정 역시 정상은 아니었다.
그것이 단순한 농담이었다면 웃어넘길 수 있지만, 모용군은 말할 것도 없고 연호정 역시 나름의 영향력이 큰 무림인이었다.
사전에 짜고서 신생 조직을 만들자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무림맹을 우습게 보는 처사가 된다.
“너의 방법은 지나치게 과격했지만, 나 역시 그러한 방법이 필요할 때가 있음을 안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방법이야 어쩔 수 없었다지만 저를 포기하게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요?”
“그래, 그렇다.”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아버지를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도 종종 이러한 방법을 쓸지도 모릅니다.”
매서운 호통을 각오하고 한 말이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상처받지 마시라고 한 말이었다.
놀랍게도 연위의 대답은 연호정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상관없다.”
“……?”
“적어도 네가 선을 넘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그러니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
연호정이 눈을 끔뻑였다.
“아니, 아버지. 반대하신다면서요?”
“내가 생각하는 도리에서 벗어난 행위다.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지.”
“한데 어찌 상관하지 않겠다고 하십니까?”
“너이기 때문이다.”
“예?”
대화가 이어질수록 차분해진 것은 오히려 연위였다.
차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 연위가 말을 이었다.
“아들이라고 나와 같을 수는 없다.”
“…….”
“너는 나와 달리, 더 거친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해서 그러한 정쟁의 능력을 네가 펼쳐 나갈 세상을 위한 수단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
“내가 보았을 때, 그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너는 그것이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그리 생각한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난 너를 탓하지 않는다. 다만, 애비 역시 너처럼 애비의 방식대로 살아갈 뿐이다.”
멍하니 연위를 보던 연호정은 결국 못 말린다는 듯 웃고야 말았다.
“그러다가 나중에 제가 화를 내면 어쩌실 겁니까? 답답하다고 성질을 부릴 수도 있습니다.”
“패륜아라고 꾸짖겠지.”
“그게 끝입니까?”
“어른이 다 되어서 회초리를 맞고 싶다면, 어디 그 선을 넘어 보거라.”
“하하하.”
연호정은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다 큰 아들에게 회초리를 드는 아버지로 만들어선 안 되지요.”
“당연히 그래야 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싸가지는 없어도 생존 본능 하나는 투철합니다.”
연위가 혀를 찼다.
“그 품위 없는 말투나 고치거라. 남들이 흉을 볼까 두렵다.”
“이것도 제 개성입니다. 존중해 주십시오.”
“그런 존중은 못 한다.”
부자는 한참이나 서로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잠시 후, 연호정이 말했다.
“그렇다면 저는 저대로 싸우겠습니다.”
“그렇게 해라.”
문득 생각났다는 듯 연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데, 모용가주는 왜 하필 광장에서 비무를 하자고 한 것이냐?”
“작정하고 판을 깔아 주겠다는 뜻이지요.”
“작정……?”
“저는 그 많은 고수가 보는 앞에서 모용가주에게 실력을 증명했습니다. 아마 이 소문은 지금쯤 내성을 넘어 외성까지 퍼졌겠지요.”
연위의 눈이 반짝였다.
“너를 독립유군의 수장으로 만들기 위한 물밑 작업의 일환이었다는 게냐?”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경고입니다.”
“경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거래를 마쳤습니다. 혹여 제가 거래 내용대로 몽의를 처리해 주지 않는다면, 그때는 자신도 선을 넘겠다는 뜻입니다.”
연위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참으로 뻔뻔하구나. 몇 번이나 시비를 걸어 온 주제에 패배했다고 도리어 이쪽에 경고를 가하다니.”
연호정이 씁쓸하게 웃었다.
“어차피 이유가 중요하지 않은 싸움입니다. 적어도 모용가주에게는 그렇지요.”
“그렇구나.”
연위는 말없이 차만 홀짝였다.
답답하기도 했을 것이다. 차라리 모용가주가 자신을 노린다면 모를까, 자꾸만 아들을 건드리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찾아가서 검을 휘두르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감정대로 처리해선 안 된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쓰린 속을 차로 달래는 이유였다.
“그나저나 아버지께서도 힘드시겠습니다.”
“음?”
연호정이 유쾌한 어조로 말했다.
“이미 물밑 작업은 끝나 버렸습니다. 모용가주는 기필코 저를 독립유군으로 만들 텐데요.”
연위가 고개를 저었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러고도 안 된다면 별수 없는 일이지.”
이것이 가문의 일이었다면 결단코 반대했을 것이다. 무림맹의 일이기에 연위 역시 나름의 유연함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벽산연가의 가주, 판관검 연의의 도(道)였다. 지극히 딱딱하고 원리 원칙만을 고수할 것 같지만, 필요하다면 누구 못지않은 유연함을 겸비한 대협인 것이다.
“어찌 되었든, 너도 마음의 준비를 하거라.”
“무슨 말씀입니까?”
“사람들이 너를 찾을 것이다.”
“예?”
연위가 혀를 찼다.
“치고 나갈 때는 천하가 깜짝 놀랄 만한 안목을 보여 주더니, 소소한 곳으로는 전혀 눈을 돌리지 않는구나.”
연호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는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백도든 흑도든, 무림인이란 족속은 호승심을 원동력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
“모용가주를 상대로 무(武)를 증명해 보인 너다. 과연 네 또래 고수들이 너를 주목하지 않을까?”
“억?!”
“명가를 상대하면서 이미 네 명성은 천하를 위진시켰다. 그런 네가 무림맹으로 들어왔구나.”
연호정의 얼굴이 썩은 과일처럼 일그러졌다.
연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뿌린 씨앗이니 알아서 거두거라. 이 애비는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
* * *
연위의 말은 머지않아 현실이 되었다.
펑펑 눈이 쏟아지는 다음 날 아침.
연호정이 광룡부를 든 채 사신무의 형(形)을 갈고닦고, 묵비가 홍련궁의 시위를 연신 당겼다 놓길 반복하던 그때.
“음?”
연호정과 묵비가 동시에 눈을 빛냈다.
“너도 느꼈냐?”
“네. 당연히 연 공자도 느꼈겠죠?”
“느끼기야 했지. 근데 너 좀 빨라졌다?”
“그러게요.”
“나중에 아버지한테 감사하다고 절해라.”
“제가 알아서 할 거거든요.”
“웃기고 있네. 또 쭈뼛쭈뼛 걸어가선 그 빛나는 이마를 냅다 허공에 박아 버리겠지.”
“킁.”
연호정이 파군각 입구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곳으로 새하얀 도복을 입은 검사 한 명이 찾아왔다.
검사라기보다는 도사였다. 마치 운해(雲海)를 연상시키는 도복에, 그리 길지 않은 머리카락을 아무렇게 풀어 헤쳤다.
‘오호?’
연호정의 눈이 반짝였다.
도사답지 않게 허무함으로 가득한 눈빛이 압권이다. 무서운 예기를 완벽하게 수습했지만,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암울한 분위기가 절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쿵!
광룡부를 땅에 박은 연호정이 물었다.
“누구?”
“여기가 연가의 거처요?”
“그런데?”
“연가의 장남, 벽산호장 연 공자를 만나러 왔소.”
“그래서 누구?”
어두웠던 도사의 눈빛이 순간 번뜩였다.
“검선(劍仙)의 유일제자 옥청(玉淸)이오. 강동의 호장께 비무를 부탁하러 왔소.”
초장부터 본격적이네, 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