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337)
흑백무제 1337화(1336/1351)
1337화. 천안(天眼)의 개화 (3)
‘됐다!’
모용군의 눈이 형형해졌다.
만천화우의 너비가 저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물며 수기(水氣)를 타고 뿜어져 나간 뇌기로 인해 적의 부대 절반이 만천화우를 방비하지 못했다.
설령 방비했다 한들 막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적장 둘의 반응이 조금만 더 빨랐다면 만천화우의 범위와 위력이 삼분지 이로 줄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지 못한 결과는 무시무시했다.
화아아아악!
하늘 높이 치솟는 살점, 그리고 피.
수만 개의 암기라 해도 그 크기가 작은 만큼 폭약과도 같은 위력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데도 만천화우에 휩쓸린 적들은 온몸이 박살 나며 끔찍한 죽음을 맞았다.
마치 유성우(流星雨)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하늘의 심판이라도 받은 양 손속 한번 나눠 보지 못한 채 죽어 나가는 적들의 모습은 일견 처절하기까지 했다.
‘아름답다.’
적이라도 사람이 죽어 나가는 광경을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정상이다.
그래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폭발하듯 퍼지는 핏물과 살점은 흉흉했지만, 전체를 보면 마치 허공에 수백 송이의 붉은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생각은 잠깐이었다.
후두두둑!
살점과 피가 지상으로 떨어지는 순간, 당관은 움직였다.
모용군은 깜짝 놀랐다.
‘벌써?!’
저 정도로 광범위한 절기를 썼다면 잠시라도 내공 운행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지쳐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그건 무극수라도 마찬가지다. 그저 회복 속도에 미세한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내가 잡을 수 없는 영역으로 날아올랐군.’
이제는 질투조차 나지 않는다. 그저 무극수가 사천당가의 위험천만한 무공을 구사하는 것에 감탄할 뿐이었다.
‘나는 내 할 일을 한다.’
번쩍!
모용군의 신법은 놀랍도록 빨랐다.
무극수와 초절정고수 사이에 속도 차이는 크지 않다고 하지만, 모용군의 신법은 당관의 추뢰신법에 비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순식간에 박살 난 전방 부대를 우회한 모용군이 버럭 외쳤다.
“후방을 쳐라!”
우와아아아!!
이미 쫓아오고 있었던 모용세가의 부대와 상무 연합의 무사들이 후방 부대를 급습했다.
번쩍!
모용군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실로 오랜만에 펼쳐지는 무정천뢰식(無情天雷式)이었다. 무림맹에서 머무를 당시 무극에 오르기 전의 공공대사를 이겼던 그의 무공은, 적을 맞이한 지금 한 단계 이상의 위력 상승을 보여 주고 있었다.
퍼퍼퍽!
검뢰신망(劍雷迅網)의 무자비한 검격에 사음교도 일곱 명의 몸뚱이가 갈기갈기 찢어졌다.
찢겨 나간 그들의 사지에서는 피가 나지 않았다.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뇌기가 상처를 완벽하게 지져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감히.”
낮게 깔리는 음성과 함께 상상 초월의 힘이 다가온다.
‘위험!’
신경을 타고 흐르는 뇌기가 순식간에 그의 반응 속도를 올렸다.
파아아악!
후방으로 물러남과 동시에 한 줄기 반월 같은 도기가 내리꽂혔다.
콰아앙!
대지가 움푹 파였다.
식은땀이 절로 나는 일격이었다. 거의 십 장 거리를 무시하고 내리꽂힌 도기의 파괴력은 무정천뢰식의 비기 못지않았다.
‘무극수, 그것도 족히 삼제급은 되는 무극수일 것이다.’
모용군의 눈은 정확했다.
전방 부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십사왕 혈린과 함께 진군하던 사람은 바로 사사왕 명활이었다.
모용군과 명활의 시선이 부딪쳤다.
오싹!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엄청난 강자다.’
무극을 열었다면 누구라도 자신보다 강할 것이다. 하지만 명활은 그런 괴물 중에서도 뭔가가 다른 듯했다.
말이 삼제급이지, 살기와 공격성은 삼제 중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살기를 넘어 광기가 느껴지는 안광, 필요하다면 지역 하나를 몰살시키는 것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위인이었다.
‘그래, 나처럼.’
모용군은 명활의 눈에서 과거의 자신을 보았다.
욕망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자. 그래서 모용군은 상대가 무서웠고 동시에 동질감을 느꼈다.
파아아악!
곧장 후방으로 이동해 무정천뢰식을 펼쳤다.
터져 나오는 뇌섬(雷閃)의 검격이 교도들의 몸을 무차별로 파괴했다. 당관에 필적하는 속도로 움직이며 벼락의 힘을 휘두르니, 정예 고수들로도 모용군의 공격을 막을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이십여 명의 사상자가 났다. 그중 사망자가 열다섯이었지만, 목숨을 부지한 다섯 명도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을 정도의 치명상을 입었다.
“안 되겠군.”
훅!
순간 모용군은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태양을 가리며 날아오른 명활이 대도를 치켜들었다.
시위가 당겨진 활처럼 팽팽하다. 저 일격이 쏟아지는 순간 일대가 초토화될 것이다.
번쩍!
생각을 하기도 전에 이미 몸이 움직였다.
콰아아앙!
모용군이 사라진 자리를 뒤집어 놓은 일격은 안 그래도 흉흉했던 전장의 분위기를 또 한 번 뒤바꾸었다.
“쥐새끼 같은 놈.”
쩍!
땅에 박힌 칼을 뽑아낸 명활이 살기 어린 눈으로 모용군을 노려보았다.
모용군은 몸이 덜컥 멎는 것을 느꼈다. 그 잠깐의 틈을 노려 적들을 더 죽일 수도 있었지만, 본능이 그것을 강제했다.
‘엄청나다.’
이마에 식은땀이 번진다.
‘움직임이 남다르다거나 위력이 대단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야.’
번쩍!
명활의 안광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무공과 같았다.
보자마자 몸이 확 굳어 버리는 듯하다. 거미줄에 걸린 파리의 신세가 이러할까.
‘상단전!’
이 또한 상단전의 운용법 중 하나다.
상단전용으로 따로 만들어진 무공이 아니라, 그냥 의지만으로 상대의 의지를 잡아먹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고수의 무공이다. 더 막강한 위력의 무공을 구사하는 거야 말할 것도 없고, 신의 단전이라는 상단전의 신기로 나 이외의 상대를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도 있다.
극에 이른 힘, 하늘이 허락하지 않은 능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기에 저 경지는 위대한 것이다.
하지만 명활의 놀라움은 모용군 이상이었다.
“이거, 정말 대단하군.”
사아아악!
한옆으로 내린 대도. 공격적인 자세가 아니다.
그런데도 당장 폭발적인 일격을 구사할 것 같은 압박감을 자아낸다.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상대하는 것 같았다.
“뇌기(雷氣)를 익히는 것 자체가 지난한 일이거늘, 그 정도 숙련도를 보인다는 것은 타고난 재능이 대단하다는 뜻일 것이다.”
“칭찬 고맙군.”
명활이 차갑게 웃었다.
짐승의 미소였지만, 그 안에 숨길 수 없는 감탄이 묻어 나왔다.
“그 무공으로 극사에 이르렀다면, 광옥이고 뭐고 내던지고 사흘 밤낮을 싸우려 들었을 것이다.”
즉, 대단하긴 하되 내 놀이 상대가 되진 못한다는 말이었다.
모용군이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 위압감을 주는 상대를 보며 웃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일대 종사 소리를 들을 만했다.
“아쉽군. 나도 네놈이 정상인이었다면 말로 회유라도 해 볼까 싶었을 텐데.”
“기고만장하구나. 우리와 맞선 이상 네 목숨은…….”
순간 모용군이 명활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번쩍!
쏟아져 나온 검기가 묵비의 화살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간다.
명활의 대처는 단순했다.
쾅!
칼을 휘두르지도 않는다. 그냥 맨손을 휘둘러 뇌정의 검기를 박살 내 버리는데, 마치 귀찮게 하는 날벌레를 내쫓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모용군은 이미 명활의 측면으로 이동했다.
그의 검이 섬광을 일으켰다.
번쩍! 번쩍! 번쩍!
무자비하게 허공을 가르는 검격은 이미 속도의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검격은 단 하나도 명활의 몸에 닿지 못했다. 이번에도 그는 칼을 휘두르지 않았고, 심지어 상반신을 몇 번 뒤트는 것만으로 무정천뢰식을 모조리 피해 냈다.
‘역시.’
지이이잉!
뇌정기가 두뇌를 더욱 활성화시켰다.
‘이놈은 내 속도에 반응하는 게 아니야.’
이 정도 검속은 무극지경에게도 통한다. 모용군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명활은 콧방귀를 뀌며 손쉽게 피해 내고 있었다.
명활의 움직임이 모용군의 상상 이상인 것일까?
물론 예상보다 빠르기도 했지만, 진짜 이유는 상단전 운용에 있었다.
‘예측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언제, 어떻게 공격할지를.’
미세한 동작 변화만으로 예측하는 것이 아니었다.
극도로 활성화된 상단전을 이용, 상대의 살기를 넘어 살의까지 읽어 낸다. 살의는 곧 구체화되어 다음 동작을 알려 주고 그 위치도 속삭여 준다.
그래서 이런 회피가 가능한 것이다. 이 정도는 무극수라면 누구라도 가능한 일일 것이다.
‘확실히.’
인간이 아니다.
상단전으로 상대의 살의를 읽었다고는 해도, 다음 동작과 위치를 확신하며 대응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즉,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는 것은 물론 살의에 반응할 정도로 신경이 극단적으로 발달되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나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무극에 오르지 못했으니 명활을 이길 수 없다.
당장 양천을 상대로도 삼초지적이었던 그였다. 당시 양천은 정상이 아니었고 그 역시 지금보다 약했다고는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삼초는 심했다.
명활이라고 양천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뇌정공의 특성상 정면 승부를 벌이면 오초, 아무리 넉넉히 봐도 십초를 넘기기 힘들 터.
‘그 이상을 넘봐야 해.’
명활이 자신을 포착한 순간, 결코 이 거미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설령 벗어난다 한들 명활은 그 즉시 아군을 사냥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는 안 되지.’
어떻게든 내 사람들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
그 방법이 죽음뿐이라면, 그렇게 해서라도 이놈의 발을 묶어 둘 수밖에 없다. 당장 저 당관조차 두 명의 무극수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판국에, 무극에 오르지 못했다고 적장 하나 붙들지 못하면 그만한 망신도 없다.
‘죽더라도.’
모용군의 눈이 흐릿해졌다.
막상 괴물 같은 고수와 대치하며 죽음을 떠올리자, 그간 얽혔던 수많은 인연이 눈앞을 스친다.
가장 강렬한 기억은 아무래도 연호정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인생에 연호정만큼 인상적인 적은 없었으니까. 정말이지 얄미우리만치 대단했던 놈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떠오른 사람은 연호정이 아니라 두 혈육이었다.
‘연화야.’
아비의 그릇된 가르침 때문에 엇나가 버린 여식.
그나마 지금은 상무 연합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지내고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뒤이어 모용우가 떠올랐다.
지나친 재능으로 인해 멀리했던 배다른 동생. 그런 동생이 어느새 무림맹으로 들어와 승승장구하더니, 이제는 무림맹의 소맹주가 되었다.
‘비록 동생이지만, 어느덧 내게 너는 연화와 같은 자식이나 마찬가지다.’
모용군은 모용우가 그리웠다.
오랜 세월 억눌려 지냈음에도 선한 천성과 재능을 잃지 않은 동생이.
어쩌면 그는 동생을 부러워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와서는 그런 감정 따위,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저 딸이, 동생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보려거든,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 살아남아야만 했다.
파지지지지직!!
뇌정공이 다시 한번 불타오른다.
두뇌를 타고 전신으로 뻗어 나가는 신경을 고스란히 잠식한 뇌기. 모용군의 전신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너는 내가 막을 것이다.”
명활이 피식 웃으며 대도를 들어 올렸다.
“삼초만 버텨 봐라. 그럼 팔 하나만 베고 살려 주마.”
번쩍!
모용군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