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339)
흑백무제 1339화(1338/1351)
1339화. 천안(天眼)의 개화 (5)
‘역시 벅차군.’
당관은 전신에 강철의 갑옷처럼 암기들을 두르고 항천의 창과 항무의 주먹을 막아 냈다.
일격, 일격을 받아 낼 때마다 내장이 진탕되고 있었다. 중원의 무극수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한 내공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만천화우라는 절대 비기를 쏟아 낸 지금 두 명의 무극수를 동시에 상대한다는 건 힘든 일이었다.
‘아니, 만전의 상태라도 힘들지.’
그나마 다행이라면 적장 둘도 상당한 피로를 느끼고 있다는 것.
무극의 경지에 올랐으니 숨 몇 번 들이쉬는 것만으로도 대량의 내공을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공이 충만하다 하여 체력과 집중력까지 만전일 수는 없다.
이 둘은 섬서에서 하북까지, 거친 바람을 뚫고 쉬지도 못한 채 달려왔다. 적의 병력이 유독 힘이 없는 것도, 당관이 두 고수를 상대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렇다고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다. 이놈들, 산전수전 다 겪은 고수들이야.’
번쩍!
항천의 용황창이 당관의 목덜미를 매섭게 찌르고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죽음’이 떠올랐다. 항무의 파괴력 넘치는 권법으로 회피할 곳을 잃은 순간, 너무나도 시기적절하게 파고들었다.
당관이 빠르게 대지를 밟아 갔다.
피슉!
불가해한 동작으로 항천의 창을 피해 냈지만, 목덜미에 작은 상처가 났다.
항천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이번 일격으로 승부가 날 거라 생각했는데, 용케 피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왕독경상의 독룡진천보(毒龍震天步)였다. 제왕독공은 버렸지만, 독경상의 초일류 보법인 독룡진천보는 만류귀원신공으로 재해석되어 당관의 회피 능력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려 주었다.
‘좋아, 발전했어.’
무극의 경지에 오른 자는 대개 실전 능력의 부재를 겪는다.
실전을 치르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경지지만, 삼교와의 전쟁 덕에 당관은 연호정과 함께 가장 실전에 능한 무극수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각 무공의 성취가 빠르게 발전한 것이다. 매 순간 죽음을 겪으며 발전시킨 무공이 홀로 수련해서 얻은 무공보다 뛰어난 것은 당연했다.
당관의 손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우우우웅!
무겁게 밀고 들어가는 장력이 순간 꽃처럼 화사하게 피었다. 붉은 연꽃의 장법, 적련신장이 펼쳐진 것이다.
번쩍!
벼락처럼 항천의 등 뒤로 돌아온 항무가 두 주먹을 휘둘렀다.
콰쾅!
당관의 몸이 흔들렸다.
폭음을 내는 두 주먹은 강철 성벽도 일거에 허물어 버릴 만큼 막강했다.
‘역시 이놈이 더 강해.’
얼굴도 비슷한 것이 형제처럼 보였다. 와중에 창을 든 놈보다 권법가인 이놈이 더 매서웠다.
‘실제로 이놈은 내 공방과 회피에 매번 반응하고 있다. 창술사와는 달라.’
이놈이 버티고 있기에 창술사의 공격도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굽은 검지 안으로 말려 들어간 엄지가 무섭게 튕겨 나왔다.
피이이잉!
작은 구슬 하나가 탄환처럼 쏘아졌다.
순간 항무는 고민했다. 천하의 당가주가 쏘아 낸 암기인 만큼 구슬에 담긴 힘은 막강했지만, 피하거나 튕겨 내는 것이 어렵지는 않아 보였다.
다만 그게 철제 암기인지 독탄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피하고 봐야겠군.’
사천당가의 고수와 싸울 때는 이런 게 부담이었다. 도대체 무슨 수를 쓰는지 알 수가 없으니 고민도 두 배가 된다.
번쩍!
종이 한 장 차이로 구슬을 피한 항무가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당관을 향해 다가갔다. 회피와 동시에 반격을 꾀한 것이다.
그 순간, 당관이 자신의 가슴을 쳤다.
퍼어어엉!
폭음과 함께 붉은 가루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항무는 속으로 욕설을 뱉으며 측방으로 물러났다. 아무리 극사에 이르렀대도 저런 행동을 반사적으로 할 수는 없다. 자신이 파고들 것을 미리 읽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빌어먹을.’
화악!
빠르게 물러났지만 퍼진 가루가 피부를 통해 소량 침투되었다.
순간 항무는 전신의 내력이 빠르게 분해되는 것을 느꼈다.
‘산공독?!’
말이 독이지, 산공독은 혈액을 응고시키거나 신경을 마비시키는 등의 독과는 다른 체계를 지녔다. 독이라면 독이지만, 극독은 아닌 것이다.
화아악!
전신의 내력을 쏟아부어 산공독의 독력을 몰아냈다. 초절정고수라면 모를까, 극사에 이른 고수라면 이질적인 산공독이라도 순식간에 몰아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항무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화악!
산공독은 해약이 없다. 당연히 상대도 일시적으로 내공을 봉쇄해야만 했고, 그것을 풀기 위해 잠시나마 힘을 써야만 했다.
한데 이미 상대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스스로 산공독을 터트렸는데도!
‘당했다!’
어느새 항무를 놓고 돌진한 당관은 순식간에 항천에게 접근했다.
항천이 귀신 같은 기합성과 함께 창을 휘둘렀다.
파바바박!
항무보다 약하다 한들 그 역시 극사에 이른 고수였다. 게다가 그가 구사하는 창술은 창왕 소현립이 전수한 것이었다.
일대일로 붙어도 목숨을 걸어야 할 상대라는 것은 똑같다. 적련신장처럼 화사하게 피어나는 창의 꽃이 당관의 전신을 노렸다.
항무가 본능적으로 외쳤다.
“물러나!”
파아아악!
또 한 번 펼쳐진 독룡진천보.
찌익!
의복과 함께 옆구리가 깊게 베였다. 창날을 다 피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당관은 그보다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었다.
항천의 측면으로 파고든 그가 천독수로 우측 어깨를 노렸다.
콰쾅!
항천이 이를 악물었다.
당관의 장법은 실로 막강한 힘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버틸 만해!’
산공독에 그 자신도 당했기 때문이리라.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놀랐지만, 결국 이게 끝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당관을, 사천의 새로운 제왕을 너무 쉽게 본 감이 있었다.
퍼억!
창대로 당관의 등판을 후려쳤다. 당관이 피를 울컥 토하며 튕겨 나갔다.
하지만 이내 항천의 얼굴이 굳어졌다.
‘막혔어?’
빈틈을 노린 이번 일격으로 허리가 꺾였어야 했다. 한데도 강철을 친 것처럼 창대로 전해지는 진동이 엄청났다.
‘어떻게?!’
강력한 내공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항천의 눈이 번쩍였다.
‘상단전으로!’
그렇다.
산공독에 순간적으로 내력을 상실한 것은 항무나 당관이나 똑같았다.
그러나 당관은 무림에서 손에 꼽히는 상단전을 지닌 자였으며, 만류귀원신공 역시 상단전을 기반으로 한 최고 수준의 신공이었다.
항무는 부지불식간 산공독을 억누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 했지만, 당관은 내력이 흩어지는 걸 감수해도 상관없었다. 극도로 연마된 상단신기를 내력화하여 움직이면 되니까.
만천화우라는 광역 비기를 썼는데도 널널할 만큼 깊고 넓은 상단전을 지녔기에, 오직 당관이기에 가능한 전술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이라면 당관이 일격을 허용하면서까지 항천을 노리진 않았을 것이다.
“천아!”
치이이익!
항천의 눈이 흔들렸다.
일격을 당한 우측 어깨에서 희뿌연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독?!’
정확히는 암기다.
상단신기가 극도로 집약된 우모침 하나가 어깨와 빗장뼈 사이, 운문혈(雲門穴)에 정확히 박혔다.
그리고 그 우모침에는 단장산이 발려 있었다.
“컥!”
단순히 피부가 아닌 혈도를 정확하게 찔렸기에 독이 퍼지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게다가 운문혈은 폐장과 이어지는 혈도로, 운문혈에 이상이 생기면 호흡에도 이상이 생긴다.
그런 곳에 당가에서도 손꼽히는 극독이 주입되었으니 순식간에 호흡이 답답해지고 얼굴이 누렇게 떠 버렸다.
후욱!
항천은 서둘러 내력을 끌어모아 독기를 뽑아내려 했다.
쉽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작업 역시 아니었다. 혈도에서 직접적으로 침투하지 않았다면 제독이 훨씬 쉬웠을 것이다.
당관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항무가 서둘러 당관에게 접근하던 그 순간, 세 자루 비수가 허공을 날았다.
펑! 펑! 펑!
쏘아진 비수가 항천과 항무 사이에서 폭음과 함께 잇따라 폭발했다.
제왕독경상의 극대발경(極大發勁)인 폭룡살이었다. 섬서 전쟁 때 당상아가 선보인 적 있던 무공으로, 만천화우만큼은 아니지만 대단한 살상력을 지닌 기공술이었다.
“크아악!”
독기가 담기지 않았대도 파괴력은 당상아 이상이다. 이제 막 단장산을 몰아내려던 항천에게 있어서는 실로 치명적인 일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콰앙!
항무의 무지막지한 일권에 당관이 또 한 번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폭룡살 삼 연발을 터트리느라 제대로 막을 수가 없었다.
항무는 서둘러 항천을 돌아보았다.
“커헉!”
답답한 신음과 함께 항천이 무릎을 꿇었다.
“천아!”
항천은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숨이 막히는지 연신 컥컥댄다.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내공 흐름도 툭툭 끊어진다. 전신의 모공을 열어 내기를 북돋으려 했지만, 단장산의 독기가 벌써 우반신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심지어 폭룡살로 터트린 비수 조각이 항천의 등판을 찢어 놓았다. 그 자체로는 큰 상처가 아니었지만, 혈도 몇 개가 다친 데다가 경력 침투를 당해 독기가 쉽게 날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 순간, 항무는 판단을 내려야만 했다.
하나뿐인 동생을 살리느냐, 아니면 위험 요소인 적장을 죽이느냐.
‘빌어먹을!’
항무는 다시 몸을 돌렸다.
그는 동생을 믿었다. 동생 역시 극사에 오른 고수이며, 천하에서 가장 강한 독이라도 반나절은 버틸 수 있는 힘을 지녔다.
싸움이 끝날 때까지는 버텨 줄 것이다.
치이이익!
항무가 망설인 사이, 당관 역시 흩어진 내공을 호흡 몇 번으로 절반 이상 회복할 수 있었다.
당관이 차갑게 웃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지. 내가 암기를 선택했을 뿐, 독을 놓은 것은 아니라는 걸.”
“이놈!”
“네놈들은 운이 없어.”
항무가 돌격하려는 그때, 이미 당관의 손은 땅을 짚고 있었다.
극도로 발전한 그의 상단전은 항무 이상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행동을 예측하는 싸움이었지만,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그의 상단신기는 항무보다 한 수 앞을 읽어 냈다.
퍼퍼퍼펑!!
바닥 곳곳이 터지며 시커먼 독기가 일기 시작했다. 약식으로 펼쳐진 묵룡융해진이었다.
“내가 여기 온 이상, 너희는 절대 산동으로 가지 못한다.”
그때였다.
‘……?!’
당관과 항무, 심지어 항천조차도 등줄기를 훑는 기묘한 기운에 놀라서 고개를 틀었다.
번쩍!!
백여 장 밖.
빛의 중심에서 뿜어져 나온 엄청난 뇌기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파지지지지직!
소리보다도 더 빨리 퍼진 뇌기가 범람하는 강물처럼 사방을 휩쓸었다.
치이이이익!
눈 깜짝할 새에 이곳까지 침투한 뇌기는, 놀랍게도 묵룡융해진의 독기를 순식간에 증발시켰다.
당관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약식이라고는 해도 묵룡융해진이다. 그 농밀한 독기를 뇌기만으로 날려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단신기!’
그렇다.
그 뇌기에 혼의 힘, 상단전의 진기가 실리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퍼펑!
항무는 전신을 타격하는 뇌기를 내공으로 막았다. 하지만 항천은 그러지 못했다.
치익!
“크아아악!”
피부와 신경을 누비는 뇌기가 그의 내력 운행을 완전히 정지시켰다.
치이이이익!!
항천의 어깨와 가슴 일부가 안쪽에서부터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뼈와 장기가 녹아내리고 있는 것이다.
“천아!”
그리고 그 순간.
콰르릉!!
저 멀리, 천둥소리와 함께 대도를 든 누군가가 뒤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