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341)
흑백무제 1341화(1340/1351)
1341화. 천안(天眼)의 개화 (7)
퍼퍼펑!
아군 수십 명을 밀어붙이며 날아간 명활은 대도를 땅에 박아 넣고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강하다.’
명활은 울컥 핏물을 토할 뻔한 걸 겨우 참았다.
‘이 정도일 줄이야.’
전신을 타고 흐르는 뇌기가 체내의 사기를 무섭게 흩어 놓는다.
단순히 상단전의 영력만 위협하는 것이 아니었다. 극에 이른 뇌기는 대자연이 자아내는 힘의 끝이다. 인간이 다룰 수 없기에 사람들은 번개를 신의 분노로 여겼다.
그 정도 힘이 몸을 타격하니 정신이 없었다.
훨씬 더 순도 높아진 뇌기, 그리고 그 뇌기에 서린 영혼의 힘.
화아아악!
명활이 다시 기파를 터트렸다.
분노 가득한 살기가 일대를 죽음의 지대로 만든다. 그 영역 안에 있던 사음교 정예 무사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감히!”
쾅!
진각으로 기를 모아 내상을 수복하고 투지를 불태운다.
“네놈은 이제 막 이 영역에 올라섰을 뿐이다! 내 상대가 못 돼!”
“다른 사람에게는 다 져도 너에게는 안 진다.”
모용군이 손을 까딱였다.
명활의 공격이 오직 자신에게만 향하도록 만드는 도발이었다.
“증명해 주지.”
“이놈!”
쾅!
땅을 박차며 나아가는 명활의 속도가 이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모용군의 눈이 번뜩였다.
‘과연.’
힘의 흐름이 두 개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상단전의 영력을 내공화시켜 힘과 속도를 극대화한 것이다.
분노로 눈이 뒤집힌 와중에도 불리한 것을 버릴 줄 아는 승부사의 기질이다. 단순히 강하다고 사왕 자리를 얻은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내게도 시간이 없다.’
깨달음의 순간은 영원과 같았지만 결국 찰나였다.
그 찰나에 얻은 힘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문제는 한순간 달라진 몸과 진기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뇌기는 일반 내공보다 조절하기가 더 힘들었다. 어떻게 신경을 써도 내공 소모가 극심하며, 실제로 뇌기를 흩뿌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공이 계속 소모되고 있었다.
이것을 완벽하게 갈무리하는 경지에 오르지 못하는 한, 어떤 싸움이라도 단기전에 승부를 봐야 했다.
번쩍!
벼락을 닮은 보법으로 명활의 측방에 섰다.
명활의 눈이 흔들렸다.
모용군의 움직임 역시 이전보다 더 빨라졌다. 문제는 그것을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상대가 아무리 빨라도 영력을 쓰면 어떻게 움직일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신기를 강제로 끌어와 내공력으로 치환했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모용군의 좌장이 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구천벽력장이었다.
콰르르릉!!
진짜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
그 굉음조차도 하나의 무공이다. 마치 저 음제 하은교가 음공(音功)을 구사하는 것처럼, 귀청을 떨어 울리는 천둥은 고막을 파괴하고 두뇌를 뒤흔드는 힘을 지녔다.
명활이 서둘러 대도를 휘둘렀다.
콰앙!
두 사람이 동시에 세 걸음을 물러났다.
파악!
물러난 두 사람이 또 한 번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역시 강하다.’
거의 동시였지만, 모용군은 알고 있었다. 명활이 자신보다 미세하게 빨랐음을.
보법이나 경공술은 자신이 더 빠르다. 그러나 충격을 완화하는 능력은 저쪽이 한 수 위다. 실력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번 한 수로 명확히 깨달았다.
나와 상대가 지닌 힘의 차이를.
번쩍!
명활의 대도가 세 갈래로 나뉘며 떨어졌다.
벼락은 모용군이 다루지만, 명활의 칼질 역시 벼락 못지않았다. 어느 칼질이라도 한 방만 잘못 맞으면 즉사를 면키 힘들 것이다.
지잉.
모용군의 뇌기가 명활의 미간에 닿았다.
‘여기!’
그의 몸이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용처럼 움직였다.
콰콰쾅!
세 갈래 참격을 절묘하게 회피하며 들어간다.
명활은 모용군의 움직임을 읽지 못하게 되었지만, 모용군은 명활의 공격선을 모조리 읽었다. 상단전 운용, 영력의 차이였다.
명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두 눈을 환하게 비추는 광채가 안면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훅!
영력을 내공화했다곤 해도 이룬 경지와 경험이 있다. 모용군의 쾌속한 주먹질을 명활은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 냈다.
하지만 모용군의 기공술까지는 막지 못했다.
파직!
“큭!”
스쳐 지나가는 모용군 뒤로 명활의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귀에서 피가 난다. 귓불을 벤 것이 아니라 흘러 들어간 뇌기가 고막을 손상시킨 것이다.
화악!
발 빠르게 내공을 끌어올려 손상된 고막을 막고 평형 감각을 되찾았다. 내공 운용에 있어서만큼은 가히 백전의 고수라 할 만했다.
그러나 이미 모용군은 명활의 하단을 노리고 있었다.
쾅!
명활의 두 다리는 철탑과 같았다.
뇌기는 지극히 파괴적인 힘이었지만, 압도적인 내공량의 차이는 이기지 못했다. 모용군의 내공량이 명활과 비슷했다면 이번 일격으로 다리가 꺾여 쓰러졌을 것이고, 그 즉시 승부가 났을 것이다.
명활이 좌수를 휘둘렀다.
콰앙!
모용군은 이전보다 더 느린 움직임으로 장력을 회피했다.
‘이것이구나.’
쾅! 쾅! 쾅!
두 사람의 무공이 연신 부딪치며 천인들의 격전을 알렸다.
‘그래, 이것이 너희가 보는 세상이었어.’
모용군의 두 눈에 황홀함이 가득 깃들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힘의 흐름이 선명하게 보인다. 왜 여태껏 보이지 않았나 신기할 정도로, 이 세상에는 수많은 힘의 흐름이 제각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아!’
베고 찌르며 휘두르는 대도의 길이 훤하다. 한 수, 아니 몇 수 앞의 공격도 예측할 수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힘의 흐름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대도를 쥔 자, 명활의 무공 자체가 무섭도록 빠르게 ‘이해’되고 있었다.
번쩍! 치이이익!
명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얄미운 쥐새끼처럼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피하는 상대가, 일합이 끝날 때마다 몸에 상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장력도, 권풍도, 검격도 아니었다. 그저 스쳐 지나가며 뿌리는 뇌기만으로도 피부가 터지고 뼈가 저리는 일격을 남기는 것이다.
“으아압!”
콰르릉!
혼신의 힘을 다한 발경으로 일대를 날려 버린 명활이 최후의 초식, 단천백참(斷天百斬)을 펼쳤다.
모용군의 눈이 번뜩였다.
‘과연.’
면면이 이어지던 힘의 흐름을 단번에 바꾸는 일격이다.
비슷한 경지의 고수와 수많은 격전을 벌여 본 자다. 상대가 자신의 무공을 이해하는 순간, 아예 흐름을 끊고 다른 식의 흐름을 살리기 위해 본 적 없는 투로를 열고 있었다.
콰콰쾅!!
팔방으로 쏟아지는 수많은 참격에 일대가 초토화되었다.
콰릉!
한참 멀리 떨어진 모용군이 구천벽력장을 뿜었다. 쌍장에서 뿜어진 공력이 단천백참이 끝나는 순간 정확하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명활이 대도를 찌르고 들어왔다.
퍼어어어엉!
부서진 장력이 사방으로 무서운 뇌기를 흩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모용군은 명활의 행동을 예측했다.
파아악!
후미를 공격하는 모용세가 병력을 향해 달리는 명활. 모용군의 심기를 흐트러트리기 위해 난전을 유도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모용군은 명활의 앞을 막고 있었다.
나아가, 명활 역시 거기까지 예측하고 미리 준비한 일격을 휘둘렀다.
쾅!
이번만큼은 모용군이라도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영력이 아닌 경험과 전투 능력으로 다음과 다음 수를 읽은 명활의 능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치이이익!
명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대도를 내치는 그 순간, 모용군의 뇌기 가득한 지풍이 그의 왼손 손가락들을 후려쳤다.
내공 방벽을 뚫고 들어간 뇌기는 순식간에 그의 왼손을 마비시켰다. 당장 진기로 정상화할 수 없는 날카로운 일격이었다.
“이놈!”
파바바박!
느릿하게 응수했던 모용군의 속도가 다시 빨라졌다.
영력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지 못하는 이상, 느려졌다가 빨라진 상대의 움직임에 적응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법.
이것이 바로 무극에 오른 모용군의 싸움법이었다.
쾅! 콰쾅! 쾅!
미친 듯이 벽력장을 내치는 모용군의 공격에 명활은 속수무책으로 밀려 나갔다.
아니, 단순히 밀리는 것 이상이었다.
‘이런!’
일격, 일격을 막을 때마다 내상이 중첩된다.
압도적인 내공량으로도 방비가 안 된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내공이 뇌기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내상을 유발하고 있었다.
더 강한 내공, 더 풍부한 영력이 모용군의 뇌정공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붕괴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 정도 속도로, 읽지 못하는 공격을 해 오니 대응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놈이 극사의 천적이라도 된단 말인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명활은 영력을 오직 무공의 파괴력을 끌어 올리는 용도로 썼다. 그것은 실로 그다운 일이지만, 그렇기에 상단전 용량을 키울 생각만 했지 섬세하게 다룰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모용군의 뇌기가 명활의 영력을 흩어 놓을 수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의 뇌기는 자성(磁性)으로 영력을 끌어 내리거나 흩어 버리는 성질을 지녔다. 뇌기를 기반으로 한 무공을 익혔다고 아무나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지만, 발산보다 수렴에 더 특화된 뇌정공은 모용군의 깨달음으로 개화하여 적의 상단전을 무용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다른 무극수라도 모용군의 뇌기에 영력이 흩어지는 것을 쉽게 막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섬세하고 철저하게 연마했다면,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도 않다.
즉, 이룬 경지 차이가 있는데도 모용군이 명활을 밀어붙이는 게 가능한 것은 전적으로 두 사람의 상성 문제였다. 모용군에게 있어 명활은, 어떤 의미로는 가장 상대하기 쉬운 무극수였다.
콰앙!
벽력장 일격에 대도 끝이 부서져 날아갔다.
명활의 엄청난 내공 방벽에 금이 가고 있었다. 침투한 뇌기가 끊임없이 내공화되는 영력과의 선을 끊어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명활 역시 그냥 당하고만 있진 않았다. 어떻게든 내력을 끌어모아 반격을 가하는데, 어느새 모용군의 몸도 피범벅이 되었다.
대도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피부가 찢어지거나 터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긴다.’
모용군의 두 눈은 형형했다.
극단으로 치닫는 뇌기가 사고 속도를 무섭게 끌어 올렸다. 찰나지간 명활이 하나를 생각할 때, 그는 두셋을 고민하며 무공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길 수 있다.’
이제 품은 뇌기도 거의 다 소모되었다. 호흡으로 끌어모으는 양보다 쏟아붓는 뇌기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래도 이긴다. 이길 수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만큼은 이긴다.’
극에 이른 믿음은 곧 승리를 향한 신앙이 되어 더 강하고 폭력적인 투로를 그려 냈다.
“으아아아!!”
내상이 한계에 이른 명활이 비명을 지르며 대도를 쳐든 순간.
퍼어어억!
어디선가 날아온 검이 명활의 심장을 꿰뚫었다.
모용군은 손을 뻗은 채로 부르르 떨었다. 최후의 일격을 발휘한 이 순간, 내공이 다 소모된 것이다.
명활의 입에서 주르륵 핏물이 흘러내렸다.
“이래서 검을 쓰지 않았나?”
“쓸 필요가 없었다.”
“…….”
“하지만, 반드시 써야 할 때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
명활은 헛웃음을 흘렸다.
느렸다가 빨라진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것과 반대로 권장에 익숙해졌다가 어검술에 당했다. 경험으로도 예측하지 못한 전술이었다.
“빌어먹을.”
결국 그 한마디와 함께 명활의 몸이 허물어졌다.
동시에 모용군도 무릎을 꿇었다. 극심한 내공 소모로 인한 내상과 과다 출혈로 그 역시 한계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쿠르르릉!
절대고수들의 싸움에 이도 저도 못하던 사음교 병력이 반으로 찢어졌다.
혈옥을 쥔 최후의 고수, 십사왕 혈린이 병력을 이끌고 산동으로 방향을 틀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