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342)
흑백무제 1342화(1341/1351)
1342화. 천안(天眼)의 개화 (8)
“빌어먹을.”
명활이 죽은 그때, 당관은 그와 똑같은 말을 뱉고 있었다.
쾅! 쾅!
분노한 항무의 주먹질은 실로 감당키 힘든 위력을 뿜고 있었다.
오히려 동생과 합공했을 때가 더 어설프고 약한 것 같았다. 합공 자체도 눈이 돌아갈 만큼 정교했는데, 혼자서 당관을 밀어붙이는 지금은 본인의 경지 이상의 힘을 내는 듯했다.
항천 때문이었다.
항천은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그 지경이 되어서도 죽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죽은 것이나 진배없었다. 극에 이른 내공력 덕에 겨우 목숨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역시 다 똑같은 거지.’
혈육을 잃은 자의 분노.
때려죽여 마땅할 놈들이지만 이놈들도 사람이다. 사람인 이상 혈육이 죽어 가는 광경을 보며 분노하지 않을 수 없을 터.
분노 가득한 항무의 내공은 피로를 다 날려 버릴 정도로 거셌으며, 두 주먹은 당관의 암기와 장력을 정면으로 깨부술 정도로 강했다.
‘우리 쪽으로 승기가 기울긴 했는데.’
당관은 명활의 기도가 갑작스레 사라진 것을 느꼈다.
기어이 모용군이 해낸 것이다. 모용군의 기도 역시 지극히 미약해졌지만, 생기는 아직도 팔팔했다.
‘어서 기운을 차리시오!’
번뜩이는 전광도, 위협적인 뇌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적장을 죽이며 모든 힘을 소모한 듯했다.
‘빌어먹을, 적은 또 있단 말이오!’
쉬리릭!
당관의 소매 안에서 튀어나온 철 조각들이 어느 순간 길쭉한 채찍으로 화했다.
날카롭고 단단하며 유연한 채찍이다. 당가 비전의 황철독편(荒鐵毒鞭)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촤아악!
극독이 묻은 독편이 허공에 소름 끼치는 타격음을 만들어 냈다.
허공을 때린 일격에 은은한 독기가 흘렀다. 항무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더러운 놈!”
그제야 뒤로 물러난다. 제아무리 화가 난대도 극독을 뒤집어쓴 채 싸우면 필패라는 걸 아는 것이다.
당관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너희 같은 놈에게 그따위 소리 듣고 싶지 않다.”
“쳐 죽일……!”
그때였다.
항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사음교 병력 절반이 산동으로 방향을 튼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당관이 씨익 웃었다.
“왜? 가고 싶나?”
“…….”
“넌 못 가.”
“과연 그럴까?”
순간적으로 복수심을 접는다.
당관은 항무의 무공보다 그 마음가짐이 더 무서웠다. 죽음을 각오하고 적을 처단하는 것은 쉽지만, 타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냉정을 되찾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파아아앙!
곧장 후방으로 몸을 날리는 항무.
그의 행동을 예상한 당관은 곧장 항무를 향해 달려가며 황철독편을 휘둘렀다.
촤르르르륵!
마치 악룡(惡龍)의 비늘이 저들끼리 마구 부딪치는 듯했다. 소름 끼치는 괴음을 토해 내며 늘어난 황철독편은 순식간에 항무의 소매를 휘어 감았다.
그 순간, 항무의 팔에서 빛이 폭발했다.
콰앙!
당관의 눈이 흔들렸다.
엄청난 발경과 함께 황철독편이 절반이나 부서져 날아갔다.
‘뭐지?!’
그 폭발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쫓아가던 당관조차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나야 했다.
주르륵.
항무의 팔은 온통 피범벅이었다. 얼핏 봐도 뼈가 부러졌고 피부가 너덜너덜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움직이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서둘러 몸을 돌리고 신법을 전개하는 그의 뒷모습에선 조금의 피로도 느낄 수가 없었다.
‘이런 발경이 있나.’
자신의 신체 일부를 훼손하면서까지 힘을 증폭하는 비술이다. 실로 사공(邪功)다운 무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놓치지 않겠다.’
그때였다.
퍼어어엉!
불의의 일격이라 해야 할까.
순간적으로 느낀 위기감에 황급히 내공 방벽을 펼쳐 막았지만 등허리가 뻐근했다.
당관이 고개를 돌렸다.
치이이익!
온몸에서 허연 연기를 풍기는 항천이 충혈된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당관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어났다고?!’
전신에 독기가 가득했다. 안쪽에서부터 녹은 흉부와 오른쪽 어깨는 뼈마저 드러난 채였다.
그런데도 기어이 왼손으로 창을 잡고 휘둘렀다.
‘원정을 깼다.’
쿠르릉.
최악의 상태임에도 항천의 창에서는 무시무시한 살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번쩍!
독기가 몸을 잠식하는 것을 그대로 놔둔다. 짧고 탄력적인 신법을 펼쳐 기어이 접근해 오는데, 동작은 어설플지언정 속도와 살기만큼은 대단했다.
당관은 별수 없이 목표를 바꾸어야만 했다.
촤르르륵!
다시 합쳐진 황철독편이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타앙! 타앙!
연달아 폭음을 내는 독편 뒤로 무서운 극독이 쏟아졌다.
상대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아도 죽일 수 있는 맹독이었다. 항천의 안색이 점차 까맣게 죽어 갔다.
그래도 그는 움직였다.
기가 막힌 몸놀림으로 회피하는 당관을 기어이 따라잡은 그가 용황창 일격을 날렸다.
번쩍!
섬광과도 같은 일섬이었다.
진짜 용이 아가리를 쩍 벌리며 다가오는 것 같았다. 마지막 생명을 불사르겠다는 듯 영력까지 쏟아부어 투로의 공격선을 지워 버렸다.
당관이 이를 악물며 천독수를 펼쳤다.
콰아앙!
창대를 휘감아 쳤는데도 왼팔 전체가 저릿저릿했다.
‘금이…….’
창대의 반탄력이 무시무시했다. 만류귀원신공으로도 뼈에 금이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원정에 영력, 생기까지 모조리 실은 일격은 그렇게나 대단했다.
“지랄맞군.”
쿵!
땅에 사선으로 꽂힌 창에 몸을 기댄 항천이 씨익 웃었다.
안색이 완전히 새카매졌다. 코와 입에서 줄줄 흐르는 핏물의 색이 먹물과 다르지 않았다.
“독 따위에 당하다니…… 부끄러워서 어디 편히 죽겠나.”
당관이 독편을 휘둘렀다.
우둑!
거친 톱날처럼 흉흉한 독편에 휘감긴 항천의 목이 그대로 뜯겨 날아갔다.
목이 날아가자 항천의 시신은 곧장 부패하기 시작했다. 당관의 독은 그렇게나 지독했다.
하지만 그는 항천이 죽는 것을 지켜보지 않았다.
‘이런.’
벌써 항무는 병력과 함께 멀어지고 있었다.
번쩍!
재빨리 모용군의 곁으로 다가온 당관이 물었다.
“움직일 수 있겠소?”
“힘드오.”
아직도 몸 여기저기서 푸른 전광이 이글거린다. 하지만 느껴지는 내공량은 너무도 미흡했다. 무극에 오른 직후 너무 많은 힘을 써서 회복도 잘 안 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놈들의 잔당을 처리하겠소.”
“그럼 내가 놈들을 따라가겠소.”
“따로 준비한 수가 있다는 건 어떻게 되었소?”
“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소 늦는 모양이오.”
그때였다.
파아아아앙!
저 멀리서 두 명의 사내가 이곳에 들르지도 않은 채 산동 쪽을 향해 사선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수백의 무사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모용군의 눈이 번뜩였다.
“강량?”
“그리고 진양이오.”
“저 둘은 가주가 준비해 둔 한 수가 아니잖소?”
“그렇소.”
“일단은 가시오. 모용가의 병력을 데리고 가면 될 것이오.”
“그럽시다.”
그렇게 당관은 모용가의 병력을 대동하고 적들의 뒤를 쫓았다.
* * *
당관이 모용가의 병력과 함께 산동에 이른 그 시각.
“온다.”
사괴술사의 얼굴에 황홀한 빛이 어렸다.
“광옥이 근처에 있구나!”
그때였다.
“준비는 끝났나.”
“누구냐!”
익숙지 않은 목소리에 사괴술사와 호법사제들 모두가 긴장하며 몸을 돌렸다.
그곳에서 한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괴술사의 눈이 커졌다.
“적흠?!”
그렇다. 그는 바로 적흠이었다.
하지만 그는 적흠이 아니기도 했다.
스륵. 스륵.
커다란 무언가를 어깨에 메고 나타난 적흠은 이내 그것을 아무렇게나 던져 버렸다.
쿵.
묵직한 울림.
사괴술사의 얼굴에 경악이 드리워졌다.
“교주님!”
놀랍게도 적흠이 던진 것은 바로 사문향의 시체였다.
안 그래도 회색빛이었던 그의 피부는 이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원통하게 죽기라도 했는지 두 눈을 부릅뜬 얼굴엔 불신과 공포가 가득했다.
“교주님! 교주님!”
서둘러 그의 곁으로 간 사괴술사는 일순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치이이익!
사문향의 몸뚱이 주위로 은은한 회색빛 불꽃이 일렁였다.
사괴술사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회색빛 불꽃은 점점 붉어지더니 이내 피처럼 붉은 화염으로 변했다. 같은 붉은색 계열이었지만, 누가 봐도 핏빛이라 말할 만큼 색이 진했다.
“혈제지화(血帝至火)……!”
그가 적흠을 바라보았다.
적흠, 아니 사문향이 씨익 웃었다.
“왜 진즉 빨아먹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적흠의 육체는 매혹적이기 짝이 없더구나.”
“……!!”
“이놈의 술법 경지는 참으로 대단해. 이 어린 녀석의 머리통에는 완전히 다른 깨달음이 가득했다. 덕분에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었어.”
적흠의 육체? 빨아먹었다?
사괴술사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상대는 누가 봐도 적흠이었지만, 그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무시무시한 사기는 분명 사문향의 그것이었다.
아니, 본래 사문향이 지니고 있던 기운보다 한층 더 패도적이고 한층 더 끈적했다. 끝이 없다는 혈제공을 완벽히 익히기라도 한 것처럼, 인세에 존재해선 안 될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교주님……?”
“의외로군.”
사문향은 혈제지화라 불린 불꽃을 아무렇지도 않게 뚫고 들어가 시체의 머리에 손을 올려 두었다.
“자네는 외양에 현혹되지 않은 채 나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거늘.”
“저, 정말 교주님이십니까?”
“쉿.”
사문향이 눈을 감았다.
“중요한 순간이니 잠시만 조용히 있게.”
그의 손에 은은한 사기가 어렸다.
그 순간.
화아아아악!!
마치 생기를 모조리 빼앗긴 것처럼 시체가 빠르게 말라 갔다.
동시에 사문향의 손등은 연신 꿈틀거렸다. 마치 자신의 시체에서 뽑아낸 생기를 핏줄로 빨아들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핏줄들이 징그럽게 보였다.
그리고.
푸스스.
무려 사백여 년을 살아온 육신이 완전히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사문향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우우우우웅!
상체를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공기가 요동을 친다.
“역시 좋군. 채정마진 근처라 그런지 본래보다 더 많은 힘을 회수할 수 있었어.”
흡수가 아니라 회수라는 표현을 쓴다.
우둑! 우두둑!
사문향의 몸이 조금씩 조금씩 변해 갔다.
본래 적흠의 몸도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하지만 사문향은 한계를 넘어선 육신을 지녔다.
과거 자신의 육체에 남겨 두었던 내공과 사황체를 지금 이 순간 끌어모아 개화한 것이다.
치이이익!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며 이리저리 목을 돌리는 사문향.
얼굴은 적흠이었지만, 몸뚱이는 기존의 사문향과 다르지 않았다. 칠 척에 달하는 키와 떡 벌어진 어깨, 길쭉한 팔다리는 초인의 육체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사괴술사와 호법사제들은 그 즉시 고개를 숙였다.
“사신을 뵙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적흠의 배신으로 교주가 죽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사공을 연마하였으며, 교주의 기질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접한 이들이었다. 게다가 사문향이 얼마나 많은 진법과 사술을 알고 있는지도 빤히 알았다.
타인의 육신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사문향이라면 가능하다. 그들에게 사문향은 여전히 신이었다.
가만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던 사문향이 차갑게 말했다.
“광옥은 어디쯤이지?”
“곧 도착합니다!”
“좋군.”
사문향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연호정…… 역천신주가 완성되면 그놈도 죽일 수 있겠지.”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에는 여전히 공포가 가득했다. 육신을 갈아탔어도 혼에 새겨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산에 오르기 전보다는 확실히 무덤덤해졌다. 새로운 육체, 더 많은 깨달음을 얻고 발전한 무공에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너는 반드시 내가 죽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