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345)
흑백무제 1345화(1344/1351)
1345화. 천안(天眼)의 개화 (11)
“이것들이 감히…….”
당관에게 동생이 죽은 것도 기가 막힌 일이다. 모용군의 느닷없는 극사 돌파로 사사왕 명활이 죽은 것도 믿기 힘든 판국이다.
오직 역천신주를 완성하겠다는 신념 아래 모든 감정을 털고 여기까지 왔거늘, 와중에 또 방해꾼들이 나타난 것이다.
항무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쿵!!
당관과 싸울 때보다 더 강한 진각이 그의 감정을 말해 주었다.
이미 초토화된 땅이 재차 들썩일 만큼 막강한 힘으로 진력을 모은 그가 힘차게 주먹을 내질렀다. 항무의 비전절기, 용풍신권(龍風神拳)이 펼쳐진 것이다.
콰르르릉!!
허공에 와류를 만들어 내며 쏘아진 권풍이 단숨에 화살 세 대를 마구 뒤흔들었다.
극한의 내공량으로 쏘아 낸 화살도 작정하고 내친 항무의 권풍을 이겨 낼 순 없었다. 내공의 질적 차이를 양으로 무마하려 했지만, 그런 식이라면 천하에서 가장 강한 자는 무조건 나이가 많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콰쾅!
폭죽 터지듯 박살 난 화살 밑으로 소멸되지 않은 권풍이 나아갔다.
오히려 거리가 멀어질수록 권풍은 더 크고 강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불리는 회오리처럼, 항무의 용풍신권은 원거리 공격에 특화된 최고급 기공술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궁사가 움직였다.
번쩍!
와류로 일대를 빨아들이는 권풍의 영역 밖으로 몸을 피한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속도였다. 용권풍(龍捲風)에서 따온 그 폭풍 같은 일격을, 용이 비상하는 모습을 본뜬 신법으로 피해 낸다.
항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감히 피했단 말이지.’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일격이 아니었다.
저 명활처럼 거대한 영역을 아우르는 영력을 담지는 않았지만, 대신 그보다 훨씬 섬세하고 치밀한 영력 구결로 상대의 인지 능력을 저하시키는 것이 용풍신권의 또 다른 묘용이었다.
“한 수가 있긴 했구나!”
파아아앙!
거침없이 전진한 항무가 드디어 괴력난신들의 격전장으로 들어섰다.
혈린이 외쳤다.
“나를 호위하라!”
사음의 정예들이 혈린을 에워싸며 달렸다.
혈린은 보호만 받지 않았다.
번쩍!
핏빛 안광을 태산으로 쏘아 낸 그가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술법을 섞은 전음법이었다.
그때였다.
후우우우웅!!
혈린의 혈광보다 더 어두운, 그러나 더 생기 넘치고 위엄 가득한 검붉은 기운이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동시에 엄청난 기운이 돌풍을 일으키며 모여든다. 혈린의 얼굴이 다급해졌다.
‘당관!’
콰직! 번쩍!
그새 죽은 교도들의 병기 몇 자루를 챙겨 온 당관이 도검을 던져 터트렸다.
박살 나 분해된 도검 조각들이 미친 듯이 부딪치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다.
순간적인 기지로 발휘된 만천화우였다. 만류귀원신공의 힘을 받아 쏘아진 만천화우는, 비록 준비가 충분하지 않아 넓은 범위를 아우르진 못했지만 소수를 상대로는 여전히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독룡행(毒龍行)이었다.
치리링! 콰르릉!
바닥에 깔린 돌멩이들까지 휘감아 전진하는 만천화우 독룡행은 그 초식명과 같이 용을 닮았다.
나아가, 과거 광혈의 소교주 천화룡의 수하들을 쓸어 버리기 위해 전개했던 때보다 더 사납고 더 단단한 몸체를 지니고 있었다.
“피해라!”
정작 피하라고 외친 혈린은 저 말도 안 되는 무공에 많은 교도가 죽을 거라고 확신했다.
놈의 상단전 능력은 술사인 자신 이상이었다. 그걸 술법에 쓰지 않고 극도로 섬세하게 다듬어 파괴적인 무학으로 만들었다.
반드시 추적해 올 것이다.
푸화아아악!!
독룡행의 전진에 휘말린 교도 사십여 명의 몸뚱이가 찢기고 박살 나서 흩어졌다.
혈린의 눈이 번뜩였다.
확실히 엄청난 위력이다. 그러나 사십여 명의 교도를 죽이고 난 독룡행의 움직임과 파괴력은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무리했군.’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싸움 직후 수천 리 길을 이동해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사왕들과 싸웠다. 내공에 이상이 없더라도 심신의 피로가 극심할 것이다.
오히려 그런 상태로 저만한 무공이라도 펼친 것을 대단하다고 해야 했다.
혈린이 외쳤다.
“뛰어들어라! 역천신주가 너희를 부활시킬 것이다!”
“우와아아!”
광기로 물든 교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독룡행을 향해 뛰어들었다.
멀리서 전진하던 당관의 얼굴에 충격이 깃들었다.
‘저 미친놈이!!’
짐승도 제 새끼는 아끼는 법이다. 어지간히 뒤틀린 악인이라도 제 수하 귀한 줄은 안다. 한데 저놈은 저 하나 살자고 광신도들을 이용,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말에 눈이 벌게져서 독룡행으로 뛰어드는 교도들이었다.
어차피 다 쓸어 버릴 놈들이지만, 이런 식으로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당관의 얼굴에 망설임이 일었다.
약간의, 아주 약간의 망설임이 곧 독룡행에 깃든 영력의 힘을 줄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콰드득! 펑! 퍼펑!
독룡행은 삼십여 명을 더 휩쓸고 나서야 완전히 깨져 버렸다.
단 하나의 초식으로 사음교 정예 고수 칠십을 갈아 죽였다. 가히 고금을 논할 파괴력이었다.
혈린이 외쳤다.
“저는 갑니다!”
“가라!”
항무에게 허락을 받은 혈린은 그 즉시 땅을 박찼다.
번쩍!!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다.
그 경공 속도는 놀랍게도 당관 이상, 거의 명활을 농락했던 모용군의 신법에 비견될 만했다.
심지어 모용군도 초단기전을 위해 한계 이상의 힘을 발한 속도였다. 한데 그런 속도를 혈린이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상단전의 힘이다. 마치 허공을 부유하듯 한 번 내딛는 걸음에 이십여 장을 넘어가는 혈린의 신법은 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했다.
당관의 눈이 번뜩였다.
“잡아라!!”
엄청난 내공이 실린 그의 목소리가 태산 전체를 울리는 듯했다.
쿠르르릉!!
무적의 유군 부대 의정군이 깃발을 휘날리며 우회하여 혈린이 향하는 방향으로 돌진했다.
하지만 무리였다. 그들의 말이 제아무리 뛰어난 속도와 지구력을 자랑한다지만, 뇌정공으로 무극에 오른 모용군에 필적하는 신법으로 내달리는 혈린을 잡기란 어려웠다.
그때였다.
“위치 변경!”
찰나의 순간 결단을 내리는 장수의 외침. 여인의 목소리임에도 무시무시한 위엄이 느껴졌다.
숱한 전장을 헤쳐 오며 무공이 발전하고, 아군을 통솔하는 능력 역시 갖춘 묵비였다.
이전에도 이미 백전의 고수 소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던 그녀가, 강소성 전투까지 벌이며 실전 능력은 물론 판단력 역시 최고조에 이르렀다.
비록 그 판단으로 인해 아군에 사상자가 난다 해도.
그래도 이기기 위해서는 희생을 감수하며 싸운다. 내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이기는 것이 중요한 싸움이 있는 법, 바로 지금이 그런 싸움이었다.
쿠르릉!
의정군의 기마술은 놀라웠다.
순식간에 기마를 돌려 진을 형성하는데, 이번 강소성 전투로 그 속도가 더 빨라졌다.
엄청난 기세를 쏟아 내며 돌진하는 의정군을 보며, 항무는 순간적으로 호흡이 흐트러지는 것을 느꼈다.
‘이놈들은 뭐지?!’
멀리서 봤을 때도 대단한 부대라고 생각했다. 한데 막상 코앞에서 진을 형성하며 돌진하자, 죽음이라는 단어가 환상처럼 떠올랐다.
‘엄청난 부대다. 저 산천단에 필적해!’
고작 오백이 조금 안 되는 기마로 산천단을 떠올리게 할 정도라면 정말 보통 부대가 아니다.
방어에는 산천단이 더 뛰어날 테지만, 공격에는 의정군이 더 뛰어나다. 심지어 중원의 온갖 지형을 넘나들며 수많은 난적과 싸워 본 의정군은, 단순 실전 경험으론 용아철기단 이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항무의 얼굴에 갈등이 깃들었다.
뒤에는 마귀 같은 당관이 달려오고 있고, 전방에는 쉽게 넘어가기 힘든 무적의 기마 부대가 돌진하고 있다.
‘도주는 불가능하겠지.’
당연하다. 그가 여기서 도주하면 이 무지막지한 것들은 기어이 태산까지 타고 오를 것이다.
역천신주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지는 몰라도, 소란 통에 올바른 술법이 펼쳐질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역시, 이곳이 내 죽을 자리로군.’
결심은 순간이다.
항무는 거침없이 전방을 향해 용풍신권을 펼쳤다.
콰르르릉!!
돌풍을 일으키며 쏘아진 권풍이 한순간 일곱 줄기로 갈라졌다.
용풍신권의 비기 중 하나, 붕천칠두룡(崩天七頭龍)이었다.
그 순간, 여국이 외쳤다.
“태극회정(太極廻靜) 팔군(八軍)!”
쿠르릉!
순식간에 여덟 개 부대로 나뉜 의정군.
일곱 줄기 권풍이 제멋대로 휘어지며 일곱 개 부대를 향해 나아갔다.
항무의 눈이 흔들렸다.
‘투로를 휘었어?!’
서로 부딪치고 멀어지며 일대를 완벽히 파괴해야 할 붕천칠두룡의 권풍이 의정군의 진세에 휘말려 각 부대로 길을 잡는다.
의정군 군병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무극수의 엄청난 무공을 힘으로 제어하기 위해 모두가 혼신의 내공을 쏟아붓고 있었다.
중앙에서 검을 들고 진세를 조종한 여국이 크게 소리쳤다.
“회천(廻天)!”
“존명!”
군병들이 저마다 들고 있던 병기를 힘차게 상방으로 휘둘렀다.
부우우우웅!!
일곱 줄기의 권풍이 그대로 휘어지며 천공으로 쏘아졌다.
놀라운 광경, 천하 무림의 전설을 만드는 광경이었다. 무극수가 혼신의 힘을 다해 구사한 비기를 오직 진법의 힘만으로 무효화시킨 것이다.
여국이 항무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무극수를 향해 공격을 감행하면서도 그의 검에는, 군병들의 눈빛에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다.
“돌진도룡(突進屠龍)!”
히히히힝!!
주인의 진기를 받아 엄청난 투기를 뿜어내는 기마들이 일제히 머리를 앞으로 내밀며 돌격했다.
순간 항무는 전신의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이놈들은 대체 뭐야?!’
크나큰 내공 소모, 극단적인 체력 고갈.
자신은 정상이 아니다. 하지만 정상이었대도 저 무시무시한 기파 앞에서 멀쩡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산천단을 능가해?!’
군병 모두의 두 눈이 찬란하게 빛났다.
그들 대부분이 문파의 후계자 자리에서 밀려났거나 중요 업무를 받지 못한 이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부대를 형성했고, 숱한 전투를 치르며 생사를 넘나들었다.
심지어 무림맹 소속인데도 무림맹을 벗어나 천하 각지를 돌아다니며 악인들을 도륙하고 난적들을 물리쳤다.
그들은 유군 부대가 된 순간 이미 운명을 개척했다. 나아가 스스로의 의지로 강소성 전투에 참여해 공적을 세웠으며, 흑도의 정보망에 따라 또다시 산동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언제나 정해진 것 없이, 그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갔다. 이미 의정군의 존재는 천리의 그물을 벗어났으며, 어떤 전투라도 승리하겠다는 불세출의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설령 그 상대가 무극수라 해도 무섭지 않다. 그들은 최강이라는 자부심 아래 움직였다. 설령 개개인은 싸우다 죽더라도 의정군은 죽지도, 패배하지도 않을 것이다.
신앙과도 같은 자존심, 그리고 광기.
그 강철의 신념은 무극의 경지에 달하지 않아도 집단을 형성하여 엄청난 위압감을 뽐내고 있었다.
항무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결국, 이놈들과 끝을 봐야겠군.’
그가 다시 한번 용풍신권을 펼치려는 순간이었다.
“의정군!”
여장수의 외침.
그녀답지 않은 다급함이 한껏 묻어 나온다.
“후방을 조심해라! 적습이다!”
쿠르르릉.
혈린의 뒤를 쫓는 천하제일궁사의 측면으로.
일천의 호법사제들이 내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