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347)
흑백무제 1347화(1346/1351)
1347화. 천안(天眼)의 개화 (13)
퍼어어엉!
울컥 피를 토한 항무는 곧장 몸을 바로 세우며 주먹을 휘둘렀다.
쩌어어어엉!!
쇳소리와 함께 의정군 군병 셋의 몸뚱이가 뒤로 날아갔다. 심지어 그들이 탄 말까지 허공에 붕 떠올랐다.
‘징글징글한 놈들이군.’
용풍신권 최고 절기로 기마 부대원 스무 명을 죽였다. 그중엔 아미파의 여승으로 보이는 창술사도 끼어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항무를 기쁘게 하진 못했다.
“지독한 놈.”
콰르릉!
등 뒤에서 뻗어 나오는 독장에서 천둥소리가 났다.
본디 독장이라 하면 장 자체의 위력보다 그 안에 깃든 독으로 상대를 살상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한데 저 망할 놈의 독장은 위력 또한 빼어났다. 아니, 오히려 위력만 따지자면 사음교의 호법 무공에 필적할 정도였다.
와중에 제대로 일격을 허용하면 중독 증세까지 겪으니, 정말이지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이었다.
콰르릉!
그 역시 용풍신권을 구사하며 독장을 상대했다.
단순 무공의 위력은 용풍신권이 반 수 위였다. 속도는 당관의 독장이 빨랐지만, 넓은 범위를 아우르며 깨부수는 위력에선 용풍신권이 우위에 있었다.
당관의 얼굴에 초조함이 일었다.
‘빌어먹을, 차라리 이놈을 놓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저 멀리 묵비가 분전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묵비의 실력으로는 도주하는 놈을 잡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비탈길을 타고 내려오는 저 일천의 고수들은 얼핏 봐도 의정군에 필적하는 전력이었다.
여기서 항무를 잡지 못하면 의정군은 절대고수 하나와 저희 못지않은 부대에게 짓눌릴 것이다.
그렇다고 모용세가의 전력을 새로이 등장한 부대에게 보낼 수도 없었다. 그들은 지금 사음교의 정예 부대와 치열한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게 이렇게까지 힘들 일인가.’
평생 싸우며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정도로 이놈들과의 싸움은 지지부진했다. 결과도 탁탁 나오지 않았다.
‘젠장할! 빨리 오십시오! 여기서 뭔가가 벌어지고 있단 말입니다!’
아직도 오지 않은 누군가를 욕하며, 당관은 수많은 철 조각을 날렸다.
퍼퍼펑!
쏘아 낸 암기들이 용풍신권의 권력에 휩쓸려 모조리 날아갔다.
어느새 항무의 권력도 꽤 약해졌다. 하지만 당관의 암기술도 날카로움과 예리함을 잃어 갔다.
무극수끼리 싸우면 이럴 일이 없다. 누가 죽더라도 이렇게까지 무공의 위력이 점진적으로 꺾이지 않는단 말이다.
그만큼 당관과 항무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인간의 경지를 넘어섰지만 명백한 인간이기도 한 그들의 한계였다.
‘다른 걸 떠나서 이놈이 잘 싸우고 있어.’
항무의 분전은 놀라웠다.
스스로 팔을 희생해 위기에서 벗어난 와중, 여기까지 오며 용케 절반은 회복시켜 놓은 모양이었다. 주무공을 구사하진 못하지만, 의정군에게 위협이 될 만한 권장은 충분히 잘 날리고 있었다.
‘마치 하늘의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구는군.’
당관의 눈이 스산해졌다.
‘하지만 너희는 마인일 뿐이다.’
퍼어어엉!
서로 한 합을 나누며 물러난다.
당관이 외쳤다.
“의정군은 후방의 부대를 맡아라! 이놈은 내가 죽이겠다!”
의정군은 곧장 말머리를 틀었다.
항무는 그들을 두고 보지 않았다. 곧바로 용풍신권의 힘을 끌어 올리는데, 위력은 약해졌지만 반응 속도는 더 빨라진 것 같았다.
하지만 당관은 그의 행동을 충분히 읽고 있었다.
우우우우우웅!!
만천화우의 구결대로 끌어 올린 영력이 항무의 손목을 휘감았다.
항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무섭게 회전하는 기운이 용풍신권의 힘을 무자비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주르륵.
당관의 코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과도한 상단전 운용으로 한계가 온 것이다.
그래도 그의 눈빛은 여전했다.
“이제 좀 끝내자, 이 망할 마귀 놈아.”
“으아아아!!”
쾅!
항무의 상반신이 사선으로 돌아갔다.
당관의 눈이 흔들렸다. 저 지독한 놈이 기어이 힘으로 허공섭물을 끊어 버린 것이다.
파아아아앙!!
영력이 끊긴 순간, 추뢰신법이 발휘되며 당관이 항무의 측방으로 파고들었다.
퍼억!
팔꿈치로 치는 일격에 항무의 입에서 피가 터졌다.
퍼엉!
당한 순간 회전하며 내친 각법에 옆구리를 맞은 당관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퍽! 퍼버벅! 쾅! 쾅!
만천화우도, 용풍신권도 없다.
마치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서로를 향해 미친 듯이 주먹질을 난사하는 두 사람에게서는 고수다운 품위가 요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살벌한 싸움이었다. 지금껏 쫓고 쫓기는, 반격하고 또 반격하는 싸움만 해 왔던 두 사람이 기어이 이런 식으로 끝장을 보려는 것이다.
당관의 몸이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항무의 얼굴 역시 피범벅이 되었다.
콰득!
사선으로 찍어 누르는 팔꿈치에 항무의 왼팔이 또 한 번 부러졌다. 일직선으로 펴진 순간을 노린 일격이었다.
그때, 항무의 무릎이 반사적으로 솟구쳤다.
퍼억!
당관의 입에서 피가 튀었다.
절대 올라오지 못할 각도에서 무릎이 올라왔다. 권법이나 기공술만이 아니라 체술도 초일류의 실력을 지닌 항무였다.
당관의 두 눈에 살기가 뿜어졌다.
퍼벅! 우둑!
권배로 항무의 뺨을 날려 버린 당관이 오른손으로 그의 멱살을 잡았다.
퍼어억!
“크윽!”
박치기로 콧대가 부러진 항무가 처음으로 신음을 토해 냈다.
지금껏 무의식적으로 운용되는 내공이 얼굴을 철저히 보호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위도 부술 일격을 맞고도 뼈가 부러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한계다. 설마 박치기라는 수법을 쓸 줄도 몰랐지만, 융통무애하게 흐르던 진기가 뚝뚝 끊어지며 실질적인 피해와 고통을 마구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하늘에서 아버지가 보고 계시면 혀를 차시겠어.”
퍼버벅!
항무의 두 주먹이 당관의 가슴을 난타했다.
하지만 그중 제대로 들어간 건 두 개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도 당관의 내공 방벽 때문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지 못했다.
당관이 항무의 머리를 안고 끌어 내렸다.
콰득!
무지막지한 슬격을 올려 치니 항무의 턱뼈가 으스러졌다.
퍼어엉!
그 와중에도 혼신의 힘을 다해 발경을 폭발시켜 당관을 떨쳐 낸다.
당관의 얼굴에 기어이 감탄의 기색이 어렸다. 적이지만 이렇게까지 독한 놈은 처음이었다.
“허억! 커허억!”
부서진 턱뼈 때문에 핏물이 줄줄 흘렀다.
그럼에도 항무의 전의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휘청이는 몸을 바로 세우고 당관을 노려보는데, 눈빛만 보면 당장이라도 당관을 찢어 죽일 것 같았다.
그때였다.
후우우웅!
항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당관이 한숨을 쉬었다.
“이제야 오시는가.”
저 멀리서 느껴지는 한 줄기 선명한 기운.
지친 기색이 역력하지만 창천에 빛나는 의지는 여전했다.
섬서에서 떠나기 전, 무림맹과 개방을 통해 연락을 취한 한 명의 절대고수가 마침내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미안하네. 좀 늦었지?”
평소처럼 고아한 옷차림이 아니다. 산서 전투로 더럽혀진 의복은 너덜너덜했고 곳곳에 핏자국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도 중원 검가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이 노검사의 위엄을 해치지 못했다. 언제, 어떤 순간에라도 만천하를 굽어볼 듯한 압도적인 깨달음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무림맹 병력을 안전한 곳까지 이동시키고 오느라 예상보다 늦었네.”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와 주셔서 다행입니다.”
그는 바로 남궁승이었다.
본래는 막원을 데리고 오려 했지만, 이왕이면 그보다 강할 것 같은 남궁승을 데리고 오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하여 연락을 돌린 것이다.
또한 당관은 남궁승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남궁세가는 가주와 그 아들이 행한 죄 때문에 사실상 봉문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가문의 치욕을 벗겨 내기 위해 이 노고수는 온갖 전장을 다 쏘다니고 있었다.
비록 전투를 벌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도 큰 전공을 세운다면 남궁승이 지닌 마음의 빚도 많이 사라질 것이다.
“많이 지치신 듯한데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자네가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정말 사람 일이란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군.”
어지간하면 지친 내색도 하지 않을 남궁승의 얼굴에 피로가 가득했다. 스스로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피곤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의 힘은 강했다. 이곳까지 오며 거의 모든 내력을 회복한 듯 무서운 검압이 느껴졌다.
남궁승이 항무를 바라보았다.
“이자는?”
“적입니다.”
항무를 보는 당관의 눈이 형형해졌다.
남궁승의 등장에 항무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했다. 자세를 풀고 땅을 내려다보는 그의 몸에서 허무의 기운이 가득 묻어 나왔다.
당관은 어쩐지 그런 항무를 기습하고 싶지 않았다.
삼교 놈들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철천지원수나 다를 바 없지만, 이놈이 보여 준 분전과 광기는 참으로 가슴에 와닿았다.
게다가 당연한 일이었대도 이놈의 동생을 자신이 죽였다. 죽일 땐 죽이더라도 다른 버러지들과 똑같이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제 끝이다.”
항무가 고개를 들었다.
턱이 부서져서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살기로 불타던 항무의 눈은, 이전과 달리 공허하고도 맑은 빛을 담고 있었다.
당관은 저런 눈을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의 천명(天命)을 완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보여 주는 눈빛이 저러했다.
‘적이지만 정말이지…….’
몇 번이나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당관은 유언 정도는 들어 주겠다고 말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턱이 부서진 사람에게 그런 말은 모욕이 될 것이다.
가만히 당관을 바라보던 항무가 손가락으로 당관을 가리키다가 이내 자신을 가리켰다.
당관의 얼굴에 쓴웃음이 어렸다.
“그래, 시작도 내가 했으니 끝도 내가 봐 주는 게 맞겠지.”
항무의 눈이 살짝 휘어졌다.
부서진 턱과 이빨이 덜렁거리고 있었지만, 그것이 추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서글퍼 보였다. 적이지만…… 조금은 아까운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화아악!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매서운 기파를 뿜어냈다.
신중하게 자세를 잡는 당관, 오른 주먹을 치켜들며 더 낮은 자세를 잡은 항무.
잠시 후.
파아아앙!
동시에 돌진한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힘차게 주먹을 뻗었다.
쾅! 퍼어어어억!
항무의 오른팔이 통째로 날아갔다.
힘도 힘이지만, 당관의 주먹 주변에는 암기 대용의 철 조각들이 원을 그리며 회전하고 있었다. 그 날카로운 기운이 항무의 팔을 뜯어 낸 것이다.
항무는 그것을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당관 역시 상대가 그럴 거라 생각했다.
힘 싸움이지만, 이것은 생사결이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긴 놈이 진리다.
당관의 발이 항무의 오금을 후려쳤다.
퍼억!
그대로 무릎을 꿇은 항무가 연신 피를 토하다가 당관을 올려다보았다.
당관이 씁쓸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항무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잘 가라.”
그가 항무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투우웅!!
매섭게 파고든 침투경이 항무의 백회혈을 그대로 파괴했다.
항무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적어도 죽음의 순간만큼은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묵묵히 그 싸움을 보던 남궁승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연이 있는 싸움이었던가.”
주르륵.
창백해진 얼굴에 자꾸만 코피가 흐른다.
피를 닦으며, 당관이 말했다.
“죽은 놈이 병신인 싸움이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