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351)
흑백무제 1351화(1350/1351)
1351화. 천리의 그물은 성기다 (1)
“이것입니까?”
“그래, 그것이다.”
연지평의 얼굴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신기합니다. 형(形)은 이리도 자유로운데 투로가 무척이나 잘 짜여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것을 지금 깨달았으니, 너는 정말 대단한 것이다.”
산동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두 부자는 각별한 시간을 보냈다.
연지평에게도 때가 왔음을 깨달은 연위가 자신의 깨달음인 조정연검(造淨燕劍)과 여의파검(如意破劍)을 가르친 것이다.
다급히 움직였지만, 연위는 서두른다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식을 위해 나선 길이지만, 나 자신을 잃어선 안 된다. 연위가 쉴 때마다 연지평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이유였다.
“조정연검의 경우 지금 네 깨달음으로 쓸 만한 무공이 아니다. 애초에 심검지도(心劍之道)에 이르러야 모습을 드러낼 무공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또한 조정연검의 구결은 네가 심검지도에 이르는 길을 열어 줄 수는 있어도, 너의 것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조정연검은 이 애비만의 깨달음을 구결로 녹인 무공이다. 참고는 되지만, 너의 심검은 애비의 그것과 많이 다를 것이다.”
연위가 제국검을 반듯하게 휘둘렀다.
“반면 여의파검은 다르다. 어떤 의미로 여의파검은 조정연검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얻은 검결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습니까.”
“애비의 마음에도 악(惡)이 있다. 그 악을 억누르기 위해 더더욱 정도(正道)에 집착했다. 덕분에 연가의 검법들을 대성할 수 있었지만,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나의 악한 본성도 끌어안을 수 있다는 뜻이다.”
“…….”
“여의파검은 애비의 악한 마음, 달리 말하면 파괴적인 욕구가 극대화된 무공이다. 하여 여의파검의 일격, 일격은 막대한 내공을 소모하며 그만큼 대단한 파괴력을 자랑한다. 애비가 생각하기로, 파괴력만큼은 천하 검법 중에서도 수위를 다툰다고 본다.”
온 천하에 산재한 검사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가 연위였다. 그가 그렇다고 하면 실제로 그만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네가 애비와 호정보다 더 선하고 맑은 아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사람은 마냥 착하게만, 또는 악하게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야. 엄밀히 말해 선과 악은 개인에게 있어 선택의 영역일 뿐, 절대 분리할 수 없는 성(性)이다.”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런 것 같았다.”
연지평의 깨달음은 정말 대단하다. 형을 따라 수련을 거듭하고 수많은 전투를 거친 그는, 정말이지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무력과 깨달음을 얻었다.
기실 연호정이 규격 외라 그렇지 연지평만 해도 백년지재라 할 만했다. 와중에 연호정은 회귀까지 했으니, 순수 무의 재능만 따지면 연가 역사상 최고는 연지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의파검을 잘 파고들어라. 내 비록 너에게 형(形)부터 가르쳤지만, 기실 형은 그리 중요치 않다. 진짜 중요한 것은 이 애비의 깨달음이 어째서 그런 형으로 드러났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구결 이해가 필요하겠지요.”
연위가 기특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거기까지도 보았다면 더는 이 애비가 가르칠 것이 없구나.”
연지평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지금껏 부친에게 받은 가르침 중 가장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가르침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앞에 있음에도 신경 쓰지 않고 본인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연위는 조용히 일어나 몇 걸음 떨어진 곳으로 갔다.
‘바람이 차구나.’
북풍(北風)이 심상치 않았다. 서늘하고 독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연위의 눈이 깊게 침잠했다.
‘오르면 오를수록 기분이 좋지 않다.’
연가신단을 개방하여 산동의 상황을 살펴볼까 싶기도 했지만 관뒀다.
실제로 뭐가 보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원하는 것만 골라서 정확히 볼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신선이다.
‘괜스레 보려 하다가 상단전에 무리가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꾸준히 북상하는 것으로 충분해.’
그래도 불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연위는 그럴 때마다 심호흡을 했다. 호흡을 정련하며 걱정을 해소하고 나 자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어떠냐, 호정? 너는 지금 괜찮은 것이냐?’
아들은 살아 있을 것이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연위는 이제 혈육으로 이어진 끈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연위만큼 연호정의 상단전도 광활했다. 심지어 영력의 순도는 이미 연위를 넘어섰다. 영력을 다루는 방식이 다를 뿐, 밀도는 연호정이 우위에 있었다.
그랬기에 알 수 있다. 만약 아들이 죽었다면, 그 질기게 이어진 영력의 끈이 끊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연위는 그 즉시 아들이 죽었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천만다행히도 연위는 아직 그런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
다만, 연호정의 상태가 어떤지 또한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너를 위해 길을 나섰다. 네가 걱정되어 참을 수가 없었지. 하지만…….’
걱정으로 가득했던 연위의 두 눈에 어느덧 찬란한 광채가 어렸다.
‘지금은 다르다. 나는 너를 위해서가 아닌, 북쪽에서부터 불어오는 이 사악하고 뒤틀린 바람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 가고 있다.’
그 기묘한 힘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들면서도,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든 처리해야만 한다는 상반된 생각이 드는 힘이었다.
다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 힘을 가만히 놔두면 안 된다는 것.
전쟁보다도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불길함이 들었다.
‘고대 선인들의 이야기가 마냥 허구의 이야기는 아니었던 모양이군.’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괴물을 물리쳤다느니, 가난하고 착한 사람을 위해 축복을 내려 줬다느니 하는 얘기는 흔하다.
그중에서도 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악한 힘이 고개를 쳐들면 어디선가 나타난 영웅이 그 악을 처단한다는 내용은, 유치하지만 언제나 사람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물론 지어낸 얘기가 태반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허구의 이야기에는 민중의 강한 염원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중원은, 이 넓은 대륙 땅은 민중의 염원을 받고 일어난 수많은 영웅 덕분에 평화를 이어 왔다.
하지만 세상에 나서지 않은 반선들은 놀고만 있었을까.
‘지금 나만 해도 이 세상에 있어선 안 될 것이 있다는 마음에 발길을 옮겼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을 뿐, 세대마다 이런 일들은 꾸준히 있어 왔을 것이다.’
그중엔 자신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른 자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이런 상황에서 손가락만 빨고 있었을까?
결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자신의 기분을 그들도 똑같이 느꼈다면,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힘을 썼을 것이다.
우웅!
연위의 두 눈이 형형해졌다.
강력한 진기로 안광이 변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눈이 아닌 반선의 눈이다. 비유로 말하는 반선이 아닌, 진짜 반쯤 선계에 발을 걸친 신인(神人)의 눈이었다.
‘보인다.’
연가신단을 막아 두려 했다. 당연히 보이지 않아야 했다.
한데 자꾸 그 불길함을 떠올리니, 영력이 알아서 눈을 개방해 주고 있었다.
이제는 진실로 통천진인과 같은, 아니 그 이상의 경지에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 생각보다 더 거대하고 더 끔찍하구나.’
하늘이 강제로 열린 것만 같았다.
범부의 눈에는 멀쩡하게만 보일 하늘이, 연위의 눈에는 끔찍하게 일그러져 보였다.
마치 세상의 축이 뒤틀린 것처럼 하늘이 비명을 지른다.
“아버지.”
훅!
자연스럽게 개방되었던 신안(神眼)이 닫혔다. 반선의 강자가 인간으로 되돌아오는 순간이었다.
“고민은 끝났느냐.”
“예? 아, 예. 진즉 끝이 났습니다.”
“음?”
연지평이 얼떨떨한 얼굴로 하늘을 가리켰다.
“벌써 한 시진이 지났습니다, 아버지.”
연위는 깜짝 놀라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과연 그러했다. 서쪽으로 저문 태양이 찬란한 붉은 빛을 터트리고 있었다.
“내가 무아지경에 빠졌었나 보다.”
“섣불리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형님이 걱정되어서 한 시진만 기다렸습니다.”
“잘했다.”
연위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힘은 다 비축했느냐?”
“예. 내공 조절만 잘하면 사흘은 안 쉬고 달릴 수 있습니다.”
“영단은 아껴 두도록 해라. 결정적인 순간 써야 할지 모르니.”
“물론입니다.”
“자, 다시 가자꾸나.”
파악!
두 부자가 다시 북쪽으로 나아갔다.
놀랍게도 연지평의 신법은 그새 더 빨라졌다. 여의파검을 궁구하는 과정에서 내력 조절에 깨달음이 있었는지, 힘을 덜 들이면서도 더 빠르고 먼 거리를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무서운 성장 속도. 정말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연위는 아들의 천재성에 감탄하면서도 점점 불길해지는 기분을 떨치지 못한 채 달렸다.
* * *
“…….”
탁무자의 눈이 깊어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물으려던 무허대사 역시 흠칫 놀라 북쪽을 바라보았다.
“이건……?”
“하늘이 열렸네.”
“……!”
“누군가가 천리의 그물을 찢었어. 섭리가 뭉개지고 있네.”
“……아니, 그게 아니야.”
“뭐?”
탁무자가 무허대사를 바라보았다.
어쩐 일인지 몇 달 전보다 훨씬 더 수척해진 그의 얼굴은 지독히도 늙어 보였다. 하지만 두 눈의 맑은 광채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그것이었다.
“이 기묘한 힘…… 나는 느낀 적이 있네.”
“언제 말인가?”
“지옥기(地獄氣)야.”
“뭣이?!”
탁무자는 놀라서 펄쩍 뛰었다.
“지옥기가 다시 출현했단 말인가?”
“잘 모르겠네. 지옥기와 몹시 흡사한데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여하간 내 몸을 갉아먹은 그 힘과 거의 유사하다고밖에 말하지 못하겠네.”
“이런!”
탁무자는 저도 모르게 영력을 개방할 뻔했다. 그곳이 어디인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무허대사가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어쩔 수 없는 힘이야.”
“어쩔 수 없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황제 폐하의 최측근 호위임을 잊지 말게. 강소성 전투에서 흩어진 마인들이 언제 이곳으로 올지 몰라. 게다가 자네도 알잖는가? 삼교 놈들이 약자들을 유혹해 마공을 뿌린 사실을.”
“…….”
“황궁 병력이 출중하다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곳을 지켜야만 하네. 곧 죽을 우리 늙은이들이 마지막을 보낼 곳은 이곳이라네.”
깊고 깊은 현기가 가득한 목소리였다.
탁무자는 황궁 전투 이후, 무허대사가 크게 바뀐 것을 알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본성을 그 한 번의 전투로 몽땅 털어 버렸다는 듯, 시간이 지날수록 맑고 성스러운 기운을 담고 있었다.
탁무자가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가…… 알 수가 없군. 대체 어떤 마인이 있어 이와 같은 힘을 연 것인지 모르겠네. 설령 힘을 얻었다 한들 어떻게 써먹을지나 알고 있을까?”
“모를 것이네.”
“확신하나?”
“물론이네.”
“어째서?”
무허대사가 고개를 저었다.
“혈옥의 지옥기는 셀 수 없이 이어져 온 하늘의 단 한 번의 실수였을 것이네. 그리고 지금 이 기운은 그 지옥기와 지독히 닮았어.”
“…….”
“인간이 아니라 신선, 아니 누구라도 제대로 다룰 수 없을 것이네.”
무허대사의 얼굴에 짙은 걱정이 깃들었다.
“그래서 더 걱정이네.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는 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