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354)
흑백무제 1354화(1353/1368)
1354화. 천리의 그물은 성기다 (4)
‘강하다.’
퍼퍼펑!!
허공에서 연달아 터지는 권법 발경이 실로 무시무시하다.
한 방의 위력은 그리 세지 않다. 한데 그런 공격을 숨 쉴 틈도 없이 몰아친다. 연환 공격 수준이 아니라 중첩 공격에 가까웠다.
당관이 과격하게 왼손을 휘둘렀다.
치리링!
철 조각들이 부딪치며 다급한 소리를 내는 듯했다. 사선으로 휘몰아치는 날카로운 암기들이 조홀이 내친 군황신권(群荒神拳)의 권력을 차단했다.
조홀의 눈에 사기가 스쳤다.
훅!
당관의 눈이 흔들렸다.
공격이 끊기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품으로 파고드는데, 그 표홀함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보법!’
속도도 속도지만, 완벽하다고 생각한 방어를 대번에 무력화시키는 저 보법이 놀라웠다.
독특하고 날카롭다. 상대의 호흡을 무시하고 무자비하게 쏟아 내는 중첩 공격을 저 보법이 제대로 살려 주고 있었다.
당관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렵겠어, 이건.’
만전의 상태로도 이기기 어려운 상대였다. 극한의 정신력으로 내공과 영력을 끌어모았지만,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제기랄!’
허공을 유영하는 철 조각들을 놔두고 쌍장을 뿜었다.
콰앙!
틈을 주지 않는 중첩 공격에 막강한 일타, 일타로 응수한다. 당가의 적련신장이 극한의 영력으로 제련되어 조홀의 전면을 뒤덮었다.
조홀의 발이 허공을 갈랐다.
콰릉!
폭음과 함께 적련신장이 위아래로 쪼개졌다.
각법의 날카로움이 도검 이상이었다. 강철처럼 단단한 장력을 날카로움으로 쪼개어 무력화시킨 것이다.
‘지독히 실전적이다!’
상단전 영력으로 물든 암기는 틈을 주지 않는 중첩 공격으로 무력화시키고, 영력으로 읽은 빈틈에 꽂아 넣은 공격으로 투로를 끊어 내니 근접 거리로 들어와 암기 공격 자체를 무너트린다.
또다시 들어오는 속공에 물러나며 강타를 날리니 날카로운 각법으로 무력화시키고, 쪼개진 장력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쾌속한 일장을 날린다.
상대의 무공에 반응하여 최선의 공격을 가하는 것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대처 능력, 당관조차도 겪어 본 바가 드문 실전의 대가였다.
‘이 정도면 싸가지와 박빙이다.’
이룬 경지를 떠나 실전 능력은 연호정에 비해도 부족함이 없다.
다른 점도 있었다. 연호정은 어디서 겪었는지 모를 경험을 기반으로 그때그때 본능적으로 대응한다면, 이 상대는 최고급 무리(武理)를 무의식의 영역에서도 발휘할 정도로 단련해 가장 합리적인 반격을 가하고 있었다.
누구의 실전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확신할 수가 없다. 다만 연호정의 공부는 그가 아니면 아무도 발휘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지만, 이 놀라운 상대가 이룬 공부는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이 가능한 수준의 무도였다.
‘재미있어.’
빈틈없는 실전 능력.
‘없으면 만들어야지.’
당관의 동공이 붉게 달아올랐다.
훅!
조홀을 스쳐 지나간 당관이 다시 산 정상으로 향했다.
조홀의 보법은 분명 강호 정점에 이르러 있었지만, 당관의 보법 역시 크게 뒤지지 않았다. 독과 암기를 다루는 당가의 경신술은 강호 최고를 논한다.
당관이 손을 휘둘렀다.
치리리리링!
허공을 유영하던 철 조각들이 넓게 퍼지며 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시간이 없어 만천화우를 펼치진 못했다. 그래도 만천화우식(式)으로 영력을 담아 쏟아 냈다. 상당한 충격파를 지닌 공격이었다.
조홀의 몸이 흐릿해졌다.
파파팡!!
직각으로 허공에 날아올라 횡으로 쏘아진다. 대량의 내공 소모를 감수한 극속의 허공답보였다.
조홀이 한 손을 휘둘렀다.
촤르르르륵!!
넓게 퍼진 채로 나아가던 암기 중 구 할 이상이 조홀의 손짓에 따라 비틀리며 좌측으로 투로를 바꾸었다.
영력 상쇄에 이은 영력 침투였다. 실전 능력만 대단한 게 아니라 상단전 운용에 있어서도 빈틈이 없는 진짜 고수였다.
하지만 소량이라도 본래 방향대로 날아가는 암기들이 있었다.
조홀의 얼굴에 다급함이 일었다.
퍼어엉!
등 뒤에서 날아온 당관의 장력이 그의 등판에 박혔다.
당관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예측했다?!’
영력으로 상대의 공격을 예측한 게 아니었다. 한데도 등판을 내력의 방패로 보호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타격이 전혀 안 들어간 건 아니겠지만 그래 봤자 경상이다. 심지어 그 공격을 역이용하여 정상으로 몸을 날렸다. 남은 암기를 회수하러 가는 것이다.
빈틈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실력자였다. 이 정도면 정말 완성에 이른 무인이라는 평가를 들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늦었다.’
만류귀원신공의 힘에서 이탈한 암기들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남은 암기들은 귀원신공의 힘이 더 집약되어 영력 상쇄로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파파팡!
조홀의 뒤를 쫓아 끝까지 암기를 조종하며 당가천독수를 날렸다.
퍼펑!
조홀의 신형이 흔들렸다.
더 우월한 실력을 지녔대도 무극의 고수가 발하는 공격을 맨몸으로 받아 내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천독수에는 독기까지 깃들어 있었다.
제왕독공을 버렸다 해도 독기를 집약하는 능력을 잃은 것은 아닌바.
조홀의 얼굴이 다소 창백해졌다. 스며드는 독기가 내력의 흐름을 방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우우웅!
뻗은 손에 군황사기를 한껏 집약시켰다.
쭉쭉 뻗어 나가는 진기가 암기의 투로를 뒤흔들었다. 만류귀원신공의 힘마저도 뒤흔들 만큼 그가 지닌 힘은 대단했다.
하지만 늦었다.
퍼퍼펑!!
직각으로 떨어진 암기가 채정마진 인근에 강한 충격파를 일으켰다.
그때였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채정마진이 박살 났다.
조홀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안 돼!!”
암기의 충격파로 채정마진이 깨진 것처럼 보였다. 그의 반응은 당연했다.
그러나 그의 충격은 곧, 더 강한 충격으로 뒤덮였다.
쿠르르릉!!
먹구름 가득한 하늘이 천둥을 토해 내며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을 일대에 내리꽂았다.
화아아악!!
사방으로 어두운 마기(魔氣)가 번졌다.
‘……!!’
조홀과 당관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두 사람 모두 벼락이라도 맞은 듯 입을 떡 벌린 채 충격파가 인 곳을 바라보았다.
‘뭐지?!’
당관은 침을 삼키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뭐냐, 이 엄청난 마기는!’
푸스스스.
어둠이 세상을 잠식하듯, 흘러넘치는 마기가 대지를 검게 물들였다.
검게 물든 땅이 부스러지며 시커먼 먼지를 피워 올렸다.
누가 봐도 그 땅이 죽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풀 한 포기는커녕 사람이 밟으면 그 발조차 썩어 문드러질 것 같은 사기(死氣)가 일대를 뒤덮었다.
‘미친!’
마기의 질이나 밀도, 양을 따지는 게 의미가 없었다.
여느 마기와도 다른, 아예 다른 세상에서 제련된 기운 같았다. 인간의 몸은커녕 이 세상이 담아낼 수 없는, 극도로 뜨겁고 습한 마기였다.
조홀의 얼굴에 환희가 어렸다.
“교주님!!”
당관과 달리 조홀에게 이 마기는 공포스러운 만큼 반가운 기운이었다.
인간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밀도, 그리고 악(惡)함.
하늘이 이 세상에 결코 허용하지 않을 기운이었다. 기를 느끼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진정한 역천의 힘.
하늘에 반하는 지옥의 마왕만이 거머쥘 수 있는 최악의 힘이다.
“경하드립니다!”
조홀은 온몸을 떨며 신의 위업을 경배했다.
등 뒤에 당관이 있음에도 내력 방패를 두르지 않았다. 그는 이 순간 죽어도 상관이 없었다. 그저 순수하게 신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싶었다.
당관이 이를 악물었다.
‘이럴 순 없다.’
이토록 지독한 마기를 사람이 품고 있을 리는 없다. 뭐가 됐든 지금 이 상황은 최악이었다.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라도 죽인다.’
방심 그 자체인 조홀의 뒷모습.
당관은 온 힘을 다해 조홀에게 장력을 쏘아 냈다. 천하 누구라도 일격에 목숨을 앗아 갈 만한 힘이었다.
그때였다.
‘……?!’
당관은 세상이 느려지는 것을 느꼈다.
뻗어 나가는 손도, 손에 담긴 붉은 진기의 파랑도 전부 느렸다. 공기가 무거워서 호흡하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왜……?’
그 순간, 당관은 깨달았다.
‘이럴 수가.’
세상이 느려진 것이 아니었다.
느려진 건 자신이었다. 환희에 떠는 조홀도, 바람에 휘날리는 잡풀도 다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 안에 있었다.
‘대체 왜?’
후우우웅!
그때, 시커멓게 죽은 땅 뒤쪽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뱀 같기도 했고 파도 같기도 했다. 뭐라 형용하기 힘든 시커먼 마기였다.
그리고 그 마기는 그대로 당관의 손을 휘감았다.
치이익!
급할 것 없다는 듯 천천히 만류귀원진기를 어루만진다.
그 순간, 만류귀원진기가 무섭게 진동하며 흩어졌다. 그 모습이 마치 마기에 녹아 버리는 것처럼 보였다.
당관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영력을 기반으로 한 진기가, 고작 기운에 닿은 것만으로도 흩어지고 있었다.
움찔!
무서운 두통이 찾아왔다.
상단전 기반의 진기가 타인의 의지로 해체되고 있다. 상단전이 찢어질 듯 아파 왔다.
‘안 돼.’
어느새 만류귀원진기가 거의 다 소멸되었다.
그러고도 마기는 멈추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손을 넘어 팔까지 다 잠식될 기세였다.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마기였다. 당관은 한계 이상으로 끌어올린 내공력으로 팔을 빼내려 했다.
부르르르!!
팔이 미친 듯이 떨려 왔다.
팔뿐이 아니라 온몸이 그러했다. 두 발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든 상황에서 팔을 빼내려 하니, 어깨가 통째로 뜯겨 나가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당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조금씩 조금씩 빠지고는 있지만 이대로는 늦는다.
‘어쩔 수 없다. 팔을 잘라 내야……!’
하지만 자르고 싶어도 자를 수가 없었다. 팔을 자르려면 다른 팔을 써야 하는데, 엄청난 압력으로 인해 다른 팔도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순간.
지이이이잉!!
공포스럽게 잠식해 오던 마기가 미친 듯이 흔들리더니 허공으로 떠올랐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 같았다. 당관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누군지는 몰라도 이 마기를 다루는 자의 깨달음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마기를 쏘아 냈지만, 잠깐이나마 통제를 잃었다. 당관에게는 천운이었다.
그리고.
‘공격이다!’
영력이 실리지 않은 마기라 예측이 가능했다.
당관은 다시 차오르는 진기를 전면에 있는 대로 퍼부었다. 조홀의 내력 방패와 똑같은, 모든 내공을 퍼부었기에 훨씬 더 막강해진 내력의 방패였다.
미친 듯이 떨리던 마기가 일순 딱 멈추더니, 당관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쏘아졌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당관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몇 장 정도 거리가 아니었다. 허연 연기를 뿜으며 날아간 당관은 수십 장 밖 허공을 유영하고 있었다. 그대로 태산 밑자락까지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단 일격에 무극에 이른 고수를 전투 불능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기였다. 사문향과 싸워 성장한 연호정이라고 못할 건 없지만, 단순히 기운만으로 무극수를 날려 버리는 건 차원이 다른 무공이었다.
“아아!”
조홀이 소리를 질렀다.
역천을 이룬 신의 진짜 실력이었다. 진실로 신이 강림한 것이다.
푸스스.
검은 땅 위로 맨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태초의 존재인 것처럼 알몸 상태다.
그런데도 성스럽다. 이토록 끔찍한 마기를 흩뿌리는 자의 분위기라고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남자가 거기에 있었다.
“내 기어이, 역천을 이루었구나.”
나른한 얼굴로 태산을, 천하를 굽어보는 단 한 명의 마신(魔神).
“역천신주가 나를 선택하였다. 이로써 나는 천도를 뒤바꾸는 힘을 얻었다.”
사문향이 하얗게 웃었다.
“혈교의 중원 진출을 선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