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365)
흑백무제 1365화(1365/1368)
1365화. 스러지는 세상 (6)
패율의 도발에 화가 난 것일까?
“카아아앗!”
세상 어떤 짐승의 포효와도 다르다.
소름 끼치는 괴성과 함께 수십 명의, 아니 수십 구의 강시가 뛰어들었다.
‘제법!’
진형 없이 우르르 몰려들고 있지만, 적어도 그 기세만큼은 무시할 수가 없다.
게다가 보법의 전개 방식이 상당했다. 생각이란 걸 할 수 없는 짐승 같은 놈들이 구사하는 무공이라기엔 너무나도 수준이 높았다.
패율의 몸이 사선으로 기울어졌다.
피이이잉!
팽팽하게 당겨진 줄이 싹둑 끊어진 것 같다.
엄청난 속도로 돌진한 패율이 회풍무류검을 펼쳤다.
휘이이이잉! 파바바박!
회전하며 높아진 압력으로 인해 강시 십여 구가 보법이 흐트러진 채로 한데 모아졌다.
곧장 단창이 움직였다.
카카카카카캉!
연달아 펼쳐지는 일섬(一閃)이다.
폭발적인 칠창(七槍)이 강시 일곱 구의 목에 구멍을 냈다. 단순히 피부만 찢은 게 아니라 목뼈까지 끊어 버리니, 창격에 당한 강시들은 벼락에 맞은 듯 바닥에 쓰러졌다.
쩌저저정!
남은 세 구의 강시가 휘두른 손톱은 좌검으로 막아 냈다.
회풍검의 방어력으로 놈들의 조법을 튕겨 내고 적당한 거리를 잰 패율이 힘차게 회전했다.
쩌어어어엉!
짧지만 굵은 단창의 창날에 강시 세 구의 목이 달아났다.
창은 자격에 특화된 병기지만, 날의 길이와 두께만 충분하다면 베는 것도 가능하다.
거기에 점창파 최고 신공과 창술의 달인인 패율의 전투 능력이 합쳐지니, 마치 두툼한 칼로 잘라 낸 것과 같은 결과가 났다.
“크아아악!”
“크허엉!”
소리도 제각각이다. 패율이 뿜어내는 거대한 기도가 강시들을 자극하는 것 같았다.
점점 좁아지는 길을 그 홀로 막고 있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벽을 타서라도 패율을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시들은 그러지 않았다. 거기까지 생각을 못 하는 건지, 아니면 패율의 기파가 너무 자극적이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그만을 노려보며 발광을 해 댔다.
쩌저저정! 카앙! 쾅!
좌검, 우창이 화려하게 움직이며 강시들의 공격을 튕겨 냈다.
좁아지는 길목에서 적들을 막고 있다고는 하나 한 번에 마주하는 강시의 숫자가 최소 열다섯 이상이다. 한데도 패율의 창검은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강시들의 손톱과 주먹질을 모조리 튕겨 내고 있었다.
극속의 무공이었다. 단순히 빠른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강시들의 공격 투로를 사전에 읽고 움직이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렇다 한들 그 많은 강시의 공격을 전부 간파해 대응하는 건 인간의 능력이 아니었다.
홀로 수많은 마인을 격파하며 얻은 실전 능력이 지금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했다. 무수한 실전은 그의 무공을 같은 경지의 무사보다 훨씬 더 예리하게 가다듬어 주었고, 그것은 곧 적의 심리를 읽거나 움직임을 보고 그 몇 수 뒤를 예측하는 경지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쩌저저정! 카캉! 쩌저정! 콰앙!
점점 속도가 올라간다.
회풍검과 분광검이 일수유에도 대여섯 번의 변화를 보여 준다. 기봉검법의 투로를 빌려 온 단창은 화려하게 적들을 밀어 내다가도 최소의 내공으로 한 점을 찔러 무력화시킨다.
서로 다른 병기가 제각각 최고 수준으로 구사된다. 마치 한 몸에 두 사람의 의지가 깃든 듯하다.
무당파의 양의심공을 익혔대도 이 정도 효율을 보여 주진 못할 터, 느지막이 발전한 재능과 경험이 그를 중원 정점의 무도가(武道家)로 개화시켜 주고 있었다.
수없이 많이 부딪쳤고, 수없이 많은 강시가 죽어 나갔다.
벌써 패율의 손에 기능이 정지된 강시의 숫자가 팔십이 훌쩍 넘었다. 삼백의 강시 중 거의 삼 할 가까이가 쓰러진 것이다.
하지만 패율은 기뻐할 수 없었다.
‘이것들…….’
체력은 아직 멀쩡하다. 내공 소모가 상당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버틸 만하다.
자신의 상태는 언제나와 같지만, 문제는 적들이었다.
‘처음과 달라.’
내공이 더 강해지고 사기가 더 짙어지는 등의 변화는 없다.
그러나 놈들의 대응이 달라지고 있었다.
무작정 돌진해 짐승처럼 손톱을 휘둘렀던 놈들이 점점 진형 비슷한 것을 짜기 시작했다.
심지어 보법 역시도 이전과 달랐다. 초일류의 보법을 제법 숙련된 실력으로 구사했던 놈들이, 지금은 흡사 보법의 달인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파아아앙!
한 번씩 내리찍는 손톱의 파괴력도 대단했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던 조법에도 체계가 생겼다. 연환 공격만을 구사하던 놈들이 이쪽의 빈틈을 읽고 단발로 강격을 펼치는데, 패율조차도 깜짝 놀랄 정도로 위력이 강하고 시기가 적절했다.
‘이놈들, 점점 성장하고 있다.’
본래 체화하고 있던 무공을 강시가 되면서 잊었던 것일까?
그건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놈들이 자신과 싸우며 점점 체계적인 무공을 구사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손목 회전으로 발경력을 극대화하던 좌검이 일순 벼락처럼 쏘아졌다.
쩌어어어엉!
패율의 눈이 깊어졌다.
‘막아?’
목표물이었던 강시가 손을 뻗어 검을 막았다.
양손을 겹쳐 일섬을 막은 강시의 입에서 기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양쪽 손바닥이 뚫렸는데도 역시나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파아악!
검을 뽑은 패율이 한 번 더 회전하며 참격을 날렸다.
카캉!
손가락과 함께 목이 날아갔다.
그때, 강시 두 구가 패율의 얼굴과 하단을 노리고 들어왔다.
절묘한 공격이었다.
인간은 두부(頭部)를 공격당하면 다른 쪽은 신경 쓰지 못한다. 오직 안면만 신경을 쓰는 것이다.
과연 이놈들이 그걸 알고 상단과 하단을 나눠 공격한 것일까? 단순히 여러 부위를 노린 거라면 굳이 반 박자 늦게 얼굴을 노릴 게 아니라 상체를 노려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단창이 엄청난 탄력으로 위아래로 휘어졌다.
쩌정!
안면으로 날아오던 손이 튕겨 날아가고, 하단을 노렸던 강시의 머리통이 단창에 맞아 으깨졌다.
서걱.
작동 불능의 상태가 되었지만, 전진하는 힘을 그대로 유지한 강시가 손톱으로 패율의 허벅지를 길게 찢었다.
순간 패율은 상처 부위가 화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상처는 얕았지만 그 안으로 파고드는 기운이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침투경을 구사한 게 아니라 손톱에 깃들었던 기운이 제멋대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독기.’
이건 독이다.
당연히도 평범한 독은 아니다. 나아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독이었다.
패율은 북명신공을 한계까지 끌어올림과 동시에 상처 입은 다리로 진각을 밟았다.
콰앙!
천지를 뒤흔드는 진각에 강시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상처 난 다리에서 핏물이 찍, 소리를 내며 튀어나왔다.
‘피와 함께 독기는 빼냈지만…….’
긁힌 상처 수준인데도 독기가 침투하려 했다. 제대로 한 방 맞으면 몰아내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과 창을 고쳐 쥔 패율이 다시 자세를 낮추었다.
“크르르.”
주춤거리던 강시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간 패율은 또 한 번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놈들…… 기다리고 있었나?’
마치 독사 같다. 독을 주입한 먹잇감이 알아서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독사처럼, 강시들은 가늘어진 눈으로 패율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정말 살아 있는 괴물 같았다.
경악하던 패율의 얼굴에 이내 분노가 어렸다. 감히 자신을 먹잇감 취급하다니, 화가 안 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금세 차분함을 되찾았다.
지금은 분노로 과격해질 때가 아니었다. 몇 놈 안 되면 분노로 얻은 힘을 몽땅 퍼부어 줄 수도 있겠지만, 놈들의 숫자는 아직 이백이 넘었다.
패율은 나직이 심호흡을 했다.
몇 번의 호흡으로 자연기가 체내로 잘 흡수될 수 있도록 기의 통로를 열었다. 조금이라도 힘을 아끼는 것, 조금이라도 시간이 날 때 내력을 회복하는 것이 유리했다.
그 순간, 강시들이 포효를 내질렀다.
파바바박!
다시 전진하는 강시들.
패율의 눈이 부릅떠졌다.
‘진법!’
놀랍게도 강시들은 뾰족한 삼각진(三角陣)을 펼치며 돌진했다.
마치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는 듯했다. 그렇다고 영통(靈通)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선두의 강시가 자세를 낮추고 돌진하는 순간 남은 놈들이 알아서 진세를 구축했다.
‘본래 한 조직 소속이었던 놈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살아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게밖에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북부부터 쓸고 내려온 것도……!’
이제야 상황이 이해가 간다.
광혈교든 어디든 이 강시들을 만든 놈은 생각했을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인간이었을 적의 기억과 경험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그래서 사천 북부의 중소 문파들부터 노린 것이다. 싸우면 싸울수록 놈들의 기억이 일깨워질 테니까.
‘어쩐지 수상했다. 일천에 가까운 전력이라면 그대로 청성파나 당가부터 쓸어 버리면 그만인데.’
이 정도 병력이면 당가라도 무시할 수 없다. 보아하니 독도 잘 통하지 않는 듯한데, 폭약 암기를 쓰지 않는 이상 당가라도 반파당할 위험이 있다.
거기에 기습까지 가한다면 그 피해는 훨씬 커질 것이다. 잘만 운용한다면 당가 멸문까지도 가능하리라.
‘가지가지 하는군.’
삼각진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첨단부를 맡은 강시의 두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오는 모습이 마치 귀신에 씐 호랑이와 같았다.
패율이 오른발을 뒤로 뻗었다.
두우웅!
진각을 밟은 것도 아닌데 오른발 끝에서 강렬한 울림이 퍼져 나왔다.
“삼각진은 실수였어.”
좌검을 직선으로 뻗어 삼각진까지의 거리를 재고, 우창을 뒤로 장전해 몸통 쪽으로 살짝 돌려놓았다.
쿠르르릉!
북명신공의 힘이 단창에 한가득 모였다.
패율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피이잉!!
전방으로 뻗었던 좌검이 상체 탄력으로 인해 뒤로 밀려 나가고, 강한 기둥이 된 왼 다리가 우창에 실린 관일공이 나아갈 길을 흔들리지 않게 잡아 주었다.
파아아아앙!!
공기를 찢는 굉음과 함께 단창이 폭발적으로 쏘아져 나갔다.
회풍검의 묘리를 담은 관일공이다. 단창 끝에서 회전하는 경력이 무서운 속도로 뾰족해지며 관통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점창관일창(點蒼貫日槍).
점창 역사상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무적의 창술이 정법(正法)으로 펼쳐졌다.
번쩍! 콰아앙!
폭음과 함께 선두 강시부터 그 뒤에 돌격하던 강시들까지 우수수 휩쓸려 날아갔다.
단순히 한 점을 관통하는 공격이 아니었다. 선두의 강시를 관통한 즉시 뾰족하게 압축된 회풍의 경력이 폭발하며 사방팔방으로 관일창의 경력을 퍼트렸다.
퍼퍼펑! 콰드드득!
줄을 지어 터져 나가는 경력.
단 일격에 삼각진이 무너져 버렸다. 몸통이 박살 나거나 사지가 날아간 강시들의 숫자가 무려 삼십여 구에 달했다.
소모된 내공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는 무공이었다. 순간적인 구사도 가능하지만, 제대로 구사한 정법의 관일창은 뻗어 나가면 나갈수록 범위를 넓히며 광범위한 지역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
푸스스스.
경력이 휩쓸고 지나간 땅 위로 희뿌연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한순간 박살이 난 동료들을 보고 놀랐던 것일까? 남은 강시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퉤!”
삼각진의 돌진력과 진세가 예상보다 강해 패율도 약간의 내상을 입었다.
올라오는 핏물을 아무렇게나 뱉어 낸 패율, 내상은 입었어도 투지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야 해볼 만하다는 듯 점점 증폭하는 기세가 강시들의 신경을 자극했다.
“흥이 올랐어. 제발 도망치지만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