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372)
흑백무제 1372화(1372/1424)
1372화. 스러지는 세상 (13)
연호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슷하다고?”
“……네. 그래요.”
“그런가?”
자신의 손을 바라보던 연호정이 피식 웃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런 것이겠지.”
묵비의 얼굴이 굳어졌다.
눈가에 힘이 들어가고, 천천히 말아 쥔 주먹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게 끝이에요?”
“이보세요, 묵 신장. 무슨 말이 더 하고 싶으신 겁니까?”
장난스러운 목소리였지만, 묵비의 얼굴은 더더욱 진지해졌다.
“왜 화를 내지 않죠?”
“점점 알 수 없는 질문만 해 대는군. 내가 왜 화를 내야 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문향이에요. 사음교주 사문향이라고요.”
“알아.”
“그런 놈과 기도가 비슷해졌다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화가 안 난다고요?”
“그래.”
“연 공자. 내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요.”
“말해.”
“연 공자는 이전의 연 공자가 아니에요.”
“안다.”
“안다고요? 안다는 말로 끝나는 거예요?”
연호정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대체 나한테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야?”
“듣고 싶은 말 같은 건 없어요. 나는 그저…….”
꽉 쥔 주먹에 힘이 풀어졌다.
“그저, 지금의 연 공자가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묵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사문향과 싸운 후, 다시 만난 연호정은 분명 뭔가가 달랐다. 하지만 싸움이 너무 격렬했고 빨리 이동해야 했기에 그녀는 연호정의 변화를 크게 체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 긴장이 풀어지고 대화를 나누며, 그녀는 깨달았다.
연호정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는 걸.
연호정의 눈빛과 목소리는 여전했다. 몸뚱이도, 특유의 손짓 등의 행동도 똑같았다.
하지만 묵비는 연호정을 연호정이라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단순히 성격이 조금 달라진 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면모가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내가 보는 연 공자는…… 마치 인간이 아닌 것 같아요.”
그 말에 연호정이 흠칫했다.
“인간이 아닌 것 같다고?”
“마치 그 역천신주인지 뭔지 하는 것과 하나가 된 사문향과 비슷하다고 느낀 지점이 거기가 아닌가 해요. 분명히 말하건대 그자는 인간의 경지를 넘어섰어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무극수들과는 또 다른 차원이라고요.”
“…….”
“연 공자도 그래요. 그놈과는 너무나도 다르지만, 동시에 터무니없을 정도로 유사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고요.”
묵비가 고개를 떨어트렸다.
“나는 연 공자가 그런 죽일 놈과 비슷해졌다는 사실을 견디기가 쉽지 않아요.”
연호정은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다.
묵비가 자신을 얼마나 세심하게 보는지를 떠나, 그녀를 이 세상에 끌고 나온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묵비에게 있어 자신은 형제였고 스승이었으며, 때로는 동생이었고 때로는 동갑내기 친구와 같았다. 아마 묵비 인생에 이보다 더 가깝고 의지가 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해할 수 있었다. 묵비의 저 말을.
그래서 이런 말도 할 수 있었다.
“너는 내 증오에 전염되었다.”
“네?”
“너는 너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았지. 그래, 너의 주체는 너다. 처음 널 관일곡에서 강호로 끌고 나왔을 때, 나는 네가 너만의 삶을 살아야만 한다고 강조했었지?”
“……?”
“그 길을 찾지 못했다면, 찾을 때까지 나와 함께 세상을 배우라고도 했지. 기억해?”
“물론, 기억해요.”
“나와 함께하며, 어느새 너는 너만의 인생을 찾을 수 있었다. 거기에 ‘나’는 없었어. 너는 언젠가 나를 은인이라고 말했지만, 틀렸다. 나는 너와 세상을 이어 주는 교각이었고, 동시에 너를 이용해 삼교에 지대한 타격을 준 전략가였을 뿐이다.”
“그렇지 않아요.”
묵비가 고개를 저으며 한 번 더 부정했다.
“결코 그렇지 않아요.”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
“하지만 너도 알고 있을 거야. 네가 없었다면 나는 몇 번이나 죽었을 것이고, 삼교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했을 거다. 네가 없었다면 나는 내 친인들을 수도 없이 많이 잃었을지도 몰라.”
“연 공자.”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에게 있어 너는, 이 빌어먹도록 우중충한 인생에 몇 안 되는 빛이라는 걸.”
묵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저런 말을 대놓고 들으니 안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연호정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에게 있어 나도 같았겠지.”
“그래요. 연 공자가 없었다면 나는…….”
“내가 너에게 의지하는 만큼, 너 역시 나에게 의지했다.”
“물론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어느새 닮아 가고 있었다.”
“……?!”
“나의 격한 분노는 어느새 너의 것이 되었다. 너의 맑은 눈빛은 내가 가져갔다. 나의 무자비한 손속은 너의 활에 깃들었으며, 너의 차분하고 선한 성품은 분노만 가득했던 나의 마음에 안정을 되찾아 주었다.”
묵비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나는 스승님을 만나 비로소 증오와 살의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너는 그러지 못했구나.”
“뭐라고요?”
“너에게 있어 사문향은 불공대천지수일 수밖에 없다. 누구와도 견줄 수 있는 대협(大俠)이 된 너는 평범한 사람들의 불행을 견딜 수 없을 테니까.”
“……!”
“사문향으로 인해 네가 마음을 준 수많은 사람도 죽었지. 당연히 너는 사문향을 증오할 수밖에 없어. 그러나…….”
“…….”
“그와 같은 혐오는, 본디 네가 가져가야 할 것이 아니야.”
묵비는 연호정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내가 연 공자의 분노에 오염되었다는 말인가요?”
“표현이 좀 그렇지만 크게 틀린 말도 아니지.”
“나는 내 감정을 느끼고 있어요.”
“알아. 그건 너의 감정이야. 하지만 네가 나를 통해 세상에 나온 것처럼, 사람은 타인과 관계를 쌓으며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의 감정을 내 것처럼 느낄 수 있다.”
“……!!”
“너는 착해. 착한 만큼 강하지. 그러나 내 사려 깊지 못함으로 인해, 너를 지나치게 나의 색으로 물들였나 보다.”
“연 공자…….”
“그러나 그 또한 우리의 인생이라면, 후회하기보단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좋겠지.”
묵비는 여전히 연호정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이해했다. 마음이 아닌 머리로.
‘나는 그저 연 공자가 그런 극악무도한 자와 비슷해 보이는 게 싫었을 뿐 아닌가.’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마치 그녀의 생각을 다 알고 있는 듯한, 그래서 묵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게 만드는 미소였다.
‘연 공자. 알고 있나요? 지금의 연 공자는 마치 인간이 아닌 것 같아요. 당장이라도 이승에서 떠나 버릴 것 같다고요.’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뱉을 수는 없었다. 그 말을 하면, 이제 알았냐며 정말로 휙 하고 떠나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마. 나는 내가 돌아온 목적을 잊지 않았으니까.”
“…….”
“사문향은 반드시 없애 버린다. 아니, 오히려 없애야만 한다는 생각은 예전보다 더 강해졌으면 강해졌지 약해지진 않았어.”
연호정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 순간, 묵비는 묘하게 안도하는 자신을 느꼈다. 지금껏 탈속한 모습만 보여 왔던 연호정의 저 진지함이 과거의 그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놈은 역천신주와 하나가 되었다. 놈의 심장은 그 저주받은 구슬 속에 봉인된 마기를 무한정으로 뿜어내고 있어. 놈의 존재 자체가 천도를 역행하는 것이야. 그런 놈이 활개 쳤다간 천하가 어찌 될지 몰라.”
“그렇겠지요.”
“당연히 내 사람들도 비참한 꼴을 겪게 되겠지. 다른 건 다 참아도 그 꼴은 볼 수 없어.”
묵비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 말이 듣고 싶었다.
없애 버리겠다, 용서할 수 없다는 말도 그렇지만, 묵비에게 있어 연호정은 언제나 든든한 방벽이었다.
연호정이 삼교를 증오하는 이유는 바로 내 사람들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선량한 사람들, 나아가 천하를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확장되었지만, 연호정을 연호정답게 만들어 주는 힘의 근간에는 언제나 나 이외의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래, 그거면 된 거지.’
여전히 불안하다. 연호정이 당장 떠나 버릴까 봐.
그러나 연호정은 한번 말한 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킨다. 그는 떠나지 않는다고 했고, 반드시 사문향을 죽이겠다고 했다.
힘든 길이겠지만, 그는 분명 그럴 것이다.
언제나처럼 모두의 기대를,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충족시켜 줄 것이다. 지금은 그걸로 족했다.
“그래, 네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뭔지는 알겠다.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 건지도.”
“…….”
“그렇다면 이제 내가 하나 묻자.”
연호정의 눈이 깊어졌다.
“너, 왜 아직도 거기에 있는 거냐?”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왜 날아오르지 않는 거냐고 물었다.”
묵비는 연호정의 그 말이 무극의 경지를 뜻하는 것임을 알았다.
“연 공자가 더 잘 알겠지만…… 그 경지는 오르고 싶다고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잖아요.”
“당연히 그렇지. 그런데도 나는 너에게 왜 오르지 않느냐고 물었다. 왜 그럴까?”
“……네?”
연호정이 한 걸음 다가왔다.
묵비는 저도 모르게 주춤했다. 마치 진짜 반선(半仙)이라도 된 양 탈속한 기도를 보여 주던 연호정이 지금은 특유의 진지함으로 인해 엄한 스승의 모습으로 돌변했다.
“너는 이미 그곳에 발을 걸치고 있어.”
“……?!”
“오래되지는 않았군. 준비는 오래 했지만, 발 하나 걸친 것은 기껏해야 보름, 길어야 한 달 전이다.”
한 달 전이라면 강소성 전투가 벌어지던 때였다.
“거기에 남궁 노선배의 영력이 한 발 걸친 너의 깨달음이 나아갈 길을 훤히 밝혀 주고 있다. 한데 왜 오르지 않는 거냐?”
“내가…… 이미 무극에 발을 걸쳤다고요?”
“물론이다.”
묵비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럴 리가 없어요. 만약 그랬다면 오히려 내가 먼저 알았어야……!”
“보려고 하지 않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 자는 눈과 귀가 있어도 장님이요, 귀머거리일 뿐이다.”
“……!!”
“너는 보려 하지 않았고 들으려 하지 않았어.”
“나는 연 공자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너의 욕심은 가벼워.”
“……?”
“그것은 네가 착하기 때문이다. 너에게도 무인다운 욕망은 있지만, 그것은 요리 애호가가 칼질을 더 잘하고 싶어 하는 정도이지 숙수를 지망하는 자가 모든 요리에 통달하고자 하는 마음과는 달라.”
“……!”
“무엇이 그리도 두려운 게냐?”
“나는 두려운 게…….”
“두렵지 않다면 무엇이 그리도 마음에 걸리지?”
“그런 것 없어요.”
“그렇다면 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지?”
“연 공자.”
연호정의 눈이 한층 어두워졌다.
슬픔과 아련함이 묻어 나오는 그 표정에 묵비는 순간적으로 전신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사문향과의 싸움은 필시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대 격전이 될 거다. 그전에도 그랬고, 앞으로의 싸움도 그럴 거야.”
“……!”
“그러한 싸움에서 너는 나를 지켜 주지 않을 건가?”
“연 공자!”
“네 말대로 나는 이렇게 변해 버렸다. 여전히 너희를 위해 싸울 테지만, 어쩌면 모두를 지키지 못할지도 몰라.”
묵비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나는 그 싸움에 집중하고 싶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나를 도와줄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중요해.”
연호정의 손이 묵비의 머리에 닿았다.
“나를 도와주는 것, 네가 강해질 이유로 그거 하나면 충분하지 않은가?”
우우우우웅!
백회로 들어가는 황룡기.
순간 묵비의 눈이 찬란한 광채를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