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378)
흑백무제 1378화(1378/1424)
1378화. 부활의 신호탄 (3)
“드디어 도착했군.”
새하얀 창을 어깨에 걸친 사내의 모습은 그야말로 위풍당당 그 자체였다.
“저곳이 맞나?”
“예, 지도상 맞습니다.”
“하긴, 비교적 자유분방한 기도가 느껴지는군. 개방도들이 분명해.”
막원과 천효락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 멀리서 화향이 다가왔다.
“맞습니다. 개방도들이에요.”
“좋아.”
잠시 후.
“백병신군 선배님을 뵙습니다!”
감숙지부의 총지휘자 무풍개(無風丐)가 정중하게 인사를 해 왔다.
이곳의 개방도들은 다른 곳의 개방도와 달리 옷차림에 제법 신경을 쓴 듯했다. 후줄근하긴 하지만 펑퍼짐한 피풍의로 온몸을 감쌌는데, 곳곳에서 부는 모래바람을 막기 위함인 모양이었다.
막원이 말했다.
“장로에게 연락을 받았네. 이 근처에서 광혈교도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고.”
“정확히는 광혈교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같이 음침하고 기이한 마기를 드리운 놈들이었는데, 특유의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어요.”
“생기가?”
막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죽은 사람이 움직이기라도 한다는 건가?”
그때, 천효락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시입니다.”
모두가 천효락을 바라보았다.
“광혈교는 삼교 중 가장 마도이학에 능한 곳입니다. 예로부터 초혼술에 심취했고 높은 완성도를 이루었지요. 게다가…….”
천효락은 여동생을 떠올렸다.
‘어쩔 수 없었겠지.’
이미 놈들은 강시공을 완성했을 것이다. 여동생은 거기에 약간의 도움만 주었을 터.
천효락은 그런 여동생의 선택을 비난할 수 없었다. 아니, 중원 무림인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차라리 잘했다고 생각했다.
‘살아만 있어라. 살아만 있으면 돼.’
광혈교에 붙잡혀 있는데도 어느 정도 안심하고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여동생의 엄청난 지식과 실력.
광혈교의 누구도 여동생을 죽이려 들지 않을 것이다. 아니, 못할 것이다. 적어도 사술과 술법에 한정해서 여동생을 어찌할 수 있는 마인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타고난 천형 때문에 술법과 사술을 거의 구사할 수 없지만, 방어하는 것만큼은 천하제일이라 해도 무방할 녀석이었다.
‘너는 언제나 나보다 강단이 있었지. 무사할 줄 알았다.’
천효락이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놈들은 강시를 만든 게 분명합니다. 아마도 삼공시(三公屍)를 부활시키려 했겠지요.”
“삼공시가 뭔가?”
“삼공시란 혈교를 떠받들던 세 개의 단체, 삼대마가에서 이름을 따온 강시들입니다.”
“지금의 광신삼교로군.”
“그렇습니다.”
“하면 강시가 세 종류나 된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삼교처럼 각자의 특색이 있는 것이 아니라 등급이 매겨지는 강시들입니다.”
천효락이 손바닥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가장 낮은 등급의 강시는 흑시(黑屍)라 불립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강시의 표본과도 같은 존재로, 몸이 단단하고 주인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며 독기가 가득해 일반 무인들이 상대하기가 버겁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라면…….”
“문제는 무림인으로 흑시를 만드는 경우입니다. 나아가 마공을 익혔던 자를 흑시로 만들면, 기존의 흑시가 지닌 한계를 넘어설 수 있지요.”
“무슨 뜻인가? 한계라니?”
“강시는 생각하지 못하는 생물입니다. 아니, 생물이라고 할 수도 없지요. 하지만 강시공 자체가 역천에 가까운 술수이기 때문에 마공과 상성이 좋습니다.”
“……!”
“마인이 흑시가 되면 생전의 기억대로 몸을 놀리는 게 가능합니다. 반쯤은 살아 있는 거나 다를 바 없지요.”
막원이 눈살을 찌푸렸다.
군데군데 살점이 썩은 얼굴로 마공을 구사하는 강시들을 떠올리자 그조차도 소름이 돋았다.
“혐오스럽군.”
“그 외양만으로도 위협적입니다. 어지간한 수양을 쌓은 이가 아니고선 기괴한 외양과 사기 가득한 기도 때문에 싸우기도 전에 전의를 상실하고야 말지요. 하지만…….”
천효락이 무풍개에게 물었다.
“그 수가 얼마나 되었답니까?”
“족히 일천에 가깝다고 했소.”
무풍개의 얼굴에는 의심이 깃들어 있었다. 천효락이 신마림의 후예라는 건 알았지만, 강시공에 대해 이토록 자세히 아는 것이 의아했던 것이다.
천효락은 그의 의심을 모르는 체하며 말했다.
“흑시가 천 구 가까이 있다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제조에 착수했다는 뜻입니다. 흑시 한 구를 만드는 데에도 상당한 정성이 필요합니다. 감히 예상컨대 삼십 년은 고생했을 겁니다.”
“하면 흑시 위에는 뭐가 있나?”
“백시(白屍)입니다. 생기는 없지만 흑시보다 훨씬 사람 같고, 피부도 분칠한 듯 하얗지요. 그래서 백시라 부릅니다.”
“흑시보다 더 강하겠지?”
“훨씬 강합니다. 문헌에 적힌 대로라면, 적어도 흑시 백 구를 감당할 만한 저력을 가졌다고 합니다. 당연히 마공을 연성한 자를 백시로 만들면 더 강해집니다.”
“기가 막히는군.”
“그나마 다행인 건, 백시의 경우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어째서?”
“재료나 술법의 문제가 아닌 주인의 역량 문제입니다. 흑시는 실상 하나하나가 짐승에 가깝기에 한 명의 주인이 수백 구를 운용할 수 있지만, 백시는 그보다 더 강력한 주술적 관계를 필요로 합니다. 초절정고수라도 다룰 수 있는 백시가 하나에서 둘에 불과합니다. 무극수라면…… 어쩌면 수십 구도 다룰 수 있겠지만, 솔직히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무력은?”
“그 또한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무공을 익힌 채로 가사 상태에 빠진 자를 백시로 만들었다고 가정할 경우, 능히 초절정고수의 힘을 낼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막원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어이가 없다 못해 기가 차는구먼. 광혈교, 그 미친놈들을 싹 밀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런 마물들을 생산하고 있었던가.”
“…….”
“하면, 마지막 강시는 뭔가?”
“혈시(血屍)라고 합니다.”
천효락의 얼굴에 긴장이 떠올랐다.
“혈시는 혈교 비전에 나오는 전설상의 강시로, 무공을 익혔든 말든 제조 후의 파괴력에 차이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심상치 않군.”
“문헌에 따르면 혈시는 무극수들도 불가능한 어풍비행(御風飛行)을 쓴다고 합니다. 제조가 지극히 힘든 천인혈(千人血)을 매개로 상상을 초월하는 공력이 집약되었기 때문에 한순간도 쉬지 않으며 일장에 산을 부수고 발길질 한 방에 산사태를 일으킨다는 둥 믿기 힘든 내용이 기술되어 있지요.”
“말 그대로 전설이 아닌가?”
“실제로 혈시를 본 사람은 초대 혈교주밖에 없다고 들었습니다. 삼백 년 전, 혈교지란에서도 나타난 게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도 있지만 확실하진 않지요.”
“당연히 백시보다 만들기 어렵고 그 수량도 한정되었겠군.”
“하나입니다.”
“하나?”
“예. 말이 강시지, 혈시는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사고를 할 줄 알고 습득력이 빠르며, 의사소통이 가능하여 누군가를 속일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 정도라면 무극수라도 한 구를 제대로 다룰 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막원이 혀를 내둘렀다.
“그 정도면 그냥 초고수를 양성한 것과 다를 바 없지 않나?”
“그러나 주인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것은 일반 강시와 다를 바 없지요. 하여 혈시를 손에 넣은 자는 홀로 천하를 상대할 수 있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만큼 혈시라는 마물이 대단하다는 뜻이리라.
막원이 무풍개에게 물었다.
“놈들의 외양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나?”
“예. 아무래도 섣불리 접근하기는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동 속도나 규모로 봤을 때, 여기 천효락 공자가 말한 흑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렇군.”
막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로에게 들었겠지만, 우리는 광혈교에서 튀어나온 그 병력의 이동 경로를 역추적하러 왔네.”
“예, 들었습니다.”
무풍개의 얼굴에 난처함이 일었다.
“그래서 저희도 추적해 봤습니다만, 중간에서 길이 뚝 끊겨 버렸습니다.”
“끊겼다니?”
“모르겠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중간부터 추적이 불가능해졌습니다.”
“끊긴 곳은 어딘가?”
“감숙 끝에서 신강으로 이어지는 길이었습니다. 지형 특성상 추적하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그 이상 흔적을 읽을 수가 없는 건 이상합니다.”
“그래……?”
막원이 천효락에게 물었다.
“짐작 가는 곳이 있나?”
천효락이 쓴웃음을 흘렸다.
“모르겠습니다.”
알았다면 굳이 마음 졸이지 않고 진즉 떠났을 것이다.
막원이 입맛을 다실 때, 무풍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말씀하시는 중에 죄송합니다만, 흑도 무림에서 따로 연락이 왔습니다.”
“흑도 무림? 흑제성?”
“그렇습니다. 현재 흑제성의 정예 고수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막원의 눈이 반짝였다.
“연제, 아니 성주도 함께 오는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귀궁신녀 묵비 신장이 흑제성의 고수들을 이끌고 오는 중이라 합니다. 그들 역시 이참에 광혈교 본단을 치러 간다고 하더군요.”
막원이 미소를 지었다.
“과연 빈틈이 없군.”
그가 천효락에게 말했다.
“흑제성과 함께한다면 한층 수월할 거다. 특히 묵비 그 녀석, 활 솜씨가 천하제일이야. 전투 경험도 많아서 큰 도움이 될 거다.”
“그렇다면 저야 좋지요.”
막원이 다시 무풍개에게 말했다.
“이왕이면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겠네. 당분간 이 근처에서 쉬고 있을 테니, 흑제성 병력이 도착하면 알려 주게.”
“그리하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무풍개와 떨어진 일행은 그늘진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쉬었다가 가자. 여기서 객잔까지 거리가 꽤 돼.”
“예.”
힐끔 천효락을 본 막원이 웃으며 물었다.
“기분 나빴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해하라고는 안 하겠어.”
천효락이 고개를 저었다.
“삼교는 명백한 마(魔)입니다. 그리고 신마림 역시 마도지요. 아버지와 제가 생각하는 마도는 그들의 마도와 다르지만, 삼교 때문에 수많은 목숨을 잃은 중원 무림인들에게 있어 저나 삼교나 크게 다를 건 없을 겁니다.”
화향이 진지한 얼굴로 칼자루를 쥐었다.
“지금이라도 그 재수 없는 거지의 목을 잘라 올까요?”
막원이 화향의 머리통에 알밤을 먹였다. 화향은 죽는소리를 내면서도 힐끔힐끔 천효락의 얼굴을 살폈다.
천효락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피로감이 드러났다.
“이번 일이 끝나면 여동생과 함께 청해로 넘어가 조용히 살아갈까 합니다.”
막원은 굳이 그를 위로하지 않았다. 섣불리 위로해 봤자 오히려 마음만 상하게 하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오랜만에 푹 쉴 수 있었다. 정신은 날 서 있었지만 몸이라도 쉬게 하니 확실히 체력이 올라왔다.
며칠이 지났을까.
무풍개가 일행이 거하는 객잔으로 뛰어 들어왔다.
“급보입니다!”
“흑제성 병력이 도착했나?”
“그, 그게 아니라……!”
막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풍개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심상치 않은 다급함이 느껴졌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무풍개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사천 북부 일대가 적의 손에 완전히 떨어졌다고 합니다!”
“뭐, 뭐라고?!”
“광혈교의 강시들과 접전을 벌이다 사망한 당가 고수의 숫자가 오백을 헤아리고, 수십 리에 걸친 싸움터가 불바다가 되어 버렸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