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392)
흑백무제 1392화(1392/1424)
1392화. 완성의 시간 (2)
연호정은 그 길로 하은교를 찾아갔다. 거리가 상당했지만, 그녀가 어디 있는지는 특유의 기감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하은교는 혈시가 된 자식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갓난애 때 버린 자식이지만, 그녀는 혈시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 청년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걸.
결국 사음교의 말은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이었다. 사음교는 그녀의 자식을 데리고 있었으며, 혈시의 자질이 있음을 깨닫고 광혈교로 보내 버린 것이다.
혈시가 완성된다면 사문향으로서도 꽤 골칫거리였을 터, 역천신주의 재료와 거래하긴 했지만 확실히 대단한 자신감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하은교에게 그런 사정 따위는 알 바 아니었다.
그녀는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린 아들을 보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연호정은 알고 있었다. 하은교의 슬픔과 자책감이 어느 선을 넘어 버렸음을. 그래서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것임을.
일행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당가로 향했다.
당가로 향하는 동안 하은교는 한시도 아들을 품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다 큰 아들임에도 갓난애를 들 듯 품에 꼭 안고 걸어갔다.
그렇게 그들은 당가로 돌아왔다.
* * *
“오랜만이군.”
“그렇군요.”
찻잔을 마주하고 앉은 연호정과 당관 사이에는 편안하면서도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당관이 차를 마시며 물었다.
“몸은 어떠냐.”
“보시다시피 괜찮습니다.”
“안 괜찮아 보이는데?”
연호정이 피식 웃었다.
“안 괜찮은 건 가주님이 더하지요.”
실제로 당관은 아직도 정상이 아니었다.
어지간히 심한 내상도 신공의 힘을 이용, 막강한 회복력으로 보름도 안 되어 고쳐 버릴 그였다. 한데도 아직 안색이 창백하고 기도가 불안정했다.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어 남들은 모르겠지만, 연호정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당관이 쓴웃음을 흘렸다.
“잘 안 낫더군.”
“이제 나을 겁니다.”
“당연히 나아야지.”
후우웅.
연호정의 몸에서 일어난 황금빛 기운이 당관을 감싸고 돌았다.
당관은 놀라지도, 긴장하지도 않았다. 연호정이 자신을 해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의문은 들었다.
“뭐 하는 거냐?”
“가만히 계십시오.”
연호정이 눈을 감았다.
순간, 당관은 저도 모르게 호흡을 멈추었다. 자신의 몸을 휘감던 황금빛 진기가 전신 모공으로 부드럽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진기가 스며드는데도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 그저 편안하고 안락하다. 오히려 뭉친 근육이 풀어지는 듯했다.
잠시 후.
사아아악!
당관의 명문을 통해 회색빛 기운이 빠져나왔다.
“흐읍!”
크게 숨을 들이쉰 당관의 몸에서 적색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만류귀원신공의 힘이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연호정이 눈을 뜨며 찻잔을 들었다.
“독한 마기가 가주님의 회복을 막고 있었습니다. 밀도가 너무 과해서, 만류귀원신공으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겠지요.”
“…….”
“이제는 회복 속도에 탄력이 붙을 겁니다.”
당관은 물끄러미 연호정을 바라보았다.
연호정은 찻잔을 전부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부터 추스르십시오. 대화는 나중에…….”
“앉아라.”
당관이 찻주전자를 들어 연호정의 잔을 다시 채워 주었다.
“몸이야 천천히 관리하면 돼. 지금은 내 몸보다 너와의 대화가 우선이다.”
당관답지 않게 진솔하고 담백한 말이었다.
다시 앉은 연호정이 웃으며 말했다.
“또 무슨 구실을 잡아서 욕을 하려고 그러십니까?”
당관이 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누가 들으면 내가 허구한 날 욕만 해 대는 줄 알겠구나.”
“저랑 만나면 뭐 거의 태반이 욕이었지요.”
“자기한테 유리한 기억만 끄집어 와서 날조해 대는 건 여전하구먼.”
“살기 편한 방법이죠.”
결국 당관의 얼굴에도 웃음이 깃들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혈시라고?”
대뜸 진지한 얘기였다.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들었습니다.”
“혈교 최악의 강시라…… 정말이지 그 미친놈들은 별의별 걸 다 만드는군.”
“강시라고 한다면 당가도 일가견이 있지 않습니까?”
당관이 역겹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가 아무리 독해도 천도(天道)를 어기면서까지 세를 불린 적은 없다. 저승길 가기도 바쁜 이들 잡아다 부리는 짓거리,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온다.”
“강시를 만들거나 하진 않았지만 연구는 계속해 오신 걸로 압니다.”
“뭐, 그건 그렇지.”
역사상 사교 무리가 난을 일으킨 것이 혈교만은 아니었다.
마도학을 익힌 고수가 종교를 만들어 사교를 만드는 경우가 꽤 많았는데, 그중에는 놀랍게도 고대 마공이나 사공까지 섭렵해 강시를 제조하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그들이 만든 강시는 광혈교의 그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었지만, 시체를 움직이게 만드는 술수 자체가 혹세무민(惑世誣民)을 유발했다.
그럴 때 적극적으로 움직인 것이 당가였다. 당가의 독술과 의술은 천하에서 손꼽히는지라, 강시들을 연구해 해약이나 대응책을 만들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슬쩍 보고 왔다. 정신이 거의 나갔더군.”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 곤란해.”
“예?”
“본가 의원들과 독룡각 연구원들도 함께 살폈는데…… 엄밀히 말해서 그건 강시가 아니다.”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지 않았으니까요.”
“맞아. 죽은 시체의 혼을 끄집어내 주인에게 예속시키거나 술법을 이용해 강제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강시술이다. 즉, 하 선배의 아들은 강시가 된 게 아니라 일종의 섭혼술에 당한 셈이다.”
당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이게 묘해. 말이 섭혼술이지, 사실 섭혼술로 분류할 수도 없어. 일반 섭혼술보다 훨씬 고차원적이고 기괴한 술수로 제련된 마물이다.”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다행히 아직 목숨이 끊어지진 않았지만,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알 수 없어. 그 청년 몸에 가득 찬 마기는…… 내가 본 마기 중 두 번째로 막강했다.”
“…….”
“원래대로 되돌리기 힘들다. 가능성이 무척이나 희박해.”
연호정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 부분 말인데, 혈시를 부리던 술사 놈을 털어서 나름대로 방도를 찾았습니다.”
“뭐?!”
“아마도 제가 아니면 시도조차 힘든 일일 겁니다.”
“…….”
“물론 저라고 완벽한 건 아닙니다. 상단전을 다스리는 도가 심공(心功)까지 필요한 일입니다. 거기까지 가야 강시화(殭屍化)된 육체를 정상으로 돌릴 수 있을 듯합니다. 그 정도는 진행된 연후에 당가의 의술이 필요해질 겁니다.”
가만히 연호정을 바라보던 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네놈이 아무런 수확도 없이 그냥 왔을 리는 없지.”
“아슬아슬했습니다.”
“도가 심공이라…….”
잠시 고민하던 당관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기가 막힌 걸 아는 사람이 하나 있다.”
“기우희 말입니까?”
“그건 또 어떻게 알았냐?”
연호정이 서쪽으로 눈을 돌렸다.
“녀석의 영력은 한번 접하면 쉽게 잊기 힘들어요. 신경 쓰지 않을 때는 몰랐는데, 이곳에 도착한 후 머리를 자극하는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허.”
“저와 의정군이 사천에 진입한 지 얼마 안 지나서 들어온 모양입니다.”
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천에서 또 일이 터진 걸 들었던 모양이다. 의원들 몇을 데리고 들어왔는데, 보통 강단이 아니야.”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나저나 네놈의 그 능력은 뭐냐? 그 아이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별거 아닙니다.”
“그게 왜 별거 아니냐. 인간 같지 않은 능력인데.”
연호정이 고소를 지었다.
“인간이 인간답지 않은 능력을 얻어 봤자 어디다 씁니까?”
“……?”
“사람은 사람다울 때 좋은 겁니다. 그렇게 치자면 가주님도 위험해요.”
“너만 하겠냐.”
“그러니까 조심하십시오. 저는 얼마 전, 인간성을 크게 상실할 뻔했습니다. 저 자신이 이뤄 낸 능력에 홀려 버렸지요.”
“…….”
“다행히 깨달음이 있어 예전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나름의 곡절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당관이 코웃음을 쳤다.
“이런 순간에도 제 자랑을 하고 싶더냐? 재수 없는 건 여전하구먼.”
“하하.”
“웃지 마라. 정든다.”
말과는 달리 당관은 연호정의 모습에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많이 달라졌다.’
연호정 특유의 성격이 있다. 빠르고 과격하지만 그만큼 치밀하고 정교한, 그러면서도 내 사람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인간적인 면모.
그래서 대단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했다. 연호정은 어지간한 사람은 쉽게 짊어질 수 없는 걸 지고 살았다.
타고난 성정과 강단이 대단해서 버틸 뿐, 언제고 무너질 것 같은 아슬아슬함이 있었다. 당관이 연호정에 대해 걱정했던 게 바로 그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세상을 보고 있지만,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자유로움이 엿보였다. 홀가분해 보이기도 하고 여유로워 보이기도 했다.
‘한데도 위태로움은 그대로야.’
당관이 차를 홀짝였다.
‘어쩌면 보는 이로 하여금 위태로움을 느끼게 하는 그 분위기가 너를 너답게 만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놀랍게도 당관은 그런 연호정에게 안쓰러움을 느꼈다.
당관 역시 당가를 넘어 사천인들의 안전과 평화라는 짐을 어깨에 이고 살고 있지만, 연호정은 천하 전체를 등에 업고 있었다.
누가 그런 걸 부탁한 적도 없는데 홀로 짊어졌다. 그 의지와 배포 덕분에 삼교와 여기까지 싸울 수 있었으니, 천하인들 모두가 그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 것인가.
‘나도 한 번씩 그 무거움에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있는데, 너는 어떠냐?’
실제로 악몽을 꾼 적도 많았다. 누구에게 말 못 할 얘기지만, 그런 날이면 오히려 웃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연호정에겐 그런 것도 없었다. 가끔 지쳐 보일 때는 있지만, 언제 봐도 다른 게 없었다.
강한 놈이었다. 대단한 녀석이었다.
그래서 더 안쓰럽고 마음이 갔다. 첫 만남은 최악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연위와도 우정을 쌓고 함께 발전하며 여기까지 온 사이다.
어느새 당관은 연호정을 한 명의 친구이자 애틋한 조카처럼 여기고 있었다.
“왜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십니까? 부담스러운데요?”
“……싸가지만 좀 챙겼으면 더 좋았을걸.”
“예?”
“됐다.”
당관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마기가 증발하니 몸에 활력이 솟는다. 굳이 운공을 하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몸이 괜찮아지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마기가 남기고 간 흔적은, 마음에 남은 충격은 여전했다.
“싸가지.”
“말씀하십시오.”
“너.”
당관이 눈을 감았다.
“그놈, 이길 수 있겠냐?”
연호정은 당관이 누굴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대답 없는 연호정을 향해, 당관이 말을 이었다.
“나는 그놈과 마주했다. 역천신주인지 뭔지 하는 마물을 품에 안은 그놈의 공격을 받았어.”
“…….”
“솔직히 말하마.”
다시 눈을 뜬 당관의 얼굴에선 놀랍게도 두려움을 이겨 내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사문향이라는 존재가 아닌, 그 형용할 수 없는 마기와 역천을 향한 두려움이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초월적인 무언가를 향한 두려움은 천하의 당관으로서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나는…… 세상 모두가 덤벼도 그놈을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
“하지만 그나마 놈에게 한 방 먹여 줄 가능성이라도 있는 자를 꼽으라면, 너밖에 생각이 안 난다.”
당관이 힘겨운 얼굴로 물었다.
“할 수 있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