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400)
흑백무제 1400화(1400/1424)
1400화. 완성의 시간 (10)
조홀은 가만히 연위를 바라보았다.
노려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멍하니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다. 눈빛 자체가 흐리멍덩해서 의도를 읽을 수가 없었다.
‘엄청난 마기구나.’
연위의 이마에 식은땀이 어렸다.
‘아까 그 마인보다 훨씬 더 강해.’
그야말로 살아 있는 악(惡) 그 자체다.
마기의 밀도는 비슷했지만, 그 밀도 높은 마기를 이용해서 기파를 발산하는 방식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사왕이구나. 사왕 중에서도 최고 경지에 이른 자일 것이다.’
강소성 전쟁에서 붙었던 그 단공이라는 놈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겠다. 낮게 봐도 단공과 동급이라고 할 수 있을 터.
단공과의 싸움에서 손해를 본 연위 입장에선 꽤 버거운 상대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도망친다면 문제 될 건 없었다. 연위는 더 이상 예전처럼 완고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은 한 절대 함부로 목숨을 걸지 않았다.
동시에, 무인다운 결기를 잃어버리지도 않았다.
‘승부가 가능하긴 할 것이다.’
애초에 단공과의 싸움에서는 여의파검조차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자칫 잘못하다간 주변의 아군까지 휩쓸릴까 싶어 위력을 조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검력에 휘말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저자도 마인이다. 그것도…….’
순간 연위의 눈에 기광이 떠올랐다.
‘호정에게 당한 자로구나.’
아들이 품은 그 찬란한 기운이 저자의 몸속에서 미친 듯이 발광하고 있었다.
연위의 얼굴에 여유가 깃들었다.
아들의 기운을 느낀 것만으로도 긴장했던 마음이 알아서 풀어졌다. 그에게 연호정은, 아들은 그런 존재였다.
“긴말할 필요 없겠지.”
우우우웅.
제국검이 웅혼한 검명을 터트렸다.
자욱하게 흘러나오는 검극사기는 연가신단의 힘으로 최대치의 예기를 뿜어냈다.
연위의 몸 전체를 뒤덮은 무형의 검기는 완벽한 방어막이자 치명적인 공격력을 자랑했다. 연위의 일 장 거리 안쪽으로만 들어와도 무형의 검기에 베여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다.
“너희가 마인임을 안 이상, 이대로 보내 줄 수는 없다.”
조홀의 입이 열렸다.
“비켜라. 너는 허락받지 못했다.”
“너희에게 허락을 구한 적은 없다.”
“비키지 않으면 죽이겠다.”
연위의 눈에 엄기(嚴氣)가 치솟았다.
“무고한 민간인들을 상대론 기회 한번 주지 않고 학살을 자행한 놈들이 이제 와서 발을 빼려느냐?”
“…….”
“하긴, 이런 말도 필요치 않지?”
화아아악!
점점 강렬해지는 전투 의지.
조홀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으르릉.
마치 짐승의 울음소리와 같다.
쾅!
선공을 가한 것은 조홀이었다.
연위의 눈이 번쩍였다.
‘역시!’
엄청나게 빠르다.
속도도 속도지만, 직선이 아닌 미묘한 곡선을 그리는 몸놀림이 놀랍다. 공기의 결을 타고 올라오기에 직선의 움직임보다 더 빠른 속도를 내는 것이다.
번쩍!
조홀의 주먹과 연위의 검이 스치듯 부딪치며 섬광을 일으켰다.
후방 허공으로 날아오른 연위의 동작은 마치 한 마리 새를 보는 듯했다. 두 발을 땅에 박고 자세를 낮춘 채 주먹을 지르는 조홀의 모습은 바위로 만들어진 거인을 보는 듯했다.
가볍고 무겁다. 예리하고 강하다.
겉모습부터 구사하는 무공까지 모든 것이 다른 두 사람의 승부였다.
콰르릉!
허공에 뜬 연위를 향해 일장을 내지르는 조홀의 손에서 천둥소리가 울렸다.
마치 동굴 안에서 폭탄이 터지는 것 같았다. 쏟아져 나오는 장력 이전에 그 소리만으로도 고막이 터지고 균형을 잃을 것만 같았다.
연위의 제국검이 허공을 수직으로 베었다.
번쩍!
소리만 요란한 장력이 아니었고, 천둥이 없어도 벼락은 강했다.
우우우우웅!!
폭음도 없이 조홀의 장력을 가른 제국검이 지금껏 보여 준 적 없는 진동을 발했다.
조홀의 절대적인 마기를 대하며 검 자체가 지닌 파사현정의 기운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그 기운은 연위의 협기(俠氣)를 타고 흘러 몇 배의 예기를 발했다.
조홀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쾅!
사신군황보(邪神群荒步)를 밟아 가며 전진한 조홀이 군황신권을 펼쳤다.
‘강하다.’
이번에는 소리 없이 다가온다.
권풍이 근처에 오지도 않았는데 온몸의 근육이 죄다 뜯겨 날아갈 것 같았다. 몸 주변으로 둘러친 무형의 검기막이 저절로 떨어져 나가는 듯했다.
내공량만큼은 조홀이 절대적인 우위에 있었다. 게다가 역천신주의 마기를 받아들여 군황사공이 극성 이상으로 달아올랐으니 파괴력 역시 천하제일을 논할 만하다.
연위가 다시 한번 수직으로 검을 휘둘렀다.
철검대연삼십육식, 일필종단검(一筆縱斷劍)이었다.
촤아아아악!!
연가신단의 강력한 의지를 받은 제국검이 군황신권의 권풍을 정면으로 찢어 냈다.
같은 동작이라도 일검소혼과는 위력이 달랐다. 일검소혼이 속도에 중점을 두었다면, 일필종단검은 탄력 넘치는 붓질처럼 휘둘러 상대의 기공술과 무공을 파훼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물론 연위 정도의 실력이라면 같은 초식을 전혀 다른 해석으로 구사할 수도 있었다.
파박!
바람에 휘날리는 장포 자락이 새의 날갯짓을 보는 듯했다.
선(先)의 선(先)을 읽는 움직임이다. 조홀의 다음 동작을 신에 이른 영력으로 예측한 연위가 그의 측방으로 다가와 횡참을 그었다.
철검대연삼십육식, 일필횡격검(一筆橫擊劍)이었다.
콰아앙!
칼질은 날카로웠지만, 그 검기를 막은 조홀의 몸에서는 폭음이 울렸다.
종단검에서 이어지는 횡격검의 위력은 단순하지만 막강한 위력을 담고 있었다. 철검대연 자체가 위력적인 검법은 아니었지만, 고수의 깨달음을 가장 잘 수용하는 검법이었다.
그래서 정통이고, 그래서 가장 자유롭다. 연호정과의 관계 개선과 수많은 강호 경험으로 깨달음을 얻은 연위의 철검대연은 가히 천하제일을 논하는 신공절학이라 불릴 만했다.
푸스스.
연기를 피워 올리며 오 장 밖으로 날아간 조홀이 땅을 밟았다.
“……!”
연위의 눈이 깊어졌다.
어느새 조홀이 자신의 등 뒤에 나타났다. 마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의 의지가 느껴졌다.
연위가 차분하게 사선으로 몸을 비틀며 참격을 날렸다.
철검대연, 사교대검(斜交對劍)이었다.
서걱!
좌우 사선으로 휘둘러진 연환검에 조홀의 가슴 의복이 잘려 나갔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사교대검을 구사하며 물러났던 연위가 땅을 박차며 다시 나아갔다.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던 야율대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검합일(身劍合一)!’
찰나지간 돌진하는 연위의 몸이 한 자루 신검으로 화했다.
검이 커진 것도 아닌데 연위는 보이지 않았다. 빛나는 신검이 돌풍을 일으키며 전진하고 있었다. 그 무엇이라도 꿰뚫을 기세로, 그 무엇이라도 파괴할 의지를 담은 채.
철검대연, 일점도원검(一點圖圓劍)이었다.
퍼어어어엉!!
곧게 찌를 뿐인 일검을, 어쩐 일인지 조홀은 피하지 못했다.
폭음과 함께 날아간 조홀의 몸이 땅을 굴렀다. 이번 일격은 실로 막강했던 것인지, 무려 십오 장을 날아가고도 검력을 다 해소하지 못해 양팔을 마구 휘저어 경력을 분산했다.
‘엄청나다!’
야율대극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자신이 언제 정신을 차렸는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조홀을 상대로 무시무시한 검법을 보여 주는 연위의 모습에 경악할 뿐이었다.
‘동작 하나하나에 무공의 극의가 담겨 있다. 해석조차 되지 않아. 저런 깨달음을 어찌……!’
자세를 낮춘 채 검을 곧게 뻗은 연위의 모습은 천하제일의 명공이 그린 무사도(武士圖)를 보는 듯했다.
세로의 종격, 가로의 횡격에 이어 양 사선으로 내리치는 연환검을 구사한 뒤 필살의 자격(刺擊)으로 상대를 날려 버렸다.
동작은 단순했지만, 그 안에 실린 힘은 만근의 무게를 담고 있다.
어떤 영역이든 극에 이르면 단순해지는 법. 철검대연의 정통적인 검술을 단순화하여 자신만의 깨달음으로 녹여 낸 연위의 검은, 사음교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위험한 남자라는 조홀마저 압도했다.
‘역시 이상해.’
하지만 연위는 스스로에게 도취되는 취미 따위 없었다. 당연히 방심하는 취미도 없었다.
‘제국검의 강력한 항마력과 철검대연의 깨달음이 잘 살아났지만, 이 정도로 밀려날 만큼 약한 자가 아닐 터인데.’
성천의 누구라도 쉽게 막을 수 없는 연환 공격이었다.
달리 말하면, 쉽게 막을 수는 없어도 작정하면 막거나 피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깨달음 자체는 놀랍지만, 일격에 승부를 볼 만한 위력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조홀은 생각할 줄 모르는 짐승처럼 맞받아치기만 하다가 밀려 나갔다.
“당연히 끝이 아니겠지. 아니 그러냐?”
연위의 예측은 정확했다.
“크르르.”
이제는 이성을 완전히 잃은 모양이었다.
성대를 긁어 대며 일어난 조홀의 몸에서는 이전보다 더 강렬해진 마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지독하구나.’
천하의 연위조차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마기 앞에서는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자칫 침투라도 당하면 치명적이다.’
우우웅! 우우웅!
제국검이 또 한 번 강하게 울었다. 마치 걱정하지 말라는 듯, 스스로 예기를 뿜었다.
조홀의 자세가 낮아졌다.
마지막 일격에도 큰 상처를 입지 않은 듯 자세에 흔들림이 없었다. 마지막 일점도원검에 복부가 찔렸지만, 그 상처는 진즉에 나아 버렸다.
‘온다!’
쾅! 콰앙!
연위가 잡았던 그 마인처럼.
조홀 역시 두 손으로 땅을 찍어 가며 네발 달린 짐승처럼 돌진했다.
속도는 비슷했지만, 탄력은 비교할 수 없었다. 단 일격만 제대로 맞아도 그 부위가 산산조각이 날 것임이 분명했다.
‘이상하군.’
파아아아앙!
짐승처럼 허공을 할퀴는데 엄청난 마기가 휘몰아쳤다.
절묘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한 연위가 조홀을 스치듯 지나갔다.
촤아악!
조홀의 어깨에서 솟구친 피가 허공을 붉게 수놓았다. 제국검이 베고 지나간 자리였다.
화아악!
베인 곳에서 시커먼 연기가 치솟았다. 연위의 광명정대한 기운이 침투하며 마기의 일부를 증발시킨 것이다.
‘위력은 경탄이 나올 만큼 강하지만.’
터어어어엉!!
또 한 번 연위에게로 질주한다. 검에 베이고 마기가 증발했는데도 개의치 않았다. 아예 고통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콰르릉!
군황신권의 투로와 비슷한 손짓이었다. 조법도 아니고 장법도 아니지만, 초절정고수의 검기보다도 예리한 기운이 사방을 뒤덮었다.
연위의 몸이 한 줄기 빛살이 되어 쏘아졌다.
푸화아악!
이번 일격은 참으로 깊었다.
조홀을 비켜 가며 내친 다섯 번의 칼질이 어깨, 가슴, 복부, 허벅지, 등판을 갈라 냈다.
사람이라면 그 즉시 쓰러질 수밖에 없는 공격이었다. 상처가 극심했다.
치이이익!
하지만 이번에도 조홀의 몸에서는 불가해한 현상이 벌어졌다. 상처가 무서운 속도로 아문 것이다.
동시에 그의 몸이 시커먼 안개에 휩싸였다. 증발한 마기는 차마 떠나지 못하겠다는 듯 조홀의 몸을 맴돌고 있었다.
그때, 연위는 볼 수 있었다.
멍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위협적이었던 조홀의 눈동자에 이지(理智)가 번뜩이는 것을.
연위의 얼굴이 굳어졌다.
‘설마?’
쾅!
또 한 번의 질주.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내친 제국검이 조홀의 빗장뼈를 갈랐다.
촤아아악!
대량의 선혈이 쏟아졌다.
이번만큼은 조홀도 자세를 바로잡지 못하고 미친 듯이 땅을 굴렀다.
그리고.
끼아아아악!!
귀신이 울부짖는 것 같은 기이한 소리와 함께 대량의 마기가 증발했다.
“크으윽!”
조홀이 한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며 일어났다.
제대로 베인 빗장뼈가 이번에도 순식간에 아물기 시작했지만, 완전히 아물지는 못했다. 마기가 증발하며 초회복의 공능도 사라진 것이다.
연위의 얼굴이 차가워졌다.
“나를 이용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