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420)
흑백무제 1420화(1420/1424)
1420화. 혈신진격(血神進擊) (6)
콰앙!
폭음과 함께 마인 셋이 산산조각이 났다.
무지막지한 검력, 거대한 도끼날로 후려친 것만 같다.
곤륜의 비기 도룡검(屠龍劍)의 힘이었다. 용을 도살한다는 이름답게 한 자루 장검으로 개세의 위력을 뽐낸다.
“망할 놈들.”
그 눈빛만큼이나 차가운 목소리로 죽은 마인들을 욕하는 여국.
가볍게 납검하는 그 자세는 이미 일가를 이룬 무인의 그것이다. 이미 본산 장로급 이상의 무력을 손에 넣어 곤륜 최고의 기재라 불리는 그였다.
“소림과 무림맹이 있는 하남에서 용케 날뛰고 있군.”
사천에서 하남까지 이동하며, 그들은 몇 번이나 마인들을 마주했다.
그들 모두가 삼교의 마공을 몰래 배운 이들이었다. 삼교를 상대로 큰 전투가 몇 번이나 있었지만, 은밀히 파견된 세작들이 중원의 정기를 무너트리기 위해 마공을 전수한 시간도 꽤 오래되었다.
오래전에 뿌린 악의 씨앗들이 곳곳에서 개화했다. 의정군이 천하를 돌아다니며 온갖 마인들을 척살했지만, 아직도 숨어서 마공을 연마하고 죄 없는 사람을 살해하는 마인들이 많았다.
“그쪽은?”
“처리했어. 팽만호가 귀환하고 있다.”
“좋아.”
여국이 한숨을 쉬며 연호정의 곁으로 다가왔다.
“어째 마인의 숫자가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흐름을 읽었기 때문이다.”
“예?”
연호정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인들이라고 머리가 없는 게 아니야. 현재 무림은 삼교의 마지막 전력을 없애기 위해 모든 전력을 투입했다. 말하자면 힘의 공백이 생긴 셈이다.”
“……그렇군요.”
“그중 하남의 공백이 가장 크다. 당장 소림과 무당의 병력까지 총출동한 판국이니, 그 틈을 타서 마공을 연마한 사람들이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이다.”
여국의 얼굴이 흐려졌다.
“정말 무섭습니다. 놈들이 뿌린 마공들은 하나같이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들이에요.”
실제로 그들이 척살한 마인 중 태반이 흡정마공(吸精魔功) 종류의 마학을 익혔다.
초반에는 구결 해석과 내공 연마만으로 힘을 불릴 수 있지만, 익히면 익힐수록 타인의 생명력을 빨아들이지 않고선 성취를 보기 어려운 공부들.
한번 힘이 주는 마력에 취한 이들은 당연히 민간인들에게로 손을 뻗을 수밖에 없다.
힘없는 민간인을 제물 삼아 힘을 불리니, 자연스레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살인은 일상이 되고 겁탈, 방화 등 인성을 무너트리는 범죄가 횡행한다.
결국 평범했던 사람도 진짜 마인이 되는 것이다. 마공이 무서운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사람의 인성을 망가트리는 길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제시한다는 것.
“한 번씩 이런 생각을 합니다.”
“무슨?”
“우리가 하는 일이 정말 옳은 것일까.”
여국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의정군에서 가장 강한 고수로 손꼽히는 그였지만, 그만큼 생각도 깊다.
생각이 깊기에 고뇌도 깊고, 고뇌를 이겨 낼 때마다 성장한다. 나아가 성장한 연후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본다.
여국이 이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언제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마공을 익힌 자들도 결국 중원인들입니다. 아마도 힘이 없어 멸시당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요.”
“그렇겠지.”
“알고는 있습니다. 그들을 멈추게 할 방법은 죽이는 것뿐임을. 하지만…… 사람은 결국 연약한 존재가 아닙니까. 그들 역시 마공을 익히기 전에는 선량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무슨 소린지 안다.”
과거에도 그랬고, 먼 미래에도 결론이 나지 않을 주제다.
가장 큰 악은 이들에게 마공을 전수한 삼교다. 하지만 그들 역시 마공을 익히고 죄를 저질렀다. 그것도 누굴 폭행하는 정도가 아니라 생명을 빼앗고 정신을 파괴했다.
당연히 처단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들도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들면, 검을 휘두르기가 망설여질 때가 있다.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약자는 언제나 힘을 갈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약자라 하여 언제나 소심하거나 옳은 선택을 하는 게 아니야.”
“압니다. 그러나…….”
말을 하던 여국은 잠시 침묵하더니 연호정을 응시하며 물었다.
“성주님께서는 답을 내리셨습니까?”
“내렸다.”
“어떤 답입니까?”
“죽일 놈은 죽여야 한다는 것.”
“…….”
“저들의 과거가 어떻든, 저들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불행을 겪게 될 것이다. 이미 죽은 사람도 많아. 그렇다면 응당 죄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답을 내렸다고 언제나 단호해질 수는 없어. 나도 한 번씩 흔들릴 때가 있다.”
연호정이 저 먼 곳을 주시했다.
보따리를 들고 바쁘게 도망치는 민간인들이 보였다. 여국이 죽인 마인들이 노리던 사람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천하의 모든 사람을 다 구할 수는 없다는 것을.”
“…….”
“나는 내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만도 벅차다. 마인, 혹은 악인들의 속사정까지 알려 들면 정작 구해야 할 사람들을 못 구할 수도 있다.”
“…….”
“그래서 난 단호해지려 한다. 흔들리지 않으려 해.”
여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말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그 역시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제는 슬슬 북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지.”
하남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북상하려 했지만, 마인들의 소식을 듣고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결국 시간이 조금 지체되고 말았다.
“좀 놀랐습니다. 성주님이라면 혼자서라도 먼저 북상하실 줄 알았는데.”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나 혼자 가 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럴 리가요. 성주님의 무공이 천하제일이라는 건 온 세상이 아는데.”
“실제로 천하제일이라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다.”
“정말로 그리 생각하십니까?”
“그렇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로 연호정 역시 혼자서라도 북상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불길함이 그를 이곳에 붙잡아 두었다.
‘이 불길함…… 이제는 무시하겠다고 다짐했건만.’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미 그의 경지는 직감이 논리를 앞서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직감이 향하는 곳에는 마(魔)의 완전한 파괴가 있었다.
연호정의 성향, 나아가 황룡신왕공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었다.
지끈!
사문향을 떠올리자 머리 한구석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 왔다.
저도 모르게 머리를 짚은 그는 사나운 눈으로 북쪽을 바라보았다.
‘너는 무엇을 노리고 있는 거냐.’
사문향이 제정신을 차린 순간, 이전과는 달리 놈의 의도가 제대로 읽히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놈이 품은 마기의 밀도가 황룡기를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역천신주의 진짜 의도를 읽지 못하는 것과 같다. 차라리 역천신주였다면 다행이었을 터, 이성을 가진 사람이 그러한 마기를 다루고 있으니 더더욱 문제였다.
그때, 당관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머리가 아픈 게냐?”
“조금이요.”
“조심해라.”
“물론입니다. 언제는 조심 안 했던가요.”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당관이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머리를 두들겼다.
“나는 상단전을 주 단전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알 수 있어. 필요 이상으로 과사용된 상단전은 주인을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걸.”
“…….”
“너의 상단전은 당대 무림 최고에 가깝다. 하지만 넌 사람이야. 사람의 몸으로 신의 힘을 무한대로 다루다간, 언제고 파멸을 맞을 수밖에 없을 거다.”
“알겠습니다.”
연호정이 쓴웃음을 흘렸다.
그 부분은 당관보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걱정해 주니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사람이라…… 그래, 난 사람이지.’
사람이라서 걱정할 수 있고, 사람이라서 걱정을 끼치기도 하는 것이다.
“형님.”
“음?”
연지평이 다가왔다.
이곳까지 오며 말 한마디 제대로 섞지 않았지만, 동생의 눈이 언제나 자신을 향해 있음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말을 걸지 않은 건, 이 무리의 좌장인 자신의 정신이 심란해지지 않도록 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동생의 얼굴에 화색이 일었다.
“누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묵비?”
“예.”
연호정은 연지평에게서 서신을 건네받았다.
“호오.”
당관이 고개를 쭉 뺐다.
“뭐라고 왔느냐?”
“광혈교 본단을 치고 천효락의 여동생을 구출했다고 합니다.”
“잘했군.”
당관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연호정만큼은 아니어도 묵비와의 인연 역시 충분히 깊었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당가 무공의 구결까지 전수하지 않았던가. 제자라는 생각까진 안 하지만, 그녀가 무극에 올랐다 하니 뿌듯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뿌듯함만큼이나 경쟁심도 치밀었지만.
“최대한 빨리 이곳으로 오겠다고 하는데,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군요.”
연호정이 서북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묵비와 막원 선배 둘만이라면, 이르면 닷새 안에도 도착할 수 있겠지.”
그 거리를 떠올려 본 연지평은 혀를 내둘렀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이라면 닷새가 아니라 오십 일을 걸어도 도달하기 힘든 거리였다.
당관이 물었다.
“그 둘만 따로 올 거라고 보는 거냐?”
“아마 그럴 겁니다.”
연호정의 눈이 반짝였다.
“막원 형님은 몰라도 묵비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전투가 얼마나 치열한지 잘 알고 있어요. 단 하루 차이로 이길 전쟁에서 질 수도 있지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혼자라도 올 겁니다.”
“닷새라…… 설령 닷새 안에 도착한다 하더라도 싸움이 어떤 식으로 벌어질지는 모르는데.”
고수들의 싸움은 빠르다.
그들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범부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영역을 무대로 싸운다. 일반 사람은 며칠 걸려서 도달할 거리를 한나절 만에 주파하기도 하기 때문에, 무림의 전투는 빠르고 격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하루 만에 산서의 전투가 끝나 버릴 수도 있다는 소리다.
달리 말하면, 그것을 양측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서로 눈치를 보며 대응하는 시간이 늘 수도 있다.
결국 전투가 언제,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많은 병력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
“사문향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만약 놈이 산서에 모인 병력부터 증발시킬 생각이라면, 저와 당가주님 둘만큼은 지금 당장이라도 가는 게 좋습니다.”
“음.”
“하지만 만약 그놈이 산서를 무시하고 다른 곳으로 길을 잡는다면, 저희 역시 함께 움직이는 게 좋습니다. 개인이 아닌 부대의 이동이 아군에게 더 빠른 정보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 고민하던 당관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나는 우리만이라도 따로 이동하는 게 좋다고 본다.”
“역시 그렇습니까.”
“놈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는 것이 나아. 놈의 무력은 최강이다. 수천의 병력으로도 이길 수 없어. 쓸데없는 사상자가 나오는 것보다,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해서 힘의 균형을 맞추는 게 좋지 않겠냐?”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이다. 연호정 역시 그것이 최선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를 옥죄는 이 신호가 문제였다. 산서로 이동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눈앞이 핑 돌고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왜? 뭐 걸리는 거라도 있냐?”
“……아닙니다.”
결국 연호정은 판단을 내렸다.
자신의 감을 믿기로.
“당가주님께서는 당가 정예와 함께 북상해 주십시오. 저와 의정군은 하남에서 대기토록 하겠습니다.”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만에 하나를 생각한다면, 후방을 제가 맡는 게 낫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