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탕마멸사(蕩魔滅邪) (3)
“후우.”
“이제 깼느냐?”
“형님?”
“그래.”
모용우가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용군이 인상을 찡그렸다.
“많이 힘들었느냐?”
“……예.”
머뭇거리다가 기어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어지간히 힘들었어도 그렇지 않다고, 버틸 만하다고 말하던 모용우가 이번에는 순순히 인정한다. 정말이지 크게 고생한 것 같았다.
“대체 방장 대사가 왜 너와 비무를 한 것이냐? 물론 그만한 고수와의 비무는 굉장한 배움의 기회이긴 하다만.”
소림 방장 공공대사.
성천십삼좌의 일인인 권신(拳神) 무허(無虛)의 적전제자이자 구파일방, 육대세가의 수장 중 최고의 무공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자.
지닌바 무공을 드러낸 적 자체가 별로 없지만, 각파의 수장들은 성천십삼좌를 제외한 최강자가 공공대사라는 데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드러낸 적 별로 없는 무공만으로도 능히 천하를 떨쳐 울릴 만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당대 최강이자 무림 최고 전성기였다는 삼백 년 전의 절대자들과 비견되는 신선제왕의 가르침을 직접 전수한 사람이다. 백도 최강의 수장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고수가 비무를 해 준다?
그 가치는 억만금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필시 향후 무공 발전에 있어 엄청난 도움이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다만 굳이 이 시점에, 왜 직접 찾아오기까지 해서 비무를 해 주었는지가 궁금할 뿐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냐?”
“예. 분명 선의(善意)를 느꼈는데, 그마저도 모호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모용우의 목소리는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제아무리 그라도 공공대사를 입에 담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만한 이름값을 지닌 인물이었다.
모용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리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기실, 나조차도 아직 공공대사의 진의(眞意)를 파악하지 못했으니.”
분명 자비롭고 협의(俠義)를 위하는 마음에 한 점 불순물이 없는, 실로 정파다운 정파인이었다.
한데 속에 뭔가를 감추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을 위하는 마음은 진심인데, 그 이상의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정치적 노선은 중립을 유지하니, 최고 권력을 손에 넣으려는 모용군으로선 마음에 걸리는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하나는 확실하더군요.”
“음?”
“무공 말입니다. 왜 소림사를 백도 제일의 문파라 부르는지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모용군의 눈이 반짝였다.
“당연히 벅찼을 것이다만, 그리도 대단했더냐?”
“예.”
모용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림의 무공도 대단했지만, 방장 대사의 무공도 대단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방장 대사가 쓰는 무공이 곧 소림의 무공이거늘.”
“그것이…….”
모용우가 입맛을 다셨다. 난처함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조금…… 다릅니다.”
“다르다?”
“예. 물론 그분이 쓰는 무공은 소림의 무공입니다만.”
모용군이 고개를 저었다.
“뜻 모를 소리로구나.”
“저도 잘 표현이 안 됩니다. 하지만 정말 강했습니다. 넘어설 수 없는 벽이라는 느낌을 그토록 강하게 받은 것은 처음이었어요.”
“허어.”
“그래서 말입니다.”
피로로 물든 모용우의 얼굴에 은근한 흥분이 자리 잡았다.
“단초를 잡은 것도 같습니다. 무종지벽을 돌파할 수 있는.”
* * *
퍼어어엉!
허공을 꿰뚫는 폭음과 함께 공공대사의 신형이 땅으로 내려섰다.
연호정의 눈이 반짝였다.
‘역시 그런가.’
두 발로 땅을 딛는 공공대사의 몸에는 먼지 한 톨 묻어 있지 않았다.
호왕구벽세를 권형으로 풀어 내 가격했는데도 저렇다. 어지간한 절정고수라도 일격에 전투 불능 상태로 빠트릴 만한 주먹질을 손쉽게 막아 낸 것이다.
파아아악!
연호정이 공공대사의 맞은편에 섰다.
공공대사는 나직이 감탄했다.
“설마 내 움직임을 읽은 겐가?”
“그렇습니다.”
“허! 소림의 무공을 알고 있었는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한데 어찌?”
드르륵.
다시 광룡부를 치켜든 연호정.
어느새 그의 눈에 사색(四色)의 광채가 번뜩였다.
“약자로서 강자를 죽이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저절로 깨우치게 됩니다.”
쿠웅!
또 한 차례 대지가 흔들렸다.
처음 선보였던 진각보다 배는 더 거센 힘이었다. 강력한 진각으로 힘을 받은 연호정이 쏜살같이 전진했다.
‘오는가.’
공공대사의 동공에 은은한 금빛 광채가 어렸다.
‘정직한 전진. 그러나…….’
쿵! 쿵! 쿵!
산뜻하게 달려오는데도 발끝이 땅에 스칠 때마다 천지가 진동한다. 마치 산처럼 거대한 범이 달려오는 것 같았다.
‘신비하구나.’
보법이다.
보법은 보법인데, 절대 평범한 보법이 아니었다.
‘마치 보법조차도 하나의 공격처럼…….’
전진하는 기세만으로도 적의 전의(戰意)를 깎아 놓는다.
이건 연호정의 투지를 떠나 무공 자체에 그런 특성이 있다고 봐야 했다. 힘차게 전진하면서 기를 끌어모으는 운용 방식이 기가 막힐 정도로 세련되었다.
부우우웅!
햇살을 머금은 광룡부의 거대한 날이 공공대사의 쇄골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비스듬히 들어오는 일격. 단박에 가슴팍을 쪼개 버릴 기세였다.
공공대사의 얼굴에 묘한 흥분이 일었다.
‘이 범상치 않은 힘과 깨달음이란.’
간단한 동작 같아 보이지만 섣불리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공격이었다. 동작 이전에 공간을 제압하는 기파(氣波)가 상대의 반응을 모조리 읽고 있었다.
공공대사의 우장(右掌)이 도끼날을 정면으로 후려쳤다.
쩌어어어엉!
연호정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백호군림보로 힘을 있는 대로 끌어 올려 내친 일격이었다. 그 파괴적인 일격이 장법 일격에 튕겨 나간 것이다.
하나 공격이 통하지 않았을지라도 당황은 없다. 튕겨 나간 광룡부의 흐름에 몸을 실은 연호정이 그대로 고공각(拷空脚)을 차올렸다.
파아앙!
허공을 후려 찬 각법이 물결과도 같은 충격파를 일으켰다.
반보 좌측으로 물러나 발목을 움켜쥐려던 공공대사는, 순간 자신의 선택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런.’
우우웅!
허공에서 퍼져 나오는 충격파가 발목을 잡아채려는 손을 강하게 밀어 내고 있었다.
여기서 억지로 잡으려 했다간 곧바로 반격이 날아온다. 고수 간의 승부는 찰나에 결정되는 법, 굳이 통하지도 않을 수법을 강행할 필요는 없다.
훅!
이번에는 연호정이 놀랄 차례였다.
‘빨라!’
자세가 무너지며 허공에서 회전한 연호정의 눈에, 어느새 좌측 사각에서 치고 들어오는 공공대사의 주먹이 보였다.
연호정의 좌장(左掌)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섬전처럼 휘둘러지는 그의 왼손에는 현무기(玄武氣)가 담겨 있었다.
콰앙!
‘큭.’
연호정의 몸이 훨훨 날아 땅에 안착했다.
‘완벽히 막지 못했다.’
좌측 손목과 팔꿈치가 찌잉 하고 울렸다. 찰나지간 현무기를 운용했지만, 제대로 방어초를 구사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굉장하구먼.”
공공대사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진기(眞氣) 자체에서 느껴지는 강인한 반탄력도 뛰어나거늘, 철벽과도 같은 수비세(守備勢)까지? 그것도 한 손으로?”
연호정이 숨을 깊게 뱉어 냈다.
입을 열 새가 없었다. 제 할 말을 끝낸 공공대사가 또다시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파파파팡!
쏟아져 들어오는 소림의 금강권(金剛拳).
눈이 돌아갈 만큼 빠른 속도는 둘째 치고, 공기로부터 전달되는 권압(拳壓)이 상상을 초월했다. 절기(絶技)를 쓰지 않았다고 방심했다간 전신의 뼈마디가 박살 날 것이다.
콰앙!
지금까지의 싸움 중 가장 강한 백호군림보를 밟은 연호정이 호왕구벽세를 터트렸다.
쩌저저저정!
굉장한 접전이었다.
공격(攻擊)이라는 의도에 가장 이상적인 형(形)을, 그것도 순간순간 대응하여 휘두르는 광룡부에 맞서면서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권법절기를 보여 준다.
‘천년소림의 적수 없는 권법이라…….’
폐가 터질 것처럼 숨을 들이쉬어 지구력을 쌓아 놓고, 주작기로 폭발적인 혈류량을 뿜어 혼신의 힘을 다해 공격했다.
천근의 무게로 밀어붙이는 강철의 공격이다. 한데 그 공격이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막힌다. 빈틈도 없고, 뚫릴 기미도 보이지 않아.’
완벽하다.
공공대사의 특별할 것 없는 권법이 광룡부의 모든 공격을 쳐 내고 있었다.
심지어 방어도 아니다. 공공대사 역시 마주 공격해 오고 있을 뿐이다. 두 사람의 공격이, 투기가, 힘이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놀랍구나.’
공격은 곧 최선의 방어다.
연호정의 무공은 그런 식이었다. 심지어 방어초인 현무기로도 공격을 감행하는 공격형 무인이 그였다.
그게 공공대사도 가능한 것이다. 심지어 공공대사는 소림의 유명한 절기는 꺼내 들지도 않은 상태였다.
연호정의 안광이 번쩍였다.
‘아버지보다도 위!’
콰아아앙!
교차한 팔뚝을 짓누르는 광룡부에 공공대사의 두 발이 땅으로 두 치나 파고들었다.
주르륵.
진짜로 찍어 죽일 기세로 내리친 공격이었다. 그 공격을 방어한 공공대사의 팔뚝에 핏물이 번졌다.
고작 그 정도.
사람 몇 명을 그 자리에서 박살 낼 도끼질을 맨몸으로 막아 내고도 피육만 상한 게 전부다.
“……이번 건 위험했구먼.”
쾅!
폭음과 함께 연호정이 주르륵 물러났다.
그의 눈이 흔들렸다.
‘허?!’
후우우우웅.
공공대사의 몸에서 은은한 황금빛 서기가 일었다. 마치 피부 자체가 금빛으로 변한 것 같다.
공공대사가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본사의 절예(絶藝)를 끄집어내지 않고서는 여기까지가 한계인 듯싶구먼.”
공공대사의 팔을 보다가 자신의 도끼날로 시선을 돌린 연호정이 혀를 내둘렀다.
“그게 그 유명한 금강불괴신공(金剛不壞神功)입니까?”
“그렇다네.”
공공대사가 미소를 지었다.
“대체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타인과의 비무에서 이 무공을 끌어 올려 본 것이.”
“후우.”
연호정이 숨을 골랐다.
조금 전의 폭발적인 부딪침으로 심폐가 뜨거워졌다. 그 역시 일대일 대결에서 이 정도로 힘을 끌어다 쓴 적은 처음이었다.
아버지와의 비무를 제외하면.
촤르르륵!
오른손으로 광룡부를 든 그가 왼손으로 상체에 둘러 둔 교룡쇄를 풀었다.
어느새 호흡을 안정시킨 연호정이 웃으며 말했다.
“이차전 가 보시…….”
“여기까지 할까?”
“……예?”
연호정이 눈을 끔뻑였다.
“여기서 그만하자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왜, 왜요?”
연호정은 당황했다.
초전부터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아직 기력이 충분히 남아 있었다. 체력 조절만 잘한다면 반나절은 더 싸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공대사는 냉정히 고개를 저었다.
“자네에게 더 이상의 비무는 필요 없을 것 같네.”
“세상에 비무가 필요 없는 무인이 어디 있습니까?”
“허허, 그 말은 참으로 옳네만, 이젠 내가 줄 것이 없어서 그렇다네.”
“……?”
공공대사가 뒷짐을 졌다.
더 이상의 싸움을 원치 않는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 준다. 진짜로 자세를 풀어 버린 공공대사를 보니, 연호정 역시 김이 샐 수밖에 없었다.
‘아직 청룡공(靑龍功)과 교룡쇄는 꺼내 보지도 못했는데.’
무공을 다 받아 주겠다기에 이 기회에 제대로 연마해 볼 생각이었다.
한데 치사하게 대뜸 그만하잔다. 상대가 원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연호정이 투덜거리며 자세를 풀었다.
“좋은 기회였는데 아쉽군요.”
“허허, 좋은 기회라? 나를 상대로 새로운 무공을 연성해 보려고?”
“알고 계셨습니까?”
“움직임에서 보이더군. 게다가 그 쇠사슬, 다룰 수는 있지만 수월해 보이지는 않는구먼.”
날카로운 안목이었다. 무공을 통해 상대가 원하는 바를 읽어 내고, 움직임을 통해 상대의 수준을 알아챈다.
“걱정하지 말게. 자네 정도라면 굳이 나를 통해서 연마할 것도 없으이. 충분한 수련을 마친다면, 바로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을 걸세.”
“쩝.”
공공대사의 눈이 깊어졌다.
연호정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
“……?”
“이보게, 연 군장.”
연호정은 저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했다. 이전과는 목소리의 무게감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말씀하십시오.”
“이만 멈추었으면 하네.”
“무엇을 말씀입니까?”
맑고 깊었던 공공대사의 눈빛이 일순 송곳처럼 날카로워졌다.
“모용가주에게는 내 잘 말해 둘 터이니, 양쪽 모두 정쟁(政爭)을 멈추었으면 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