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246)
246화. 부활의 시간 (2)
퍼어어엉! 우지끈!
튕겨 나간 경력에 나무가 밑동부터 부러져 쓰러졌다.
마음먹고 내친 일격도 아니요, 한 차례 막아서 튕겨 나간 탓에 약해질 대로 약해진 경력만으로도 나무가 부러졌다. 이 싸움에 얼마나 치명적인 살초들이 난무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연호정이 손등을 빠르게 올려 쳤다.
터어엉!
곧게 날아오던 협봉검이 무서운 속도로 튕겨 나갔다.
크나큰 허점이 눈에 들어왔다. 연호정은 그 허점을 놓치지 않았다.
파아아악!
무서운 속도로 찌르고 들어가는 관수(貫手)가 사혼조원의 목을 꿰뚫었다.
퍼어억!
목을 꿰뚫은 손끝에서 전사(轉絲)의 힘을 품은 경력이 올올이 풀려 나왔다. 사혼조원이 그대로 쓰러졌다.
동시에 연호정은 이번 일격이 함정임을 깨달았다.
‘쳇.’
파바바바박!
사방에서 협봉검이 날아들었다.
전후좌우는 물론 상하까지, 어디로도 피할 곳이 없었다.
‘죽을 줄 알면서도 자신을 미끼로 던졌단 말이지?’
연호정이 땅을 향해 장력을 내리쳤다. 연가의 비전, 반룡장(反龍掌)이었다.
콰앙!
대지가 진동하며 쏘아지는 협봉검의 검로들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지극히 미세한 틈이야말로 검격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탈출로다. 연호정의 두 손이 불가사의한 움직임을 보였다.
터터텅! 찌이익!
협봉검의 검신을 후려치며 빠져나간 그의 옷자락 곳곳이 뚫렸다.
찰나만 늦었어도 몸통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후우우.”
가볍게 숨을 내쉰 연호정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빌어먹을.”
싸움이 시작된 지 벌써 반 시진이 지났다.
반 시진 동안 그가 죽인 사혼조원은 고작 열둘에 불과했다. 아직도 열여덟 명의 고수가 남은 것이다.
‘처음인가.’
회귀한 이후 무서운 속도로 무공을 연성했지만, 아직 세상에는 그보다 강한 자들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그보다 강한 자는 많을지언정, 그처럼 실전에 능하고 적의 약점을 파악하는 능력이 비상한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바로 그것이 연호정 최대의 무기였다.
실전 감각은 무수한 전투로 연마된 것이었지만, 적의 약점을 꿰뚫어 보는 능력만큼은 가히 선천적으로 타고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두 가지 능력이 연호정을 희대의 싸움꾼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금껏 죽고 죽이는 싸움에서 단기간에 승부를 내지 못한 적이 없었다.
한데 지금은?
‘이놈들…….’
사혼조원들은 자세를 낮춘 채 연호정을 주시하기만 할 뿐, 절대 먼저 공격해 오지 않았다.
겁을 집어먹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사혼조는 목표물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한다. 게다가 어떤 내공을 연마했는지, 잠시 호흡을 고르는 것만으로 소모되었던 진기를 놀랍도록 빠르게 회복시켰다.
심지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파아아악!
그들의 정면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접근하던 연호정이 일순 방향을 전환했다.
퍼어엉!
낙엽 가득한 땅이 폭발했다. 어느새 연호정은 사혼조의 우측 끝, 가장자리에 있는 조원을 향해 각법을 내치고 있었다.
콰앙!
사혼조원들의 반응은 엄청나게 빨랐다.
경력의 폭발을 일으킬 정도로 막강한 각법이다. 위력 이전에 속도에서 이들을 한참이나 앞섰다.
한데도 막혔다. 그 잠깐 새에, 목표물 주변으로 달라붙은 세 명의 조원들이 각법의 충격파를 해소한 것이다.
‘경력 분쇄. 회피도 회피지만, 이놈들의 방어력은 유독 빼어나다.’
연호정이 쌍권을 휘둘렀다.
파파파파팡! 퍼억!
여덟 번을 질러 한 번의 공격을 성공시켰다. 그마저도 얼굴이나 흉부가 아닌 어깨를 후려친 것이었다.
본래라면 목이 부러지거나 흉골이 부러져야 했다. 그랬다면 즉시 후속타로 시야를 어지럽힌 후, 하나씩 하나씩 공략에 들어갔을 것이다.
‘실전에도 능하고.’
찌이이이익!
협봉검의 검첨에 피풍의 끝단이 길게 찢어졌다.
‘공격은 바늘처럼 날카롭다.’
연호정의 몸이 빠르게 회전하며 백색의 돌풍을 일으켰다.
콰르르릉!
화려하게 비산하는 백호기가 삭풍이 되어 사혼조를 공격했다.
권각이 아닌 내공 경파로 후려치는 공격이었다. 내공 소모가 심하다는 단점이 있는 대신, 전방위 공격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파바바바박!
사혼조원 모두가 후방으로 물러났다.
비할 데 없는 방어초를 연성했지만, 그럼에도 연호정의 무공은 지나치게 위협적이었다. 사혼조가 만들어진 이래, 지금처럼 조원이 많이 죽은 적은 없었다.
연호정 인생에 사혼조 같은 놈들이 없었듯, 사혼조에게도 연호정처럼 위협적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펑! 콰드드드득!
이미 싸움이 벌어진 장소 일대는 공터라 불러도 이상할 게 없었다. 사방이 탁 트이니, 내리쬐는 달빛이 시야를 한층 밝혀 주었다.
“후우.”
가볍게 숨을 내쉰 연호정이 눈을 빛냈다.
‘지금쯤이면 강량과 만났을 거다.’
사혼조의 능력은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다.
하지만 연호정 역시 전심전력을 다한 게 아니었다. 이 싸움의 목적은 적의 시선을 자신에게 붙잡아 두고 아군의 도주 시간을 벌어 주는 것이지, 적을 몰살하는 것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쓸데없이 열을 올릴 필요가 없다. 반 시진에 가까운 접전 속에서도 연호정이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였다.
‘적당히 시간을 끌자. 앞으로 반 시진만 더. 그 뒤로는 나 역시 북상하면 끝나는…….’
그때였다.
삐이이이이이익!
사혼조원 하나가 작은 뿔피리를 불었다.
큰 소리는 아니지만, 소리 자체가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제때 내공을 끌어 올리지 않았다면 순간적으로 청력이 상실될 뻔했을 정도로 기묘한 소리였다.
연호정의 얼굴이 굳어졌다.
우우우우우웅.
벽라진결을 극도로 끌어올려 기감을 확장하니, 저 멀리 동쪽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일단의 무리가 느껴졌다.
“……이봐들, 이건 좀 아니지 않아?”
또 다른 사혼조의 소환이다. 자신들만으로는 이 싸움을 끝낼 수 없다는 걸 확신한 것이다.
‘제기랄, 이럴 줄은 몰랐는데.’
반 시진에 가까운 접전을 벌였는데도 추가 병력이 합류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행을 쫓던 참백단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연호정으로서는 당연히 이들만 물리치면 끝이라고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판단은 오산이었다.
차라리 참백단이라면 모를까, 같은 숫자의 사혼조 한 개 조가 또 붙는단다.
‘이렇게 된 이상.’
후우우우우웅.
낮게 불어오는 바람에 피풍의가 펄럭였다.
심상치 않은 기파를 느낀 사혼조, 그들 모두의 눈에 긴장이 드리워졌다.
“이제부터는 좀 뜨끈할 거다.”
연호정의 두 눈에 적백(赤白)의 안광이 솟구쳤다.
파아아아앙!
안정적인 벽라진결을 이용한 천종운행비와는 그 탄력과 속도부터가 다르다.
과다한 내공 소모를 감수하기로 한 연호정, 비로소 그의 발 옆으로 주작의 날개가 달렸다.
콰아앙!
무서운 위력이었다.
홍염육살공, 일익비살(一翼飛殺)의 투로를 따라 내리친 일장(一掌)에 사혼조원 하나의 빗장뼈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큭!”
사혼조원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쇄골이 부러졌다. 사람이라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빠각! 콰득! 퍼어어억!
우중단 수도(手刀)가 갈비뼈를 부수고 좌측방 슬격이 고관절을 부쉈으며 턱에 날린 반장(半掌)이 턱뼈를 부숴 버렸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였다. 사혼조원 하나가 방어 태세조차 취하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당황한 사혼조원들이 일제히 협봉검을 휘둘렀다.
순간 연호정의 몸이 굽이치는 물결처럼 움직였다.
후우우우웅.
묵직하고 느릿한 움직임. 하지만 어느새 그의 몸은 사혼조원들을 지나쳐 후방을 점하고 있었다. 현무공의 괴주부동(怪柱不動)이었다.
청룡기를 얻으며 변화한 것은 주작과 백호만이 아니었다. 몸의 부담을 그 즉시 해소할 수 있으니, 무거운 보행으로도 공격을 흘려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당황한 사혼조원들이 곧바로 몸을 틀었다.
하지만 늦었다. 후속 병력이 들이닥치기 전에 이들만이라도 몰살시키겠다 작정한 연호정이다. 지금의 그는 타고난 전투 감각과 약점을 꿰뚫어 보는 눈, 파격적인 속도와 무한한 파괴력까지 손에 넣은 희대의 괴수로 돌변해 있었다.
연호정의 좌각(左脚)이 엄청난 속도로 좌우를 연타했다.
퍼버버벅!
진기의 폭발과 하체의 탄력을 이용한 각법이었다. 거기에 백호의 송곳니를 둘러 놓으니, 사혼조원 다섯이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무지막지한 위력이었다.
경력을 분쇄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힘도 힘이지만 아예 다른 차원의 속도를 내니, 제대로 된 반응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후웁.’
물론 연호정이라고 멀쩡하지는 못했다.
청룡기를 제외, 삼신의 기예를 폭발적으로 구사하는 중이다. 힘이 낭비되더라도 최단 시간 안에 승부를 보려 하니, 그만큼 내공과 체력이 쑥쑥 깎여 나가는 기분이었다.
파아아아악!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 사혼조원들의 검격은 마치 그리 말하고 있는 듯했다.
꼬챙이로 찌르듯 내질러진 협봉검이 연호정의 의복을 그대로 뚫어 버렸다.
푸우욱!
사혼조원들의 얼굴이 싹 굳어졌다.
‘없다?!’
펑퍼짐한 피풍의가 허공에서 펄럭였다. 정작 피풍의를 걸치고 있던 사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사혼조원 하나가 외쳤다.
“산장(散掌)!”
콰아아아앙!
경력을 분쇄하기도 전에 날아든 묵직한 일격이 사혼조원 여섯을 그 자리에서 피떡으로 만들어 버렸다.
주작의 속도와 백호의 위압감을 더한 현무공의 북천십이벽(北天十二壁)이었다. 부술 수 없는 철옹성을 절벽에서 떨어트린 것처럼, 살벌한 위력을 내는 몸통 박치기에 죽은 여섯 조원의 몸이 거의 짓이겨지듯 조각나 사방으로 날아갔다.
“이, 이럴 수가!”
살아남은 조원들의 입에서 기어이 신음이 흘렀다.
몸통 박치기 한 방에 사신(死神)을 자처하는 사혼조 여섯이 손 하나 까딱 못 해 보고 죽었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위력이었다.
‘으득!’
연호정의 안색이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
무리한 공력 운용으로 내상을 입었다. 청룡기의 신묘한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어쩔 수 없다. 둘만 더…….’
그때였다.
연호정의 기감에 또 하나의 집단이 걸렸다.
‘……!!’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티이이이이이잉!
좌측의 어둠 속에서 검기가 날아들었다.
새로운 사혼조였다. 공터로 진입하자마자 연호정에게 검기를 쏘아 낸 것이다.
연호정의 두 눈이 불을 뿜었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그의 몸이 북쪽으로 향했다.
“도주한다!”
“잡아!”
파사사사삭!
새로이 보충된 또 다른 사혼조, 그리고 살아남은 기존의 사혼조원 몇이 연호정의 뒤를 쫓았다.
화르륵! 화르르르륵!
연호정의 몸에서 시뻘건 화염이 일렁였다.
주작기가 체외로 새어 나간다. 공력 운용에 이상을 겪고 있다는 뜻이었다.
스르르르.
자연히 신법의 속도도 느려졌다. 가장 폭발적인 기운인 만큼, 조절 없이 사용한 이후의 후유증도 클 수밖에 것이다.
파바바바바박!
사혼조와 연호정 간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이대로 가면 위험하다. 지금의 연호정으로서는 이만한 병력을 당해 낼 만한 내공이나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다. ‘지금’의 연호정은 그러했다.
하지만 그가 본래의 자신을 찾게 된다면.
그의 무공이 가장 강력한 위력을 발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
후우우웅!
연호정과 가장 가까이에서 달리고 있던 사혼조 조장의 눈이 번뜩였다.
‘저게 뭐지?’
일순 달빛을 가리며 날아오는 어두운 물체 하나가 있었다.
‘박쥐?’
아니다.
그것은 박쥐가 아니었다. 박쥐의 꼬리는 저리 길지도, 저토록 묵직해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허공을 가르며 날아온 시커먼 물체가 무서운 속도로 하강했다.
‘……도끼?’
그때, 사혼조장은 연호정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무렇게나 던지지 말라니까.”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
순간 연호정이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퍼어어어엉!
혼신의 힘을 다해 도약한 연호정.
그가 도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꽈아아악.
차갑게 식은 창대가 온몸의 신경을 짜릿하게 일깨웠다.
마침내 그의 손 안에 팔십 근이 넘는 거대 도끼, 광룡부라 불리는 희대의 병기가 잡혔다.
허공에 뜬 연호정이 몸을 돌렸다.
무시무시한 살기로 타오르는 두 눈, 무림맹 최고의 실전 부대 멸사군장의 눈빛이었다.
“죽여라.”
콰아아아앙!
나무와 바위가 박살 나며 오십 기의 기마가 들이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