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277)
277화. 갈등은 어디서 오는가 (2)
“……그렇게 나왔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들의 기세가 너무나도 흉흉하여, 일단은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가역소 호북 지부장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하면? 그 마녀에게 약재를 가져다주었단 말인가?!”
“일단은 그렇습니다.”
“천하의 머저리 같은 놈! 그따위 실수를 저지르다니!”
“예? 실수라니요?”
“호신쌍위, 당대 무림 최강의 후기지수이자 무림맹 유군 부대의 쌍두마차인 두 사람은 굉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들 스스로도 알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명성은 대문파 장로급 이상, 문주급에 필적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어린 나이에 그만한 명성을 쌓았으니, 주변에서 그 둘을 얼마나 견제하고 있겠느냐! 그 둘이 진정 우리를 공격하려 한다면, 우리는 그 즉시 무림맹의 봉공들에게 이 과격한 짓을 토로하면 그만이야!”
“아……!”
“우리 의신회는 중원 정통 의맥을 이은 의원 연합이다. 민간에서 보기에, 그런 의원들을 억압하는 무림맹의 무사들을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그, 그렇군요. 그 둘이 어떤 협박을 가하더라도, 무림맹은 우리를 쉬이 건드릴 수가 없는 것이로군요.”
“쉬이 건드릴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절대 건드리지 못한다! 우리가 분명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이런…….”
“가역소, 실력과 인망이 좋아 지부장 자리에 앉혀 놨더니만 역시나 정치에 능한 자를 앉혔어야 했다. 선조치 후보고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면 금물이라 하였거늘.”
“이제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어찌하기는 무얼 어찌해! 다음 계획으로 진입해야지!”
“다음 계획이라시면…… 설마?!”
“가역소를 그들에게 보낸 것은 그들을 설득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연호정은 몰라도 모용우는 대화가 통하는 인물이니, 그에게 마녀의 위험성을 인식시키라고 보낸 것이었어. 애초에 의술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멍청한 무인 놈들이 우리 말을 즉시 믿어 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저 의심의 씨앗 하나를 심으라고 보내 놨더니만 병신같이 놈들의 협박에 못 이겨 덜컥 당해 버리다니, 참으로 답이 없구나. 그런 놈을 믿고 어찌 큰일을 할 수 있겠는가!”
“부회주님, 그래도 상대는 무림맹입니다. 부회주님 말마따나, 그 계획을 실행하면 무림맹도 본격적으로 저희를 들쑤시려 할 겁니다.”
“상관없다. 어차피 우리가 전면에 드러나진 않을 테니까.”
“가역소 지부장이 말하기를, 이후 그 마녀에게 행해지는 어떠한 외압과 공격도 우리의 짓으로 간주하겠다고 했답니다.”
“내가 방금 했던 말은 다 잊어버린 게냐?! 그 두 놈 정도로는 절대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 우리는 그 시간에 무림맹의 봉공들을 공략할 테니까.”
“아……!”
“순진하게 의술을 배우던 시절에는 몰랐지. 그러나 너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세상은 실력만으로 살아갈 수 없어. 정치와 모략, 배신과 술수가 판을 치는 곳이다. 세상이 그리 더럽다면, 우리 역시 생존을 위해 진흙탕에 발을 디딜 수밖에 없겠지.”
“…….”
“준비토록 하라! 지금 당장!”
“아, 알겠습니다.”
* * *
다음 날.
히히히히힝!
선두에서 말을 모는 연호정의 얼굴은 굳을 대로 굳어 있었다.
모용우가 외쳤다.
“연제!”
“왜?”
“혹, 걸리는 거라도 있는가? 급하게 움직여야 할 때인 건 알지만, 그래도 너무 급한 것 같네.”
연호정이 인상을 찡그렸다.
“의신회가 어떤 조직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호북성을 좌우하는 지부장 정도라면 그만한 영향력이 있겠지.”
“나 역시 그리 생각하네.”
“하지만 자꾸 뭔가가 걸려.”
“걸리다니? 무엇이 말인가?”
“……글쎄.”
다른 걸 떠나, 그들은 의신회라는 조직과 접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들의 목표가 무엇인지,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활동하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흑암제 시절을 겪었던 연호정도 의신회라는 조직은 처음 들었다.
‘역사가 바뀐 건가? 새로이 만들어진 조직? 아니면 그때도 있었지만 철저하게 수면 아래서 활동한 건가?’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의신회란 조직에 대해 개방 역시 자세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들과 얽힐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가득상이 먼저 귀띔을 해 주었을 것이다.
‘즉, 우리는 그들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실제로는 별 볼 일 없는 조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경계해야 마땅했다.
모용우가 말했다.
“혹, 그들이 정말 서역신녀를 공격하기라도 할 것 같아서 그러는가?”
“모르겠어. 머리로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는데, 자꾸만 걸리는군.”
모용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연호정의 직감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직감은 단순히 기분상의 문제로 넘길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극치의 안목은 극한의 직감과 닿아 있는 법이었다. 모용우는 연호정의 안목을 믿는 만큼이나 그의 육감을 믿었다.
“일단 달려 보세. 빨리 가서 손해 볼 것은 없으니.”
“그래, 그러자고.”
두두두두두.
네 사람이 무서운 속도로 남하했다.
사나흘을 내리 달리니 금세 장강 줄기에 도착했다.
모용우가 한 선원에게 다가갔다. 덩치가 크고 수염도 거칠게 기른, 전형적인 뱃사람의 외모를 지닌 사내였다.
“이보시오.”
“음?”
모용우를 본 장한이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뭐요?”
뱃사람들 배포가 천하제일을 논한다더니, 과연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갑주에 검까지 찼다면 관부 소속이거나 무림인이 분명한데도, 불안해하기는커녕 콧방귀까지 뀌고 있었다.
모용우가 침착하게 말했다.
“서둘러서 장강을 건너야 하는데, 가장 빨리 출발하는 배는 어디서 구할 수 있소?”
선원의 눈이 반짝거렸다.
“어지간한 배는 다 빨리 출발할 수 있지. 돈만 넉넉히 쥐여 준다면 말이오.”
모용우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소?”
“얼마나 둘러보고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간 잘 찾아오셨소이다. 이곳 장강 줄기에서 우리 배만큼 빠른 쾌속선은 찾아보기 힘들지.”
“군마 네 마리도 태워야 하오만.”
“흐음? 그럼 날렵한 쾌속선 종류가 아니라 조금 더 큰 배가 필요하겠군. 건초도 넉넉히 준비해야 할 테고.”
“그렇소이다.”
“돈은 넉넉하오?”
“얼마나 필요하오?”
“많이 주면 많이 줄수록 좋지. 세상 모든 직종이 그렇듯, 우리도 주는 만큼 일하거든.”
쓸데없이 흥정할 시간이 없었다. 모용우가 품에서 전낭을 꺼내 들었다.
“이 정도면 되겠소?”
전낭을 받은 선원의 눈이 커졌다. 전낭 안에는 금원보가 무려 다섯 개나 들어 있었다.
“허, 허험! 돈 많으시구먼? 허허, 이 정도면 뭐 지금 당장이라도 띄워 드릴 수 있소이다.”
“고맙소. 그럼 당장 부탁드리겠소.”
“좋소이다. 오랜만에 화통한 손님들을 받았군. 아! 근데, 절차가 하나 더 필요하오.”
“절차라니? 어떤 절차 말이오?”
“소속 말이오. 군부(軍部)에서 오셨소?”
“아니오.”
“엥? 하면?”
모용우가 뒤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무림맹 유군 부대 소속이오.”
괜히 여기저기 떠들어서 좋을 게 없었다. 모용우는 주변이 혼란스러워지는 걸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선원의 반응은 생각보다 더 요란했다.
“……무림맹 유군 부대?!”
모용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선원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컸던 것이다.
“그렇소.”
“…….”
“왜 그러시오?”
가늘어진 눈으로 모용우를 보던 선원이 전낭을 다시 내밀었다.
“가져가시오.”
“……?!”
“가져가시라니까. 우리는 당분간 무림맹 소속원들은 태우지 않소이다.”
모용우의 눈이 흔들렸다.
“무림맹 소속원을 태우지 않는다니? 왜 그러시는 거요?”
“그건 댁이 알 바 아니오. 정 배를 타고 싶으면 다른 데를 알아보시구려.”
“아니, 이유라도 말씀해 주셔야…….”
“아, 됐다니까! 귀찮게 하지 말고 다른 데 알아보시오!”
그때, 연호정이 한 걸음 다가왔다.
선원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연호정의 어깨에 걸쳐져 있는 거대한 도끼에 순간적으로 압도된 것이다.
연호정이 웃으며 물었다.
“내 듣기로, 뱃사람들끼리 만든 조직이 몇 개 있다고 들었소이다.”
“그렇소만?”
압도된 것은 순간일 뿐이다. 선원은 특유의 시큰둥한 표정을 되찾았다.
“혹시 조직 차원에서 무림맹 소속을 받지 말라 시킨 것이오?”
“그건 댁들이 알 바 아니오.”
“과연 대단하시오.”
“……뭔 소리래?”
“뱃사람들 대부분이 무림의 고수 못지않은 호한(好漢)이라고 들었소. 다들 배포가 넘치고 겁이 없으며, 물길에서는 어지간한 무림인보다도 전투에 능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소.”
“허험!”
“험한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시는 분들이니, 그 용맹이 오죽 뛰어나겠소? 귀하를 보니 새삼 뱃사람들 하나하나가 뛰어난 사내들임을 실감했소이다.”
선원이 입맛을 다셨다.
“아부해도 못 태워 주오. 그만 가시오.”
“아부하는 것 아니오. 솔직한 감상일 뿐.”
“알겠으니 이만…….”
“한데 말이오. 뱃사람들이 중원에서 손꼽히는 호한이라는 건 알겠는데, 사기꾼일 줄은 몰랐소이다.”
선원의 얼굴이 대번에 험악해졌다.
“사기꾼이라니?!”
“이 양반이야 마음이 급해서 그냥 넘어갔지만, 금원보 다섯 개면 어지간한 쾌속선 두어 척은 살 수 있는 금액이오. 내 말이 틀렸소?”
“커험! 그게 뭐 어떻다고?”
“아무리 돈이 중요해도 그렇지, 그만한 돈을 받고서 선심 쓰듯 배를 몰아 주겠다니? 거짓으로 속이는 것만 사기인 건 아니외다.”
선원이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요? 어차피 이 거래는 무효외다.”
“당신이 한 짓, 동네에 일파만파 퍼져도 상관없는 거요?”
“마음대로 하쇼. 그게 뭐 어쨌다고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군.”
말은 그렇게 하지만 선원의 표정은 눈에 띄게 일그러져 있었다. 보아하니 그들 나름의 규칙이 있는 것 같았고, 그런 소문이 나서 좋을 것도 없을 듯했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그 소문, 퍼트리지 않겠소이다. 그러니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오.”
“허! 지금 나랑 흥정이라도 하겠다는 거요? 헛소리 그만하고…….”
“쾌속선 한 척만 사겠소.”
“……으잉?”
“당신들이 몰아 주지 않아도 좋소. 대신 금원보 다섯 개를 받고 우리끼리 탈 쾌속선을 내어 주시오.”
선원의 눈이 흔들렸다.
“설마 장강을 당신들끼리 넘어가겠다는 거요?”
“우리를 태워선 안 된다고 했잖소? 그럼 우리가 알아서 갈 수밖에.”
“미쳤군. 이 추운 겨울날 강에 빠지면 제아무리 무림인이라도…….”
“당신은 선택만 하면 되오. 다시 묻겠소. 이 돈을 받고 쾌속선 한 척을 파시겠소? 아니면 다른 뱃사람에게 이 멋진 기회를 넘기겠소?”
“……꿀꺽.”
“태워 주지 말라고 했지, 배를 팔지 말라고는 안 했을 것 아니오?”
“그, 그건 그렇지.”
연호정이 웃으며 전낭을 흔들었다.
“어디서 그런 명령이 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림맹 소속인 우리가 설마 한 입으로 두말을 하겠소? 걱정하지 마시고 이 좋은 기회를 잡으시구려. 아니, 그럴 필요 없이 당신 윗사람에게 지금 내가 한 말을 전해 주시오.”
반짝거리는 눈으로 전낭을 보던 선원이 이내 뒤를 향해 소리쳤다.
“야! 장칠!”
“예?”
“괴어(怪魚) 내와라.”
“괴어를요? 왜요?”
“이 새끼가 뒈지려고. 당장 안 내와?!”
“아, 알겠습니다.”
보아하니 경력이 오래된 선임이었던 모양이었다.
선원이 헛기침을 하며 전낭을 받았다.
“소문내지 마시오. 알겠소?”
“걱정하지 마시오.”
“커허허험! 근데 배를 몰아 봤소? 저 말들은 다 어쩌려고?”
“다시 돌아올 때까지 맡아 주시오.”
“허허허, 팔면 제법 비싸겠는걸?”
“…….”
“저 말들도 팔 거면, 쾌속선 하나 더…….”
순간 연호정의 두 눈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선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이봐.”
“……!!”
“이쪽은 참을 만큼 참았어. 그만 주절거리고 빨리 배나 내와.”
일각 후.
군마를 선원에게 맡긴 일행이 쾌속선을 몰고 장강을 건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