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280)
280화. 갈등은 어디서 오는가 (5)
“……?!”
빠르게 달리던 기우희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저자는……?’
전면에서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사람.
그 속도는 그야말로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었다. 하늘을 나는 새도, 사냥감을 덮치는 맹수도, 천하에서 가장 빠른 명마조차도 상대가 안 될 것 같았다.
기우희의 실력으로는, 그녀의 반사 신경으로는 거대한 도끼와 쇠사슬을 들고 달려오는 사람의 움직임을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일까?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속도로 달려오는 청년의 모습만큼은 확연히 보이는 듯했다.
마치 느려진 시간 속에 홀로 떨어진 것 같았다. 그 속에서, 기우희는 청년의 눈빛과 표정은 물론 그가 발산하는 폭발적인 존재감 하나하나를 전부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위험해.’
청년을 보고 느낀 첫인상은 그것이었다.
위험하다.
‘엄청나게 위험해!’
기우희는 저도 모르게 몸을 틀려 했다.
그때, 연호정이 재차 가속했다.
콰아앙!
무시무시한 열풍과 함께 날아오른 연호정이 단숨에 기우희를 뛰어넘어 후방으로 진입했다.
“꺄아아아악!”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온 비명이 산천을 울렸다.
연호정이 외쳤다.
“묵비!”
퍼어어엉!
순식간에 연호정의 뒤로 따라붙은 묵비의 손에 홍련궁이 들렸다.
타타타타탕!
무자비한 속사(速射), 무형탄(無形彈) 오연발이 모습을 드러낸 암살자들에게 쏘아졌다.
퍽! 퍼벅! 티이이잉!
묵비의 눈이 번뜩였다.
무형탄 세 발이 셋의 머리를 날렸지만, 남은 둘은 칼을 뽑아 튕겨 냈다.
‘빠르군.’
반응 속도가 훌륭했다. 게다가 내공과 검법의 수준 역시 뛰어났다. 철전이나 목전을 걸지 않은 궁술이었다지만, 어지간한 무공으로는 막기 어려운 관통력임에도 막아 냈다.
‘하지만 화살은 소모하지 않는다.’
혼자였다면 구룡파천궁의 절기들을 난사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지금 그녀의 옆엔 든든한 아군, 실전 무예의 화신(化神)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우우우우웅! 퍼어억!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진 광룡부 일격에 암살자 둘의 몸뚱이가 찢겨 날아갔다.
천근의 무게를 지닌 삭풍이 불어닥치는 것 같았다. 그 위압적인 일격에 뜯겨 나간 살점과 핏물이 허공을 가득 메웠다.
연호정의 발이 불을 뿜었다.
콰앙!
단거리를 초고속으로 돌파하는 화신(火神)의 질주였다.
혈익휘천으로 단숨에 숲의 입구로 진입한 연호정이 상반신에 묶인 교룡쇄를 쥐었다.
촤르르르르륵!
오른손에는 도끼, 왼손에는 교룡쇄다.
‘좌상단 둘, 좌하단 셋, 우중단 둘.’
수풀에 숨은 암살자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그였다.
연호정이 교룡쇄를 휘둘렀다.
촤르르륵! 퍼버버버벅!
좌상단부터 우중단에 이르기까지, 송곳처럼 날카로워진 교룡쇄가 단숨에 암살자 일곱의 몸통을 꿰뚫었다.
백호기도, 주작기도 아니었다. 바로 청룡기(靑龍氣)였다.
회피와 반격에 특화된 청룡공. 그 청룡공의 근간이 되는 청룡기는 병기의 성질을 자유롭게 만드는 특성이 있다. 일격필살의 용도가 아니라 꿰뚫어 끌어낼 작정이라면, 주작기보다도 청룡기가 나았다.
연호정이 그대로 교룡쇄를 당겼다.
콰직! 쾅!
몸통이 꿰뚫린 일곱 암살자가 허공을 날아 다가왔다.
그들 모두의 자세가 완전히 무너졌다. 연호정이 광룡부를 휘둘렀다.
퍼어어어어억!
호왕구벽세의 야수 같은 공격력이 단숨에 일곱 암살자의 몸통을 찢어발겼다.
다루기 힘든 기병들의 연계기였다. 하나는 무게만 팔십 근이요, 다른 하나는 길이가 오 장에 달하는 철쇄인데도, 한 손으로 다루는 능력이 완숙의 경지에 들어서 있었다.
“미쳤네.”
기우희 곁으로 다가선 강량이 혀를 내둘렀다.
“뭐 저런 말도 안 되는 무공이 다 있어?!”
몇 번을 봤지만,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는 무공이었다. 동시에 강량은 새삼 확신했다. 자신과의 비무에서, 연호정이 제 실력의 삼 할도 채 보여 주지 않았음을.
모용우가 기우희를 보며 짧게 포권했다.
“무림맹 탕마군장 모용우입니다. 서역신녀가 맞으신지요?”
“네, 네?! 아! 저는 신녀는 아니고…… 그, 그러니까 그게…….”
당황한 그녀가 연신 말을 더듬었다.
모용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역신녀 기우희 신의(神醫). 이제부터 저희가 지켜 드리겠습니다.”
“가, 감사드려요.”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한다. 모용우는 기우희의 순한 성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였다.
콰아앙! 퍼어엉!
살벌한 굉음이 터졌다.
나무가 부러지고 땅거죽이 뒤집히는 소리였다. 어찌나 파괴력 넘치는 공격을 쏟아붓는지, 천지가 뒤흔들리는 듯했다.
연호정이 외쳤다.
“모용 군장! 미리 말한 곳으로 가십시오!”
모용우가 대번에 기우희를 업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파아아앙!
기우희를 업은 모용우와 강량이 단숨에 전권을 빠져나갔다.
동시에 숲속에 대기하고 있던 암살자들이 기쾌한 속도로 우회했다. 탁 트인 대지도 아닌데, 숲을 통과하는 움직임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고 정교했다.
연호정이 외쳤다.
“막아!”
후우우우웅.
묵비가 홍련궁에 철전을 걸었다.
‘용아포!’
홍천기로 불어난 거대한 내공이 시위에 걸린 철전을 절대무적의 화포로 변형시켰다.
묵비가 시위를 놓았다.
부아아아아아앙!
소용돌이치며 쏘아져 나간 용아포 일격에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콰아아아앙!
대여섯 그루의 거목들이 박살 나고 집채만 한 바위 세 개가 부서지며 거대한 벽을 형성했다. 암살자들의 이동 경로를 일격에 차단해 버린 것이다.
순간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파아아악!
암살자 이십여 명이 막힌 벽을 타고 올라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놀랍게도, 그들이 걸친 피풍의는 거대한 피막을 형성하며 바람을 따라 이동했다.
굉장했다. 저런 식의 공중 이동이 가능하기 위해선 특수한 직물로 만든 의복과 극도로 섬세한 내공 운용, 그에 걸맞은 수준 높은 신법과 깨달음이 필요했다.
‘일개 암살자들이 아니야.’
흑제성 시절에도 저런 이들이 있었다. 절벽을 타고 날아다니는 특공 부대가 저런 식으로 작전지에서 탈출하거나 침투하곤 했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저만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금력이 필요하다.’
연호정이 외쳤다.
“묵비!”
“알아요!”
묵비가 시위에 철전 다섯 발을 걸었다.
피피피피핑!
무형탄보다도 쏘아지는 속도가 빨랐다.
수십 장 거리를 단숨에 지워 내며 쏘아진 철전 다섯 발이 암살자 다섯의 의복과 몸통을 그대로 뚫어 버렸다.
백발백중의 궁술 실력이었다. 과연 그녀의 말마따나 전투 시 궁사의 존재는 적에게 엄청난 위협이 되고 있었다.
물론 연호정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철컹!
광룡부의 창대 끝 고리에 교룡쇄를 연결한 그가 재차 혈익휘천을 밟았다.
파바바바박!
무게가 없는 불꽃처럼 달려 나간다. 단숨에 거리를 좁힌 그가 나무를 타고 올라 나뭇가지 끝을 밟았다.
퍼어어엉!
폭음을 일으키며 하늘 높이 날아오른 연호정이 그대로 교룡쇄를 휘둘렀다. 혈풍무(血風舞)였다.
부아아아앙! 콰지지지직!
허공에서 피 보라가 일었다. 길쭉하게 늘어난 교룡쇄, 그 교룡쇄 끝에 묶인 광룡부가 암살자 십여 명을 휩쓸어 버렸다.
‘이런.’
연호정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것들, 진짜 전문가들이로군.’
동료들이 죽어 나가는 걸 코앞에서 봤음에도 눈빛에 흔들림이 없었다. 살아남은 놈들은 어떻게든 목표물을 잡기 위해 계속 날아가고 있었다.
심지어는 기가 막힌 묘기까지 보여 준다.
타타타타탕!
무형탄 다섯 발이 재차 허공을 갈랐다.
동시에 남은 다섯 암살자가 일제히 몸을 틀었다. 그러자 그들의 대형이 확 흩어졌고, 무형탄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꿰뚫었다.
묵비의 눈이 흔들렸다.
‘피했어?!’
움직임에 제약이 심한 허공에서 저런 몸놀림을 보여 주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개개인의 무공은 별것 아니야. 잘 쳐줘야 강량보다 아래. 하지만…….’
연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반 무인을 상대하는 것처럼 대응하지 마! 이놈들, 제대로 훈련받은 놈들이다! 묵룡부의 사혼조 놈들과 붙었을 때를 떠올려!”
순간 흔들리던 묵비의 눈이 찬란하게 빛났다.
사혼조는 묵룡부의 특수 부대 중 하나로, 대고수전(對高手戰)에 특화된 이들이었다. 괜히 연호정이 그들을 상대로 고전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묵비의 지휘하에 전장에 나타난 멸사군은 무시무시한 돌파력과 신들린 진형으로 사혼조를 학살했다.
그 일방적인 전투가 과연 실질적인 전력 차이로 인한 결과일까?
그렇지 않다. 멸사군이 사혼조를 압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파아아아아악!
용비순행의 신법은 언제 봐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대단한 속도를 자랑했다.
이제는 저공비행으로 목표물에게 다가가는 암살자들을 순식간에 통과해 버린다. 그런 그녀가 도달한 곳은 바로 모용우의 후방이었다.
강량의 눈이 커졌다.
“누님!”
“어깨 좀 빌리자!”
파아악!
묵비가 단숨에 강량의 어깨 위로 올라갔다.
놀라운 신법, 기가 막힌 균형 감각이었다. 꽤 과격하게 달리고 있는 강량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시위를 당기는데, 무릎과 고관절의 움직임이 너무나도 유연해서 상체와 어깨에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강량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극에 이른 내공 운용으로 무게감마저 없애 버린 묵비, 한 사람을 어깨에 올려놓고도 강량의 신법 속도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묵비가 외쳤다.
“달려! 후방은 내가 맡는다!”
“예!”
파아악!
강량은 앞으로 달렸고, 그의 양어깨를 밟고 선 묵비는 뒤로 돌아서서 저공비행으로 접근하는 암살자들에게 화살을 겨누었다.
‘멸사군이 사혼조를 압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
까드드드득!
홍련궁의 시위가 최대치까지 당겨졌다.
‘환경의 이점을 살린 동시에 상대를 무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야!’
홍련궁이 불을 뿜었다.
퍼퍼퍼퍼펑!
무자비하게 난사되는 화살에 암살자 다섯의 몸이 미친 듯이 움직였다.
티티티티팅! 티티티티티팅!
묵비의 손놀림은 그야말로 신기(神氣)에 이르러 있었다.
철전과 목전, 무형탄을 대중없이 난사하는데, 도대체 어떤 식으로 화살이 날아오는지 알 길이 없었다. 초고속 연사 기술, 중원에서 살아가는 궁사 중 묵비만큼의 고속 연사가 가능한 궁사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때였다.
터엉!
묵비가 땅을 향해 무형탄을 날렸다.
후우우웅! 퍼어어억!
“컥!”
신음과 함께 암살자 하나가 피를 토하며 땅으로 떨어졌다.
놀라운 일격이었다. 하늘 높이 쏘아 올려 중력을 이용해 사물을 맞추는 평범한 곡사(曲射)가 아니라, 지면을 스쳐 지나간 무형탄이 휘어져 올라가 암살자의 목을 꿰뚫어 버린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궁술이었다. 이런 식의 궁술이 가능한 사람 역시 전 중원을 통틀어 묵비밖에 없을 것이다.
암살자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들 역시 묵비의 무서운 궁술 앞에서 더는 접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안 돼.’
묵비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여기서 다 잡아야 뒤가 편해.’
타타타타탕!
상하좌우에서 기괴하게 휘어져 날아가는 무형탄이 암살자들의 목숨을 위협했다.
주르륵.
묵비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그녀의 입가에 한 줄기 핏물이 흘러내렸다.
무형탄처럼 빠른 속도로 쏘아지는 내공력을 강제로 휘게 만드는 것은 엄청난 심력과 내공이 소모되는 기술이었다. 천하의 묵비도 내상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퍼억! 퍼어어억!
두 명의 암살자가 또다시 추락했다. 바닥을 구르는 그들의 몸에서 뼈가 산산이 조각나는 소리가 들렸다.
‘남은 건 둘!’
그때였다.
콰아앙!
도주하는 일행의 좌측에서 거대한 불꽃이 터져 나왔다.
묵비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 뜨였다.
“화, 화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