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331)
331화. 어둠이 돌아오다 (6)
터져 나가는 천둥소리가 연무장을 넘어 하늘까지 닿았다.
파바바바박!
연호정이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진세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크으윽!”
“으다다다다!”
전면의 군병들 십여 명이 너나 할 것 없이 십여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연호정의 권압(拳壓)에 밀려나 버린 것이다.
절정고수들을 일시에 물러나게 한 연호정의 힘도 엄청났지만, 더 대단한 것은 그 많은 인원이 밀려났는데도 진세가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진형 자체가 워낙 자유롭기 때문이었다. 딱딱하게 도열한 상태였다면, 이번 일격으로 진형의 절반이 무너졌을 것이다.
“후욱.”
연호정의 안광이 점점 붉어졌다.
화르르륵.
주작의 염화가 타올랐다.
지잉! 지잉!
연가신단이 고속으로 회전하며 용포신공의 힘을 지속적으로 풀어 냈다. 폭발적인 기세에 힘입은 주작기가 무서운 기파를 발산해 냈다.
주작기 자체가 화력(火力)이며 살기였다. 그간 주작공을 운용하며 살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던 연호정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울컥! 울컥!
심박수가 급등하고 혈행이 빨라졌다.
치이이이익!
연호정의 몸에서 시뻘건 연기가 피어올랐다. 주작화기(朱雀火氣)가 아니라, 그 화기를 받아 타오르는 살기가 유형화된 것이다.
‘……!!’
묵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연호정이 멸사군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다. 아무리 실전 같은 승부라도, 단순히 위압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살기를 불사른 적은 없었다.
실전 ‘같은’이 아니라 진짜 실전이다. 연호정은 진심으로 멸사군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묵비가 재차 입을 열려 할 때였다.
[괜찮습니다.]깜짝 놀란 묵비가 멸사군의 전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어깨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옥청이 있었다.
[군장님만 한 고수와 붙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 괜찮아요.] [하지만!] [제가 본 군장님 최고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제가 봤던 그 재능이 사실이라면, 저희는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뭐……?]옥청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그의 눈은 지극히 진지했다. 폭발하기 직전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연호정의 살기가 얼마나 위험천만한지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저희는 군장님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 군장님이, 지금 제 눈에는 다소 위태로워 보이는군요.] [……!!] [저희가 강해지는 건 물론, 군장님께 받은 은혜를 천분지 일이나마 갚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전음을 끝낸 옥청이 외쳤다.
“이제부터 진주(陣主)는 빈도와 여국 도우가 맡겠소!”
여국이 옥청을 바라보았다.
옥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군장님의 무공, 제대로 받아 보세나.”
여국이 씨익 웃었다.
“좋지.”
파바박!
빠르게 세 걸음 앞으로 나와 멸사군의 선두에 선 여국이 검을 중단으로 올렸다.
후우우웅.
한순간 멸사군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진주가 전권 밖에 있는 것과 안에 있는 것은 전혀 다르다. 시야가 좁아지는 대신, 전면에서의 전투력과 반응 속도는 훨씬 뛰어나지는 것이다.
즉, 옥청과 여국이 진을 이끈다는 것은 연호정을 제대로 상대하겠다는 뜻이었다.
멸사군이 수련한, 오직 멸사군만을 위한 진법.
멸사삼살진(滅邪三殺陣), 개진(開陣)이었다.
여국이 외쳤다.
“전중(前中)!”
파라라락!
자유로이 흩어져 있던 멸사군의 대열이 송곳처럼 날카롭게 변했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왠지 모를 차가움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제대로군.”
말하지 않아도 멸사군의 의지를 느끼는 그였다.
촤르르르륵!
내공으로 늘어난 교룡쇄가 제멋대로 요동쳤다. 요동치는 교룡쇄에 시뻘건 화염이 넘실거렸다.
“…….”
진세로 인한 공기의 떨림, 사신기로 인한 기파의 소음이 대기를 뒤흔드는데도 묘하게 침묵이 밀려드는 듯했다.
팍! 파바박!
매서운 바람도 연무장 안까지 침투하진 못했다. 연호정과 멸사군이 내뿜는 기세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무형의 진기막을 생성해 냈기 때문이다.
진의 중앙에 선 옥청이 입을 열었다.
“포공(捕攻).”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십 멸사군이 움직였다.
콰아앙!
엄청난 속도였다.
땅을 박찼을 뿐인데 폭음이 터진다. 진세 속에서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진기가 모두의 속도를 배가시켰다.
연호정을 향해 섬전처럼 돌진하는 멸사군.
연호정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쐐애애애애액!
군병들이 근접 거리로 들어오기도 전에 교룡쇄가 횡으로 휘둘러졌다.
용포신공으로 극대화된 발경술을 머금은 주작공의 홍염육살공(紅焰六殺功)이었다.
콰르르릉!
멸사군의 진세가 크게 출렁였다.
작정하고 살기를 실어 공격하는 연호정의 무공은 충격적일 만큼 막강했다. 돌진하던 군병들의 속도가 일순간 삼 할로 떨어질 정도로 엄청난 완력이었다.
하지만 멸사군은 당황하지 않았다.
촤아아아악!
사방을 뒤덮으며 쏘아지는 검기공.
강력한 힘으로 진을 뒤흔들고 각개 격파를 목표로 하는 연호정의 파훼를 예상한 대응이었다. 단숨에 끝으로 가 아미의 창술사부터 쓰러트리려던 연호정은 곧바로 전술을 바꿔야 했다.
쩌저저정! 퍼어엉!
연무장 곳곳이 발경과 충격파로 터지거나 패여 나갔다.
연호정이 권각을 휘둘렀다.
퍼어어엉! 쩌어어어어엉!
엄청난 반탄력이었다.
오른손으로는 교룡쇄의 홍염육살공을, 왼 주먹으로는 백호공의 호왕구벽세를 펼치며 청룡답운보(靑龍踏雲步)와 백호군림보(白虎君臨步)를 구사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효율적인 공격을 구현해 낸다.
그런데도 진세가 도통 깨지질 않았다. 깨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탄력이 되살아났다. 가하는 공격마다 모조리 흡수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번쩍!
단숨에 혈익휘천으로 날아오른 연호정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파아아악!
뛰어오를 것을 짐작이라도 한 듯했다. 화산의 윤호와 동호가 매화삼릉검(梅花三凌劍)을 펼쳐 냈다.
휘리리리리릭!
무형의 발경이 수십 개의 꽃송이처럼 흩날리며 연호정을 에워쌌다.
순간 연호정이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크허어어어엉!!
엄청난 사자후(獅子吼)였다.
아니, 사자후가 아니라 백호후(白虎吼)라고 해야 할까. 백호금기(白虎金氣)로 폐장을 극한까지 부풀려 쏟아 내는 음파에 무지막지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채채채채챙! 퍼어억!
솟구치던 매화의 검경이 모조리 부서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음공 발경에 멸사군의 진세가 흐트러지고, 절반이 넘는 군병들이 비틀거렸다.
무형의 기막이 생성되지 않았다면 열 명 이상은 고막이 터졌을 것이다. 그 정도로 막강한 충격파였다.
파아아아악!
교룡쇄가 허공에서 꿈틀거리며 군병들을 공격했다.
쩌엉! 쩌저정! 쩌어어엉!
교룡쇄의 움직임은 실로 놀라웠다.
마치 철쇄 자체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용이 꿈틀거리듯 웅장하기도 했고, 뱀이 꿈틀거리듯 음험하기도 했다. 그 교묘하고도 웅혼한 공격에 군병들은 교룡쇄를 쳐 내기에 급급했다.
파아아악!
연무장 외곽으로 내려선 연호정이 재차 교룡쇄를 휘둘렀다.
촤르르륵!
동호의 눈이 흔들렸다. 빛살처럼 날아온 교룡쇄가 어느새 그의 검을 휘감은 것이다.
연호정이 힘차게 교룡쇄를 당겼다.
‘……!’
놀랍게도 동호는 딸려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검을 놓치지도 않았다.
버틴다. 완력에서도, 내공에서도 비교가 안 되는 동호가 연호정의 힘을 버티고 있는 것이다.
멸사삼살진의 힘이었다. 진세가 흐트러졌어도, 의지가 일면 소수에게 기력을 몰아주는 게 가능한 것이다.
파아아아악!
그때, 옥청이 아미의 창술사들을 이끌고 연호정의 좌우로 치고 들어갔다.
실로 절묘한 순간이었다. 호흡이 들어가는 그 순간을 노린 공격에 연호정조차 놀랐다.
파아악!
교룡쇄를 놓은 연호정이 그 자리에서 몸을 회전했다.
피피피피핑!
네 자루의 창과 한 자루의 검이 연호정의 몸에 얕은 자상을 냈다.
퍼퍼퍼펑!
회전하며 쏘아 내는 반룡장에 옥청과 창술사들이 뒤로 튕겨 나갔다.
번쩍!
튕겨 나간 옥청과 창술사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진의 중추로 파고든 연호정이 사방으로 미친 듯이 권각을 날렸다.
퍼엉! 쩌어어어엉! 퍼억!
서너 명이 물러나고, 다섯 명이 버텼으며, 두 명이 피를 토하며 비틀거렸다.
도끼를 들지 않았지만, 연호정의 권각술 역시 제대로 들어가면 사람 하나 죽이기에 충분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의 주먹에 맞아 피를 토한 군병 둘은 기어이 힘이 풀려 쓰러지고야 말았다.
우우우웅!
진세가 흔들렸다.
두 명이 쓰러졌다고 진법이 와해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진세가 흔들린 그 절호의 순간을 연호정은 놓치지 않았다.
콰앙!
비무가 시작된 이후 가장 강력한 진각으로 힘을 모은 연호정이 여국을 향해 달려 나갔다. 진의 중추가 되는 이를 쓰러트려 진법의 흐름에 영향을 줄 생각인 것이다.
그때였다.
‘……?!’
여국을 향해 돌진하던 연호정이 돌연 몸을 틀어 팽만호를 기습했다.
“헉!”
깜짝 놀란 팽만호가 일도양단의 기세로 대도를 휘둘렀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기민한 반응이었다.
연호정이 장(掌)을 펼쳐 횡으로 휘둘렀다.
쩌어엉!
대도가 옆으로 튕겨 나갔다. 연호정의 손에서도 피가 터졌다.
퍼어억!
“큭!”
탄력적인 단타각(短打脚)에 팽만호가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후욱!
순간 진세가 거세게 요동쳤다.
‘역시.’
여국과 옥청은 이 진법의 중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세를 이끄는 몇몇 군병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팽만호로, 위압적인 공격력을 발휘할 때는 팽만호가 여국보다도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여기가 약점이었…….’
그때였다.
퍼어어엉!
연호정이 피를 토하며 비틀거렸다. 그의 등판에서 희뿌연 연기가 치솟았다.
‘……?!’
연호정의 눈이 흔들렸다.
치이이이익!
허연 연기 사이로 일순 시뻘건 연기가 솟구치더니, 이내 훅! 하고는 사라졌다.
“후우, 역시.”
스르르륵.
요동치던 진세가 가라앉았다. 군병들이 진기를 가라앉힌 것이다.
“역시 군장님이십니다. 그 긴박하고 어지러운 상황에서 단번에 만호를 공격하시다니요.”
연호정이 뒤를 돌아보았다.
옥청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숨은 제법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지만.
“제 눈이 맞았어요. 군장님의 무지막지한 실전 능력에 가려진 선천적인 재능, 지금 이 순간 제대로 확인했습니다.”
“재능?”
“재능입니다. 본능적으로 약점을 꿰뚫어 보시잖습니까?”
“……!”
“군사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지금의 이 진법이라면, 설령 공공대사님이나 저희 장문 사형이라도 버티지 못하실 거라고요. 물론 저희 역시 상당한 피해가 있겠지만요.”
연호정의 눈이 흔들렸다.
“군장님의 무공이 두 분에 비해 아직 모자람이 있음을 압니다. 그런데도 진법의 약점을 공략해 진세를 차근차근 무너트리셨어요. 군장님 덕에 이 진법의, 아니 우리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주르륵.
옥청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무리한 공격으로 그 역시 내상을 입은 것이다.
“그에 대한 보답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군장님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부덕한 광기를 날려 드렸습니다.”
연호정의 등판에 꽂힌 장력.
바로 검선(劍仙) 탁무자의 단금장(段錦掌)이었다. 형(形)과 식(式)을 자유로이 두고, 그 안에 선도(仙道)의 깨달음을 담아 진리로 이끈다는 깨달음의 무공이었다.
“어떻습니까? 기분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허어.”
연호정은 자신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왠지 모르게 어둡고 답답했던 기분이 한결 나아진 느낌이었다.
“바로 날려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만, 감정이 격해졌을 때 증발시켜야 그 차이를 더 명확히 알 수 있을 듯하여 부득불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옥청이 포권을 취했다.
동시에 모든 군병이 포권을 취했다. 멸사군 모두가 옥청의 의도를 알고 힘을 모았던 것이다.
“잘 배웠습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연무장을 휩쓸었다.
가만히 옥청을 보던 연호정이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이거야, 원.”
한 수 가르쳐 주려다가, 오히려 군병들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왜일까? 자존심이 상하진 않았다. 군병들이 제게 신경 쓰게 만든 건 미안했지만, 어쩐지 마음이 포근해지는 기분이었다.
결국 연호정이 할 말은 이것뿐이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살벌하게 시작했던 비무는, 부드러운 분위기로 종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