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335)
335화. 밝음을 겨누다 (3)
다음 날.
“간만에 땀 좀 뺐군.”
멸사군 훈련을 마친 연호정의 몸은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모용세가 측, 그리고 무림맹의 정치판에서 손을 떼서 그런지 심적 여유가 생겼다. 물론 아직도 여러 방면으로 촉각을 곤두세우고는 있지만, 예전에 비하면 신경 쓸 것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격이다.
쿵.
광룡부를 내려놓은 그가 상의를 벗었다.
땀으로 젖은 그의 상체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근육으로 가득했다. 겉으로는 호리호리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실제론 근육이 압축될 대로 압축되어 수준급의 폭발력과 지구력을 갖춘 상태였다.
“후웁.”
한껏 숨을 들이켠 그가 광룡부를 들었다.
멸사군의 훈련이 끝나자마자 개인 훈련에 들어간다. 근래 이런저런 일로 수련 시간을 내지 못했으니, 할 수 있을 때 최대한의 단련을 해 놓을 생각인 것이다.
후우웅.
양손으로 쥔 광룡부를 머리 뒤까지 쳐든 연호정의 모습은 그야말로 조각상과도 같았다.
극한까지 늘어난 대흉근과 복근에서 엄청난 탄력이 엿보인다. 똑바로 서 있었을 때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배면(背面)의 근육들이, 마치 날개라도 되는 듯 넓게 펼쳐졌다.
연호정이 천천히 광룡부를 움직였다.
‘끄응.’
굉장히 느린 동작이었다.
팔십 근이 넘는 광룡부를 극단적으로 느린 속도로 움직인다. 일다경이 지났는데도, 머리 뒤로 쳐들었던 광룡부가 그제야 이마로 넘어오는 속도였다.
상체는 물론 하반신까지, 전신의 근육을 자극하며 휘두르는 둔검(鈍劍) 수련이었다. 예전 기우희를 호위하러 갔을 때 했던 수련보다 세 배는 더 느린 속도였다.
우두둑!
근육에 걸리는 부하가 무섭게 증가했다. 상체 전체가 뻘겋게 달아올랐다. 관절이 받는 부하 역시 아슬아슬한 한계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역시 힘들군.’
절정고수라도 쉬이 버틸 수 없고, 육가의 가주급 고수라도 내공으로 관절을 보호하지 않으면 지속하기 힘든 수련.
말하자면 미친 짓에 가까운 훈련이었다. 내공이라는 신묘한 힘으로도 무인 대다수는 버티기 힘들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수련과 농밀한 진기로 몸을 만든 연호정이었기에 가능한 극한의 수련이었다. 심지어 연호정조차도 긴장을 풀면 관절이 부서질 수 있다.
우우웅! 우우우웅!
연가신단이 미친 듯이 떨렸다.
광룡부가 명치께까지 오자 육체에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그 육체를 지키기 위해 연가신단이 위험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고, 연호정은 그 신호를 깔끔하게 무시했다.
툭! 툭!
꽉 모인 대흉근이 검붉다 못해 시퍼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이각의 시간이 흘렀다.
광룡부의 날이 바닥에 있던 돌멩이에 닿았다.
푸스스스.
날이 닿았지만 쪼개지지 않고 부스러진다. 광룡부에 실린 진기의 압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연호정이 광룡부를 놓았다.
쿵!
“커헉!”
거친 숨을 토해 낸 연호정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허억! 허억!”
온몸의 피가 멈췄다가 한순간 고속으로 다시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관절에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지만, 온몸의 근육이 파열 직전까지 갔다. 사신기로 내장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오장육부의 두세 개는 터졌을 것이다.
“쿨럭! 제, 젠장.”
밭은기침에 핏방울이 섞여 나왔다. 내장을 보호하긴 했어도 내상을 피할 순 없었다. 복부로 전해지는 압력 자체가 엄청났던 탓이다.
단순히 광룡부를 느리게 휘두른 게 아니라, 순간순간 적의 공격을 상상하며 도끼의 힘을 조율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몸을 보호하는 것 외에는 내공을 쓰지 않고도 가능하군.’
순수한 완력으로 광룡부를 반 시진에 가깝게 휘둘렀다. 인간의 힘이 아니었다.
연호정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번쩍!
그의 몸에서 아름다운 녹청빛 광채가 환하게 피어올랐다.
연가신단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움직였다. 마치 제방이 부서지자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물처럼, 진기가 전신 혈도를 누비며 근육과 내상을 치유하는 속도가 무시무시했다.
어느새 연호정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한 번의 훈련으로도 이 정도라…… 이거 아주 좋구만.”
전신의 근육이 미쳐 날뛰고 있다.
어떠한 전투에서도 맛보지 못한 극단적인 활성도였다. 제아무리 연호정이라도 자주 할 만한 수련은 아니었지만, 한 번의 수련과 회복으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엄청났다.
‘육체는 곧 깨달음을 담는 그릇이다. 지금 내 문제는 깨달음과 육신의 괴리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연가의 오대신공을 규합하려는 것이었다. 신공으로 얻은 여러 내공의 합일(合一)로 육체의 수준을 강제적으로 끌어올리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이 수련을 반복적으로 수행한다면, 생각보다 더 빨리 그 영역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절대자들만이 엿볼 수 있는 궁극의 영역. 어떠한 전략 전술도, 잔수도 필요 없이 단일로 대문파급 전력과 정면 승부가 가능한 지고한 경지.
성천십삼좌들이 거닐고 있는 무신(武神)의 세계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을 듯했다.
‘이미 신화교의 십팔무장급 고수와 맞붙었다. 놈들도 바보가 아니라면 진작 조사에 들어갔을 터. 무림맹의 눈 때문에 시간은 걸리겠지만, 언젠가 나의 존재에 대해 알아챌 거야.’
후우우우우웅.
온몸에서 뿜어지던 녹청빛 광채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신체가 어느 정도 회복된 것이다.
‘더 빨리, 더 확실하게, 더 파격적으로.’
연호정이 광룡부를 들었다.
근육도, 내상도 전부 낫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수련 전보다 한층 더 가볍게 느껴진다. 마치 그간 잠자고 있던 모든 근신경이 폭발하듯 깨어난 것 같았다.
흡족함을 느끼던 연호정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련 끝났소.”
“역시 알고 있었소?”
펄럭!
파군각의 담벼락 위로, 가득상이 내려앉았다.
연호정의 눈이 커졌다.
“몸놀림이 가벼워지셨소.”
가득상이 혀를 내둘렀다.
“그게 보이오?”
“안 보이는 게 이상한 것 아니오? 진기도 한층 농밀해진 것 같은데.”
“진짜 연 공자의 그 안목 하나만큼은 당대 최고라 해도 손색이 없을 거요. 아직도 궁금하네. 대체 어쩌다 그 나이에 그런 괴물이 됐소?”
그 긴 사정을 어찌 다 설명할 것인가. 연호정은 그저 웃어만 보였다.
“그나저나 진짜 신기한 몸뚱이외다. 팔십 근이 넘는 미친 중병(重兵)을 들고 둔검 수련을 해? 그러다 몸 상하는 거 아니오?”
“알아서 조절하고 있소.”
“하긴, 내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냅다 땅으로 내려선 가득상이 손을 툭툭 털며 말했다.
“시간이 없으니 본론부터 말하리다. 모용세가 측을 주시했는데 말이오.”
연호정의 눈이 빛났다.
“어땠소? 수상한 움직임이 있었소?”
가득상이 한숨을 쉬었다.
“모르겠소.”
“모르겠다니?”
“기실, 육대세가의 가주급 정도가 되면 일 처리를 함에 있어 빈틈이 없소이다. 그건 연 가주님을 옆에서 보아 온 연 공자도 잘 알 것이오.”
“음.”
“분명 수상한 움직임이 있는 것 같았소. 특히 모용연화의 동선을 살펴봤는데, 평소와는 달리 내성 이곳저곳을 둘러보더이다.”
“그래서?”
“분명 수상하긴 한데, 전서구를 보낸다거나 사람을 출맹시킨다거나 하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소. 물론 그녀가 들른 곳마다 사람을 배치해 두긴 했지만, 그들 역시 특별한 이상을 느끼진 못했다고 하오.”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용연화가 평소와 다르게 움직였다. 그것 하나면 충분하오.”
“미안하외다.”
“그리 생각하지 마시오. 후개 말마따나 모용군이 작정하고 숨기려 들면 누구라도 알기 어렵소.”
가득상이 입맛을 다셨다. 연호정에게 미안한 것도 있지만, 나름대로 정보와 첩보에 있어서 중원 제일이라 불리는 개방인데 상대의 뒤를 잡지 못했다는 게 속상했던 것이다.
“어쨌든, 모용연화가 평소와 다르게 움직였다는 건 필경 그녀에게 뭔가가 있다는 것 아니겠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소. 그건 차차 지켜보도록 합시다.”
“그럽시다. 아! 그리고…….”
“응?”
가득상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그 신화교라고 하는 곳의 정보 거점 말이외다.”
“……?”
“일단 그곳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조금 찝찝한 게 있소이다.”
연호정이 눈을 빛냈다.
“그게 뭐요?”
“군사님께서 본방의 방도들을 시켜 하남 중부와 북부의 동태를 살피라 하셨소. 관부 쪽 말이외다.”
“……!”
아무리 제국의 힘이 약해졌다 한들, 관부의 동태를 살피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었다. 만에 하나 그 사실을 들키면 관림(官林)의 관계가 지독하게 악화될 것이다.
물론 서로가 암암리에 주시하고는 있다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일 뿐이다. 그 사실이 대놓고 알려지면 정치적으로 크나큰 문제가 터질 수 있다.
즉, 제갈문호는 그만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관부 쪽을 살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데?”
“이름 모를 고수가 남하하고 있다는 첩보를 받았소.”
“이름 모를 고수?”
“그렇소.”
가득상의 얼굴은 무척이나 심각했다.
“세상은 넓고, 이름을 밝히지 않고 활동하는 고수도 많소. 그 가능성을 배제하고, 본방은 하남성과 호북성에서 활동하는 고수들 대다수를 알고 있소.”
“…….”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고수의 존재를 포착했소. 첩보로는 그 이름 모를 고수의 무위가 못해도 육가의 가주급은 된다고 하더이다.”
“……!”
“육가의 가주급 고수. 제아무리 세상이 넓다지만, 그만한 고수는 많지 않소. 당연히 본방에선 하남과 호북에서 활동하는 모든 초절정고수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소만, 그는 아니오. 그에 대한 인상착의를 살펴본 결과 지금껏 무림에서 활동한 적이 없던 고수외다.”
“……복장은?”
“바로 그것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소.”
가득상이 인상을 찡그렸다.
“관부의 정복을 입진 않았소만, 관부에서 배급하는 고위급 관료의 옷을 입고 있었소.”
“……!”
“그리고 그 옷에는…… 못해도 도지휘첨사(都指揮僉事)급 이상만이 찰 수 있는 적색 견장이 달려 있었소.”
연호정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중원에는 열여섯 개의 도지휘사사가 존재한다. 그리고 각 도지휘사사는 한 성(省)의 위소(衛所)를 통솔한다.
그중 도지휘첨사라면 각 성에 네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고위급 관리로, 정삼품에 해당하는 권력자다. 신화교의 십이무장, 규적의 진무 직책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자는 하남 중부에서 남서쪽으로 향하고 있소. 정확히 무림맹, 대별산이 있는 곳이오.”
“……그렇군.”
“아직은 그가 신화교 측 인물인지는 모르겠소. 좀 이상한 것이, 대외적으로 들키지 않으려면 오히려 그런 복식을 피해야 마땅한데 대담하게도 관에서 지급하는 관료복을 입었소이다. 이게 조금 이상하오.”
“이상할 것 없소.”
연호정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도지휘첨사는 위지휘사사의 진무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오. 그가 정말 신화교 측 인사라면, 오히려 우리가 건드리기 힘드오. 제국에서 직접적으로 조사가 들어올 테니까.”
“음, 그건 그렇지.”
가득상이 눈을 빛냈다.
“하면 어찌할 것이오? 직접 그자의 뒤를 캐러 갈 것이오?”
“글쎄.”
연호정이 광룡부를 내려다보았다.
“……이번에는 어떻게 처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