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361)
361화. 강자의 권한 (3)
콰릉!
폭음과 함께 물러난 천강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제법 미형의 얼굴인데도, 일그러트리니 귀신처럼 무섭다. 그 표정만으로도 심장이 약한 사람은 기절할 정도였다.
“뭐야, 이 자식?!”
파지지직! 파지지지지직!
먼지를 헤치며 다가오는 모용군의 모습은 그야말로 현세에 강림한 뇌신(雷神)과도 같았다.
지이잉! 퍼석!
실타래처럼 풀어지는 푸른 전광.
발로 돌멩이를 밟자, 불꽃이 튀며 으깨진 두부처럼 부서졌다. 방출하는 뇌기의 농도가 실로 엄청났다.
천강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접근하기가 어려워졌잖아?”
무종지벽을 넘어서면 신체가 고농도의 진기를 담을 수 있도록 재구성된다. 말하자면 극한까지 다듬어진 심(心), 기(氣), 체(體)가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초월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무도(武道)에는 끝이 없는 법이다. 무종지벽 너머의 경지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 경지는 한 차례 초월한 심, 기, 체가 또다시 비상(飛上)하면 맞이할 수 있다.
세인들이 말하는 무신(武神)의 경지, 무극(無極)의 경지에 발을 딛게 되는 것이다.
그 경지에 발을 디디면 모든 것이 바뀐다. 절정고수가 무종지벽을 돌파했을 때 맞이하는 변화보다, 초절정고수가 무극지경에 올랐을 때 맞이하는 변화가 더 크다.
이호무장 천강은 무장 중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고수였다.
그는 무종지벽을 돌파하여 얻을 수 있는 한계의 속도를 손에 쥔 고수였다. 하여 같은 등급의 고수라도 속도에서 뒤지기 때문에 대응키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모용군만큼 경지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난 고수라면 얘기가 다르다.
처음 몇 합에서야 당황할 수는 있지만, 그다음부터는 곧장 대응 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 이유인즉, 무공의 강함이라는 게 속도만으로 책정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공이란 속도, 힘, 변화, 반격의 시기, 진기의 운용 등등 여러 요소가 결합된 것이다.
그리고 모용군은 그 모든 영역에 두루 능한 고수였다. 속도와 힘에 조금 더 치중되어 있긴 하지만, 나름대로 균형 있는 무도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천강과는, 오직 하나의 장점을 극대화한 고수와는 근본부터 다른 강자.
“왜 그러지?”
번쩍! 번쩍!
뇌정공을 완전히 개방한 모용군.
두 눈에서 벼락이라도 쏟아지는 듯했다. 푸른 안광을 빛내며 걸어오는 모용군의 모습은 실로 사람 같지가 않았다.
“그 잘난 발재간도 여기서 끝이냐?”
화르르륵!
천강의 몸에서 황금빛 화기가 넘실거렸다.
“미친놈! 설렁설렁 놀아 줬더니 기고만장하는 꼴이라니!”
쩌렁쩌렁하게 퍼져 나가는 목소리.
어딘지 모르게 이전과 말투가 달라진 것 같았다. 젊다 못해 어리게 느껴지던 말투가, 세상 경험 풍부한 장년의 그것으로 변한 듯했다.
“제대로 놀아 주마!”
퍼어엉!
폭음을 내며 돌진하는 천강.
놀랍게도, 종전보다 한층 더 빨라진 속도를 내고 있었다. 마치 한 줄기 금빛 선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듯했다.
모용군의 눈이 번뜩였다.
콰앙!
“큭!”
천강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모용군이 방출하는 뇌기의 방패, 뇌제벽(雷帝壁)의 호신강기가 엄청난 반탄력을 자아내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접근한 만큼, 그 충격도 엄청났다.
“이제 읽히는구나.”
지잉! 지잉!
모용군의 좌수가 중단 전방으로 향했다.
“네놈이 어떻게 움직일지, 훤히 보여.”
“개소리!”
파앙! 파아앙! 파아아앙!
천강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전방으로 치고 나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허공에 떠올랐다가 다시 모용군의 후측방으로 이동했다.
공기를 터트리며 움직이는 극상의 속도. 내공과 체력 소모가 극대화되지만, 한결 빨라진 속도는 더 강한 파괴력과 의외성을 만들어 낸다.
천강의 수도가 반월을 그리며 움직였다.
황금빛 불꽃이 수도를 따라 허공을 지워 냈다.
번쩍! 쩌어어어엉!
“이익!”
천강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콰지직!
모용군의 발이 복숭아뼈까지 땅에 묻혔다. 천강의 수도는 막았지만, 그 힘을 완전히 흘려 내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모용군의 표정은 냉엄하기만 했다.
“말했잖느냐? 이젠 훤히 읽힌다고.”
“이, 이 새끼가!”
“정제되지 않은 살기를 줄기줄기 흘리고 다니는데, 속도가 아무리 빨라 봐야 의미가 없지.”
그렇다.
광기마저 서린 천강의 살기는 그것만으로 상대의 전의를 깎을 만큼 엄청났다. 그러나, 그토록 강한 살기를 뿜고 있기에 초고수의 감각에는 그 움직임이 고스란히 읽히는 것이다.
당황하지만 않는다면, 속도 대 속도의 싸움으로 몰고 가지 않는다면 충분히 대응이 가능하다. 물론 모용군 정도의 경지가 아니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제 끝낼 때가 되었구나.”
우우웅!
모용군의 안광이 폭발을 일으켰다.
콰앙!
검에서 방출되는 발경에 천강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훅!
순간 천강은 모용군의 살기가 자신이 회피할 수 있는 모든 방향을 점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우우우웅!
웅혼한 힘이 밀고 들어왔다.
공기를 태우며 들어오는 엄청난 검기(劍氣). 천강에게는 이에 맞설 만한 힘의 무공이 없었다.
‘회피!’
좌우상하, 어디로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후방 회피뿐이다. 천강이 땅을 박찼다.
퍼어엉!
무서운 속도로 물러나는 천강.
하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
번쩍!
천강이 입을 떡 벌렸다. 어느새 모용군이 내친 뇌전의 검기가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사람의 움직임이 제아무리 빠르다 한들 번개보다 빠를 순 없다. 그것은 천강도 마찬가지였다.
회피할 곳을 모조리 막아 둔 채 숨통만 틔워 놓고는, 한 수 앞을 내다보고 구사한 검격. 모용군의 노련미가 돋보이는 한 수였다.
천강이 쌍수로 화룡마도를 펼쳤다.
콰쾅!
“커헉!”
엄청난 충돌음과 함께 천강이 피를 토했다.
콰앙!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천강의 몸이 건물 하나를 뚫고 들어갔다.
훅!
하늘 높이 날아오른 모용군이 재차 검에 뇌정기를 집중시켰다.
한 번의 공격이 성공했다고 방심하지 않는다. 모용군 역시 백전의 고수, 한번 점령한 우위를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다.
‘구뢰마벽(九雷魔劈).’
번쩍! 콰콰쾅!
신속(神速)의 검격으로 뿜어진 뇌전의 검광이 부서진 건물을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천하 그 어떤 고수라도 맞받아치기 부담스러운 무공이었다. 이미 내상을 입은 천강으로선 완전한 회피도, 완벽한 방어도 불가능했다.
“쿨럭!”
푸스스스!
무너진 건물 잔해를 헤집고 일어난 천강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사락.
사뿐하게 땅에 내려선 모용군이 천강에게 검을 겨누었다.
“이제 끝내도록 하지.”
깊은 검상이 몸 전체를 그물처럼 덮었다. 내상도 심각한지, 뿜어져 나오는 기파가 무척이나 불안정했다.
천강이 이를 갈았다.
“이 개 같은……!”
한순간의 교전으로 승부의 추가 완전히 기울어져 버렸다.
지이이잉!
‘큭!’
천강의 몸 곳곳에서 푸른 전광이 탁탁 소리를 내며 튀어 올랐다.
내상도 내상이지만, 침투한 뇌기가 온몸의 혈도를 뒤집어 놓았다. 금제순화공(金帝純化功)의 진기로도 뇌기를 잠재우기 힘들었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금제의 화력은 순화공 중 가장 발전된 형태의 기운을 품고 있다. 홍련과 청로가 극에 이르면 금제로 넘어올 수도 있지만, 천강은 애초에 금제순화공을 첫 무공으로 익혔다.
그런 진기로도 침투경을 막지 못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상태로는 속도를 살릴 수 없어.’
무리하게 속도를 냈다간 전신 혈도가 완전히 파괴되어 버릴 것이다. 그리되면 화정(火精)을 형성했다 한들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원래 속도의 오 할이나 낼 수 있을까…… 빌어먹을! 이렇게까지 당하다니!’
모용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구나.”
“…….”
“오랜만에 아주 신선한 기분을 맛봤어. 덕분에 재미있었다. 이만 끝내도록…….”
그때였다.
콰아아앙!
모용군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장원 후원 쪽에서 들려온 폭음에 귀청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소리가 커서 놀란 게 아니었다.
‘뭐지?!’
천강과 연호정이 부딪쳤을 때 뿜어져 나온 충격파도 굉장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굉장한 충격파를 만들어 낸 천강을 패배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그러나 지금의 충격파는 뭔가가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곳에 있는 어떤 고수보다도 막강한 자의 발경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 힘의 밀도는 순간적으로 양천이 떠올랐을 만큼 대단했다.
‘아니야. 묵룡부주에 비하긴 힘들어. 그러나 우리 가주급을 초월한 건 매한가지다.’
모용군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대체 어떤 놈이……?!’
그때, 천강이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친놈들. 기어이 ‘그분’의 분노를 샀구나.”
“그분?”
“내게 무공을 가르쳐 주신 분, 이십 년이 넘도록 십팔무장을 이끄신 최강의 무장을 말함이다.”
“……!”
이놈에게 무공을 가르쳐 줘? 그만한 노고수가 이곳에 있었다고?
“이제 너희는 다 죽은 목숨이다. 그분은 본교의 원로들을 제외하면 첫손에 꼽히는 강자다. 나 정도에 고전하는 실력이라면, 몇 명이 있어도 그분을 넘어설 수 없어.”
모용군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네가 걱정할 게 아니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이만 저승으로 가거라.”
번쩍!
모용군의 검이 천강의 목을 향해 휘둘러졌다.
파앗!
방심하고 있진 않았던 모양이었다. 천강은 아슬아슬하게 뇌검을 피해 냈다.
하지만 그게 끝이다. 자세가 무너진 천강의 머리 위로 분노한 뇌신의 검격이 쏟아졌다.
‘……?!’
차가운 눈으로 천강을 내려다보던 모용군은 순간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왜……?’
천강이 웃으며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몸이 조각날 위기에 처했음에도, 발버둥을 치거나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어 보이지 않았다.
‘뭘 믿고?’
그때였다.
모용군은 저 멀리 후원 쪽에서부터 쏟아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발경을 느끼곤 깜짝 놀랐다.
콰아아앙!
모용군이 피를 토하며 옆으로 물러났다.
‘이런 충격이!’
중간에 검로를 틀어 막았지만, 이 알 수 없는 힘을 완전히 막아 낼 순 없었다.
그 한 번의 방어만으로도 내상을 입었다. 두려울 정도로 막강한 진기였다.
화르르르르륵!
허공을 가로지르며 다가온황금빛 불꽃이 점점 옅어지더니, 이내 훅! 하고 사라졌다.
그 불꽃의 크기와 두께는 천강의 그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당연히 화기의 밀도도 더 높았다.
“천강.”
모용군의 눈이 흔들렸다.
어느새 천강의 옆에 탄탄한 체격의 중년 사내가 서 있었다.
천강이 고개를 조아렸다.
“신장(神將)님을 뵙습니다.”
“당분간 수면을 취할 거라 하였다. 네게 모든 것을 일임하겠다고 하였어.”
“…….”
“한데 이 꼴이 무어냐?”
“……죄송합니다.”
천강의 목소리에서 두려움이 묻어 나왔다.
그 오만방자하던 천강이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를 향한 강한 경외심이 느껴졌다.
모용군의 눈이 흔들렸다.
‘엄청난 강자!’
천강처럼 황금빛 화기를 뿜어내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존재감이 사위를 압도하고 있었다. 가히 절대강자로서의 면모가 묻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외모도 범상치가 않았다.
‘서역인?’
금빛 머리카락, 새하얀 피부, 유독 기다란 팔다리.
그렇다. 중년 사내는 서역인이었다.
사내가 모용군을 바라보았다.
순간 모용군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을 맛보았다.
“뭐냐, 네놈은?”
콰아아앙!
그때, 요란한 폭음과 함께 후원 쪽에서 사색(四色)의 진기가 범람하듯 쏟아져 나왔다.
번쩍!
허공을 가로지르며 날아온 마귀가 중년 사내를 향해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