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400)
400화. 혼전(混戰) (6)
“이런!”
채애애애애앵!
무서운 속도로 쏘아진 암기를 검으로 쳐 낸 여국의 대응은 놀라웠다.
곤륜은 구파 중 중원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문파였다. 도가 무공의 성지 중 하나로 손꼽히지만, 중원 정통이라 불리는 무당의 무공과는 궤를 달리했다.
무당의 검이 부드럽다면 곤륜의 검은 장중하다. 춥고 험난한 지형에서 연마된 곤륜지검은 제아무리 사나운 공격이라도 정면으로 짓누르길 주저하지 않았다.
암기를 쳐 낸 여국이 운룡보(雲龍步)를 밟으며 재차 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아악!
뻗어 나가는 검날에 암살자 하나의 목이 날아가고, 당겨 오는 검풍(劍風)에 또 다른 암살자의 복부가 쩍 갈라졌다.
도가의 검법답지 않은 잔혹한 수법이었다. 급박한 순간 알아서 실전검이 나오도록 뼛속까지 인이 박인 살검인 것이다.
쩌어엉!
절묘하게 협봉검을 쳐 내고, 고고한 운학장(雲鶴掌)으로 밀쳐 냈다.
튕겨 나간 암살자가 일순 수십 조각으로 찢겨 나갔다.
여국은 깜짝 놀랐다.
자신의 공격 때문이 아니었다. 밀쳐진 암살자들은 동료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여국의 후속타를 상정하고, 방해물이 될 수 있는 존재를 즉시 제거해 버린 것이다.
“이 지독한 놈들이!”
채앵! 채채채챙!
반사적인 대응으로 암살자들을 죽였지만, 그게 끝이었다. 여국의 실력을 간파한 암살자 십여 명이 거리를 벌린 채 암기를 퍼부었다.
태허검(太虛劍)을 펼쳐 암기를 튕겨 내던 여국이 몇 번이나 반격을 시도했으나, 그럴 때마다 암살자들은 귀신처럼 뒤로 물러나 버렸다. 여국의 살기를 예민하게 읽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
여국의 눈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역시 다르군.’
멸사군은 실전에 투입되었을 때 지닌바 능력 이상의 결과를 내는 특수 부대였다. 이유인즉, 싸울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들, 암살자 집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이들은 멸사군보다 더했다. 멸사군은 임무를 위해 목숨을 걸지언정 동료를 해치지는 않는다.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전력 유지를 위해 서슴없이 동료를 쇠 그물 비슷한 걸로 찢어 죽이는데, 그 행동에서 일말의 망설임도 엿보이지 않았다.
‘마인(魔人)!’
그렇다. 이들은 마인이다.
꼭 마공을 익혀야만 마인이 아니다. 사람의 생명을, 동료의 목숨을 우습게 보는 이놈들 역시 마인이라 불려야 마땅하다.
문제는 그 마인들의 공격이 지나치게 위협적이라는 데에 있었다.
‘공격도 공격이지만…….’
펄럭!
전면에서 날아든 암기 하나가 소맷자락을 뚫고는 땅에 떨어졌다. 암기에 뚫린 소매 부근이 살짝 젖어 있었다.
독이다. 암기에 독을 묻혀 놓은 것이다.
잡스러운 짓거리라고 무시할 게 아니었다. 이놈들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뭐든 하는 놈들이었다. 필요하다면 며칠 동안 똥물 속에서 버티면서도 기회를 노릴 수 있는 놈들이었다.
‘독, 암기, 그물망, 협봉검…… 정말 암살자답기야 하다만.’
피슉!
여국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느 틈에 날아온 암기 하나가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치이익!
그 즉시 내공을 운용해서 독기를 뽑아냈다. 정말이지 찰나만 늦었어도 당분간 한쪽 팔을 못 쓸 뻔했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대체 언제 접근했지?!’
묵비가 먼저 반응하지 않았다면 삼 장 안까지 접근을 허용할 뻔했다. 만약 놈들이 그 영역권 안에 들어왔다면 자신이나 옥청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었을 것이다.
‘빌어먹을!’
그때였다.
퍼버버버버벅!
여국의 눈이 흔들렸다.
보이지 않는 화살 일곱 발이 자신이 상대하던 암살자 일곱의 머리통을 모조리 날려 버렸다.
여국이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홍련궁에 목전 한 발을 건 묵비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허공을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퍼어억!
묵비의 발에 맞은 암살자 하나가 멀찍이 튕겨 나가 동료 셋과 함께 땅을 굴렀다.
묵비가 시위를 놓았다.
퍼어어어억!
한 발의 목전이 바닥을 구르는 암살자 넷의 상체를 모조리 꿰뚫었다.
실로 무시무시한 관통력이었다. 철전도 아니고 짧은 목전 한 발로 단련된 암살자 넷을 꼬치 꿰듯 뚫어 버린 것이다.
무릇 궁사란 거리를 벌리거나 은신하여 저격할 때 최대의 효율이 나오는 법이다. 궁사가 무서운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묵비는 아니었다.
당금 중원 천하에서 묵비만큼 활을 잘 다루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물며 그녀에겐 신기(神技)의 궁술 못지않은 변화무쌍한 신법과 폭발적인 보법이 함께하고 있었다.
접근전이든 거리를 벌렸을 때든 별반 차이가 없는 위력을 발휘한다. 그것은 곧 그녀가 실전 경험 역시 탁월하다는 증거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촤르르르르륵!
거대한 철망이 묵비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이 자리에서 가장 위협적인 적이 그녀라고 판단한 것이다.
여국이 외쳤다.
“부장님! 조심……!”
순간 묵비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퍼퍼퍼펑!
네 발의 화살이 철망의 모서리 네 군데를 폭발시키며 하강 속도를 늦췄다.
상상을 초월하는 속사(速射)였다. 쾌검의 달인이 발검술(拔劍術)을 구사하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였다.
곧이어 묵비가 용비순행을 펼쳤다.
퍼어어엉!
철망 한가운데에 강력한 일장(一掌)을 퍼부으니, 하강하던 철망이 빠르게 회전하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암살자들의 철망은 단순한 포획용이 아니었다. 철망 전체에 미세하고 날카로운 돌기가 돋아 있어서, 일단 사로잡히는 순간 천하의 고수라도 피투성이가 되는 흉악한 물건이었다.
묵비는 그 철망의 위험성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아예 날려 버린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툭.
너무 빠르게 움직이느라 요대에 매어 둔 화살통의 끈이 끊어져 땅으로 떨어져 버렸다. 무형탄을 쏠 수는 있지만, 이미 손은 화살통이 있었던 자리를 더듬고 있었다.
그때, 암살자 하나가 그녀를 향해 독침을 쏘았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묵비가 허리춤에서 달랑이는 길쭉한 무언가를 뽑아 시위를 당겼다.
콰아앙!
일직선으로 쏘아진 굵은 무언가가 독침을 분쇄함과 동시에 암살자의 상반신을 통째로 날려 버리곤 땅에 꽂혔다.
파아아악!
재빨리 땅으로 내려선 묵비가 땅에 꽂힌 물건을 뽑아냈다.
바로 단창(短槍)이었다. 과거 묵룡부를 탈출하기 위해 멸사군을 호출했을 때, 묵룡부의 특수 부대를 유린하면서 사용했던 그 단창이었다.
놀라운 응용이었다. 홍련궁의 시위가 천하의 신물(神物)로 만들어졌다지만, 그 시위에 단창을 걸어 쏘아 낸다는 발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물며 그 위험천만한 순간에!
“부장님! 뒤!”
묵비의 눈이 빛났다.
그녀가 쥔 단창이 반월을 그렸다.
촤아아아악!
암살자의 목에서 대량의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묵비는 그 피를 굳이 피하지 않았다.
“……!!”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제아무리 감정을 죽인 암살자들이라도, 묵비의 압도적인 무용 앞에선 섣불리 공격을 감행하기가 힘들었다.
여국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한 손에는 붉은 활을, 다른 한 손에는 단창을 들고 사방을 굽어보는 묵비의 모습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얼굴 반쪽과 상반신 대부분이 적의 피로 물든, 그러나 흑백이 또렷한 눈에서 서늘한 기세를 뿜어내는 여장수의 위엄은 전장을 장악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만부부당(萬夫不當)…….’
활, 창, 거기에 맨손 백타까지.
지금에 와서는 그야말로 못 하는 게 없는 무적의 장수가 된 그녀였다. 스스로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를 몰라 방황하던 그녀가, 이제는 적아(敵我) 모두의 경외를 받는 전장의 여제(女帝)가 되어 가고 있었다.
묵비가 외쳤다.
“옥청!”
쩌어어어어엉!
태극혜검으로 암살자들의 공격을 완벽하게 방어하던 옥청이 제운종을 펼쳐 묵비의 옆으로 다가왔다.
“대수께 가! 여기는 나와 여국이 맡는다!”
“알겠습니다.”
파아악!
옥청이 이제는 완전히 초토화가 되어 버린 건물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는 묵비가 연호정을 걱정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그들 셋을 합한 것보다도 무서운 것이 연호정이었으니까.
문제는 사마현이었다. 음신의 대제자라고 하니 실력 하나는 확실하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가 죽으면 상황이 지나치게 살벌해진다.
옥청이 사라지자, 묵비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쾅!
강력한 진각에 암살자들이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활과 단창을 중단으로 올려 교차한 묵비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도 하던 거 마저 끝내야지. 들어들 와.”
* * *
천장이 부서지며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암살자들.
찰나에 찰나를 쪼갠 순간, 사마현은 암살자들이 눈빛 하나하나를 전부 읽을 수 있었다.
‘이놈들……?!’
사마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암인단(暗刃團)!!’
당대 음신이 만든 무수한 암살 조직 중 가장 무서운 삼대 조직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암인단이었다.
암인단이 무서운 이유는 그 실력 이전에 조직의 특성 자체에 있었다.
암인단은 암살자를 암살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평범한 무림인이나 정재계 인사들이 아닌, 같은 암살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편성된 조직이란 말이다.
암살자를 제거하는 암살자 집단. 그 한 명, 한 명의 실력이 초일류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파아앙!
재빨리 뒤로 물러난 사마현이 외쳤다.
“일단 후방으로……!”
그때였다.
하단에서부터 크게 호선을 그리며 올라간 광룡부에서 무지막지한 폭풍이 휘몰아쳤다.
콰르르르릉!!
엄청난 폭음과 함께, 우르르 들이닥쳤던 암살자 십여 명의 몸뚱이가 걸레짝처럼 찢겨 날아갔다.
사마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저 무거운 도끼가 저리 빨리 움직이는 것도 불가해였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위력과 결과물이었다.
암인단의 암살자들 열 명을 일격에 죽여 버렸다고? 그것도 기습이었는데?
퍼어어어엉!
건물 입구에서 작은 폭음과 함께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독연(毒煙)이었다. 암살자들이 퇴로를 막은 것이다.
연호정이 혀를 찼다.
“너희는 어째 하는 짓거리가 나 때랑 변한 게 없냐.”
그가 힘차게 진각을 밟았다.
콰앙!
순간 건물 벽이 통째로 흔들리며 무시무시한 기파가 피어올랐다.
크허어어엉!
저 어딘가에서부터 사나운 야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백호공, 백호기의 발현이었다.
“어이, 대제자.”
사마현이 흔들리는 눈으로 연호정을 바라보았다.
연호정이 양손으로 광룡부를 들어 올렸다.
“길은 내가 만든다. 넌 뒤를 맡아.”
“뭐, 뭐라고……?”
“흡!”
콰아아아앙!
호왕의 강격으로 건물 벽을 뚫어 버린 연호정이 암살자들을 피해 달려 나갔다.
사마현의 얼굴이 구겨졌다. 하필 암인단의 암살자들이 다 보는 데서 뒤를 맡아 달라니?
‘……빌어먹을!’
피이이이잉!
암살자 하나가 연호정에게 쏘아 낸 암기를 장력으로 밀쳐 낸 사마현이 황급히 연호정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