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406)
406화. 난장(亂場) (6)
퍼어어어엉!
마지막 암살자 하나의 머리통을 날려 버린 묵비가 심호흡을 했다.
“후우우우.”
무호흡 난사로 수십 발의 무형탄을 날렸다. 제아무리 내공량이 많은 그녀라도 잠시지간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암살자들의 신법은 변화무쌍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들의 공격에 맞춰 폭발적인 신법까지 겸용하니, 천하의 묵비도 체력 소모가 극심했다.
‘그래도 다행이야. 백타 수련 덕을 많이 봤어.’
과거, 연호정과 근접 박투 훈련을 자주 했었다.
근래는 연호정이 바빠 홀로 수련하거나 군병들과 손속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 수련은 내공과 체력이 바닥이 날 때가 되어서야 끝났다.
그런 수련을 거의 하루도 빼먹지 않고 했다. 그 덕에 암살자들과의 싸움에서도 끝까지 집중한 채 싸울 수 있었다.
새삼 연호정의 가르침이 고마웠다.
우우우우우웅.
홍천기를 기반으로 한 활궁강현진기가 무섭게 전신을 휘감았다.
떨어졌던 체력이 급속도로 차올랐다. 홍천기가 받쳐 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빨리 회복하진 못했을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응. 너는?”
“괜찮습니다.”
여국이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았다.
묵비만큼은 아니지만, 여국 역시 체력 하나만큼은 누구 못지않았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멸사군 전원이 그러했다.
“부장님을 보조한 덕에 살았습니다. 부장님이 아니었으면 당했을 거예요.”
묵비와 비슷한 수준의 고수가 있어도 당했을 것이다. 단둘이서 이 많은 암살자를 처리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묵비의 신들린 신법과 극도로 정교한 궁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묵비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야. 넌 북쪽으로 올라가서 남은 멸사군을 끌고 제삼 거점으로 이동해라.”
“알겠습니다. 부장님은요?”
“전장으로 간다.”
여국이 포권을 취했다.
“도착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파아아악!
여국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지독한 생사결을 벌인 직후임에도 신법에 흔들림이 없었다. 천하 정점에 이른 도가 무공을 연성한 고수답게, 격정적인 싸움을 벌였음에도 진기의 흐름이 여일(如一)한 것이다.
묵비가 자신의 뺨을 가볍게 쳤다.
‘자, 그럼.’
파아아앙!
그녀가 재차 하늘을 날았다.
용비순행에 탄력이 붙었다. 궁술의 위력과 창술의 유연함은 물론, 경신술 역시 예전보다 한층 더 완벽해졌다.
이제는 몸 하나 빠져나갈 공간만 있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을 만큼 진기의 조율이 섬세해졌다. 이번 암살자들과의 싸움에서, 묵비는 자신이 이룬 무(武)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파앙! 파아아앙!
달리면 달릴수록 속도가 붙었다.
마음 같아서는 연호정이 뚫고 간 방향을 그대로 쫓아가고 싶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연호정이 아니라 멸사군병 다섯이었다.
싸움이 붙지 않았다면 모를까, 적의 수장과 붙었다며 연호정보다 군병 다섯이 더 위험하다. 묵비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리고 그녀의 판단은 옳았다.
군병들이 오는 방향, 북동쪽으로 빙 돌아서 신법을 펼치던 묵비의 감각에 무언가가 잡혔다.
콰아앙!
공기를 뒤흔드는 폭음이 묵비의 신경을 칼날처럼 날카롭게 만들었다.
‘삼살진!’
그렇다. 이건 삼살진의 기운이었다.
나아가 그 기운을 뒤흔든 것은 예전에 한 번 겪어 봤던 한 초고수의 사악한 힘이었다.
‘혈음장이라고 했던가?’
그녀는 연호정의 말을 떠올렸다.
‘만일 내 예상대로 퇴로 쪽에 적이 온다면, 음신은 몰라도 그 망할 년은 반드시 있을 거야. 당연히 혼자 오지는 않겠지. 우리한테 그렇게 당했으니.’
‘당연히 일차적으로 습격을 당한 다음이 될 거다. 물론 그럴 확률은 낮다고 생각하지만, 대제자라는 놈이 꼬리를 밟혔다면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야. 정말 그런 경우가 생기면, 너는 무조건 군병들과 힘을 합쳐야 한다.’
‘분명하게 기억해. 그럴 확률은 지극히 낮아. 어지간하면 우리가 찢어지는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정말 그런 상황이 생기면, 그때 멸사군을 지휘하는 사람은 너야. 적을 제거하는 것보다 상대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상대하는 것보다는 생존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내 말 꼭 명심하도록 해.’
묵비는 연호정의 말을 똑똑히 기억했다.
어지간하면 연호정에게 다 맡겨도 된다. 하지만 연호정이 빠지는 상황이 온다면, 그의 말마따나 멸사군을 지휘하는 사람은 자신이다.
긴장하고 또 긴장해야 했다. 연호정만큼은 못하더라도 수많은 대응책을 만들어야 하고, 나아가 빠른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묵비는 새삼 연호정의 혜안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확률은 적다고 했지만…… 여기까지 내다보고 있었다니.’
능력 좋은 상관을 모시는 건 힘든 일이다.
하지만 연호정 정도가 되면 얘기가 다르다. 이렇게나 철저히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 있으니, 아군으로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그 덕을 봤으니,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
파아아아아앙!
마지막 한 걸음으로 순간 두 배의 속력을 냈다.
그런 그녀의 눈에, 우측 저 멀리서 격전을 벌이는 연호정의 모습이 보였다.
묵비의 눈이 번뜩였다.
‘강자!’
역시나 그렇다. 연호정의 짐작대로 혈음장의 고수 혼자 온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음신일 확률이 커.’
그때였다.
‘……?!’
묵비의 눈이 흔들렸다.
‘저, 저……!!’
옥청의 뒤에 있던 음신의 대제자가 일순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며 음신으로 추정되는 자를 향해 뛰어들었다.
촤르르르륵!
교룡쇄를 휘두르던 연호정이 중간에서 공격을 멈추는 게 보였다. 천하의 연호정이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순간 멈칫했던 묵비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
‘저곳은 내 전장이 아니야.’
연호정이라면 어떻게든 알아서 대처할 것이다. 연호정이라면 반드시!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간다.’
파앙!
거침없이 하늘을 날던 묵비의 눈에, 어느새 피투성이가 된 다섯 군병의 모습이 보였다.
‘송연경!’
멸사군 다섯은 바로 송연경을 위시한 아미의 창수들이었다. 진을 형성한 채 육 척 장창을 신들린 듯 휘두르고 있었지만, 귀신처럼 움직이는 혈음의 귀녀(鬼女)에게 제대로 된 공격을 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앞뒤 따질 때가 아니었다. 묵비가 곧바로 홍련궁의 시위를 당겼다.
순간, 소방이 고개를 돌려 묵비를 보았다.
‘……!!’
묵비는 등허리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정확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소방의 눈은 극도의 살기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묵비가 시위를 놓았다.
퍼어어어어엉!
무형탄이 절반도 날아가지 못한 채 허공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소방이 쏘아 낸 장력이 무형탄보다도 빨랐던 것이다.
파파파팡!
신들린 움직임으로 허공에서 방향을 튼 묵비가 다섯 군병 뒤로 내려섰다.
송연경의 눈이 커졌다.
“부장님!”
묵비는 대답 없이 홍련궁을 들었다. 대답을 위해 입을 여는 그 미세한 시간조차도 아까웠다.
홍련궁에 걸린 철전이 빛살처럼 쏘아졌다.
피유우우우우웅! 쾅!
철전이 그대로 망가지며 허공으로 날아갔다.
“……이 개 같은 년이.”
주먹질로 철전을 튕겨 내 버린 소방이 이를 갈았다.
그녀의 주먹에는 기다란 자상이 나 있었다. 철전은 망가졌지만, 그 관통력이 예상보다 강해서 그녀의 내공 방패를 뚫고 들어간 것이다.
묵비의 눈이 번쩍였다.
‘약해졌다!’
소방의 사기는 드러난 살기에 어울리지 않게 무척 탁하고 느릿했다.
멸사삼살진을 압도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삼살진의 진력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연호정이 진축(陣軸)으로 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분명 진기와 체력이 빠르게 소모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해!’
후우우우웅!
묵비의 손가락에 활궁강현진기가 잔뜩 모였다.
“창병! 그대로 밀어붙여! 뒤는 내가 맡는다!”
“예!”
쩌렁쩌렁한 외침과 함께 다섯 창병이 힘차게 전진했다.
고작 한 명의 가세였지만, 그 한 명은 멸사군의 최강자이자 신궁(神弓) 소리를 들어도 부족하지 않은 달인이었다.
그만한 상관이 함께하는데 어찌 두렵겠는가. 송연경을 위시한 창병들의 두 눈에 불꽃 같은 전의가 어렸다.
소방이 버럭 소리쳤다.
“네년들 모두 천 갈래로 찢어 주마!”
묵비가 냉정하게 시위를 놓았다.
“가능하다면 해 봐라.”
피유우우웅!
* * *
‘……?!’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너!’
찰나에 찰나를 쪼갠 순간.
허깨비처럼 옥청의 어깨 위로 날아오르는 사마현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빠르고 은밀한지, 자신의 머리 위로 날아오르고 있음에도 옥청은 알아채지 못했다. 굉장한 은신술이요, 신법이었다.
문제는 사마현의 신법이 지나치게 빨라서, 어느새 그가 뻗어 나가는 교룡쇄와 야율적 사이로 짓쳐들어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천하의 연호정도 사마현의 돌발 행동은 예상치 못했다.
치리리리리링!
교룡쇄가 중간에서 방향을 틀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사마현의 몸통을 꿰뚫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콰아아앙!
교룡쇄가 땅을 후려치며 자욱한 연기를 피워 냈다.
퍼억! 빠각!
그때, 사마현이 피를 토하며 뒤로 물러났다.
“이익!”
사마현 앞, 야율적의 모습이 드러났다.
가슴에 비수가 박힌 야율적의 몸에서 끔찍한 살기가 배어 나왔다. 설마하니 사마현에게 기습을 당할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이, 이 죽일 놈이!!”
푸스스스스스!
수왕사기가 불꽃처럼 넘실거렸다.
비록 연호정의 실력에 당황하여 불의의 일격을 허용했지만, 교룡쇄의 움직임을 제대로 꿰고 있던 그였다. 그 공격에 대응하려는 순간, 예상치 못한 사마현의 공격에 당해 버린 것이다.
음신지기를 피우고 있었다면 기습을 허용했을 리가 없다. 수왕사기로 전신을 꽉 채우고 있었기에 사마현의 은신술을 간파하지 못했다.
뼈아픈 실책이었다.
“죽여 달라고 용을 쓰는구나!”
파아아악!
야율적이 사마현을 향해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일격에 쳐 죽일 기세였다. 오히려 연호정과 싸울 때보다도 더 흉흉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혼란의 순간.
번쩍!
혈익휘천으로 사마현의 곁에 도달한 연호정이 야율적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동시에 옥청이 야율적의 등을 향해 태극혜검을 휘둘렀다. 사마현의 곁으로 움직이는 것보다 야율적에게 살수를 가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본 것이다.
네 명의 고수가 한 지점에서 제각기 상대를 노리는 순간.
연호정의 사신기와 야율적의 수왕사기, 옥청의 혼원기와 사마현의 음신지기가 충돌했다.
쾅! 퍼억! 쩌어어어어어엉!
“크아아악!”
“컥!”
엄청난 충격파가 터져 나가며 일대가 쑥대밭으로 변했다.
사마현이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고, 연호정 역시 내상을 입은 채 물러났다.
연호정의 옆구리에는 옥청이 들려 있었는데, 정신을 잃었는지 축 늘어진 채였다. 손에 쥔 검은 반으로 뚝 부러져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파아아악!
“크아아악!”
피 섞인 외침과 함께 야율적이 짐승 같은 움직임으로 도주했다.
당장 쫓아가려 했지만, 옥청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기식이 엄엄한 것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연호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퍼어어어어엉!
홍염육살수의 격공장으로 도망치는 야율적의 등판을 갈겼다.
야율적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듯하다가 다시 몸을 날렸다. 오로지 생존을 위한 도주였다.
“……!!”
연호정이 허탈한 눈으로 야율적이 사라진 퇴로를 보았다.
세상일이라는 게 언제나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는 않는다지만, 설마하니 다 잡은 놈을 이렇게 놓칠 줄이야!
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연호정이 서둘러 옥청의 맥을 짚었다.
그의 눈이 흔들렸다.
“옥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