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43)
43화. 규율의 허점 (3)
강윤의 눈이 번뜩였다.
삼류 건달이라니? 이건 분명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제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인사는 어디다 팔아먹었어?”
“예?”
“벽산연가의 대공자가 나다. 설마 모르고 있었나, 대주씩이나 되는 사람이? 아니면 까먹은 거야? 벌써 치매는 아니지?”
가만히 연호정을 보던 강윤이 절도 있게 고개를 숙였다.
“경황이 없어 실례를 범했습니다. 비응대주 강윤이 대공자님을 뵙습니다.”
“그걸로 끝인가?”
“예?”
“경황이 없으면 사람을 죽여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강윤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말씀이 과하십니다.”
“대드는 건가?”
“이것이 어째서 대드는 것입니까?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대드는 게 아니면, 그 눈깔은 뭐야? 반항이야?”
“대공자님.”
“왜?”
“저는 대공자님께 대드는 것도, 반항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여기까지 하시지요.”
“여기까지 하자?”
“그렇습니다.”
“부탁도 아니고 명령을 내려? 이거 안 되겠구먼, 강 대주.”
강윤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아무리 대공자님이라도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따지고 들기까지 하는군. 자네 이러는 거, 자네 선배들도 아나?”
“대공자님!”
저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연호정이 귀를 후볐다.
“인사도 없고, 대드는 건 예삿일에 따박따박 따지고 드는 것도 모자라 감히 명령까지?”
“……!”
“이 정도면 자네, 본가에서 쫓겨나도 할 말이 없지 않은가?”
강윤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어찌 이러십니까? 저는 대공자님께 무례를 범하려 한 적이 없습니다.”
“자신을 되돌아보지, 그래?”
“물론 인사를 하지 못한 것은 저의 잘못입니다. 다만 대공자님께서도 말씀이 과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삼류 건달이라는 평가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럼 강 대주는, 지금 본인의 행동이 건달패가 하는 짓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건가?”
강윤의 눈이 충혈되었다.
“건달패라니요? 감당키 힘든 말씀입니다.”
“그래? 내 말이 심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럼 저 애들은?”
“예?”
연호정이 턱으로 유지하를 가리켰다.
유지하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이미 한차례 굴림을 당한 모양이었다. 무복 여기저기에 흙이 묻어 있었다.
유지하만이 아니었다. 비응 삼 조 전체가 다 그러했다.
“뭘 그리 잘못했길래 식사도, 휴식도 없이 수련을 시키나? 하물며 철심목검까지 들게 하고.”
“이들은 대주인 저의 명령을 듣지 않았습니다. 명령 불복종에 규율 위반입니다. 대주로서 마땅한 벌을 내리는 것이…….”
“명령 불복종에 규율까지 위반했으면 차라리 즉참(卽斬)으로 다스릴 것이지, 왜 그런 지저분한 벌을 주냐는 거다.”
무시무시한 발언이었다.
비응 삼 조 전원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설마하니 이런 일로 즉참이라는 말까지 나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느닷없는 폭탄 발언에 당황한 것은 강윤 역시 마찬가지였다.
“즉참이라니요? 그것은 과한 처사입니다!”
“지금 강 대주가 시키려는 짓보다는 나아 보이는데? 죽일 거면 일검에 목을 따 버리지 왜 고문을 시키나?”
“어찌 고문이라 말씀하십니까? 이것은 타당한 징계입니다!”
“징계?”
연호정의 안광이 서슬 퍼렇게 빛났다.
그 눈빛이 어찌나 매서웠는지 깡다구 좋기로 소문난 강윤조차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너, 유지하라고 했지?”
대공자님께서 이름까지 기억해 주실 줄은 몰랐다. 유지하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예, 예!”
“앞으로 나오너라.”
유지하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비응 삼 조 중 유독 심하게 구른 듯 얼굴과 손에 잔상처가 많았다.
“너희들이 대주한테 욕먹는 이유가 뭐야?”
“예?”
“…….”
“아! 그, 그것은…….”
유지하가 강윤의 눈치를 보았다.
강윤이 입을 열었다.
“외람되오나 대공자님, 저는 대주입니다. 그리고 대주에게는 자대원의 신상필벌(信賞必罰)에 관한 전권이 있습니다. 제아무리 대공자님이라 해도 이것은 월권행위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입 닥치고 있으시라?”
“대공자님!”
연호정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내가 말할 때 한 번만 더 끼어들면, 그때는 법인각(法刃閣)으로 소환하겠다.”
강윤의 눈이 흔들렸다.
법인각은 가내 법과 내사(內査)를 주관하는 조직이었다. 특별한 경우, 가주를 대신하여 직접 판결을 내리기도 하는 조직이기도 했다.
하는 일이 그렇다 보니, 가내 무인들은 법인각을 가장 두려워했다. 가법(家法)을 어기거나 뇌물 수수 등의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순간 법인각에 끌려가 중형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연호정은 그런 조직으로 대주를 소환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강윤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하지만 감히 나설 수는 없었다.
연호정이 유지하에게 말했다.
“너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묻는 말에 즉각 대답하지 않으면 대주와 함께 법인각으로 가게 될 거다.”
유지하의 자세가 대번에 꼿꼿해졌다.
“시, 시정하겠습니다! 어제저녁, 취침 시간에 한 시진 동안 개인 훈련을 한 죄로 벌을 받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연호정이 인상을 찡그렸다.
“개인 훈련을 했다고 벌을 받는다고?”
“그, 그렇습니다!”
“무가의 조직원이 밤잠을 줄여 수련했는데, 그게 죄라는 건가?”
“그것은…….”
“설마 너, 과한 수련으로 부대 훈련에 악영향을 준 거냐?”
유지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대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호정은 유지하의 표정만으로, 그가 부대 훈련을 잘 수행했다는 걸 눈치챘다.
연호정이 강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게 왜 죄지?”
강윤이 입을 열었다.
“저는 부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고, 정해진 시간에 취침합니다. 백 명의 조직원들이 한 몸처럼 움직이기 위해선 그러한 통제가 필수입니다.”
“통제라?”
“그렇습니다. 그러한 훈련은 수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누구도 그 군율(軍律)을 어긴 자가 없었습니다. 어제까지는요.”
강윤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부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굳이 이런 걸 설명해야 하나 싶었던 것이다.
연호정이 유지하를 돌아보았다.
“너희 대주는 그렇다고 하는데?”
“…….”
“니들 대주가 싸가지는 없지만, 방금 한 말은 나름 사리에 맞는 것 같다.”
“하지만…….”
“하지만?”
유지하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억울하긴 했을 것이다. 제아무리 군율이 중요하다 한들, 문객이 책을 읽고 무인이 무공을 단련하는 게 어찌 죄가 되겠는가.
억울함 때문일까? 유지하가 짓눌린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비응대에 작년에 입대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해서 비응대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일 년 동안 개인 훈련은 철저하게 금지되었습니다. 오로지 부대 훈련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대에 왔으니 부대 규율에 맞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이상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일 년 동안, 저는 물론 다른 부대원들의 실력은 눈곱만큼도 늘지 않았습니다.”
연호정의 눈이 깊어졌다.
“대신 비응대의 전력 자체는 좋아졌겠지. 모두가 하나로 똘똘 뭉쳤으니.”
“그렇습니다.”
“몇 살이지?”
“열여덟입니다.”
“열여덟이면 알 건 다 아는 나이 아닌가? 너는 비응대원이다. 비응대로 들어왔으면, 비응대의 규율에 맞는 행동이 필요해. 그것을 다른 말로 책임이라 한다.”
“…….”
“네 억울함은 알겠다. 그러나 조직에는 조직 나름의 법도라는 게 있어. 너의 선택으로 들어온 조직인 만큼, 그 나름의 책임도 분명히 져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그만두려고 하였습니다.”
“뭐?”
유지하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결국 저는 조직에 적응하지 못한 셈입니다. 해서 적법한 절차를 밟아 탈군 요청을 했습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적법한 절차를 밟아 요청했다? 그런데 왜 그만두지 못했지?”
유지하가 울분을 토해 내듯 말했다.
“한번 비응대는 영원한 비응대라고 했습니다. 비응대를 나가는 방법은 죽는 것 외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연호정의 눈이 차가워졌다.
이제야 유지하가 왜 개인 시간을 내려고 했는지 알겠다. 대주의 명령을 거슬렀으니 그것은 분명 규율 위반이지만, 강해지고 싶었던 유지하로선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강윤이 서둘러 끼어들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것은 부대의 공동체 의식을 위한 발언일 뿐,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됐군.”
연호정의 목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차가워졌다.
“실제로 그런 게 아니라고 하는데, 이 친구는 왜 나가지 못한 건가? 적법한 절차를 밟았다고 했잖나?”
“절차에도 나름의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당시에는 가문 내 부대들의 전력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부대원이 이탈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당연한 조치였다?”
“그렇습니다.”
“그 절차의 유연함은 이를테면, 비응대라는 조직을 위한 것이로군.”
“물론입니다. 비응대가 강해지는 것은 연가의 전력이 상승하는 것입니다.”
자신 있게 말하는 강윤이었다.
그리고 그런 강윤에게, 연호정은 참고 참았던 한마디를 던졌다.
“무능력한 놈!”
“뭐, 뭐라고 하셨습니까?”
“네 말마따나 비응대의 전력이 강해진다는 건 연가의 힘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하면 비응대가 강해지기 위해선, 누가 강해져야 하는 것이냐?”
“……!”
“왜 대답을 못 해? 가내 전력 발표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함이 아니라, 진정 비응대가 강해지기 위한 최소 요건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그것은…….”
“너만 강해지면 끝이냐?”
“…….”
“부대원들이 강해져야 부대의 전력도 상승하는 것이다. 한데 너는 조직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탈군을 원하는 부대원을 억지로 억류시켜 놓았군.”
강윤의 얼굴이 구겨졌다.
“억류라는 말씀은 어폐가 있습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럼 그 이후는? 이 친구는 왜 지금까지도 비응대에 남아 있지?”
강윤은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기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진즉에 잊고 있었다. 제대로 훈련만 시키면 알아서 적응할 줄 알았던 것이다.
다들 그렇게 크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유지하의 요청이 일고의 가치도 없다 생각했다.
“그것도 규율이냐? 적법한 절차를 밟았는데도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
“대답해.”
“아닙니다만, 그것은 모두 연가를 위한…….”
“아, 그런가? 이 모든 것이 본가를 위해서라는 자네 개인의 판단 때문이라는 것이지?”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결국 이것이로군. 넌 법과 규율에 목숨을 걸지만, 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선 유연함을 논하고, 너 스스로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만 칼 같은 것이로군.”
“그렇지 않습니다!”
“뭐가 그렇지 않아, 이 무능력한 새끼야.”
강윤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아무리 대공자님이라도, 더 이상의 모욕은 참아 드릴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 일은 전적으로 비응대의 일입니다. 더는 참견하지 마십시오.”
애초에 강윤은 연호정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혐오했다. 그는 벽산연가라는 위대한 가문의 장자가 주루에나 쏘다니는 한심한 놈이라는 걸 아는 순간, 연호정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연호정이 변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창응대 측에선 대공자의 변화된 모습에 대해 말이 많았지만, 그는 절대 믿지 않았다.
그런 대공자가 비응대의 일에 참견하고 있었다. 강윤으로서도 참을 만큼 참은 것이다.
연호정의 미소가 흐릿해졌다.
“참견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연호정이 유지하에게 말했다.
“너, 가서 법인각주(法刃閣主)를 데려와라.”
순간 대연무장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연호정이 강윤을 보며 말했다.
“연가를 위해서 비응대를 네 마음대로 다뤘으니, 나도 본가를 위해서 너 같은 무능력한 놈을 대주 자리에서 쫓아내야겠다.”
“……!”
“옷 벗을 각오는 해 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