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492)
492화. 폭풍우가 몰아치다 (3)
연호정이 고개를 숙였다.
“두 분께서 모여 계신단 말씀은 들었습니다.”
복호사태가 웃으며 말했다.
“고생이 많으시오, 대수.”
“제 고생이야 봉공분들의 노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복호사태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야 모여서 회의하고 머리나 굴리는 게 다지만, 연 대수는 아니잖소. 연 대수가 여러 방면으로 힘써 준 덕분에 우리가 편한 게요.”
복호사태는 예전부터 연호정을 좋게 보았다.
구파 장문인들의 성격은 가지각색이었지만, 그중 복호사태는 순박한 천품에 정의를 숭상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젊었을 때는 그런 성격 때문에 동문들과의 마찰이 심했다고 하였다. 무림인이기 전에 불문의 비구니임이 분명한데, 지나치게 열혈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성격도 나이를 먹자 조금씩 여유를 찾았다. 그럼에도 특유의 정의감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아, 한 문파의 좌장을 맡기에 부족함이 없는 성품으로 완성되었다.
그런 그녀가 보기에, 연호정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협객의 표본이었다.
머리도 좋고, 눈치도 빠르며, 무공도 고강하다. 그런 뛰어난 인재가 언제나 위험천만한 적지로 돌격하여 온갖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성격이 다소 과격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 또한 선을 넘지 않는 정도였다. 오히려 악인에게는 그 성품이 공포를 일으킬 것이다.
다 떠나서, 복호사태는 연호정의 성격이 젊은 날의 자신을 보는 듯해서 좋았다. 그런 성격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기에 더더욱 좋게 보였다.
연호정이 고개를 숙였다.
“좋게 봐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사람이나 여기 계신 청성의 장문인이나, 연 대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소. 항상 위험한 임무를 맡게 하여, 무림의 어른으로서 미안할 따름이오.”
풍벽자가 한숨을 쉬었다.
“한 조직의 수장을 맡게 되면, 응당 나서야 할 일에도 이것저것 재야 할 때가 많다네. 나 하나의 행동으로 문파 전체가 피해를 볼 수 있으니까.”
“알고 있습니다.”
“다만, 무림에 출사표를 던진 이상 어떤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의협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네. 하나, 그런 당연함을 나 역시 잊고 있었던 모양이야. 그래서 자네를 볼 면목이 없네.”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다. 그의 목소리에는 오랜 세월 치열하게 고민한 인격자의 고뇌가 진하게 묻어 나오고 있었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일문의 수장이라도 의협을 위해 움직여야 함은 당연하나, 더 중요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음?”
“후학을 기르는 일 말입니다. 악을 응징할 수 있도록, 당연한 일에 당연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는 것이지요.”
“허어.”
“무림맹에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니 그리 낙담하실 필요도, 부끄러워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청성과 아미는 협의 넘치는 멋진 무사들을 많이 배출한 명문이 아닙니까.”
풍벽자가 고소를 지었다.
“그리 포장해 주지 말게. 자칫 자네의 말을 변명 삼아 더 게을러질까 걱정이네.”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만으로도 장문인께서 게을러질 일은 없을 듯합니다.”
“허허, 민망하구먼.”
복호사태가 말했다.
“그래, 이렇게 와 준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할 따름이오. 여기 청성 장문인께서도 인정하신바, 우리는 연 대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소.”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맹을 위해, 아니 강호를 위해 힘써 주시오. 이 늙은이가 할 말은 그것뿐이오.”
무림맹을 위해서가 아니라 강호를 위해서.
복호사태의 순수함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고 소속감이 생기면 천하의 안녕보다 문파의 이익에 더 신경 쓰기 마련인데, 복호사태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풍벽자가 은근한 목소리로 운을 뗐다.
“그나저나 연 대수.”
“말씀하십시오.”
“혹 멸사군에 자리가 있는가? 본문에도 영준한 젊은이들이 제법 있는데, 몇 놈 보내 볼까 싶기도…….”
“스읍.”
복호사태가 풍벽자를 향해 눈을 흘겼다.
풍벽자가 헛기침을 하며 우물쭈물 말했다.
“아니 뭐…… 좋잖소? 연 대수의 능력이야 천하가 다 알고 있는데, 이런 무사 밑에서 세상을 배울 수 있다면 그것도 복이외다.”
“내가 장문인의 속내도 모를 줄 아오? 안 그래도 바쁜 사람 심란하게 만들지 마시오.”
“헙! 내가 뭐 어쨌다고 그러시오?”
“바보가 아니라면 연 대수가 차세대 무림의 핵심 중 하나가 되리라는 걸 알고 있을 게요. 휘하 검사들과 연을 맺게 해서 청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려는 속셈이 아니오?”
“어허, 사태께서는 말도 참 살벌하게 하시는구랴. 아니 그리고, 그게 뭐 어쨌다고 그러시오? 서로 배우고 연을 맺으면 좋은 일이지. 안 그런가, 연 대수?”
연호정은 저도 모르게 하하 웃어 버렸다.
“청성의 검사들이 도와준다면 오히려 제가 영광 아니겠습니까.”
풍벽자가 복호사태를 향해 콧방귀를 뀌었다.
“거보시오. 역시 연 대수는 뭘 아는구먼.”
복호사태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정말이지 젊을 때와 달라진 게 전혀 없구먼.”
“아직 젊게 산다고 해 주시오. 같은 말이라도 그게 더 기분이 좋소.”
두 사람은 친분이 있었다.
사천성은 육대세가의 일문인 당가와 구파의 청성, 아미가 모인 곳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중원 전역에서 정파의 힘이 가장 막강한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실질적으로 사천성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은 당가였다. 청성과 아미와는 달리 당가는 속가(俗家)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하의 당가도 청성과 아미를 어찌할 수는 없다. 청성파와 아미파, 두 문파는 수행자들의 집단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하나, 지배나 통치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 성향이기에 두 문파의 수장들은 유독 가까워질 수 있었다. 특히 풍벽자와 복호사태는 젊을 적부터 함께 악을 처단하러 천하를 떠돌아다닌 사이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풍벽자도 세월의 풍상 때문에 말랑말랑해졌지만, 악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여전히 화염처럼 강렬하고 뜨거웠다.
“그나저나, 우리는 어쩔 생각인가?”
“예?”
풍벽자가 눈을 빛냈다.
“등 장문인과 용화진인이 형당에 가질 않았나. 우리도 거기로 보낼 셈인가?”
장난처럼 말했지만, 연호정에게 꿍꿍이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구파의 장문인 둘을 형당으로 보내 버린 자가 앞에 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연호정을 대함에 있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거인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두 사람 역시 무림의 거인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연호정이 씁쓸하게 웃었다.
“가르침을 받는 정도라면 모를까, 먼저 살수를 가하시더군요. 어쩔 수 없었습니다.”
“터놓고 말하자면, 등 장문인은 몰라도 용화진인은 함부로 손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네.”
함부로 손을 쓰도록 유도한 사람이 네가 아니냔 말이다.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제가 아슬아슬하게 나가지 않았다면, 용화진인께서도 매화검(梅花劍)으로 제 목을 노리진 않으셨겠지요.”
“목을……!”
풍벽자는 침음했다. 설마하니 용화진인이 진짜로 연호정을 죽이려 들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무리 자극을 받았다 해도 상대를 죽이려 하다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상대가 연호정이 아니라 무림맹의 말단 무사라도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복호사태가 물었다.
“연 대수만의 작품은 아닐 테고, 군사와 함께 진행한 일이오?”
“날카로우시군요.”
“그래, 그 두 사람이 먼저 살수를 가했다면 상황이 어찌 되었든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오. 하지만 분명한 목적을 갖고 움직였다면, 연 대수에게도 잘못이 있소.”
연호정이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들께는 면목이 없습니다.”
복호사태가 한숨을 쉬었다.
“알 만한 사람이 어찌 그러셨소? 군사도 그렇고.”
“솔직한 답변을 바라십니까?”
“물론이오.”
“저는 그 두 분 중에 세작이 있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순간 풍벽자와 복호사태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말이 확신이지, 아직 확실하게 드러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두 분 이외의 사람이 세작일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고 봅니다. 그것은 확실합니다.”
“…….”
“훗날 두 분 중 한 분께는 깊게 사죄를 드려야겠지요. 어쩌면 목숨으로 갚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나 위험하게 보고 있소?”
복호사태가 한숨을 쉬었다.
“삼교의 세작을 잡는 일이, 그렇게나 중요하오?”
세작의 위험성을, 삼교의 힘을 모르지는 않았다. 아직 실감하지 못했을 뿐, 정보가 사실이라면 삼교는 역사에 몇 없을 희대의 난적이었다.
하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런 식의 일 처리는 반감만 불러올 뿐이다. 복호사태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것이 상식이기도 했다.
연호정이 고개를 숙였다.
“자세한 말씀은 군사께서 하시겠지만…… 두 분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삼교는 훨씬 위험합니다.”
“물론 알고는 있소만…….”
“다른 걸 떠나, 이미 삼교 중 한 곳이 황궁에 침투하여 고위 관리들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세작도 잡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패망하게 될 겁니다.”
“……음.”
연호정이 눈을 빛냈다.
“잘못인 걸 알면서도 행한 일입니다. 말하자면 저나 군사님이나 목숨을 걸었지요. 일부터 저지르고 떼쓰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만 지켜봐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가만히 연호정을 보던 풍벽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솔직히 말함세. 나는 연 대수의 능력을 믿지만, 아직 자네라는 사람 자체를 마음 깊이 신뢰하는 건 아니라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제갈 군사는 믿는다네. 내, 군사의 얼굴을 봐서라도 이번 일은 모르는 체할 것이네.”
“감사합니다.”
복호사태가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연 대수를 믿소. 군사도 믿고. 그러니 나 역시 지켜보도록 하겠소. 다만…… 부디 선은 넘지 말기를 바라오.”
“반드시 그러겠습니다.”
그때였다.
쿠우웅!
풍벽자와 복호사태는 깜짝 놀랐다. 저 멀리 연무장에서 발생한 충격파가 순간적으로 이곳까지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일인가?”
“아, 패율 선배로군요.”
“패율이라면 점창의?”
“그렇습니다.”
잠시 후, 패율과 청성의 검사가 찾아왔다.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비무를 조용히 끝내려 했는데…….”
풍벽자가 헛웃음을 흘렸다.
“충천하는 검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네 녀석의 부족한 검공(劍功)으로 보일 만한 것은 아니고, 패율 자네인가?”
패율이 고개를 숙였다.
“중요한 담소를 나누시는 중에 방해가 된 듯하여 죄송할 따름입니다.”
“방해된 건 없네. 그저 조금 놀랐을 뿐이지.”
연호정이 웃으며 일어났다.
“어찌 되었든, 묵룡부 파견 건에 대해서는 두 분 모두 허락하신 것으로 알면 되겠습니까?”
풍벽자와 복호사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호정이 포권을 취했다.
“다음에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히 계시길.”
거처에서 나온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잠시 후, 패율이 물었다.
“네 말마따나 있는 힘껏 충격파를 뽑아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간만에 청성의 검학을 봐서 좋았지. 그나저나, 원하는 건 얻었느냐?”
“얻었습니다.”
연호정의 눈에 불이 붙었다.
“의심할 만하더군요, 역시. 반응이 일품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