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534)
534화. 강자존(强者存) (2)
엽성이 안내한 술집은 정말 묵룡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해 있었다.
허름하진 않았지만 크게 깔끔하지도 않았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도 아니어서 휑했다.
이 위치가 제법 묘했는데, 오다가다 쉽게 볼 만한 곳은 아니었다. 신경 써서 찾으려 들어도 지나칠 만큼 오묘한 위치다. 크게 보면 숲과 가까이 있었다.
“나와 몇몇 사람만 아는 비밀 술집이지.”
“흐음.”
연호정이 점소이 복장을 한 사람을 흘끗 보았다.
놀랍게도 내공을 익히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리 언질이라도 받았는지, 주방 안에서 한창 요리를 하는 두 사람도 상당한 고수였다.
능히 일류라 할 만했다. 그만한 고수 둘이 음식을 만들고, 하나는 자리를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앉지. 여기 풍경이 가장 좋거든.”
단층이었지만, 실제로 창밖의 풍경이 좋았다. 불어오는 바람도 선선했고,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이 묘한 운치를 자아냈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좋은 곳이군.”
“그렇지?”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은밀한데.”
엽성은 솔직하게 말했다.
“내가 몰래 지었지.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초대할 때 종종 쓰려고.”
“그래?”
초대라는 말의 어감이 묘했다.
단순한 초대가 아니라 제 사람으로 회유하려 할 때 이곳을 찾을 것이다. 술이 되었든 음식이 되었든, 여색이 되었든 금은보화가 되었든 다 이곳에서 일을 벌일 것이다.
연호정이 나른한 얼굴로 의자에 등을 묻었다.
“배고픈데 음식이나 빨리 주게.”
“그건 걱정하지 말게나. 냄새 좀 맡아 봐. 좋은 요리들을 준비 중이야.”
실제로 주방에서부터 풍겨 오는 냄새가 무척이나 좋았다. 향만 맡아도 배부름이 사라지는 것 같을 정도로 매혹적인 냄새였다.
“술부터 한잔할까?”
“좋지.”
잠시 후, 점소이가 고급스러운 자기 병 두 개를 가져왔다.
연호정의 눈이 빛났다.
“백주(白酒)가 아니군.”
“본부의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자린데, 그따위 싸구려 술을 가져올 리가 있겠나.”
“그래?”
“금존청(金尊靑)이야. 마셔 본 적 있나?”
“한두 번?”
“마셔 봤다니 얘기가 빠르겠군. 나도 술깨나 즐기는 사람이지만, 지금껏 이보다 더 맛난 술은 마셔 본 적이 없어.”
실제로 금존청은 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그리고 그 맛만큼이나 비싼 술이기도 했다.
“한잔 받지.”
연호정은 서슴없이 잔을 내밀었다.
“나도 한잔 따라 주게.”
“좋지.”
연호정이 엽성의 잔을 채워 주었다.
“마셔 볼까.”
두 사람이 동시에 잔을 넘겼다. 서로가 굳이 건배는 하지 않았다.
“어때? 괜찮지?”
“향이 좋군. 목 넘김도 괜찮고.”
“대접한 보람이 느껴지는군.”
연호정이 입가를 닦으며 물었다.
“한잔했으니 이제 본론을 꺼내 봐. 나한테 할 말이 뭐지?”
“성격도 급하군.”
“급하고 불같지. 솔직한 거 좋아하고, 뱅뱅 돌리는 건 안 좋아한다.”
“호오, 그런가.”
엽성이 턱을 쓰다듬었다.
“신선하기는 하군. 근래 워낙 능구렁이들을 많이 만나서 말이야. 다르긴 달라.”
“그래서 할 말은?”
일견 한가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으로 자연스레 묻는다.
엽성은 눈을 빛냈다.
‘진심이군.’
한눈에 봐도 연호정은 그간 상대했던 노회한 인간들과 달랐다.
솔직하게, 원하는 바를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자리를 뜰 것이다. 그런 분위기가 읽혔다.
‘뭐, 이것도 좋지.’
엽성이 자신의 잔을 채우며 물었다.
“대답하기에 앞서 하나만 묻지.”
“뭔데?”
“연 부관, 자네는 묵룡부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
연호정이 피식 웃었다.
“깊게 생각한 적은 없지. 이곳 사람도 아닌데.”
“그렇구먼.”
“뭐, 무림맹과 묵룡부 양측 모두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에도 멀쩡히 존재한다면, 우리에게 큰 부담이 되기야 하겠지.”
엽성의 눈이 다시 한번 빛났다.
“어차피 흑도와 백도는 양립할 수 없는 관계다, 이 말인가?”
“당연한 것 아닌가? 공존할 수는 있어도 합일(合一)은 안 돼. 적어도 이 시대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공존이라…….”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나?”
“충분히.”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엽성은 대뜸 잔을 비우고 말했다.
“사부님께서 자네를 총애하는 것 같더군.”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갖지 못하는 것을 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그게 총애지. 결국 사부님께서 자네를 갖고 싶어 한다는 뜻이니까.”
“욕심 많은 사람이니까.”
“사부님이 욕심은 많아도 사람 보는 안목 하나는 기가 막히게 뛰어나신 분이야. 어중간한 인재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분이시지.”
“그런가?”
“즉 자네는 천하의 투왕이 탐을 낼 만한 인재라는 것이야. 문제는, 자네가 투왕이라는 절대자 밑으로 들어갈 사람은 아니라는 건데.”
“잘 봤군.”
연호정이 자신의 잔을 채우며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엽성이 미소를 지었다.
“나를 지지해 줄 수 있겠나?”
“지지?”
“그렇다네.”
가만히 엽성의 얼굴을 보던 연호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아무리 부주의 총애를 받고 있다 한들 나는 명백히 무림맹의 사람이다. 그런 나의 지지를 받는다? 오히려 자네에게 독이 되었으면 되었지, 이득은 아닐 듯한데.”
“전혀 그렇지 않아.”
“설명을 듣고 싶군.”
엽성도 자신의 잔을 채웠다. 어느새 두 사람은 각자 한 병씩 옆에 두고 제 잔을 채우고 있었다.
“무림맹은 맹주를 선출할 때 무엇을 보나?”
“여러 가지를 보겠지. 무공, 협의, 그 사람의 역사, 대중의 인지도, 인기 등등. 그리고 투표도 하겠지.”
“그렇겠지. 하지만 흑도는 단순해. 적어도 묵룡부는 그러하다네.”
시원하게 잔을 비운 엽성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묵룡부의 총수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네. 최강이 되는 것이지.”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알고 있어. 강자존의 세계니까.”
“그렇지. 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네.”
“한계?”
“그렇다네.”
엽성이 의자에 등을 묻었다.
“묵룡부의 역사는 지극히 짧아. 그리 역사가 짧은 연맹체임에도 이리 크고 강력한 세를 떨칠 수 있는 건 전적으로 사부님의 존재 때문이야.”
투왕 양천.
자신을 스스럼없이 흑도 출신이라 말하며, 천하를 상대로 온갖 싸움을 벌여 온 투쟁의 화신이다.
“어느 정도 체제는 정비되었지만, 그래도 모두가 사부님을 보고 있네. 왜냐? 사부님이 초대 총수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만큼 강하시기도 하고. 말하자면 본부에선 사부님의 말이 곧 법이지.”
“안다.”
“하나 제아무리 사부님이라도 강자존의 원칙을 바꾸지는 못해. 그러려고 하지도 않으실 테고. 문제는, 사부님의 은퇴 시기다.”
“흐음.”
“성천의 강자들, 즉 무극지경을 돌파한 이들은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무적자들이야. 그 무력에 도전하는 이는 찾아볼 수조차 없어. 당연히 수명도 길겠지.”
“…….”
“아까도 말했듯, 사부님께서는 욕심이 많은 분이야. 그분의 목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끝없이 도전하고 또 도전하실 거야.”
“그래서, 본론이 뭐야?”
“나는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네. 하지만 후계자 선정을 받지 못한 채로는 버틸 수 없어.”
우웅.
엽성의 동공이 은은한 붉은빛을 띠었다.
“나를 도와주게.”
“…….”
“내가 후계자가 되면, 적어도 내가 죽기 전까지 백도 정파를 도발하는 일은 없을 거야.”
“호오.”
연호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공생을 택하시겠다?”
“그렇다.”
“설마하니, 그 말을 내가 믿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엽성이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어. 다소 답답한 구석이 있다 한들 무림맹은 무림맹이야. 그런 집단이 자신들의 명성과 책임을 한 사람에게 인계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지.”
“…….”
“틀림없는 사실이다. 자네는 차기 백도 무림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칠 사람이야.”
“그래서?”
“자네가 어떤 위치에 있든,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내 진심을 몰라주진 않을 것 같네.”
“꽤나 낙관적인 생각이군.”
“이왕이면 안목이 좋다고 생각해 주게.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적어도 자네의 안목이 나 못지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엽성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묻겠네. 지금 자네가 보는 나는, 무리해서라도 백도를 공격하여 천하일통을 노릴 만한 야심가인가?”
가만히 엽성을 보던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 보이지는 않는군.”
“그래, 나는 그렇…….”
“지금은 그렇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사람이지.”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나를 지지해 주기만 한다면, 서로 확실한 약속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거래를 감행할 수도 있지 않겠나?”
“글쎄,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냐? 그리고 조금 전에 말했듯, 나를 끌어들이는 건 좋지 않은 선택이야.”
연호정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부주께서도 안 좋아하실 것 같은데? 무공 수련이나 하지, 굳이 무림맹의 파견인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내가 부주였다면 정말 한심하게 생각했을 거야.”
엽성이 고개를 저었다.
“사부님을 몰라서 그러는 거다. 오히려 너라는 인재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 그 능력을 높게 사실 분이지.”
“호오, 그런가.”
“물론이다.”
“그래도 나는 널 지지할 생각이 없어. 남의 정치판에 끼어드는 것만큼 머리 아픈 일이 없거든.”
엽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끼어들라는 것이 아니야. 그저…….”
“그 전에, 이번 전쟁에서 살아남게 되면 부주께서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백도를 씹어 삼키려 들 거야. 네가 후계자가 되어도 그것을 말릴 수는 없겠지.”
“…….”
“결국 허울 좋은 얘기일 뿐이다. 나로선 너를 지지해야 할 어떠한 이유도 찾을 수 없어.”
엽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나는 내 진심을 솔직하게 말했네.”
“알아. 나도 솔직하게 말한 거야. 싫다고.”
연호정이 고개를 저으며 일어났다.
“그리고 내 말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부주는 정치질이나 하는 후계자를 둘 생각이 없어.”
“…….”
“알았다면 여기 이 거추장스러운 객잔도 철거하고, 차라리 수련장으로 써라. 끝없이 강해지는 것, 그게 바로 강자존의 세계에서 인정받는 가장 큰 증명 아니겠냐?”
연호정이 잔을 거꾸로 뒤집었다.
“음식은 여기 사람들과 먹도록 해라. 술 잘 마셨다.”
그가 엽성을 지나쳐 문을 향해 걸었다.
그때, 엽성의 입이 열렸다.
“흑도에서는 말이지.”
“음?”
“비무도 생사결이야.”
“안다.”
“그 뜻을 알겠나? 무슨 일을 하든 목숨을 건다는 얘기지. 그래서 함부로 부탁하지도, 함부로 거절하지도 않아.”
연호정이 피식 웃었다.
“그건 백도랑 다를 것도 없군. 오히려 백도가 더 살벌한 것 아나? 그쪽의 노회한 정치가들은 사람 속 뒤집는 데에 최고거든. 차라리 너희처럼 화끈한 게 낫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물론이지.”
쿵!
탁자를 내리치는 빈 잔에서 큰 소리가 났다.
엽성의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부탁을 거절했다고 해서 자네를 어쩔 수는 없어. 자네는 무림맹의 파견인이니까.”
“좋은 보호막이지. 언제나 감사하고 있어.”
“하지만 자네 사람들은 많이 힘들어질 걸세.”
“그래?”
“물론이지.”
엽성이 앉은 채로 몸을 돌려 연호정을 바라보았다.
“나는 내 편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과 만나기 전에 많은 걸 조사한다네. 그 사람의 강점과 약점을 철저히 파악하기 위함이지.”
“좋은 습관이군.”
“후회하지 않겠나? 거절해도?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 줄 알고?”
“나에 대해 조사했다니, 어디 한번 말해 봐라.”
연호정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내가 어디까지 미쳐 날뛰는 사람인지를 알고는 있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