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54)
54화. 바람이 향하는 곳으로 (4)
“가주님. 황풍정(荒風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황풍정은 모용세가에서 직접 운용하는 정보 조직이었다. 모용세가가 요녕성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만든 조직인 만큼, 역사와 충성도가 대단했다.
“뭐라고 하더냐.”
“파악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뭐라?”
“강소성 전체에 대규모 정보 통제가 일었습니다. 황풍정의 정보원들이 그 벽을 뚫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모용군의 눈이 깊어졌다.
“대규모 정보 통제? 강소성 전체에?”
“그렇습니다.”
“강소성은 크고 넓어. 연가의 힘이 아무리 대단해도 대규모의 정보 통제가 가능한가? 그것도 단시간에?”
“그간 알아본 연가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입니다.”
“당연히 그렇지. 그것은 칠대세가 누구라도 불가능해. 두 세력이 힘을 합쳤다고 해도 힘들지.”
“그렇습니다.”
“통천단에도 접근하지 못했겠군.”
“그렇습니다. 정보원들이 직접 강소성으로 뛰어들어 발품을 팔지 않는 이상, 그들과 접선할 방법은 현재로선 전무(全無)합니다.”
“즉, 그 말은.”
모용연화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누군가가 연가를 도와주고 있다는 뜻이에요. 전문적으로 정보를 다루는 집단이.”
“이 정도 규모라면, 그중 최고라 할 만한 조직이 끼어든 셈이다.”
“그렇다면…….”
“개방(丐幇), 흑문(黑門), 상의궐(商意闕). 이 셋 중 하나겠지.”
개방은 백도 정보계의 최고이며 흑문은 흑도 정보계의 큰손이었다. 그리고 상의궐은 철저하게 돈으로 움직이는 정보 단체로, 돈만 내면 그만한 가치의 정보를 건네주는 정보 거래상이었다.
“흑문은 아닐 거예요.”
“가장 가능성이 작지. 흑문의 정보력은 셋 중 최하야. 게다가 연가주의 특성상 흑문에 손을 뻗었을 가능성은 없다.”
틀렸다.
흑도 무림의 정보력은 백도 무림보다 많은 부분에서 뛰어나다. 그것이 힘없는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다만 그것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천하의 모용군도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해서는 모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개방과 상의궐이 남는군요.”
모용연화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긴장이 드리워졌다.
“어느 쪽이라도 위험해요.”
“그렇다.”
만약 연가를 도운 쪽이 개방이라면 그 자체로 대사건이다.
비록 자유분방하고 느슨해 보이지만, 개방은 대대로 협(俠)을 숭상했다. 정보를 다루기에 더더욱 정심(正心)을 유지하는 걸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문파가 한 번씩 타락한 역사가 있지만, 개방이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당연히 개방의 발언권은 구파일방에서도 수위를 다툰다. 구파일방 중 최고 발언권을 가진다는 건 백도 무림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이었다.
만일 개방이 이번 모용세가의 귀계(鬼計)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파진다.
그렇다면 상의궐은 좀 나은가?
절대 그렇지 않다. 어떻게 보면 개방보다도 더 위험한 게 상의궐이었다. 돈만 주면 어떤 곳이라도 정보를 살 수 있으니까.
그것은 모용세가를 견제하는 집단들도 돈만 내면 이번 일에 대한 정보를 얻어 갈 수 있단 말이었다. 물론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부어야겠지만.
개방이라면 당장 위험하고, 상의궐이라면 골치가 아파진다.
“재미있게 되었군.”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모용군은 평정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로운 얼굴로 수염을 쓰다듬는데, 진정 이번 사태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연화야.”
“네, 아버지.”
“저번 후기지수 회합에 후개도 들어왔다고 하더구나.”
“그랬지요.”
“혹, 후개가 연가의 자제들과 친분을 가진 것 같더냐?”
잠시 생각에 잠긴 모용연화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확률은 낮아요. 오히려 경계하고 있다면 모를까.”
“경계라?”
“네. 연가의 대공자, 연호정이 회합에서 보여 주었던 모습은 지나치게 사납고 폭급했어요. 실제로 남궁가의 전검단주를 죽일 뻔하기도 했죠.”
“음, 그것도 들었지. 대단한 녀석이야, 그 나이에.”
“그 손속을 막은 것이 후개 가득상이었어요. 연호정은 후개에게 호감을 품은 듯 보였지만, 후개 성격상 연호정에게 반감이 생겼으면 있었지, 호의를 갖긴 어려웠을 겁니다.”
모용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더더욱 개방과 손을 잡았을 확률이 높겠군.”
“네.”
누구라도 위험하다고 생각한 부류를 경계한다. 만약 가득상이 연호정을 통해 연가를 보고 있었다면, 이번 정보 통제를 개방에서 담당했을 확률이 높다.
“뭐가 되었든 문제는 문제야. 허! 갑작스레 저리 뻣뻣하게 나오니 당황스럽구먼.”
“그러게요.”
그때였다.
“황풍정에서 새로운 연락이 왔습니다!”
“뭐라고 왔는가?”
“연가의 대공자가 강소성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모용군의 눈이 빛났다.
“어디로 향했다고 하던가?”
“하남입니다.”
“……하남?!”
연가는 강소성 남부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하남은 강소성 북서쪽에 있다.
언제 움직였는지 모르겠지만, 연락책에게 정보가 끊겼던 시기부터라 해도 엄청난 속도였다.
“이 상황에 굳이 하남을? 그것도 이리 빨리?”
모용연화의 얼굴에 다급함이 어렸다.
“일단은 접촉해야 해요.”
“물론 그렇다만.”
모용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왜 하남인지가 걸리는데.’
저쪽 상황을 모르니 유추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다.
생각에 잠겼던 모용군이 입을 열었다.
“당장 명가에 연락하도록 하게. 이쪽 상황을 전부 알려 줘. 연가의 대공자가 허튼짓을 하기 전에, 무조건 접촉해야 한다고 전하게.”
“예!”
* * *
“허억! 허억!”
“벌써 지쳤소?”
“그, 그걸 말이라고…… 콜록!”
“숨 좀 고르시오. 개방의 후계자란 양반이 체력이 너무 떨어지는군.”
가득상이 벌컥 화를 냈다.
“이 양반아! 당신은 말을 타고 다니잖아!”
“그러니 당신도 타라 하지 않았소?”
“누더기 걸친 거지가 말을 타고 다녀? 개방 소속원이라고 여기저기 소문낼 일 있냐고!”
확실히 연호정이 너무하긴 했다.
배를 타고 강소성 중부로 올라온 두 사람은, 그때부터 육로로 북부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왔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무려 닷새 만에 강소성 최북부까지 달려오는데, 최소한의 수면과 휴식을 제외하곤 종일 달리기만 했다.
게다가 강소에서 하남으로 넘어오는 이틀 동안은 잠도 안 잤다. 가득상이 엄살을 부리는 게 아니란 말이다.
연호정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체력 단련한다고 생각하시오.”
대체 어떤 미친놈이 체력 단련을 이리 무식하게 한단 말인가?
가득상이 그 자리에서 벌러덩 누워 버렸다.
“못 가! 때려죽여도 못 가! 그냥 날 죽여!”
“그렇게 힘드오?”
“싸우자는 거지, 지금?”
“반 시진만 더 갑시다.”
“자세 잡아, 미친놈아! 오늘 둘 중 하나는 저승행……!”
“주루에서 며칠 쉽시다. 어차피 기다리기도 해야 하니까.”
“……주루?”
“드시고 싶은 만큼 드시오. 내가 사겠소.”
가득상이 침을 삼켰다. 아닌 게 아니라 여기까지 오면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다.
“정 힘들면 여기서 며칠 쉬든가.”
“……시벌.”
가득상이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도 거짓말이면 도끼날로 이빨을 찍어 버릴 줄 아쇼. 알겠소?”
히히히힝!
“같이 가자, 좀!!”
그렇게 반 시진을 더 달린 두 사람은 하남 상구(商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상구는 산동, 강소, 안휘와 가까운 현이었다. 하남에서는 동쪽으로 유동 인구가 상당했다.
두 사람은 현의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한가한 주루로 들어갔다.
가득상은 자리에 앉자마자 걸신들린 것처럼 밥을 먹었다.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신경 따위는 쓰지 않았다.
가득상을 보는 사람들의 얼굴은 불편함으로 가득했다. 웬 꼬질꼬질한 거지가 들어와서 맨손으로 요리를 퍼먹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만 그들은 주인에게 가득상을 쫓아내라 말할 수 없었다.
쿵!
“아, 거 도끼 좀 잘 세워 놓으쇼. 찍히면 사람 골로 가겠어.”
“미안하오. 자시던 거 마저 잡수시오.”
“어, 그래야지. 말한 김에 이거 하나만 더 시켜 주면 좋겠소.”
담담한 얼굴로 바닥에 쓰러진 도끼를 벽에 세워 놓는 청년.
이제 이십이나 됐을 법한 젊은 청년이 사람 몸뚱이만 한 도끼를 옆에 두었다.
그 살벌함이 장난이 아니었다. 청년의 자태가 문사 같아서 더 무서웠다. 저 호리호리한 몸으로 무거운 도끼를 한 손으로 척척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음식을 먹었다.
“꺼억! 잘 먹었다.”
“다 먹었소?”
“며칠 못 먹은 걸 몰아 먹었더니 배가 터질 것 같소이다.”
“돼지고기 열두 근을 먹었다더니만, 그게 과장이 아니었군.”
접시를 몇 번이나 치웠는지 모르겠다. 연호정 역시 워낙 활동량이 많아 음식도 많이 먹었지만, 가득상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제야 여유가 생긴 듯 가득상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좀 외진 곳에 잡았소이다?”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
“하긴. 근데 여기도 대단하긴 하네. 외진 곳인데도 은근히 사람이 있어.”
“이 동네는 와 본 적이 없소?”
“옛날에 한 번 들러 본 적 있소. 말 그대로 잠깐 들른 거라 기억도 가물가물하오.”
“그렇군.”
가득상의 얼굴이 묘하게 진지해졌다.
“그래서, 여기서 얼마나 머무시려고?”
“상대가 올 때까지.”
“무작정?”
“얼마 안 걸릴 거요. 개방이 정보 통제를 잘해 줬다면.”
“그거야 걱정하지 말고.”
“별걱정 없소.”
“그래, 이쪽 상황을 전혀 모르는 모용세가 측에선 애가 닳을 만도 하지. 와중에 연가의 대공자가 하남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니 어떻게든 접촉하려 할 거야.”
“아직 두 가문 중 누가 먼저 접근할지는 모르오.”
모용세가, 그리고 명가.
모용세가는 호남성에 자리를 잡았고, 명가는 하남 허창(許昌)에 자리를 잡았다.
가득상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난 아직도 모르겠소.”
“뭐가 말이오?”
“이 일에 모용세가가 관련된 거야 직접 봤으니 알지만…….”
“내가 괜히 명가 쪽에 관한 조사를 맡겼겠소?”
“뭐, 그도 그렇군.”
가득상이 의장에 등을 기댔다.
팔짱을 척 끼고 연호정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은근한 의심이 깃들었다.
“왜 그렇게 보시오?”
“아직도 말해 주지 않을 생각이오?”
“무엇을?”
“명가 말이오. 그들이 왜 연가를 공격하려 하는지, 그걸 어떻게 사전에 알아챘는지 슬슬 알려 줘도 되지 않겠소?”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이번 일은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오.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면 그때 말해 주겠소.”
가득상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연호정의 눈빛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보는 눈빛은 전혀 따스하지 않았다.
한참이나 연호정을 보던 가득상이 이내 기지개를 켰다.
“어이쿠! 밥 먹었더니 이제 졸립구먼. 방은?”
“미리 지불했소. 난 더 있다가 갈 테니 먼저 들어가시오.”
“그래야지.”
“좀 씻고 자시오.”
“내가 괜히 거진 줄 알아?”
그렇게 가득상은 주루에서 제공하는 방으로 냉큼 들어가 버렸다.
차를 홀짝이던 연호정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평화롭군.’
이제 완연한 봄이었다. 바람은 안온했고 하늘은 맑았다.
그러나 연호정의 눈빛은 날씨와 반대로 어둡고 차가웠다.
‘일부러 후개와 함께 왔다. 그것도 억지로 빨리 왔어. 이걸 알았다면 모용세가 역시 마음이 급하겠지.’
게다가 호남과 거리도 한참 떨어진 지역이었다.
‘휘하 수하를 보낼 수도 있겠지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모용군은 최소 칠 할의 확신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자야.’
무림맹주 시절에도 그러했다. 덕분에 사음교와 홀로 싸우느라 흑제성의 피해가 컸다.
즉.
‘명가가 접근할 확률이 매우 높다.’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가려고 한다.
모용세가는 분명 적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박살을 내고 싶은 적은 명가였다.
즉, 그의 공습은 모용세가가 아닌 명가를 향해 있었다. 어차피 명가를 뒤흔들면 모용세가 역시 다급해질 테니 거기서 거기다.
‘…….’
명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살기가 승하려고 한다.
허벅지를 움켜쥐며 살심을 다스린 연호정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엿새 후.
“연가의 대공자인가?”
“댁은 뭐야?”
“말투가 사납다더니만 맞는 모양이군.”
이십 대 중반의 청년이 있는 대로 인상을 찡그렸다.
“명가에서 나왔다. 널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니 시간 좀 내도록 해.”
연호정이 환하게 웃었다.
“없는 시간도 쪼개서 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