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540)
540화. 강자존(强者存) (8)
“흠.”
양천의 눈이 깊어졌다.
“음제와 비왕…….”
정보부장이 고개를 숙였다.
“신화교 측만 따로 움직이는 것인지, 삼교 전체가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추측하기에는 신화교를 주축으로, 필요할 때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봅니다만.”
“그럴 확률이 높지.”
양천의 눈이 깊어졌다.
“뭐가 되었든, 놈들은 성천십삼좌를 노리고 있어. 아마도 그중 몇몇은 저들에게 포섭되었을 가능성이 크지. 아니, 가능성이 아니라 그렇다고 생각하고 움직여야 해.”
“무림맹과 정보를 공유할까요?”
“그렇게 하게. 어차피 곧 알게 될 터이니, 우리 쪽에서 먼저 정보를 전달하여 신뢰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게 좋겠지.”
“알겠습니다.”
“흐음.”
음제, 그리고 비왕.
만나 본 적은 없지만, 둘 모두 성천에 이름을 올린 불세출의 강자들이었다.
막원의 경우는 이쪽에서 제대로 조사를 했지만, 그 둘에 관해서는 조사한 바가 전무했다. 앞으로 알아본다 하여도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수염을 쓰다듬던 양천이 태사의에서 일어났다.
“철기단이 어디서 훈련하고 있지?”
“내일까지는 개인 훈련을 한다고 합니다. 항상 수련하는 곳에 있을 겁니다.”
양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 부관을 그곳으로 부르게.”
* * *
치리리리링!
경갑을 찬 무사들 수백 명이 창검을 휘둘렀다.
날이 향하는 곳은 허공이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를 노리는 난전 훈련인데, 실전처럼 한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훈련인데도 모두가 진짜 병기를 죽일 기세로 휘두르고 있었다.
퍽! 서걱!
사방에서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전우라고 봐주는 것은 없다. 정말로 죽이지는 않지만, 자칫 잘못하다간 치명상을 입을 만한 공격을 주고받는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수련. 실제로 사상자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훈련을 지속하는 것은 철기단이 최강이 된 이유이기도 했다.
“장관이군요.”
뒷짐을 진 채 철기단의 훈련을 내려다보는 양천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자네 왔는가?”
“예.”
연호정이 양천 옆에 섰다.
두두두두두.
절반은 백병전을 벌이고 있고, 나머지 절반은 기마전을 벌이고 있다.
백병전도 살벌했지만, 기마전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서로의 말을 노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무자비한 살초를 날리는데, 당장이라도 누구 하나의 목숨이 날아갈 것 같았다.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저 인마일체의 기마술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렇지?”
“기마는 그 자체로 흉기죠. 실제 전장에선 기마의 돌진만으로 보병 수십이 밟혀 죽습니다. 기마와 기마의 싸움에서도 정면으로 충돌하면 말들이 죽어 나가지요.”
“자네는 전쟁에 대해 잘 아는군.”
“실전과 같은 기마술, 그러면서도 상대의 기마엔 일절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절한다…… 저건 본맹의 유군 부대에게도 가르쳐야겠습니다.”
양천이 툴툴거렸다.
“알짜배기 빼먹겠다는 소리를 잘도 하는군.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앞에서.”
“나중에 본맹으로 믿을 만한 사람을 파견하십시오. 어련히 알아서 빼 가지 않겠습니까.”
“싫네. 나는 자네들 정파의 이중성을 믿지 않아. 보내 봤자 은근히 눈치나 주면서 사람 불편하게 하겠지.”
“여기는 뭐 다른 줄 아십니까?”
“……그런 놈들이 있었나?”
“대놓고 티만 안 낼 뿐이지, 흘겨보는 놈들 엄청 많습니다. 그냥 무시할 뿐이에요. 뒤로는 온갖 욕을 다 할걸요.”
“할 말이 없군.”
“원래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연호정이 양천을 보며 물었다.
“그래서, 이 멋진 곳으로 절 부르신 이유가 뭡니까?”
양천이 씨익 웃었다.
“전에 자네가 했던 말 기억나나?”
“못해도 수천 마디는 될 겁니다. 그걸 일일이 다 어떻게 기억합니까?”
“전에 자네는 말했지. 쓸 만한 비무 상대가 되어 주겠노라고.”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제가 그랬습니까?”
“기억하는구먼, 뭘.”
“직접 말을 뱉었는지, 그런 분위기로 얘기를 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 모두 그러한 의미로 받아들였다는 것이지.”
우두둑.
양천이 깍지 낀 손을 위로 쭉 뻗었다.
“간만에 한판 하겠나?”
“저 죽이시려고요?”
“엄살떨지 말게. 죽으란다고 죽을 인간도 아니면서.”
“부주님이야말로 살벌한 소리는 그만하십시오. 그때 비무에서도 부주님이 진심으로 힘을 뽑아냈으면 삼 초를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진심으로 힘을 뽑아낼 기미가 보이면, 자네는 곧장 도망쳤겠지.”
“틀린 말은 아니군요.”
도망쳤을 거라는 말에 자존심 상해 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인정하는 것이다.
양천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이런 놈인 줄은 알았지만, 이런 대화를 할 때마다 새삼 놀라게 된다.
연호정은 자존심을 굽힐 때와 세울 때를 알았다. 그걸 머리로 아는 사람은 많지만, 가슴으로 느끼고 실천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어쨌든 한판 하지. 가볍게 손속이나 나눠 보자고.”
“좋지요.”
치리리리링.
흑백쌍룡부를 꺼내 한옆에 놓은 연호정이 어깨를 빙빙 돌렸다.
양천이 피식 웃었다.
“상의 안에 칭칭 맨 철쇄는 안 푸나?”
“보험입니다. 자칫 잘못 맞아서 황천길 가는 걸 막아 줄 갑옷이지요.”
“그럴듯하군.”
스르륵.
연호정이 자세를 낮추었다.
양천은 뒷짐을 진 자세 그대로였다.
“각법만 쓰겠네. 초식 대결이나 하세.”
“좋습니다.”
파아아아앙!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호정이 움직였다.
하지만 빠르지 않았다. 그저 비무가 시작되었으니 먼저 움직였을 뿐이었다.
연호정이 힘차게 주먹을 뻗었다.
양천이 무게 중심을 좌측으로 이동하며 쾌속한 각법을 시전했다.
퍼퍼퍼펑!
연호정의 빠른 연환권을 한 발로 모조리 쳐 내는 양천의 무공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양천도, 연호정도 놀라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이것이 제대로 된 비무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양천이 무게 중심을 재차 옮기며 물었다.
“어디부터 시작할 텐가?”
파아아앙!
가벼운 비무라고는 하나, 아차 하다가는 뼈가 부러질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피해 낸 연호정 역시 포탄처럼 각법을 뻗어 냈다.
콰앙!
공기를 뒤흔드는 각법의 위력이 대단했다. 바위 하나를 가볍게 분쇄할 만한 위력이었다.
“솔직히, 말이 나온 김에 창왕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습니다만.”
“역시 생각이 달라졌군.”
“그렇습니다.”
타다다다다닥!
두 사람의 손발이 무섭게 얽혔다.
양천은 두 발을 풍차처럼 돌리며 응수했고, 연호정은 두 주먹과 두 다리를 전부 사용하여 맞섰다.
훅!
양천의 오른발이 머리 위로 쭉 뻗어 올라가는가 싶더니, 이내 도끼로 내리찍듯 반월을 그렸다.
콰아앙!
그의 뒤꿈치가 대지를 뒤흔들었다.
단단한 땅에 선명한 발자국이 새겨졌다. 깊이가 족히 다섯 치는 될 법한 자국이었다.
“자네가 가져온 정보, 음제와 비왕이지.”
“그렇습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성천의 강자 중 몇은 이미 저쪽으로 넘어갔을 거야. 그게 아니어도,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그렇다고 가정하고 움직여야 하네.”
“맞습니다.”
후우우우웅!
연호정의 주먹에 심상치 않은 바람이 깃들었다.
파바박! 쾅!
바람처럼 양천의 전면으로 파고든 그가 강한 진각과 함께 붕권(崩拳)을 내질렀다.
콰앙!
폭음과 함께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붕권을 예상한 양천이 좌각을 사선으로 올려 쳐 권경을 쪼개 버린 것이다.
양천이 투덜거렸다.
“초식 대련 아니었어?”
“다 받아 주실 거잖습니까.”
“자네는 진짜 물건이야, 물건. 때려죽이고 싶다가도 감탄하게 되거든.”
파바바바바박!
두 사람이 이전보다 더 빠른 공방을 주고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표정엔 여유가 넘쳤다.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사라라라락!
거리를 벌리던 양천이 일순 강궁에서 쏘아진 화살처럼 돌진했다.
쿠웅!
연호정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굉장한 힘이었다. 딱히 힘을 실은 게 아닌데도 삼 장이 넘게 밀려 나갔다.
양천이 입맛을 다셨다.
“역시 막았구만.”
“아픕니다.”
“인생은 고통이야, 이 친구야.”
파아악!
재차 접근하여 각법을 휘두르며, 양천이 말했다.
“음제부터 하지.”
연호정의 눈이 빛났다.
“이유가 있습니까?”
“만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남들 아는 만큼은 알아. 그래서 비왕은 나중으로 미루는 게야.”
“비왕이라…… 솔직히 그에 대한 정보는 거의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확실한 것 하나만 말해 주지.”
양천의 눈이 빛났다.
파파파파파팡!
순간 그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연호정을 에워쌌다.
그림자의 감옥이었다. 어찌나 빨리 움직이는지 수십 개의 잔상이 남았는데, 그 잔상 하나하나가 실제처럼 기세를 갖고 있었다.
연호정의 눈이 흔들렸다.
‘이형환위(移形換位)!’
보법 최상위 단계 중 하나. 전설상의 축지성촌(縮地成寸)을 제외하면 인간의 무(武)로 이룰 수 있는 가장 극한의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스르륵.
양천의 주먹이 연호정의 등에 닿았다.
타격은 없었다. 말 그대로 가볍게 닿은 것에 불과했다.
연호정이 투덜거렸다.
“각법만 쓴다면서요?”
“지금 상황에서 그게 의미가 있나?”
“한 방 먹었군요.”
양천이 손을 거두며 말했다.
“비왕은 천하제일신법의 소유자야.”
“별호가 비왕이니 오죽하겠습니까.”
“사람들은 말하지. 당대 무림의 절대자들, 성천십삼좌의 무력이 무림 최전성기인 삼백 년 전의 절대자들과 비견될 수 있다고.”
“…….”
“말하자면, 천하제일신법의 소유자인 비왕은 고금제일의 신법 대가(大家)라고 할 수 있네.”
양천이 고개를 저었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친구 놈한테 얘기는 들었지.”
“혈옥마군이 십 년 후에 신선제왕보다 강해질 거라고 했다던 친구분이요?”
“그래.”
“그 이름 모를 친구분이 또 뭐랍니까?”
“차원이 다르다더군. 적어도 경신술 하나만큼은 나머지 성천십삼좌 모두가 덤벼도 상대가 안 된다고 했네.”
연호정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가능합니까?”
무극지경을 돌파한 절대고수와 초절정고수 간의 이동 속도 차이는 기실 그렇게 크지 않았다.
초절정고수만 되어도 인간이 낼 수 있는 속도의 한계에 도달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평균을 낸다면 그리 대단한 차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절정고수들이 무극지경의 고수를 쫓아갈 수 없는 건 속도 이외의 능력 때문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순수하게 속도만 놓고 보면 무극의 고수도 더 빠르게 움직이기엔 한계가 있다는 뜻이었다.
비왕의 신법은, 그런 성천십삼좌들과도 아득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비왕의 무공은 신선제왕의 누구보다도 한 수 아래라 하였네. 굳이 따지자면 삼군급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 신법 하나만으로 한 수의 차이를 메울 수 있을 거라 했네. 그가 왕(王)의 칭호를 얻은 이유지.”
“……즉, 삼교 놈들도 비왕을 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일리가 있군요.”
연호정이 자신의 가슴께를 쓰다듬었다.
“한데 그 얘기를 하려고 비무를 하자고 하셨습니까? 그냥 대전으로 부르시지. 제대로 된 비무도 아니었잖습니까?”
양천은 대답 없이 연호정을 바라보았다.
눈으로는 연호정을 보고 있었지만, 정작 그의 의식은 막원과의 술자리를 좇고 있었다.
그는 술자리에서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는 야망이 큰 사람이야. 하지만 그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단 이번 전쟁에서 이겨야 해. 그리고 전쟁에서 이기려면 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수하들이 필요하지. 몸뚱이만 큰 조직은 허점도 많을 뿐이야.’
연호정이 날뛰는 걸 두고 보면 아래에서 불만이 있을 거라는 막원에게, 자신이 직접 했던 말이었다.
‘전쟁부터 이긴다…….’
그렇다. 그게 중요한 것이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전쟁에서 지면, 불타오르는 이 야망도 한 줌 재로 사라지리란 것을.
그리고 지금 양천은, 이번 전쟁에서 최고의 무기가 될 청년을 보고 있었다.
“……젠장할.”
“……?”
“그렇게 빨리 강해질 수 있으면 후다닥 무극지경에 오를 것이지, 왜 아직도 그 수준이냐?”
연호정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얼룩졌다.
“그게 지금 무슨 망발이십니까? 무극지경이 장난입니까?”
“시끄러워, 이놈아!”
양천이 침을 탁! 뱉고는 몸을 돌렸다.
“따라와라. 지고(至高)의 음공(音功)에도 아주 잠깐은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