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646)
646화. 음황(陰荒)의 숨결 (1)
서둘러 패율과 강량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 황석태는 깜짝 놀랐다.
울컥!
강량의 가슴에 사선으로 기다란 상처가 나 있었다. 패율이 내지른 검격에 당한 검상이었다.
피범벅이 된 의복, 얼굴은 지극히 창백했다.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태였다.
“빌어먹을.”
패율이 이를 악물고 그의 상처에 손을 가져다 댔다.
“진기를 운용해! 혈도를 점해서 지혈을……!”
“쿨럭! 그, 그게 안 됩니다.”
출혈이 멈추질 않았다. 패율은 서둘러 강량의 상처에 진기를 쑤셔 넣었다.
우우우웅.
스며든 진기가 검상을 입은 피부와 근육을 하나하나 더듬었다.
패율의 눈이 흔들렸다.
침투한 검격이 강량의 내부를 한순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제대로 당했으니 이 정도 상처는 당연했다. 오히려 상체가 통째로 날아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강량이 순간적으로 몸을 뉘어 검격의 침투를 최소화했기 때문이었다.
‘왜?’
본디 강량은 이 정도에 당할 놈이 아니었다.
이번 검격은 무종에 오르기 전에도 몇 번 막아 냈던 공격이었다. 물론 혼신의 힘을 다해 막았다지만, 지금의 강량은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지지 않았는가.
‘빌어먹을! 지금 그딴 생각을 할 때가 아니야!’
패율은 진기를 최대한 다듬어 강량의 몸에 침투시켰다.
스르륵.
진기의 막이 손상된 조직을 일시적으로 봉합해 출혈을 막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안 된다. 서둘러 혈도를 제압하여, 상처 부위로 혈액이 모이는 것 자체를 봉쇄해야 했다.
‘……?!’
순간 패율의 눈이 흔들렸다.
‘혈도가 상했다.’
점혈을 할 수가 없다. 검상을 입은 부위 인근 혈도의 삼분지 일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상처였다. 그래서 더 당황했고, 그만큼 의아했다. 무종을 뚫은 자라면 전신에 기가 융통무애하여, 검상을 입은 즉시 혈도부터 보호하기 마련이니까.
“쿨럭!”
나무에 기대앉은 강량이 붉은 선혈을 토해 냈다.
패율은 물론 황석태도 당황했다. 당장에 손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잠시.”
소리도 없이 다가온 연호정이 강량의 옆에 앉았다.
“혀, 형님?”
가만히 강량의 얼굴을 살피던 연호정이 그의 명치에 손을 올렸다.
우우우우우우웅!
일순간 쏟아져 들어간 청룡기가 강량의 간을 거쳐 피부로 퍼져 나갔다.
동시에 백호기가 운용되며 강제로 폐를 확장했다. 흡입되는 공기의 양을 늘리기 위함이었다.
나아가 주작기가 심장으로 흘러 들어가 심박수를 내렸다. 심장 박동이 워낙 거세서 출혈을 심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충분했다. 한순간의 조치로 강량의 안색이 다소 평온해졌다.
안심하려던 찰나,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이건?!’
가만히 강량을 보던 연호정이 삼신기(三神氣)를 회수하고 광명신단의 진기를 끌어 올렸다.
스르르륵.
순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강량의 상처를 통해 스며든 광명진기(光明眞氣)가 탁기를 몰아내고 혈도를 봉쇄했다. 순수하게 집약된 기가 손상된 혈도에 생기(生氣)를 불어넣었다.
“허억!”
크게 숨을 들이쉰 강량이 이내 고개를 툭 떨어트렸다. 기절한 것이다.
연호정이 한숨을 쉬었다.
“일단 옮깁시다.”
일각 후.
“콜록!”
잔기침과 함께 일어난 강량이 인상을 찡그리며 상체를 세웠다.
“윽.”
상처 부위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일었다.
다행히도 귀왕진기가 상처로 스며들어 활발한 회복 작업을 시작했다. 내상도 어느 정도 바로잡혔고, 출혈도 더 이상 없었다.
“괜찮냐?”
“예? 아, 예.”
강량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보는 세 명의 남자가 있었다.
패율이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툴툴거렸다.
“인마, 진짜 죽는 줄 알았잖냐. 설마 그 일격을 못 막을 줄이야.”
사람을 죽일 뻔한 주제에 꼭 이런 말을 해야 하나 싶었지만, 강량은 그를 탓할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스스로를 탓해야 했다. 패율 말마따나 설마 그 일격에 이리 쉽게 당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건 무사의 자존심 문제였다. 몸 상태가 나쁜 것도 아닌데, 정작 싸움을 건 놈이 방심해서 몇 합 나눠 보지도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죽지 않은 게 천운이었다.
가만히 자신의 상처를 내려다보던 강량이 패율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집중을 못 한 모양입니다. 쓸데없이 폐를 끼쳤어요.”
패율의 얼굴이 불편해졌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지만, 죽을 뻔한 사람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듣는 게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네가 죄송할 게 뭐냐. 생각해 보면 평소보다 힘이 더 실렸던 것 같기도 하다. 내 잘못이야.”
“아닙니다. 그리 말씀하지 마십시오.”
그때, 연호정이 말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무사끼리의 비무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건 그렇지만…….”
“덧붙이자면, 싸움을 보진 못했지만 량이 네가 방심한 건 아닐 거다.”
방심도 습관이다. 어쩌다 한 번 방심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평소의 강량을 생각하면 경지가 올랐다고 방심할 리는 없다. 하물며 패율을 상대로는 더더욱.
패율의 눈이 깊어졌다.
“아무래도 내 검이…….”
“량이는 방심하지 않았지만, 문제는 량이의 몸에 숨어든 마기(魔氣)지요.”
“뭐?!”
패율과 황석태가 깜짝 놀라 강량을 바라보았다.
강량도 놀라서 연호정을 바라보았다.
“마기라니요? 저는 마공을…….”
“당연히 너는 마공을 익히지 않았다. 문제는, 네 몸에 침투해 있던 마기 때문에 패율 선배의 검력이 순간적으로 증폭되었다는 거다.”
“……예?”
모두가 연호정의 말에 당황했다.
연호정이 한숨을 쉬었다.
“싸움 중에 무종지벽에 올랐지?”
“예.”
“무종의 깨달음은 점진적일 수도, 급작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진기를 담아내기 위해 육신이 재조정되는 과정이 있다는 것이지.”
“……?!”
“그 과정에서, 네가 상대하던 놈의 마기가 몸에 숨어들었던 모양이다.”
강량이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그럴 수도 있습니까?”
“평범한 경우는 아니지. 다만, 내가 네 몸을 치료하면서 뽑아낸 마기는 사기(死氣)로 물들어 있었다.”
사기, 곧 죽은 생물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을 뜻함이다.
“죽음은 음(陰)이고, 음은 낮게 고인다. 마기도 마찬가지지. 양강의 마공도 존재하지만, 마기의 성질 자체가 역천인지라 사기와의 궁합이 좋다.”
“…….”
“이질적이라 누구라도 느낄 수 있지만, 죽은 자의 마기는 끈질기기 이를 데가 없어. 아마 상처를 통해 네 몸에 숨어들어 잠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연호정이 패율을 바라보았다.
“선배의 진기가 그 마기를 포착한 겁니다. 고래로 구대문파의 신공(神功)은 마공과 상극이고, 그것은 도문과 불문의 무공 모두에 해당하지요.”
“그럼?”
“예. 선배의 검격이 순간적으로 증폭하여 량이의 몸에 숨은 마기를 파괴하려던 것이었습니다.”
“……허!”
패율이 혀를 내둘렀다.
“나도 모르는 새에 진기가 알아서 마기를 포착했다고?”
“아무 무공이나 가능한 게 아닙니다. 구대문파의 무공들은 각기 도문과 불문의 극치입니다. 게다가 선배가 연성한 무공은 점창파에서도 내로라하는 신공 중의 신공이지요.”
“…….”
“상극에 대항하는 기(氣)의 움직임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예민합니다. 물론, 선배 정도로 진기를 연마하지 않으면 이렇게까지 통제가 되진 않겠지만요.”
“하면, 마인을 상대로 한다면 내 검이 더 강해진다는 것이냐?”
“반대로, 선인(仙人)의 무공을 연성한 자를 상대로 한 마인의 마공도 강해지겠지요.”
“……!”
“그것이 상극입니다. 물이 불에 증발하지만, 불이 물에 꺼지기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가만히 연호정을 바라보던 패율이 툭 던지듯 물었다.
“네 신공은 어떠하냐?”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제 무공은 공평합니다. 누굴 상대로든 이렇게까지 민감하지 않지요. 그저 제 상태와 감각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렇군.”
패율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강량을 죽일 뻔한 일에 자신의 의지가 섞이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강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나저나 면목이 없게 되었습니다. 한 손 거들어도 모자랄 판에 이런 부상을…….”
연호정의 조치가 워낙 뛰어나서 의원에게 갈 필요는 없었다. 자체 회복으로도 충분했다.
문제는 시기였다. 혈도 손상이 제법 심해서, 본래의 상태로 돌아오기까지 못해도 한 달은 걸릴 것이다.
연호정이 피식 웃었다.
“그거야 어쩔 수 없지. 강호 일이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냐. 최상의 상태로 문제를 해결하려거든 문파 안에서 비무나 하면 될 일이다. 신경 쓰지 마.”
“그래도…….”
“뭐, 의도치는 않았더라도 널 그렇게 만든 분이 계시니, 네 몫까지 더 열심히 뛰어 주시겠지.”
연호정이 패율을 바라보았다.
“안 그렇습니까, 선배?”
패율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지.”
농담이 통하지 않는 상태였다.
매번 툴툴거리긴 해도 강량과 미운 정이 든 그였다. 동료를 죽일 뻔했으니 영 기운이 나질 않았다.
연호정이 몸을 일으켰다.
“명상이나 해 볼까 했더니 김이 다 새 버렸습니다. 오늘은 이대로 쉬고, 내일 다시 살살 움직여 보죠.”
“그러지.”
그렇게 일행은 각자의 자리로 가서 휴식을 취했다.
황석태는 연호정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결국 포기하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일행은 말을 타고 다시 섬서로 향했다.
강량 때문에 어제처럼 속도를 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충분히 빠른 속도였고, 강량 역시 끊임없이 귀왕진기를 운용하는 중이라 시간이 지날수록 안색이 좋아졌다.
그렇게 다시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흘렀다.
마침내 섬서를 코앞에 둔 시점.
“워워.”
선두에서 달리던 연호정이 천천히 기마의 속도를 줄였다. 동시에 일행도 연호정을 따라 속도를 줄였다.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옆에서 패율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치들은?”
일행의 전면 삼십여 장 밖에 일단의 무리가 진을 치고 있었다.
거리가 제법 떨어졌는데도 삼엄한 기세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선두에 선 허연 수염의 노인에게서는 구름처럼 풍성하고도 벼락처럼 위험한 기운이 공존하고 있었다.
‘고수로군.’
상당히 위험한 기운을 풍기는 자들이다.
하지만 연성한 무공은 정공이었다. 정공도 그냥 정공이 아니라, 구대문파의 무공을 익힌 집단이었다.
“종남이다.”
“예, 저도 느꼈습니다.”
“이 넓은 땅에서 마주칠 일이 드문 작자들이야. 섬서가 코앞이라지만, 아직은 사천의 영역이기도 하고.”
패율의 눈이 깊어졌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군.”
“그런 것 같습니다.”
“이유가 뭘까?”
연호정이 담담하게 말했다.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갈 길을 계속 걸어가면 그뿐이지요.”
“어째 기세가 그냥 보내 줄 것 같지 않은데?”
퉁!
연호정이 통천부를 견갑에 걸쳤다.
왼손으로 고삐를 쥐고 오른손을 자연스레 창대에 올려 둔 그의 모습은, 마치 정벌을 나온 흉장(凶將)과도 같은 면모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냥 보내 주지 않으면, 막을 수나 있겠습니까?”
황석태가 고개를 저었다.
“섬서에서 소란이 벌어질 수도 있네. 그쪽 지방 주인들과 갈등을 만들 필요는 없어.”
“내 말이 그 말일세.”
연호정이 말을 몰았다.
“우리와 갈등을 만들면 안 되지. 자기들 앞마당에서 개망신당하고 싶지 않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