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670)
670화. 반전(反轉) (2)
“놈들의 움직임은 어떻소?”
“제대로 알기 어렵네. 이 근방은 종남의 힘이 워낙 강해. 우리로서도 세세하게 들여다볼 수는 없어.”
“그래도 같은 연맹이 아니오.”
“같은 연맹이라고 자기 집 앞마당에 남이 들어와 설치는 걸 가만 놔두겠나? 종남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그러진 않을 걸세.”
“답답한 노릇이군.”
“가장 좋은 건 돌아가는 상황을 다 말해 주는 건데, 그건 안 된다면서?”
“적어도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하오.”
“사실 내 생각도 같네. 어디 보자…… 일단, 우리가 놈들을 파악할 수 있는 권역이 이십여 리 정도 밖에서부터야. 적어도 그 밖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네.”
“그렇군.”
“자네와 싸우다가 큰 손해를 봤다면서?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재정비는 하고 있겠지. 하지만 정말 그 정도 병력으로 구파 중 하나를 상대하겠다고 나서는 건 말이 안 되오. 수장의 무력이 건재하다면 모를까.”
“등골이 오싹해지는군. 놈들 측에서도 무극의 고수를 파견했다니.”
“보통 일이 아니니까. 다른 곳도 아니고 구대문파 중 하나를 박살 내러 온 길이오.”
“그래, 그건 그렇지만.”
“화검자 노선배는 부르셨소?”
“곧 오실 걸세.”
“좋군.”
“그나저나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음제 선배 말이오?”
“그렇다네.”
“상황이 좀 복잡하오. 애초에 놈들과 한패도 아니셨고. 다만, 놈들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시오.”
“대체 어떤 일이기에?”
“그건 말씀드리기 어렵소. 직접 뵙고 물어보시오.”
“으음.”
“궁금해할까 싶어 미리 말하는데, 이번 전투에 음제 선배님이 나서진 않으실 거요. 정확히는 나서지 못하시는 거지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알겠네. 반 시진 후에 화검 어르신께서 오실 것이야. 그때 다시 보지.”
쿵!
“어이쿠.”
강량이 혀를 내둘렀다.
“새삼스럽지만, 이거 안 무겁습니까?”
“뭐가?”
“도끼요.”
객잔 구석에 놓인 통천부를 본 연호정이 피식 웃었다.
“저 정도 중병을 다루는 건 오랜만이라 묵직하긴 하더라만.”
“묵직한 정도가 아니죠. 들고 휘두를 엄두도 안 나던데.”
물론 강량의 내공과 실력이라면 통천부를 다루는 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저런 병기를 실전에서 활용하는 것이다.
내공의 힘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인체 본연의 구조를 바꿀 순 없다. 치열한 공방전에선 저 도끼를 상체 힘만으로 다뤄야 하는데, 자칫 잘못하다간 몸의 근육과 관절이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이런 무지막지한 흉기로 수도 없이 찍혔는데도 살아남다니.”
강량의 눈이 깊어졌다.
“무극이라는 건 정말 엄청난 것 같습니다.”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변수가 많았다. 나도 힘이 빠졌고, 애써 경지를 세분화하자면 그놈이 나보다 위였어.”
“아무리 그래도요.”
“게다가 음황사기는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무공이다. 적의 무공이지만, 무공 자체의 뛰어남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지.”
강량이 묘한 눈으로 연호정을 바라보았다.
연호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렇게 봐?”
“좀 달라지신 것 같아서요.”
“뭐가?”
“전에는 놈들과 연관된 얘기가 조금만 나와도 살벌해지셨잖습니까. 한데 지금은 평온하시네요.”
“그러냐.”
“보기 좋습니다. 발작 난 것처럼 반응하는 거, 좋은 건 아니잖습니까.”
연호정이 피식 웃었다.
“까불지 말고 이만 나가 봐.”
“알겠습니다.”
그렇게 객잔 일 층엔 연호정 혼자만 남았다.
하은교의 거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을, 그 마을에서도 삼십 리가 더 떨어진 곳에 자리한 객잔이었다. 손님도 없는 이 허술한 객잔은, 놀랍게도 암중에 화산파가 관리하는 객잔이었다.
화산과 종남. 종남과 화산.
구대문파라는 이름으로 한데 얽혀 있지만, 마냥 친하게만 지낼 수는 없다. 같은 지역 내에서 비슷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문파라서 그렇다. 서로를 위함과 동시에 의식할 수밖에 없으니, 이처럼 비밀스러운 장소를 만들기도 주저하지 않는다.
연호정은 그들을 이해했다. 아마 종남에서도 이런 비밀 거점을 수도 없이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끼이익.
객잔 문이 열리고, 한 노인이 들어왔다.
적당히 때가 탄 하얀 도복. 흔들리는 장포 자락에 고운 매화가 수놓아져 있었다.
화검자였다.
“미안하네. 좀 늦었네.”
“아니오.”
“그나저나, 다시 보게 될 날이 이리 빨리 올 줄은 몰랐네.”
연호정이 손으로 맞은편을 가리켰다.
“앉으시오.”
“그럼세.”
자리에 앉은 화검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허.”
“왜 그러시오?”
“다치셨는가? 기운이 몹시 불안정한데.”
연호정의 눈이 빛났다.
완벽하게 회복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기도를 완벽하게 조절할 정도는 되었다. 하룻밤 새에 평소 몸 상태의 칠 할까진 회복시켜 놓겠다던 하은교의 말이 지켜진 것이다.
같은 수준의 고수가 아니면 이렇게까지 꿰뚫어 볼 수 없다. 그걸 화검자가 해낸 것이다.
“그게 보이시오?”
“느낌일세. 훤히 보이는 건 아니지만……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은가?”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사음교 놈들과 싸웠소.”
“……!”
화검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누구와?”
“모르겠소. 다만, 나와 비슷한 수준의 고수가 와 있었소.”
성천까지는 아니더라도, 무극을 개방한 고수라면 그야말로 재앙급의 고수라 할 만하다.
화검자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진심이로구먼. 진심으로 화산을 치려고…….”
“그걸 모르겠소.”
“음?”
연호정이 깍지 낀 손을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노선배를 보자고 한 이유는 화산의 앞날을 대비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오.”
“하면?”
“노선배가 보았다는 그 표식, 그게 정말 화산을 치겠다는 뜻이었소?”
“물론일세. 내 비록 화산에 영혼을 바쳤지만, 어린 시절 사음이 가르친 내용 대부분을 잊지 않고 있네. 잊을 수가 없지. 그렇게나 혹독하게 교육을 받았거늘.”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어린아이를 세작으로 파견하는 놈들이다. 의외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실수하지 않도록 얼마나 철저하게 교육시켰겠는가.
남들처럼 평범한 유년기를 보내야 할 시절에 온갖 복잡한 교육을 그야말로 인이 박이도록 받았다. 늙어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기억일 것이다.
“설명을 듣고 싶소.”
“무엇을?”
“그 표식이 어떤 문양이나 글자인지, 그것이 왜 화산을 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인지 알고 싶소.”
가만히 연호정을 바라보던 화검자가 한숨을 쉬었다.
“내가 그쪽 출신이었다고 하니 완벽히 신뢰할 수 없다는 건 이해하네만…….”
“난 누구도 완전하게는 신뢰하지 않소.”
“이보게.”
“그리고 오해할까 싶어 말씀드리는데, 난 지금 노선배를 못 믿어서 이러는 게 아니오. 그저 알고 싶기 때문이오.”
“허어.”
연호정이 한옆에 마련해 둔 지필묵을 꺼내 들었다.
“세작어(細作語)를 다 배우기에는 시간이 급하오. 화산에 남긴 표식, 그 표식만 알고 싶소. 그리고 왜 그렇게 해석했는지도.”
“……알겠네.”
연호정의 얼굴에 서린 모종의 결심을 읽은 화검자가 붓을 들었다.
이내 빠른 속도로 몇 글자를 적어 내려가는데, 그 모양이 생전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화검자가 붓을 놓으며 말했다.
“멀리 서역에서 쓰는 문자의 기원이 되는 원형 문자라 하였네. 글자 하나하나에 뜻이 담긴 중원의 문자와는 달라. 여러 글자가 조합되어 하나의 단어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단어에 뜻을 붙이는 것이네.”
“모호하군.”
“이것은 꽃이 핀다는 뜻이고, 이것은 산이라는 뜻일세. 해석하자면 꽃이 피는 산, 화산(華山)이라네.”
“음.”
“이 단어는 조만간, 곧이라는 뜻을 갖고 있어. 그리고 이 단어는 침공한다는 뜻이지. 어순은 중원의 언어와 거의 유사하네.”
“즉, 조만간 화산을 침공한다는 뜻이로군.”
“그렇다네.”
“그 뒤의 글자들은 무엇이오?”
“이것은…….”
화검자가 한숨을 쉬었다.
“내부에 관한 상세 정보를 매소청 도관 옆에 적어 놓으라는 뜻이라네. 상세 정보란 곧 내부 주력 고수의 숫자와 사음에서 정한 위험도의 색을 적시하라는 의미지.”
“매소청?”
“화산은 정기적으로 민간인들을 손님으로 받네. 도관에 와서 기도를 드리고 도사들과 대담을 나누기도 하네. 일종의 축제이고, 그 축제에 오는 손님들을 받는 곳이 매소청이라는 거대한 도관일세.”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그렇다면, 굳이 매소청을 들먹인 것은 화산에 오르는 민간인 중에 저쪽의 세작이 있을 거란 뜻이오?”
“그럴 거라 생각하네.”
“이 중요한 걸 왜 이제야 말씀하시는 거요?”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혹시 몰라 장문인과 장로들에게도 말하지 않은 사안일세. 화산이 곧 침공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네에게 알린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용기가 필요했네.”
이해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연호정이 한숨을 쉬었다.
“다음 축제가 언젭니까?”
“닷새 뒤라네.”
“닷새 뒤…….”
시간이 빠듯했다.
“만약 노선배가 매소청에 상세 정보를 적는다면, 그에 따라 놈들은 더 효율적으로 화산을 공략하겠군.”
“그렇다네.”
연호정의 눈이 깊어졌다.
“역시 이해가 안 가.”
“음? 무엇이 말인가?”
“놈들은 노선배를 세작으로 보냈소. 물론 그 뒤에 또 다른 세작을 보냈을 수도 있겠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리 눈에 띄는 방법으로 암어를 전하겠소?”
“…….”
“암어는 시간이 지나면 사어(死語)가 되오. 이유인즉, 오래된 암어는 반드시 발각되기 마련이고, 발각되는 순간 해석되기 때문이지. 그리되면 암어로서의 정체성을 잃게 되오.”
화검자의 눈이 커졌다.
그 부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화산에 귀의하여 새로운 삶을 얻었다지만, 어린 시절 배운 교육은 지극히 딱딱하고 고정적인 지식이다. 굳이 거기까지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다 떠나서, 얼마나 놀랐겠는가. 제삼자인 연호정처럼 사심을 걷어 내고 분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그럼 이것을 대체 왜?”
“확인하는 거지.”
연호정이 인상을 찡그렸다.
“확인해 보려는 거요. 아직도 화산에 보낸 세작이 살아 있는지. 세작이 살아 있다면, 어떻게 반응을 할 건지.”
“하지만…… 만약 반응하지 않는다면 저들은 아무 정보도 없이 화산을 공격하게 되네. 그것은 지극히 비효율적인 일 아닌가?”
“비효율을 따질 문제가 아닐 거요. 구대문파 중 하나를 공격하려는데 어중이떠중이들을 데려왔겠소? 작정하고 몰살시킬 만한 강력한 전력을 끌고 와 일거에 쓸어 버리려 하겠지.”
“……!!”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들은 화산에 이런 표식을 남겼소. 통상 암어는 삼 년, 길면 십 년에 한 번씩 바뀌게 되오. 어떤 조직은 달마다 바꾸기도 하지. 한데 이제 와서 수십 년이 지난 암어로 화산을 침공할 테니 정보를 달라?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그럼……?”
“화산이 아닌 거요.”
“뭐라?!”
연호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들은 확인해 보고 싶었던 거요. 파견했던 세작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만약 살아서 답장을 적는다면, 십 할의 확률로 변절자라고 봐도 되오.”
화검자의 입이 쩍 벌어졌다.
연호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군. 뭐가 이렇게 어설픈가 했더니, 놈들이 공격하려던 곳은 화산이 아니었소.”
터엉!
통천부를 쥐고 밖으로 나온 연호정이 패율에게 말했다.
“철장개에게 연락해 주십시오! 놈들이 노리는 곳은 화산이 아니라 종남입니다!”
그 시각.
삐이이익!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일순 무서운 속도로 하강하는 거대한 매가 있었다.
툭!
한 사내의 팔뚝에 내려앉은 매는 그야말로 위풍당당한 자태를 자랑했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매, 신황조의 턱을 손으로 긁은 사내가 그 발목에 묶인 종이를 풀어냈다.
잠시 후.
“하루 정도는 쉬겠다 싶었더니만, 정말이지 일복이 터졌군.”
사내가 뒤를 향해 말했다.
“반 시진 안에 출정 준비를 마쳐라. 종남으로 남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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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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