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683)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
◈683화. 불타는 산 (1)
연호정이 떠난 직후.
‘뭐야?!’
후방 청목애 인근으로 돌아온 황석태는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훅!
저 멀리 숲이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거센 바람이 불어닥쳐 나무들이 춤을 추는 듯했다.
하지만 황석태는 알 수 있었다. 저 흔들림은 바람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적!’
그렇다.
검붉은 전포를 입은 적의 병력이 점점 기척을 드러내며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대단한 속도였다. 저만한 속도로 돌진하면서도 지금껏 기척을 죽이고 있었다니? 실력 여하를 떠나, 기도 변화에 지극히 능숙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제아무리 기도 변화에 능숙해도 이 정도 거리를 좁힐 때까지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심지어 연호정은 전방에서 적이 오고 있다고 확신하지 않았나. 자신보다 훨씬 강한 연호정조차 지금 사태를 모르고 있었다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순간 황석태는 연호정의 말을 떠올렸다.
‘뭔가 이상해. 분명 적이 다가오고 있어. 그건 확실해. 한데…….’
‘말로 설명하기 어려워. 내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어.’
황석태의 눈이 번뜩였다.
‘연 부관도 애매했던 거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읽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직접 확인하기 위해 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은?
‘대장전 따로, 병력끼리의 전투 따로인 게로군.’
짧은 순간, 황석태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대장끼리의 승부, 말하자면 무극에 진입한 고수들끼리의 격전이다. 병력을 남겨 뒀을 리가 없어. 초절정고수라도 괴수들의 싸움에 끼어들 순 없을 테니까.’
즉, 적이 끌고 온 모든 병력이 이곳에 집중되고 있다는 뜻이리라.
‘대신, 종남을 공략하려는 놈들은 병력을 분산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 곳을 뚫어서 밀고 들어오기에는 지형상 어려울 테니.’
적은 종남파 인근 지형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설령 모른다 해도 잘 알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움직여야 했다.
그렇다면?
“청목애 일진과 이진은 기공검진(氣功劍陣)을 준비하라! 삼진과 사진은 진의 공백을 메울 준비를 하라!”
치리리리링!
검끼리 부딪치며 수많은 검사들이 좌우로 산개했다.
이름 모를 외부인의 명령이었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했다. 난생처음으로 침략자로부터 산을 지키는 그들이었다. 상부에서의 명도 있었지만, 외부인이라고 명을 따르지 않기에는 지나치게 긴장감 넘치는 상황이었다.
황석태가 외쳤다.
“칠진부터 팔진까지는 근접 검진을 펼쳐라! 절대로 자리에서 벗어나지 마! 진을 뚫고 본진으로 오는 적에게도 관심을 두지 마라! 무조건 그 자리를 사수한다!”
막강한 내공으로 쏘아진 음성은 청목애 일대에 고요하고도 분명하게 전해졌다.
“화산의 검수들은 궁을 중심으로 원진을 펼친다! 내부로 들어오는 적들은 종남 장로들의 명령하에 처리하며, 적을 처리한 즉시 본래 자리로 돌아오도록 한다! 그 외의 움직임은 절대 금물이다! 적이 보여도 명령 없이는 자리를 이탈하지 마라!”
함께 싸워 본 전력이 있다면 모를까, 이들과는 처음으로 합을 맞춰 보는 그였다. 개중에는 유연한 시각을 가진 이들도 있겠지만, 그들의 판단도 허용해선 안 된다.
철저하게 명령권자의 말에 따르도록 한다. 지금은 그것이 전부였다.
황석태의 눈이 불을 뿜었다.
“지키는 걸로 끝내지 않는다! 영역 내로 들어오면 무조건 선공이야! 수성전이 아니라 공성전이라 생각하고 움직여라!”
잠시 후.
쩌저저저저저정!
청목애 인근에서 살기 넘치는 검격과 도도한 검결이 충돌을 일으켰다. 드디어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황석태가 외쳤다.
“초전의 기세가 종전의 승리자를 결정짓는다! 목이 달아나는 한이 있더라도 밀어붙여라!”
* * *
쩌어어어엉!
폭음과 함께 연호정이 후방으로 물러났다.
막강한 경력의 폭발, 순간적으로 치솟는 광명신단의 힘이 골격과 내장을 보호했다.
‘안 되는군.’
번쩍!
정면으로 돌진하던 명극이 어느새 측면 사선에서 수도(手刀)를 올려 쳐 왔다.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익숙한 무공이었다. 명극이 발하는 기세는 몰라도, 저 수공(手功)의 투로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진혈수(眞血手)!’
사이한 공력으로 상대의 정신과 투로를 동시에 압박하는 사음교의 수공.
연호정의 좌장(左掌)이 묵직하게 내리눌려졌다.
콰릉!
폭음과 함께 명극이 주춤했다.
연호정은 주춤하는 선에서 끝나지 않았다. 세 걸음을 뒤로 물러난 후에야 충격파를 상쇄할 수 있었다.
‘역시 맨몸으로는 안 돼.’
무당파의 장문인, 승현진인이 직접 전수해 준 태극(太極)의 깨달음.
시중에 흔히 알려진 체조 형식의 태극권이 아닌 무당 본산에서 비전으로 내려오는 태극권, 즉 진형태극권(眞形太極拳)의 깨달음을 고스란히 전해 받은 그였다.
지금껏 맨손으로 부딪쳤던 상대에게 진형태극권을 쓴 적은 없었다. 다만 당시의 깨달음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녹여 내 상대의 공격을 흘려 내거나, 순간적으로 반격의 기미를 만들어 내는 데에 활용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오른손에 들린 통천부로는 백호공과 주작공을 풀어 냈고, 왼손으로는 진형태극권의 깨달음을 온전히 풀어 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충격을 다 흘려 낼 수가 없다. 힘의 원천인 광명신단의 출력으로 공세를 이어 가야 함이 마땅한데도, 충격을 분산시키느라 신단이 제 출력을 못 내고 있다.
태극권의 깨달음, 광명신단의 진동 제어, 나아가 순간순간 현무기의 발동까지.
세 가지의 무공을 거의 동시에 풀어 내야 명극의 공격에서 한 점 피해도 당하지 않을 수 있다. 어느 하나라도 포기했다간 내상을 입을 것이고, 축적된 내상은 승패의 깃발을 단숨에 명극 쪽으로 기울게 할 것이다.
‘이건 좋지 않군.’
태극권을 풀어 낸 좌장이 통천부의 창대 끝을 잡았다.
연호정이 벼락처럼 통천부를 휘둘렀다.
쐐애애애액! 콰앙!
정직하기 이를 데 없는 태산압정의 일격이었다.
화통해 보이기까지 하는 공격, 그러나 빈틈은 없다. 명극조차 이번 공격은 피하지 못하고 받아쳐서 충격을 분산해야만 했다.
화아아악!
밀려 나가는 명극 뒤로, 넘쳐흐르는 화마가 겁을 먹고 좌우로 도망쳤다.
연호정이 짧게 호흡을 뱉었다.
‘강하다.’
명극은 강했다.
전생에서는 만나 보지 못했던 강자였다. 이런 판에 나선 걸 보면 비밀 병기로 묵혀 둔 전력 같지는 않은데, 막상 붙어 보니 비밀 병기라 할 만한 무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강한 것도 강한 거지만.’
훅! 쩌어어어엉!
막강한 일격을 받아 내고 물러났음에도 시위에 걸린 화살처럼 날아와 공격을 가한다.
후속타는 예상했지만, 발경의 밀도는 예상외였다.
순간적으로 풀어 낸 권격임에도 감당키 어려운 위력을 발한다. 통천부의 널찍한 도끼날로 막았지만, 밀려 나가는 와중에도 등판이 들썩거릴 정도였다.
연호정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도통 익숙해지질 않아!’
파바바박!
명극의 눈이 반짝였다.
밀려 나가는 연호정에게 그대로 따라붙어 장을 내쳤지만, 어느새 연호정은 후측방으로 돌아가 사선으로 도끼를 내려치고 있었다.
조금 전 자신의 공격과 닮았지만, 그보다 더 예측하기 어려운 공격선이었다. 눈이 절로 돌아갈 만큼 신묘한 신법이었다.
“제법!”
명극의 왼발이 대지를 파고들었다.
쿠구궁! 쾅!
그 순간 통천부의 창대로 엄청난 진동이 전달되었다.
연호정의 눈이 흔들렸다.
막힌 것이다. 명극의 몸뚱이에.
전생 후, 아니 흑암제 시절에도.
맨손 육장은 몰라도, 휘두르는 도끼를 맨몸으로 튕겨 내는 자는 처음이었다. 기껏해야 흘려 내거나 더 강한 공격으로 받아치거나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것이 정상이었다. 연호정의 부법(斧法)은 몇 수 위의 강자라도 맨몸으로 받아 낼 수 없는 중량감으로 가득하기 때문이었다.
한데 명극은 그걸 몸으로 받아 낸 것도 모자라 튕겨 내기까지 했다.
“엄청나구나!”
퍼어어엉!
연호정의 몸이 미친 듯이 뒤로 밀려 나갔다. 명극의 장력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명극이 인상을 찡그리며 어깨를 크게 돌렸다.
“도화천신갑(導禍天神鉀)을 쓰고도 상체가 쪼개지는 줄 알았어. 무식한 공격력이군.”
처음 듣는 이름의 무공이었다.
옷 안에 갑옷을 입은 게 아니라, 몸 전체를 엄청난 강도로 변화시켜 공격을 막는 기공술인 모양이었다.
어깨부터 등을 이용, 몸통으로 상대를 받쳐 날려 버리는 고법(靠法)의 고수들이 간혹 이와 같은 술수를 쓴다. 실제로 연호정 역시 순간적으로 이와 비슷한 발경술을 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완고하고 강력한 기공술은 불가능했다. 명극의 도화천신갑은 완전한 구결을 갖춘 하나의 신공에 가까웠다.
‘놈들의 무공이 아니다.’
주르륵.
통천부를 쥔 손을 따라 한 줄기 핏물이 흘러내렸다.
받아 낸 명극도 충격이 상당한 것 같지만, 공격을 가한 연호정의 호구도 살짝 찢어져 있었다. 그만큼 반탄력이 강한 것이다.
‘사음교의 무공이 아니야!’
정확히는, 그가 상대했던 사음의 초고수들에게서는 본 적이 없는 무공이었다.
‘빌어먹을, 처음 상대하는 무공이라고 새삼 당황할 건 없지만.’
단순히 익숙하지 않은 무공이라서 이러는 게 아니었다.
명극의 무공은 사음의 무공을 뿌리로 두면서, 동시에 새외의 어떤 무공과도 궤를 달리했다.
‘투로가 단순한데도 읽기가 힘들다.’
쉬이이이익!
짧게 몸을 정비한 명극이 재차 연호정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짧은 사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빈틈이 없었다. 평소의 연호정이라면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일격을 먹일 만했는데, 확신을 가질 수 없어서 포기했다.
명극의 수도와 연호정의 통천부가 부딪쳤다.
까아아아아앙!
굉장하다.
사음교의 진기와는 한참이나 떨어진 신공으로, 사음교의 외가 무공을 이렇게나 완벽하게 구사한다.
아니, 오히려 더하다. 진혈수는 날카롭지만 강하지는 않은 무공이었다. 그것은 경지가 올라도 바꿀 수 없는 무공 자체의 본질이었다.
한데 이 명극은 처음 보는 신공으로 진혈수의 수도결(手刀訣)을 통천부와 부딪쳐도 멀쩡할 만큼의 강도로 만들었다.
두 사람의 눈빛이 코앞에서 부딪쳤다.
‘내 도끼를 막은 그 반탄기공, 그 힘을 수도에도 둘러칠 수 있는 거야.’
그때, 오른 주먹의 손목을 감싸 쥐고 있던 명극의 왼손이 풀렸다.
퍼어어억!
명극의 좌권이 연호정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연호정의 눈이 태양처럼 빛났다.
쩌저저저저정!
명극이 십여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주르륵.
명극의 오른손이 피로 물들었다. 통천부의 도끼날에 실린 주작화기에 기어이 상처를 입은 것이다.
“독한 놈!”
감탄만이 가득하던 명극의 목소리에도 기어이 긴장이 드리워졌다.
옆구리에 한 방 먹었으면서도 더 힘을 줘서 밀어붙여 버렸다. 가능, 불가능을 떠나서 어지간한 독기로는 시도할 생각도 못 하는 게 보통이다. 물러나거나 튕겨 내려 몸부림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후우.”
연호정이 재차 짧게 숨을 몰아쉬었다.
옆구리에 일격을 허용했지만, 명극 역시 온전히 힘을 싣지 못했다. 제대로 힘을 실었다면 도끼날이 손을 베고 빗장뼈까지 갈라 버렸을 것이다.
물론 연호정의 옆구리에도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렸겠지만.
명극의 기습이 성공했지만, 연호정의 전투력은 떨어지지 않았다. 명극 역시 손을 다쳐 잠시지간 진기 운용에 난항을 겪게 되었다.
누구 하나 분명한 손해를 입지 않았다. 연호정이 살짝 밀리는 감이 있었지만, 누가 봐도 종이 한 장 차이라 할 만했다.
“좋구나.”
명극이 씨익 웃으며 목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천천히, 느긋하게 싸워 보자고. 시간은 많으니까.”
첫 만남에선 연호정이 시간을 벌려 했는데, 그새 상황이 역전되었다.
휘이이이이잉!!
연호정의 몸이 백색의 바람으로 뒤덮였다.
“후딱후딱 피떡이 되길 바란다. 시간이 없어, 개자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