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685)
◈685화. 불타는 산 (3)
퍼어어어엉!
명극이 물러나며 쌍장을 휘둘렀다.
퍼퍼펑!
무서운 기세를 담아 움직이는 통천부가 명극의 장력을 모조리 박살 내며 전진했다.
번쩍!
통천부의 도끼날 끝에는 굵고 예리한 창날까지 달려 있다.
더하여, 어떤 병장기를 써도 그 병장기에 맞는 기술을 달인처럼 휘두르는 자가 연호정이었다.
휘두르고 베기만 하는 움직임에, 괴물과도 같은 관통력까지 더해진다. 바위도 꿰뚫어 버리는 돌격, 명극의 양손에 황금빛 진기가 번뜩였다.
쩌정!
짧고 강력한 이권(二拳)의 연타다.
괴력으로 밀어붙이던 통천부가 방향을 잃었다. 통천부가 방향을 잃으니, 연호정의 상체에도 부담이 실렸다.
명극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파박!
무시무시한 발놀림으로 통천부를 밟고 올라선 명극이 연호정의 얼굴을 향해 각법을 휘둘렀다.
부우우우웅! 파아아앙!
연호정의 오른쪽 뺨에 세 줄기 상처가 새겨졌다.
바람, 풍압으로 생긴 상처였다. 쏘아진 화포 이상의 공격력을 지닌 명극의 각법을 겨우 피해 낸 그였다.
“호오.”
터어엉!
빠르게 물러난 연호정.
어느새 그의 두 손은 비어 있었다. 통천부를 놓고 물러난 것이다.
가만히 연호정을 보던 명극이 뒷짐을 쥐었다.
땅에 박힌 통천부, 비스듬하게 허공을 향한 창대를 밟고 선 그의 모습에선 여유가 흘러넘쳤다.
“대단한 판단력이야. 끝까지 도끼를 쥐고 있었다면 뒤통수가 터졌을 것을.”
통천부가 길을 잃었을 때, 이미 명극의 진기가 창대로 침투하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그것을 파악한 연호정이 도끼까지 놓아 버리고 각법을 피해 낸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명극의 말마따나 쏘아 낸 각법이 역으로 돌아와 그의 뒤통수를 박살 냈을 것이다.
“후우.”
연호정이 숨을 내쉬었다.
치이이익.
그의 손바닥에서 반투명한 황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침투한 명극의 진기를 기화시켜 버린 것이다.
명극의 눈이 깊어졌다.
‘빠르다.’
귀신처럼 진기를 침투시킨 자신도 자신이지만, 기척도 없이 파고든 진기를 즉시 알아채고 곧장 기화시킨 상대의 예민함은 감탄을 넘어 감동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판단력이 엄청나게 빨라. 그러한 판단력을 만든 것은 첨예한 감각일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도 느꼈지만, 저놈의 감각은 가히 불세출이라 할 만했다.
이 경지가 워낙 중구난방에 특성도 제각각이라지만, 저 수준에서 얻을 수 있는 감각이 아니었다. 오감도 오감이지만, 특히 기감에 있어서만큼은 거의 교주님에 육박할 것 같았다.
‘정말 걸물도 이런 걸물이 없군.’
명극이 연호정에게 감탄했다면, 명극을 보는 연호정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상대에게는 여유가 있었다.
아차 하는 순간 승패가 갈리는 싸움이지만, 미세하게나마 유리하다. 미세하지만, 분명 힘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상대에게는 시간적 여유도 있었다.
그만큼 병력을 믿는 것이다. 물론 연호정 역시 아군을 믿고 있지만, 침략하는 쪽과 방어하는 쪽의 차이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놈은 강해. 내가 알고 있는 사음교의 무공을 이용하지만, 또한 사음교의 무공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한다. 이 정도까지 독특한 무공은 겪어 보지 못했어.’
명극의 힘은 단순히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그것이라고 인정하고 끝낼 수준이 아니었다.
궁극의 힘으로 휘두르는 도끼날을 막을 만큼 강력한 신공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신공을 맨손에 둘러쳐 공격하는데, 맨손 육장임에도 신병이기 이상의 강도를 자랑했다.
단순히 빈틈을 유발하거나 힘으로 압도하는 식의 싸움이 아니었다.
‘늦다.’
연호정의 눈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분명 내 힘을 다 발휘하고 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반 박자가 늦어.’
사실상 명극과의 싸움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그것이었다.
이룬 경지에서 손해를 본 적은 많았지만, 전투술 자체로 손해를 본 적은 흑암의 전설을 이룬 이후 단 한 번도 없었다.
전투, 싸움이라는 영역에 지극히 특화된 무림인이 연호정이었다. 상대가 어떤 변칙적인 수법을 써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예리함과 경험, 투쟁심이 언제나 연호정과 함께했다.
한데 이번에는?
‘투로도, 전술도 다 놓치지 않고 있는데 결정적인 한 방이 들어가질 않아.’
힘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미세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차이였다.
하지만 단순히 힘의 차이라고만 하기에는 헛손질이 지나쳤다.
‘어쩌지.’
명극을 노려보면서도, 연호정은 종남 본산에서부터 들려오는 아우성과 굉음을 들을 수 있었다.
우아아아아! 퍼엉! 퍼어엉!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창칼이 부딪치는 소리,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광기 어린 함성,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 어딘가 불타오르는 소리…….
‘괜찮나? 잘 버티고 있을까?’
전투 중에 다른 생각을 하는 것만큼 위험천만한 일이 없다.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종남 전투는 중요한 것이었다. 적어도 사천 사태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이라 할 정도로 결과가 중요한 싸움이었다.
심란한 얼굴, 무거운 눈빛. 숨길 수 없는 걱정이 묻어 나온다.
명극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걱정되나?”
“…….”
“괴물 같은 재능에 기가 막힌 전투 능력까지 보유했지만, 또 이런 순간에는 애송이 같은 모습을 보여 주는군.”
“…….”
“싸움 중에 다른 생각을 하면 안 되지. 하물며 상대보다 한 수 아래라면 더더욱.”
“네 덕분이다.”
“뭐?”
연호정이 한숨을 쉬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네 덕분이라고.”
“무슨 말이냐?”
“지금도 가만히 기다려 주는 걸 보니 여유가 이만저만이 아니로군. 굳이 먼저 공격할 이유도 없어 보여. 전투가 끝날 때까지 날 묶어 놓기만 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
“너의 그 여유 덕분에 나도 걱정할 수 있는 거다. 뭐, 그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명극이 피식 웃었다.
“쓸데없이 날카롭지만, 그런다고 네 녀석이 어설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어쩌라고? 너한테는 좋은 거 아니냐? 적이 어설프면 득의양양해야지, 뭐 하러 지적까지 해 줘?”
“……흠.”
“적을 조롱하고 싶은 마음이야 다들 다 똑같지. 이해한다.”
참 묘한 놈이다.
본인이 어설프다고 인정하는데, 그 말이 이상하게 불쾌하다.
명극이 담담하게 말했다.
“나야 괜찮지만, 또 이런 생각도 드는군. 어설픈 적을 상대로 굳이 시간 끌 것 없이 빨리 처리하는 것도 매혹적인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
“진짜였군.”
“뭐?”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진짜였어. 힘의 차이가 있다 한들 난적임은 분명한데, 너는 정말로 시간이 네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명극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한 방 먹었군.”
“두 방 먹은 거겠지.”
“……?”
“제아무리 이번 전쟁에 자신이 있다 해도 변수를 고려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놈 같지는 않거든. 그런데도 적극적으로 날 공격하지 않는다…….”
연호정이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몸에 생채기 나는 게 싫은 거냐?”
“…….”
“내가 그렇게 무섭냐?”
콰앙!
연호정의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통천부에서 내려온 명극이 천천히 목을 돌렸다.
“도발 하나만큼은 천하제일이라 해도 되겠군.”
“끄응.”
“생각을 바꿨다. 네 말마따나 굳이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릴 필요는 없지.”
쿠구구궁!
명극 주변 땅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화아아악!
물밀듯 내려오던 화마는 어느새 저 멀리 도망쳐 버렸다. 두 초고수의 충격파에 자꾸만 옆으로 새던 화마는, 지금 이 순간 살벌한 기압으로 인해 점차 힘을 잃고 있었다.
치이이익!
명극의 양손에서 금빛 칼날 형상의 진기가 쑥 뽑혀 나왔다.
훅!
양손 수도를 중심으로 뻗어 나온 두 개의 칼날은 살벌하기 그지없는 살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도화천신인(導禍天神刃)이라는 육장검(肉掌劍)이었다. 사음교에서도 명극만이 익히고 있는 신공으로, 도화천신갑의 탄력과 강도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진기의 칼날이었다.
번쩍!
명극의 눈에 확고한 살의가 어렸다.
“죽어라.”
그때였다.
딱!
맞닿았던 연호정의 중지와 엄지가 튕기며 청아한 소리를 냈다.
순간 명극이 움찔했다. 너무 느닷없는 행위라 공격 박자를 놓친 것이다.
동시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푸스스스스.
명극의 의복 옆구리 부근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역시 그랬군.”
당황한 명극이 옆구리를 내려다보다가 연호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입가의 피를 닦아 내던 연호정이 살살 어깨를 풀었다.
“이제 알겠다. 왜 자꾸 결정적인 한 방이 들어가질 않는지, 어째서 자꾸만 다른 생각이 드는지.”
명극의 눈이 흔들렸다.
연호정이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두들겼다.
“상단전을 그런 쪽으로 쓰는구나, 너?”
파아아아앙!
엄청난 속도로 거리를 줄인 명극이 연호정의 좌측 빗장뼈를 내리쳤다.
쩌어어어엉! 쾅!
연호정의 두 발이 땅을 파고들었다.
명극은 깜짝 놀랐다. 도화천신인의 참격이 연호정의 몸을 베지 못한 것이다.
‘이건?’
이 정도 참격을 맨몸으로 막아 내다니?
‘설마 도화천신갑?!’
연호정의 왼손이 등허리를 훑었다.
번쩍!
빠르게 물러난 명극이 자세를 낮추었다.
어느새 연호정의 왼손에는 백룡부가 들려 있었다.
스르륵.
명극의 가슴팍 의복이 횡으로 짧게 잘려 나갔다. 백룡부의 참격을 완벽하게 피하지 못한 것이다.
“어떠냐.”
연호정이 씨익 웃었다.
“너처럼 기가 막힌 신공을 익히지 않아도, 맨몸으로 막아 내는 거 어렵지 않지?”
“……이놈!”
“피할 거라고 생각했나 보군. 나아가, 손도끼를 쓸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 같아.”
휘이이이이이잉!
백룡부에 백색의 바람이 일었다. 호왕의 진기, 백호기가 깃든 것이다.
“뭐 해? 죽이겠다며?”
연호정이 오른손을 까딱였다.
“받아 줄게. 들어와.”
“이놈!”
파악!
재차 달려들던 명극은 순간 경악했다.
촤르르르륵!
연호정의 오른손 소매 안쪽에서 발출된 무언가가 빛살처럼 빠른 속도로 목젖을 노렸다.
‘암기?!’
암기는 아니다. 하지만 암기 못지않은 음험함으로 가득한 공격이었다.
명극이 재빨리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나아가는 힘을 이기지 못한 명극의 몸이 연호정과 삼 장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멈추었다.
촤르르륵! 칭!
쏘아진 교룡쇄가 통천부의 창대에 단단히 감겼다.
순간 연호정의 복부에 강한 힘이 실렸다.
“으아압!”
파아앙! 부우우우웅!
교룡쇄에 묶여 뽑혀 나온 통천부가, 거대한 반월을 그리며 명극의 머리통을 향해 휘둘러졌다.
명극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몸 안에 뭔가 숨기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것이 철쇄인 줄은 몰랐다. 도화천신인을 막은 것도 저 철쇄 덕분일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철쇄의 길이가 찰나지간 눈에 띄게 짧아졌다는 것이다.
‘기물!!’
내리꽂히는 통천부를 향해 명극의 우수도가 휘둘러졌다.
쩌어어어엉!
통천부의 도끼날 반쪽이 날아갔다.
명극은 연호정의 돌진을 예측했다. 그리고 그의 예측은 정확했다. 어느새 연호정이 일 장 거리 안쪽으로 들어온 것이다.
‘안 되지.’
그때, 명극의 눈에 칠채색 기운이 벼락처럼 감돌다 사라졌다.
순간 연호정의 백룡부가 반 박자 느리게 휘둘러졌다. 연호정이 의아하게 생각했던 바로 그 ‘술수’가 발휘된 것이다.
‘좋아, 곧장 반격을…….’
퍼어억!
명극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주르르륵.
그의 우측 어깨에 깊은 자상이 생겼다. 도끼에 찍힌 상처였다.
놀란 명극이 연호정을 바라보았다.
촤르르륵.
그대로 땅에 꽂힌 백룡부 끝에는 교룡쇄가 묶여 있었다.
“역시 내가 박자를 놓친 게 아니었어.”
“……!”
“네놈이 느려지게 만든 것이다. 너의 상단전 능력은 그런 식으로 발휘되었어. 하지만 너의 예측을 상회하는 술수 앞에서는 그것도 무용지물일세그려.”
연호정이 비릿하게 웃었다.
“자, 얼마든지 해봐. 예측 불허의 변수 싸움은 내 전문이거든. 그 짓거리 유지하면서 몇 합이나 버틸 수 있을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