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687)
◈687화. 불타는 산 (5)
번쩍!
백룡부가 허공을 가르는 속도는 가히 빛살과도 같았다.
속도는 곧 힘이다. 거기에 ‘벤다’라는 단순한 이치를 극대화한 연호정의 참격술은 강철도 무 자르듯 베어 버릴 수 있을 만큼 위력적이었다.
그런 참격을, 명극은 너무나도 손쉽게 막아 내고 있었다.
쩌어어엉!
강렬한 공명음이 둥글게 퍼져 나가며 대지를 일그러트렸다.
파아악!
연호정이 통천부를 내찔렀다.
도끼날의 절반이 날아간 통천부는 더 이상 도끼라고 부를 수 없는 상태였다. 절반의 도끼날만 달린 그것은 한 자루 쇠봉이나 마찬가지였다.
티이이이잉!
명극의 천신인에 맞은 통천부의 도끼날이 완전히 부서져 버렸다.
연호정의 진기가 제아무리 단단하다 한들, 기를 신병이기의 순도로 밀집시킨 명극의 수공을 뚫기는 어려웠다.
촤라라라락!
연호정은 통천부, 아니 통천봉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서슴없이 철봉을 놓고 백룡부를 휘두르는데, 어느새 백룡부가 허공을 가로질러 명극의 얼굴을 노렸다.
그 순간 칠채색으로 물들었던 명극의 눈에 다급함이 어렸다.
파아아악!
상단전의 신기(神氣)로 연호정의 움직임을 옭아매 반 박자를 늦췄지만, 그러한 행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연호정이 도끼를 휘두를지, 던질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휘두를 걸 가정하고 박자를 놓치게 할라치면, 어김없이 도끼가 날아왔다.
박자를 놓치게 한 연후의 회피에 있어서 명극은 충분한 빠름을 가졌다. 그러나 도끼가 날아오는 속도는 직접 휘두른 것보다 더 빠르다. 신기로 적을 묶어 놔 봤자, 날아오는 도끼를 처리하는 데에 심력 소모가 더 심하게 되는 것이다.
쩌어어엉!
도화천신갑으로 백룡부를 튕겨 냈다. 튕겨 나간 백룡부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촤르르륵!
막아 냈다고 생각했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던져 낸 자세 그대로, 소매 안에서부터 쏘아져 나온 교룡쇄는 순식간에 명극을 휘감으려 했다.
훅!
명극은 혼신의 힘을 다해 착공비보를 운용,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치치치칭!
원형을 그리며 조여 든 교룡쇄가 저들끼리 부딪치며 거친 소리를 냈다.
연호정은 재빨리 교룡쇄를 회수하고 땅에 떨어진 철봉으로 손을 뻗었다.
우우우웅.
명극의 눈이 흔들렸다.
교룡쇄로 잡아채지 않는다. 철봉 자체가 스스로 떠올라 연호정의 손에 잡히는데, 그 움직임이 무척이나 부드럽고 안정적이었다.
‘허공섭물…….’
부우우웅!
철봉 중앙을 잡고 화려하게 휘두른 연호정이 자세를 낮추었다.
치이이이이익!
땅을 디딘 연호정의 왼발 주변으로 은은한 화기가 일렁거렸다.
숨 쉬듯 자연스레 구사하던 백호공에서, 이제는 주작공으로 무공을 변형한 것이다.
‘알 수가 없다.’
명극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대체 몇 가지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것인가!’
궁극의 경지에 오른 무사들은 여러 무공을 익히지 않는다.
정확히는, 아무리 많은 무공을 익혀도 결국 하나로 합치거나 그중 하나를 선택하여 극한까지 익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하나의 무공만으로도 자신의 모든 깨달음을 구현할 수 있도록 단련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연호정의 무공은 달랐다.
공격이면 공격, 살법이면 살법, 방어면 방어.
하나하나가 극상승의 신공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으면서도, 서로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동시에 분명한 개성을 지녔다.
몇 가지의 무공을 전부 최고 수준으로 연마한 것과 같았다. 그것도 서로 비슷한 느낌이 아니라, 제각기 개성 넘치는 무공이라 순간순간 대응하기가 어려웠다.
‘도화신안(導禍神眼)이 통하지 않는다.’
도화신안.
그것은 곧 상단전의 신기를 풀어 내 상대의 움직임에 제약을 거는 술수였다.
수법 자체는 이 경지에 오른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가능은 할 것이다. 그러나 도화신안은 아무 기척도 없이 상대의 기세에 녹아든다는 점이 달랐다.
동등의 고수, 아니 한 수 위의 고수에게도 통한다. 대응 방식이 달라질 뿐, 지금껏 도화신안이 통하지 않는 이는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도화신안에 반복하여 당하게 되면 집중력이 저하되기도 한다. 조금 전 연호정처럼.
‘이제 저놈에게는 쓸 수 없단 말이지.’
쓰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 하지만 의미가 없다.
연호정의 전투 방식은 명극이 지금껏 봤던 그 어떤 고수보다도 다양하고 변칙적이었다. 허점을 노리거나 변수를 만들어 내는 능력 이전에, 엄청나게 방대한 전투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기상천외한 몇 가지의 전투술을 깊은 수준으로 구현했다면, 지금은 수십, 수백 가지의 전투술을 얕지만 확실한 박자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다양한 전투술 앞에서는 도화신안도 무용지물이다. 상대의 공격을 대략적으로라도 예측할 수 있어야 도화신안도 빛을 보는 것이다. 연호정의 공격 방식은, 더는 명극이 예측할 수 없는 범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후우.”
가볍게 한숨을 내쉰 명극이 도화천신인을 거두었다.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수도공을 거두었지만, 여전히 빈틈은 없었다. 마음을 다르게 먹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기가 막히는 놈이로구나.”
명극이 주먹을 쥐었다.
훅!
일렁이던 황금빛 진기가 그의 주먹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렵지 않게 꺾을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심지어 도끼에 한 방 맞기까지 했다. 우측 어깨에 난 참상, 얼마 만에 얻은 부상인지 모르겠다.
가만히 명극을 바라보던 연호정이 한쪽으로 손을 뻗었다.
툭!
바닥에 나뒹굴던 백룡부가 연호정의 손에 잡혔다.
티잉!
철봉을 손에서 놓은 연호정이 흑룡부까지 꺼내 들었다.
상단전의 무공을 쓰지 않는다면, 이제는 정석적인 힘의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도끼날이 날아간 통천부는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쌍부술(雙斧術)이라…….”
명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도끼다, 이건가? 보면 볼수록 묘한 놈이야.”
중원 무림도 그렇지만, 새외에서도 도끼를 휘두르는 놈이 이와 같은 경지에 오른 역사는 없었다.
물론 병장기의 특성이 희미해지는 단계였지만, 그래도 독특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오는군.’
연호정의 자세가 더더욱 낮아졌다.
화르르륵!
불타오르는 심장, 주작화기가 최고조로 끓어오르며 온몸의 신경을 짜릿하게 곤두세웠다.
‘그 술수는 더 이상 쓰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쓸 때마다 자신의 대응 방식이 엄청나게 다양해진다.
하지만 명극 역시 바보는 아니다. 애는 먹겠지만, 이전처럼 당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말인즉, 누구 하나 서로에게 결정적인 피해를 주지 못한다는 것.
명극의 눈이, 기세가, 목소리가 진정한 격전의 서막이 올랐음을 알려 주었다.
후우우욱!
명극의 몸에서 강렬한 열기가 새어 나왔다.
주작화기와는 다른, 텁텁하고도 음습함이 느껴지는 열기였다.
명극이 입을 열었다.
그의 입가 주변으로 허연 연기가 흘러나왔다.
“앓아눕기 싫지만…… 너 정도 상대라면 어쩔 수 없겠지.”
순간 연호정의 눈이 가늘어졌다.
앓아눕는다? 그게 무슨 뜻이지?
그때, 명극의 안광이 새파란 빛을 토해 냈다.
쾅!
그의 주먹이 대지를 때리자마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뭐야?!’
연호정의 눈이 흔들렸다.
휘이이이이이잉!
그렇지 않아도 서늘한 밤공기 위로, 피부가 저릿할 정도의 강풍이 불어닥쳤다.
타다다닥!
불타오르던 봉우리가 미친 듯이 춤을 추더니 점차 그 크기가 줄어들었다.
휘이이이잉! 사라라라락!
엄청난 바람과 함께 눈송이가 날리기 시작했다.
아니, 실제 눈은 아니었다. 다만, 극한까지 단련된 연호정의 신안(神眼)은 환상과도 같은 눈보라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눈은 하얗지 않았다. 황야의 흙이 뒤섞인 듯 싯누런 색을 띤 기괴한 눈보라였다.
‘술법? 아니, 진법인가?’
그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달랐다.
명극이 담담하게 말했다.
“오십 합 내로 끝내 주마.”
번쩍! 콰앙!
연호정의 흑룡부와 명극의 팔꿈치가 부딪치며 강한 열기를 피워 올렸다.
명극의 이마에 굵은 핏줄이 불거졌다. 연호정의 얼굴도 발갛게 달아올랐다.
서로의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의 근접 거리.
연호정이 말했다.
“시시한 놈.”
“……?!”
“내, 그간 너희 빌어먹을 삼교 놈들과 수도 없이 부딪쳤지만, 너처럼 난잡한 놈은 본 적이 없다.”
“…….”
“되지도 않는 잡술로 간만 보더니, 이제는 술법이냐? 지루한 새끼.”
명극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일각 뒤에도 주둥이에서 그따위 소리가 나오는지 보겠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연호정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동시에, 흑백쌍룡의 도끼가 고속으로 회전하며 명극을 향해 날아갔다.
명극의 눈이 흔들렸다.
호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두 도끼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그리고 강했다.
평범한 비검술(飛劍術) 따위가 아니었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그 자체로 생생한 기운을 뿌리고 있었다.
‘어검술(馭劍術)!!’
어검, 아니 어부술(馭斧術)이라고 해야 할까.
어검이든 어부든,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명극의 쌍권이 불을 뿜었다.
쾅! 쾅!
폭음과 함께 명극의 몸이 흔들렸다. 도끼를 막은 두 주먹엔 작은 자상이 났다.
타악!
돌진하며 도끼를 회수한 연호정이 흑백쌍룡을 크게 휘둘렀다.
고개를 든 명극은 일순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화르르르르륵!
양팔을 활짝 벌린 채로 쌍부를 휘두르는 연호정.
마치 거대한 불꽃의 날개가 자신을 휘감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동작이 큰데도 허점이 없다. 피하는 건 불가능, 무조건 막아야 했다.
명극의 두 주먹이 양방향으로 휘둘러졌다.
주작공, 홍염육살공(紅焰六殺功)의 화익포궁(火翼抱躬)과 도화천신권(導禍天神拳)의 쌍신파(雙迅波)가 부딪쳤다.
콰르르릉!
이제야 초고수들 간의 격전답다고 해야 할까.
힘 대 힘, 밀도 높은 발경끼리 부딪치며 반경 십여 장이 초토화가 되었다.
울컥!
오 장이나 밀려 나간 연호정이 피를 토했다.
명극 역시 십여 걸음이나 물러나 피를 토했다. 두 사람 모두 위력 넘치는 무공을 구사하며 손해를 입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였다.
‘……?!’
명극의 눈이 흔들렸다.
‘어떻게!’
연호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인식한 순간, 이미 이 장 거리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번쩍!
턱을 치켜든 연호정, 명극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에서 진하고도 붉은 살기가 파도처럼 흘러나왔다.
파바바바바바박!
두 자루 도끼가 미친 듯이 움직이며 명극의 몸통을 공격했다.
퍼버버버벅! 쩌저저저저정!
신들린 듯 움직이는 극쾌의 참격이었다.
신묘한 투로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두 자루 도끼를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 상대를 난도질하고 있었다.
홍염육살공의 쌍익비살(雙翼飛殺)이 수십 번이나 펼쳐진다. 강철도 갈기갈기 찢어 버릴 사나운 살법이었다.
쩌저저저저정! 푸스스스!
어느새 명극의 양쪽 소매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도화천신갑이 극한까지 발휘되며 쌍익비살을 막았지만, 그의 팔뚝은 점점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천신갑으로도 수십 번의 도끼질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빠르다! 이놈, 어디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체력을…….’
그때, 한 줄기 싯누런 설풍(雪風)이 명극의 목덜미를 휘감았다가 그의 다리로 모여들었다.
명극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순간 연호정은 머리털이 곤두서는 긴장감을 느꼈다.
퍼어어어어억!
일자로 치고 올라가는 각법에 연호정의 몸이 십여 장이나 날아갔다.
퍼버벅! 쾅!
몇 번이나 땅을 구른 끝에 몸을 일으킨 연호정이 낭패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휘이이이이잉!
색을 가진 바람이 명극의 사지를 휘감으며 서서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황야에 사는 바람의 신(神)을 보는 듯했다.
“실망시켰다면 미안하다. 이제부터는 재미있을 거야.”
파아아아아앙! 쾅!
빠르게 거리를 좁힌 명극의 양손이 연호정의 도끼를 잡았다.
“닥쳐라.”
연호정이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피범벅이 된 얼굴, 살기 그득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니, 명극은 순간적으로 위축되는 자신을 느꼈다.
“필살기 놀이 따위에 장단 맞춰 줄 시간 없어!!”
연호정이 힘차게 머리를 휘둘렀다.
빠각!
명극의 콧대가 그대로 부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