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756)
756화. 천도(天道)의 변화 (1)
홍룡궁이 쏜 화살은 무형탄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강했고, 더 날카로웠으며, 더 무거웠다.
그 목표는 연위가 아닌 어전 안이었다. 극한의 화기를 담은 화살은 황제에게 닿지 못하더라도 그 안의 모든 외물을 불태울 것이다.
그리고 그 틈을 노려 돌진하는 기우헌.
황제를 지키려는 연위에게 있어 이처럼 당황스러운 순간은 없을 것이다.
‘약점이 있는 상대와 당당하게 승부를 낼 필요는 없지.’
단숨에 거리를 좁힌 기우헌이 건곤권을 휘두르려 할 때였다.
‘……?!’
연위의 눈을 본 기우헌은 찰나지간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연위는 전혀 당황한 기색이 아니었다. 어느새 왼손을 어전 안쪽으로 뻗고 있었으며, 투박한 철검으로는 기우헌을 가리키고 있는데 그 동작이 지극히 부드럽고 자연스러웠다.
흉성(凶性) 가득한 눈빛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움직임.
기우헌은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위험!’
퍼어어어어엉!
황금빛 불꽃이 화려하게 산화했다.
철검의 검포(劍砲), 검첨에서 폭발하는 검극사기의 발경이 기우헌을 튕겨 냈다. 목표물을 단숨에 관통하는 살기 넘치는 검기(劍技)에 폭발력을 실어 밀쳐 내는 매서운 공격이었다.
우우우우웅!
어느새 연위의 왼손 위에는 어전 안으로 빨려 들어갔던 철시가 두둥실 떠올라 있었다.
사나운 화염으로 이글거리는 철시는 불길한 암청색 진기에 휩싸여 그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얄팍하기 그지없는 술책이구나.”
연위가 주먹을 쥐었다.
파삭!
화염을 담은 철시가 그대로 부러져 버렸다.
놀랍게도 어전 내부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아주 잠시라도 고온의 화염을 담은 화살이 중앙까지 도달했는데, 그 사나운 화기에도 어전 내 목재들이 하나도 타지 않은 것이다.
기우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허공섭물.’
홍룡궁의 화살이 연위의 전권에 들어간 순간부터 검극사기는 이미 화살의 화기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전에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이다.
‘그 찰나에 읽었단 말인가.’
마치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화살이 쏘아진 순간을 읽은 연위는 자신이 달려들 것까지 예상하고 다음 무공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싹!
희대의 열양공을 연성한 기우헌은 연위의 판단력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분노와 살기로 스스로를 불태우면서도 사방을 보는 눈은 냉정하기 그지없었다. 판단은 정확했으며, 감각은 예민했다.
기우헌의 눈이 번뜩였다.
위이이이이잉!
어느새 손목에 낀 건곤권이 고속으로 회전했다.
그렇지 않아도 위협적이던 화기가 더 사납게 일렁거렸다. 회전하는 건곤권 주변으로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는 금빛 화기는 당장이라도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것만 같았다.
“긴말은 필요치 않겠지.”
번쩍!
수십 장 밖에서 어전을 겨누던 홍룡궁이 어느새 기우헌 뒤, 건물 위에서 나타났다.
이름 없이 홍룡궁으로만 불리는 여인. 외눈에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외모의 그녀는 사내처럼 굴강한 근육의 소유자였다.
기우헌이 외쳤다.
“사방 사격이다!”
파아아앙!
홍룡궁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시위를 당겼다.
화아아아악!
무려 여덟 발의 무형탄이 시차를 두고 동그랗게 퍼져 나갔다. 퍼져 나간 여덟 발의 화염시(火焰矢)는 어전 외부의 팔방을 노리며 날아갔다.
동시에 기우헌의 건곤권이 연위를 향해 쏘아졌다.
그때, 연위의 검이 기이한 움직임을 발했다.
파바바바바박!
어두운 청색으로 물든 연위의 몸에서 일곱 줄기의 검기가 벼락처럼 쏘아졌다.
퍼퍼퍼퍼퍼퍼펑!
화려한 폭음과 함께 팔방을 점한 무형탄이 모조리 소멸했다.
쩌어어어엉!
철검으로 건곤권을 후려친 연위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하늘로 날아오른 건곤권이 남은 하나의 화염시를 그대로 터트려 버렸다.
궁극에 도달한 검기공(劍氣功), 신기(神技)에 달한 이화접목이었다. 탄탄한 힘은 물론 유려하기 그지없는 검도(劍道)가 어전 전체를 철통처럼 지켜 내고 있었다.
기우헌의 얼굴에 놀라움의 빛이 어렸다. 홍룡궁의 외눈에도 경악이 드리워졌다.
그리고 그때.
연위가 움직였다.
훅!
순간 홍룡궁은 실체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자신의 코앞에서 기지개를 켜는 환상을 보았다.
‘헉!’
그 무언가는 괴물이었다.
세 개의 얼굴, 불타오르는 머리카락이 위협적이었다. 여섯 개의 팔이 제각기 다른 형상을 취하며 홍룡궁의 정신을 무참하게 공격했다.
기겁한 홍룡궁은 저도 모르게 신법을 펼쳤다. 이성은 이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삼면육비(三面六臂)의 아수라상(阿修羅像)이 품고 있는 위엄과 살기가 너무 강해서 몸이 먼저 반응해 버린 것이다.
바로 그때, 연위와 기우헌이 부딪쳤다.
쩌저저정!
마치 팔이 여러 개인 것만 같다.
한 번 검을 휘두르는데 공격선은 여덟이다. 기우헌의 두 손이 열화신장(熱火神掌)의 투로를 밟으며 연위의 검격을 막아 냈다.
훅!
기우헌의 얼굴이 굳어졌다.
크게 팔을 휘둘러 팔격을 내친 연위는 끝까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몸이 회전하는 그 순간까지도 시선을 떼지 않는데, 그 눈빛이 그야말로 끔찍한 악신(惡神)의 그것을 보는 것 같았다.
‘이런!’
화아아악!
회전하며 올려 치는 검격에 기우헌의 몸에 붙었던 불꽃이 반듯하게 잘려 나가며 스러졌다.
무시무시하게 날카로운 참격이었다. 이전까지 보여 주었던 위엄 넘치고 절제된 공격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살육의 검이다. 변검(變劍)이 아니라 난검(亂劍)에 가깝다. 변화무쌍한 검으로 상대를 위협하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찢어 죽일 듯 난도질을 치는 살인마의 무공이었다.
기우헌이 건곤권을 불러들였다.
쉬이이이익! 지이이잉!
십 보(十步)를 물러난 기우헌이 재차 연위에게 달려들었다.
쩌저저정! 쩌저저저정!
강하다.
기세만으로도 강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충돌을 거듭할수록 연위의 힘에 놀라게 된다.
동등의 고수라도 발산되는 화기로 인해 접근전을 취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아무리 강력한 내공력의 소유자라도 시간이 지나면 화기의 침습을 받게 되니까.
하지만 연위는 달랐다. 금제순화공의 강력한 화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 무섭게 치고 들어와 사혈과 급소를 노리고 있었다.
치켜뜬 두 눈에는 끔찍한 살광이 넘실거리고, 휘두르는 팔은 그 개수가 여섯 개를 넘어 여덟 개로 늘어난 듯 정신없이 상대를 공격한다.
기우헌의 주먹이 벼락처럼 움직였다.
퍼어어엉!
강력한 폭음과 함께 연위가 뒤로 물러났다.
비슷한 경지지만, 힘에서는 기우헌이 한 수 위였다. 연위를 떨쳐 낸 기우헌이 재차 건곤권을 날렸다.
번쩍! 치리리링!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건곤권이 튕겨 나갔다.
튕겨 나간 건곤권이 기이하게 회전하며 다시 기우헌의 손목으로 돌아왔다.
기우헌이 좌수를 휘둘렀다.
콰르릉!
엄청난 폭음과 함께 거대한 황금빛 불기둥이 날아간다.
신화교의 열양공, 그중에서도 손가락에 꼽힌다는 금제순화공의 진짜 힘이었다.
십팔무장들이 보여 주었던 거대한 불꽃의 장력. 그중 누구보다도 뛰어난 기우헌의 장력은 사라진 어전의 문 전체를 메우고도 남을 만큼 거대하고 강력했다.
연위를 휩쓸고 그 뒤에 있는 어전마저 날려 버릴 것 같은 일격.
그때, 연위의 손이 다시 여덟 개로 늘어났다.
콰콰콰쾅! 퍼어어어어엉!
무지막지한 폭음과 함께 열화신장의 불기둥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스러졌다.
기우헌의 눈이 흔들렸다.
공기를 소멸시키며 쏘아진 초고온의 장력,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접근하기도 전에 내가고수의 호흡을 흐트러트리니, 피할 수는 있어도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연위는 그것을 정면으로 막아 냈다.
흐트러진 옷가지, 양 소매가 불에 타서 굴강한 팔뚝이 드러났다. 좌측 얼굴과 목덜미, 의복 여기저기엔 검댕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연위의 기세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사납고, 더 살기가 넘쳤다. 폭포수처럼 쏟아져나오는 살기만으로도 속이 다 뒤집힐 정도였다.
‘어디까지 버틸 수 있나 보자!’
위잉!
기이한 소음과 함께 기우헌이 연위의 삼 장 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힘은 물론 속도에 있어서도 기우헌이 한 수 위였다.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더라도,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죽어……!’
그때였다.
기우헌의 눈이 연위의 오른손을 향했다.
연위의 오른손.
언제나 완고하게 철검을 쥐고 있던 그 손이 텅 비어 있었다.
기우헌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번쩍!
곧바로 물러난 기우헌이 철판교의 수법으로 상체를 뉘었다.
동시에 상체와 콧날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검기를 담은 연위의 비검(飛劍)이 살갗을 베고 지나간 것이다.
‘이!’
파바박!
기우헌이 무너진 자세 그대로 회전하며 재차 거리를 벌렸다.
퍼어어엉!
거리를 벌린 게 다행이었다. 곧바로 일어나 반격했다면, 대지를 박살 낸 장력을 몸으로 받아 내야 했을 것이다.
우우우우우웅!
공포스러운 검명(劍鳴)을 토해 낸 철검이 허공을 유영하며 재차 연위의 손에 잡혔다.
“후욱!”
기우헌이 숨을 몰아쉬었다.
연위는 여전히 고고한 자세로 어전 앞 계단 위에 서 있었다.
‘뭐지?’
힘도, 내공력도, 기공술도 미세하게나마 자신이 앞선다.
고수일수록 한 수의 차이는 넘어서기 힘든 차이가 되는 법. 그렇다면 연위는 진즉에 쓰러져야 했다. 쓰러지진 않아도 한참 손해를 보고 물러나야만 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연위의 극단적인 살기만으로 홍룡궁이 물러나 버렸고, 넘치는 검력 속 소름 끼치는 섬세함을 담은 검격에 열화신장이 무너지고 금제순화공이 제힘을 내지 못했다.
모든 것이 검(劍) 아래에 있다.
막강한 화기도, 파괴력 넘치는 장력도, 극에 이른 속도도.
연위의 검 앞에선 통하지 않는다. 강철처럼 단단한 의지를 뚫지 못하는 것이다.
“불가능해.”
기우헌이 움찔했다.
연위가 단조로운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백 번, 천 번을 도전해도 무리(武理)를 등한시한 채 힘으로만 덤비는 너희는 나를 넘어설 수가 없다.”
“닥쳐라, 애송이!”
쾅!
강력한 진각으로 힘을 끌어올린 기우헌이 쌍장을 휘둘렀다.
부우우우웅!
속도는 느려졌지만, 이전보다 더 크게 거대한 불기둥이 쏘아졌다.
크기만 커진 것이 아니라 위력도 올라갔다. 화력 자체가 올라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훅!
기우헌이 불기둥에 몸을 숨기고 그 뒤에 따라붙었다.
‘흩어 내 보아라!’
퍼어어어어어엉!
무너져 내린다.
이전처럼 난검으로 불기둥을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불기둥의 정중앙을 노리고 회전하며 쏘아진 철검 아래 그 강력한 화기가 무너지고 있었다.
기겁한 기우헌이 몸을 회전했다.
퍼억!
피하는 것이 늦었다. 불기둥의 화력이 너무 강해서 비검이 날아드는 것을 제때 읽지 못했다. 제 꾀에 제가 당한 꼴이었다.
“으윽!”
물러서는 기우헌의 어깨에 연위의 철검이 박혀 있었다.
후우우우우웅!
사라진 불기둥 앞, 땅바닥에 서리가 앉았다.
연위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기우헌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쩌어어엉!
어깨에 박힌 검을 그대로 부러트린 기우헌.
남은 칼날도 뽑아내니, 일순간 화정이 발동하며 관통상을 치유했다.
기우헌이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래, 이 정도 실력이 되니 이쪽의 방벽을 그리 빨리 뚫을 수 있었겠지.”
“…….”
“하지만 넌 나를 죽이지 못해.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한 것은 너다.”
“그렇지 않다.”
사락. 사락.
흔들리는 장포 자락.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에서 내려오는 연위.
“널 도와줄 이들은 내 기세에 질려 도망쳐 버렸지만, 날 도와줄 이들은 너의 불꽃 앞에서도 당당히 이곳을 지킬 것이다.”
도와줄 이?
그때, 남서쪽에서 엄청나게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가주!”
번쩍!
어기신풍의 신법으로 허공을 날아오는 팽무강, 그리고 그 뒤를 제갈아연이 따르고 있었다.
기우헌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왜 느끼지 못했지?!’
의문이 든 순간,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어전 주변을 장악한 기세,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심신에 타격을 주는 아수라의 살기가 너무 강해서 저만한 고수들이 오는 것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연위가 팽무강에게 손을 뻗었다.
“검을.”
파아아악!
팽무강의 허리춤에 달려 있던 군용 소검(小劍)이 허공을 날아 연위의 손에 잡혔다.
훅!
팽무강이 연위의 뒤에 내려섰다. 제갈아연 역시 그 옆에 내려섰다.
연위가 천천히 목을 돌렸다.
우두둑!
뼈마디가 부딪치며 살벌한 소리를 냈다.
“이제 죽이겠다.”
화아아악!
군자 연위가 거대한 아수라상이 되어 기우헌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놀란 기우헌이 건곤권을 휘둘렀다.
삼면육비의 괴물이 쥔 거대한 검이 건곤권을 부숴 버렸다.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