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885)
885화. 창조의 순간은 짧고도 영원하다 (4)
번쩍이는 섬광도, 바람을 찢는 소리도 없었다.
대기를 숨죽이게 한다. 연호정의 움직임은 그러했다.
‘혼을 싣는다.’
연호정은 생각했다.
‘황룡기는 더 건드릴 필요가 없는 신공이다. 그저 끊임없이 올라가면 그뿐.’
처음 종리백에게 가했던 연환오권은 주작공의 속도와 백호공의 힘을 실은 공격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했다. 도풍으로 만든 종리백의 내공 방패를 그대로 깨부술 수 있을 만큼.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황룡이 아니었다. 황룡에 속한 사신무를 구사한 것일 뿐, 황룡신왕공에 걸맞은 무공은 아니었다.
그 뒤, 연호정은 온전히 금룡진악권과 금룡번천장, 그리고 용형칠기보법으로 종리백을 상대했다.
속도는 더 느려졌다. 물리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종리백은 더 느린 황룡에 대처하기 어려워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나.
황룡은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드는 조화 그 자체임과 동시에 무엇보다도 무서워질 수 있는 대자연이기도 했다.
그래서 거세고, 무겁고, 강하다. 강과 유를 따질 필요가 없이, 대자연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무서운 힘을 발휘하듯 있는 그대로의 힘을 보여 주었을 뿐이다.
기로 공간을 장악하고 적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 꿈틀대는 황룡기는 대지에 발을 딛고 선 모든 이에게 영향력을 가한다.
그 영향력은 실질적인 기운으로 신체를 옭아매는 것일 수도 있고, 기를 타고 흘러가 인지 능력에 이상을 유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종리백의 경우는 후자의 영향을 받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황룡신왕공을 연성한 연호정이 최대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내 힘의 모든 것을 보여 주지 못했다.’
‘지금’의 황룡공은 제대로 보여 주었다.
그러나 연호정이 알던, 연호정이 구사했던 만큼의 황룡공은 아직 꺼내지 못했다. 모든 깨달음을 녹였다고는 하나, 연호정은 그 이상의 실력을 보여 줄 수 있는 남자였다.
‘흑암제.’
바로 흑암제다.
흑암제 시절의 깨달음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흑암제의 깨달음을 전부 구현하지는 못했다. 회귀 후에, 연가신단을 형성한 후에 얻은 것들만 하나하나 차분하게 풀어 냈을 뿐이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지금의 그는 명백히 흑암제 시절보다 아래였다. 미세한 차이였지만, 동시에 태산보다 큰 차이이기도 한 벽이 사이에 세워져 있었다.
‘이 정도로는 안 돼.’
종리백과의 싸움을 통해, 비로소 연호정은 깨닫는다.
황룡신왕공을 진정 ‘완벽’하게 구현한다는 것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귀 후 연가신단에서 광명신단으로 발전, 이후 황룡을 깨운 지금의 자신은 물론 과거 흑암제 시절을 외면했던 나 자신도 끄집어내야 한다.
‘모든 것을 하나로.’
흑암제 시절의 자신을 넘어서기 위해.
흑암제 시절의 자신마저 긍정하기 위해.
무언가를 위해, 무언가를 포기할 필요 없이 모든 것을 하나로 안고 나아가기 위해.
연호정의 주먹이 종리백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파아아아아아.
물결치듯 일그러지는 공기를 뚫고 나아가는 일권(一拳)이다.
종리백의 표정이 돌변했다.
그가 참악도를 비스듬히 들어 공격을 막았다.
콰콰콰쾅!
엄청난 밀도의 힘이 공기를 압축시켰다가, 일순 강하게 폭발시켰다.
연달아 네 번이나 폭발한 무시무시한 일권(一拳)이었다. 정면으로 막았다면 천하의 종리백이라도 팔 하나는 날아갔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위력을 자랑하는 일격이었다.
이걸로 한 합이다.
인상적인 한 수로 예를 마친 연호정, 놀란 얼굴로 연호정의 한 수를 받아 준 종리백.
마침내 두 고수의 마지막 싸움이 막을 열었다.
퍼퍼퍼퍼퍼펑!
연호정의 주먹은 강했다.
빠르고 자시고를 따질 필요가 없었다. 그저 한없이 강하기만 했다. 너무나도 강해서, 그 이외의 무리(武理)는 하나도 엿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강했다. 그래도 막기가 어려웠다.
종리백의 칼이 화려한 춤을 추었다.
‘십도(十刀), 뇌락(雷落).’
콰콰콰콰쾅!
벼락처럼 움직이는 칼날이 순식간에 두 자루로 분리되어 연호정을 압박했다.
칼날은커녕 도기도 닿지 않았는데 연호정의 몸 곳곳이 갈라졌다.
이것은 도풍도 아니었다. 너무 강한 기운에 몸이 버티지 못하고 찢겨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엄청난 힘!’
그래도 괜찮다.
연호정에게는 황룡이 있었다. 평생 연마해도 도달할 수 있을까 싶었던 그 경지에, 검제 남궁승의 도움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검제와 쌍벽을 이룬다는 도제와의 싸움으로 흑암제의 깨달음까지 녹이려 한다.
아버지께 드린 말씀처럼, 지닌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들어 완벽하게 보여 줄 것이다.
화아아아악!
조화롭고 도도하여 한없이 강하기만 하던 연호정의 기파가 일순간 바뀌었다.
거칠고 사나웠다. 맹수의 그것처럼 포악하지만, 동시에 이승의 짐승 무엇과도 닮지 않은 백수지왕(百獸之王)의 힘이 드러났다.
종리백은 깜짝 놀랐다.
연호정의 두 주먹이 무서운 돌풍을 일으켰다.
콰콰쾅! 콰드드드드득!
허공을 휘어 친 주먹인데도 거대한 사자의 앞발로 할퀸 것만 같다. 부서진 비무대에 뭉개진 고랑 다섯 줄기가 생겨났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보던 부선이 몸을 떨었다.
‘흑사자기(黑獅子氣)! 선풍사자권(旋風獅子拳)이구나!’
하지만 연호정이 구사하는 선풍사자권은 그녀가 아는 것과 사뭇 달랐다.
권법이지만 조법의 초고수처럼 대지에 고랑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선풍사자권의 초식이었다.
무극에 이른 고수가 펼치는 사자무(獅子武)다. 원하는 모든 형태의 공격을 권법의 형(形)으로 구사한다.
상식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
파바바박!
갈지자로 물러난 종리백이 오른손에 쥔 참악도를 머리 위로 들어 거꾸로 뒤집었다.
기묘하기 그지없는 자세, 오구문의 눈이 흔들렸다.
“참백(斬魄)!!”
번쩍!
휘어져 내려오는 일격임에도 직선 공격보다도 빠르다. 대기의 결을 따라 내리치는 일격 앞에 그 무엇도 갈라지지 않을 수가 없으리라.
참혼교도의 비기 중 하나인 참백이었다.
연호정이 주먹을 휘둘렀다.
황룡공으로 구사하는 금룡이무가 아닌 흑사자기로 구사하는 선풍사자권이었다. 사납고 거칠었다.
콰르르르릉!!
천지를 떨어 울리는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휘어질 듯 움직여 절단하는 절대의 참격이, 흑사자의 주먹 앞에 힘을 잃고 있었다. 다 해소되지 않은 도기가 연호정의 권골과 팔꿈치, 상박과 어깨에 기다란 고랑을 새겼지만, 고작 그게 전부였다.
‘대단하구나!’
파아아악!
종리백의 몸이 빠르게 회전했다.
몸을 한 번 회전하는데도 빈틈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종리백이 만들어 낸 회전력은 오히려 연호정의 흑사자기를 튕겨 내고 근접 거리로서의 투로를 열어 주고 있었다.
파박!
두 걸음 만에 연호정의 전권 안으로 들어온 종리백이 하단에서 상단으로 참악도를 휘둘렀다.
참혼교도의 승천(昇天)이었다. 단순한 참격이 아닌, 도신을 타고 올라오는 묵직한 도풍으로 상대를 갈아 버리는 살수이자 최강의 반격기였다.
그때였다.
연호정의 손이 기묘한 움직임을 발했다.
파바바바바박!
참악도는 허공으로 올라갔으되 그 주변에서 몰아치는 도풍은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져 버렸다.
‘이럴 수가!’
연호정의 두 손은 마치 사자의 앞발처럼, 혹은 용의 앞발처럼 무엇이라도 쥐어뜯을 듯 날이 서 있었다.
선풍사자권의 일초였다. 하지만 그것은 평범한 선풍사자권이 아니었다.
황룡기(黃龍氣)로 구사하는 선풍사자권이다. 그 초식으로 승천의 도풍을 모조리 찢어발긴 후 사방으로 내쳐 버린 것이다.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드는 황룡기로, 사자권의 절초까지 구현해 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번쩍!
연호정은 회귀 후의 ‘나’와 회귀 전의 ‘흑암제’ 사이의 경계를 완벽하게 허물 수 있었다.
쾅!
이전처럼 부드럽지 않다.
직선으로 들어간 쌍장(雙掌)에 종리백의 몸이 오 장이나 뒤로 날아가 버렸다.
차라리 더 멀리 날아가는 편이 종리백에게는 좋았을 것이다. 두 배는 더 막강해진 금룡번천장의 힘을 해소하기에는 그게 더 나았을 테니까.
그러나 종리백은 내상을 감수하면서까지 몸을 멈춰 세웠다. 이번에 밀리면 후속타를 막을 수 없을 것 같단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파바바박!
대단한 정력이었다.
그런 일격을 받아 내고도 이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인다. 단숨에 거리를 좁힌 종리백이 또 한 번 승천의 일격을 구현했다.
그에 맞서 연호정의 주먹이 사선으로 내리쳐졌다.
콰쾅! 퍼어어어억!
“컥!”
이 순간만큼은 연호정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승천의 일격을 가한 종리백이 중간에 투로를 꺾고 몸을 회전해, 연호정의 가슴에 일권을 날린 것이다.
도법에서 권법으로 전환했다. 그런데도 그 흐름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하나의 무공처럼 보였다.
‘이런.’
가슴이 답답했다. 황룡기와 흑사자기가 출렁이며 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는 것은 연호정도 마찬가지였다.
콰아악!
왼발로 땅을 찍어 고정한 연호정이 양손 손바닥 끝을 겹쳐 그대로 앞으로 내밀었다.
카아아아아앙!
참악도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경악의 순간이었다. 연호정이 맨손 육장의 힘으로, 천하의 도제가 쥔 칼을 날려 버린 것이다.
하지만 보는 사람은 놀랄지언정 연호정은 쾌감을 느낄 수 없었다. 종리백이 일부러 참악도를 놓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파바바바박!
종리백의 양손 수도(手刀)가 벼락처럼 휘둘러졌다. 거도술이 아닌 맨손 쌍도(雙刀)의 연환이었다.
피비비빅! 팍!
연호정의 몸 곳곳에 자상이 새겨졌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상처도 너무 많이 입었다. 무극에 올랐다 해도 사람의 육신을 지닌 이상, 더 이상은 위험했다.
심지어 종리백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번쩍!
저 멀리 튕겨 나간 참악도가 일순 빙그르르 돌더니, 이내 엄청난 회전과 함께 연호정을 향해 날아갔다.
남궁승의 눈이 흔들렸다.
‘어도술!’
평범한 어도가 아니었다. 회전력을 가미한 어도, 모든 것을 파괴하고 절단하는 무적의 기예였다.
그때였다.
피를 쏟아 낸 연호정의 눈이 종리백의 눈과 마주쳤다.
움찔!
종리백의 몸이 일순 멈추었다.
상단전의 무공, 귀안(鬼眼)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참악의 어도(馭刀)는 연호정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우르르르릉!!
황룡기를 모조리 끌어올려 양손으로 모은 연호정이 회전하는 참악도를 보았다.
‘여기!’
파아아아악! 콰드드드드드득!!
엄청난 반사 신경으로 회전하는 참악도의 도병을 잡아 쥔 연호정의 몸이 어도의 힘에 따라 땅을 갈며 뒤로 나아갔다.
‘멈춰라.’
연호정의 두 눈에 황금빛 가득한 위엄이 어렸다.
“멈춰!!”
우우우우우우웅!!
참악도가 떨리며 종리백의 진기가 툭 끊어졌다. 종리백과 참악도 사이에 이어진 막강한 진기를 의지로, 상단의 신기(神氣)로 절단해 버린 것이다.
치이이이이익!!
참악도를 쥔 연호정의 두 손에서 허연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회전하던 연호정의 몸도 멈추었다.
“……!!”
종리백이 멍하니 연호정을 바라보았다.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만.”
쿵!
연호정이 참악도를 대지에 꽂았다.
“선배님의 모든 무공, 제가 다 받아 낸 것 같습니다.”
“허어.”
종리백이 고개를 저었다.
“더는 보여 줄 무공이 없네.”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 그랬겠지.”
하지만 자신의 애병이 저 청년의 손에 들어가 버렸다. 나 자신의 의지로 건넨 게 아니라 중간에 강탈당해 버린 것이다.
더 강한 의지와 상단신기로 어도술의 주인을 바꾸었다. 지금껏 이런 식의 행위가 가능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천외천(天外天)이라…… 이런 깨달음도 있었던가.’
종리백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세상에는 아직 배울 게 많다 이거로군.’
종리백이 연호정을 보았다.
연호정이 포권을 취했다.
“제가 졌…….”
“내가 졌네.”
“예?!”
종리백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도제(刀帝)의 패배일세. 자네가 이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