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906)
906화. 마(魔)의 숨결 (1)
“흐음.”
공공대사의 눈이 깊어졌다. 생각에 잠긴 듯, 혹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오묘한 눈빛이었다.
제갈문호가 입을 열었다.
“추가 병력을 보낼까요?”
공공대사가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군.”
“정보부에 따르면 적의 병력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어떤 고수가 숨어 있는지 모르는 만큼…….”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오.”
“예?”
공공대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장 무림의 국지 도발 자체는 큰일이 아니오. 이유인즉, 이러한 사태는 나와 제갈군사, 그리고 봉공들 모두가 이미 예견했기 때문이오.”
“그렇습니다. 삼교가 서장 무림까지 장악하여 그들을 수족처럼 부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이미 짐작했던 바입니다.”
“문제는 왜 하필 지금인가.”
제갈문호가 눈을 빛냈다.
공공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마림의 천효락 공자 때문이겠지.”
“물론입니다.”
“아마 진짜 병력은 연 소부주 쪽으로 향했을 것이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차 병력을 따로 보내겠다는 이유가 무엇이오?”
“단순한 성동격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서장 무림 역시 과거 중원에 눈독을 들인 세력 중 하나입니다. 특히 소뢰음사가 그러했지요.”
“그랬었지.”
“기실 이것은 성동격서라고 표현하기도 애매합니다. 굳이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이미 먼 길을 떠난 소부주 일행에게 병력을 보낼 시간이 여의치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소부주 일행이 신마림에 도달할 때까지, 감히 그들을 도우러 가지 못하도록 선을 긋는 것이 소뢰음사의 역할이겠지요.”
공공대사의 눈이 번뜩였다.
“군사의 말씀은, 그들 역시 중원의 힘을 한번 맛보고자 나름의 격을 갖춘 고수들을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오?”
“그렇기도 합니다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더 큰 문제?”
“포교(布敎)입니다.”
공공대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소뢰음사는 대뢰음사와 달리 오직 힘을 추구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불법을 사이하게 해석하여 욕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게 하는 괴이한 교리로 유명하지요.”
“…….”
“서장에서도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곳이 소뢰음사입니다. 지닌바 무력을 떠나, 그들의 교리 자체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렇지.”
“그러나, 한번 소뢰음사로 들어간 이들은 절대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으음.”
“그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교리에 심취한 이들이 스스로 세상을 그릇되게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교리는 그렇게 사이하고 위험합니다.”
“즉, 그들이 중원에 자신들의 교리를 퍼트릴 가능성이 있다?”
“꽤 높은 확률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제갈문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중원을 함락한 뒤, 자신들이 차지할 지역에 미리 포석을 깔아 두기 위함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콰득!
공공대사의 손이 태사의의 손잡이를 부쉈다.
자비롭고 현명한 그였지만, 소뢰음사의 행태에는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 소림은 대뢰음사와 종종 교류가 있었다. 정식은 아니었으나, 세상을 둘러보기 위해 산사를 나선 탁발승들이 중원과 서장을 오가며 서로의 가르침을 나누기도 했단 말이다.
그러나 소뢰음사는 달랐다.
그들은 소림, 그리고 대뢰의 탁발승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는 민심을 선동하여 잡아 죽이도록 만들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런 사례가 두 자릿수에 가까웠다.
그처럼 흉흉한 역사를 지녔으니 천하의 공공대사라도 민감해질 수밖에.
“삿된 가르침이란 마(魔) 그 자체인바. 석가께서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으실 적, 욕계의 마라(魔羅)가 일신의 안위가 흔들릴까 두려워 갖은 유혹으로 시험하였음에도 그분은 흔들리지 않으셨소.”
“…….”
“이 세상 사람 모두 부처가 될 수 있소. 그러나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 현실에 치여 진리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들은 사교 무리의 가르침에 쉬이 현혹될 수 있소이다.”
“예, 그렇지요.”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던 공공대사가 말했다.
“우를 부르시오.”
제갈문호의 눈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알겠습니다.”
잠시 후.
모용우가 맹주전에 들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공공대사가 미소를 지었다.
“아직 정식으로 맹주의 제자라 천명하지는 못하였으나 우리의 길이 그러하니, 빈승은 이미 너를 내 후계자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느니라.”
고풍스럽고도 자애로운 말투였다.
모용우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연호정 소부주는 너를 차기 맹주로 삼고 싶어 하는 것 같더구나.”
“…….”
“그래, 그처럼 안목 좋은 이가 너를 백도 무림의 수장 자격이 있는 인재로 보았다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용우는 당황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공공대사가 말을 이었다.
“무상이 되어 주신 저 종리백 선배님께서는 그 직위를 걸고 부탁 하나를 하셨다. 본인의 제자, 오구문을 후계 후보 중 하나로 넣어 달라는 것이었지.”
“예. 들었습니다.”
“그러나, 종리 무상께서는 당신의 제자가 차기 무림맹주가 되기를 바라진 않으셨다. 아니, 오히려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어. 그런데도 자신의 제자를 맹주 후보로 넣고자 하셨다. 이유가 무엇일 것 같으냐?”
모용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 안에서 천하(天下)를 배우게 하고자 함이 아니겠습니까.”
공공대사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옳다. 제대로 보았다. 종리 무상께서는 그러한 이유로 당신의 제자를 나에게 맡기신 게지.”
“…….”
“하나, 무림맹이 제아무리 넓다 해도 이 안에서 어찌 천하를 배울 수 있겠느냐? 무림맹은 천하를 담은 곳이 아니라 천하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연맹이 아니더냐?”
“예.”
“오구문 역시 제 스승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느니라. 애초에 구문의 성격도 자유분방하고 거리낌이 없어,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어울리는 인물은 아니라고 보았다.”
왜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
공공대사가 말을 이었다.
“구문만이 아니다.”
“……?”
“남궁의 대공자와 팽가의 대공자 역시 인간이기에 제각기 결함을 갖고 있다. 나와 너처럼.”
“……!”
“제갈가의 소가주도 마찬가지이니라. 군사께서 잘 가르쳐 놓긴 했지만, 젊고 경험이 얕으며 아닌 척해도 은근히 흥분을 잘하지. 착한 젊은이지만, 부족한 것도 많다.”
모용우의 눈이 커졌다.
“그 말씀은……?”
“그렇다. 너와 구문, 남궁과 팽가의 대공자는 물론 군사의 장자 또한 후계 후보로 삼으려 한다.”
“……!!”
너무 과한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모용우는 이내 고개를 숙였다. 공공대사와 제갈문호는 희대의 걸물들이다. 다 나름의 생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 한 사람을 더 후계 후보로 넣고자 한다.”
“누구입니까?”
“당가주의 여식 당상아.”
“……!”
“당가주에게는 따로 언질을 받아 두었다. 그러라고 하더구나.”
모용우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공공대사가 고개를 저었다.
“이 중 자격이 있는 자는 차기 맹주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차기 맹주의 요건을 무공만으로 보지 않는다.”
“…….”
“천하(天下)다.”
“천하…….”
“천하를 아는 자, 천하를 보는 자, 천하에 귀 기울이는 자.”
“…….”
“모두가 일파의 기재들인 만큼, 무에 대한 걱정은 없다. 언제라도 강해질 준비가 되어 있는 천재들이야. 그러나 희대의 천재라도 천하를 아는 것은 다른 문제다.”
모용우가 물었다.
“천하가 무엇입니까?”
“천하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이유인즉, 저마다 바라보는 천하가 다 다르기 때문이야.”
“…….”
“차기 맹주는 초대 맹주보다 모든 면에서 나아야 해. 하지만 그 모든 면에 무공은 속하지 않는다. 우리는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 강한 무공으로 천하와 싸워야 하는 사람이 있고, 그 천하를 이끌어 가야 할 사람이 따로 있는 법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예.”
가만히 모용우를 보던 공공대사가 재차 입을 열었다.
“혼란스러운 것을 안다.”
“…….”
“연 소부주의 말, 어떤 의미로는 강권에 의해 맹주 후보가 되었음을 안다. 너는 지금 네가 선 자리가 부담스럽겠지.”
“그렇습니다.”
모용우는 절대 거짓을 입에 담지 않았다.
공공대사가 미소를 지었다. 혼란스러움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모용우의 목소리는 참으로 듣기가 좋았다.
“그러나, 너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 또한 사실입니다.”
“너에게 욕심이 있느냐?”
“없습니다.”
“욕심이 없는데 어찌하여 이 자리를 거부하지 않았느냐?”
모용우가 눈을 감았다.
혼란스러웠지만, 자신의 주관을 조금씩 잡아 가는 기재가 그였다.
“욕심은 없지만 더 높은 곳을 보고자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부대원들과 함께 부딪치며, 그들과 함께하는 삶도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모용우가 다시 눈을 떴다.
“저는 저의 재능을 다 알지 못합니다. 제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제가 어떻게 살아갈지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
“이제는 아닙니다.”
“…….”
“의정군의 군병들 모두가 저에게 빛이 되어 준 인연들입니다. 그들과의 인연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이어질 것입니다. 여전히 군장으로 남고 싶지만, 저는 또 다른 곳에서 세상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랬더냐?”
“세상을 배우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해도 군병들은 저를 원망치 아니할 것입니다. 이유인즉, 군병들이 의정군을 관두겠다고 해도 저 역시 그들을 원망치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공대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모용우는 웃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담담한 만큼 깊이 있는 진중함으로 가득했다.
“의정군은 돌아갈 곳 중 하나입니다. 고향에서 나왔으니, 더 많은 세상을 둘러보아야지요.”
“그러하냐.”
“이것은 천운입니다. 연제는 저에게 너무나도 과분한 동생입니다. 그러나 그토록 뛰어난 안목을 지닌 연제가 제게서 무언가를 보았다면, 그리고 그것이 제가 가 보지 못한 길이라면.”
“…….”
“실패하고 좌절할지언정 제 앞에 펼쳐질 길을 외면할 생각 따위는 요만큼도 없습니다.”
공공대사가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너는 이미 천하를 향해 한 발을 내디뎠구나.”
“그러나 저는 그 천하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저도 모르게 노닐게 되는 곳, 그러나 알려 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곳. 그것이 천하이지.”
공공대사가 한옆에 놓인 종이를 모용우에게 건네었다.
“서장 무림의 병력이 감숙에서 찢어졌다. 그중 일부가 섬서 북부를 지나 산서로 이동하고 있다.”
“……!”
“막강한 고수들이 있을 것이다. 무극에 들어선 자는 없겠지만, 어쩌면 존재할지도 모르지.”
“…….”
“후보들을 모두 데리고 나가서 그들을 격파해 낼 수 있겠느냐?”
모용우가 고개를 숙였다.
“해 보이겠습니다.”
“그들은 삿된 교리로 민심을 어지럽히고 교세 확장을 위해 악랄한 수단도 가리지 않을 것이다.”
모용우는 대번에 공공대사의 말을 알아들었다.
“싸움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민심을 다스리는 일이겠지요.”
“……허허.”
공공대사의 얼굴에 감탄이 일었다.
“너는 이미 무엇이 중요한지 잘 알고 있구나.”
“경험이 있을 뿐입니다.”
“좋다. 다른 후보들에게도 따로 연락을 취할 것이다. 내일 새벽에 떠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 두거라.”
“맹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고개를 숙이고 일어난 모용우가 맹주전을 나왔다.
따스한 봄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상쾌한 풀 내음과 잔잔한 화향이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늘을 보는 모용우의 얼굴에 심란함이 일었다.
“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