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946)
946화. 엉킨 실을 푸는 방법 (6)
“이렇게 독대하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 아니오?”
“그렇군요.”
공공대사가 웃으며 연위를 바라보았다.
차를 마시는 연위의 자태는 이전과 다름이 없었다. 꼿꼿한 허리, 군더더기 없는 동작, 완벽하게 갈무리된 기운 등등 무인보다는 평생 문학과 도를 공부한 학자처럼 보였다.
‘대단하구나.’
무극에 오른 공공대사는 알 수 있었다. 연위의 저 자연스러운 기도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무극무한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은 곧 땅에 붙어 있던 사람이 하늘과 땅의 중간의 위치까지 날아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연위는 이전과 똑같았다. 조금은 다른 기운, 조금은 다른 눈빛, 조금은 다른 행동을 보일 만도 한데.
‘타고난 천품과 배움 자체가 무극과 닿아 있었다는 뜻일는지.’
연위가 찻잔을 놓으며 말했다.
“해서, 공사가 다망하신 맹주님께서 어인 일로 이런 필부를 찾아오셨습니까?”
공공대사가 껄껄 웃었다.
“섭섭한 말씀이외다. 같은 무림맹의 동지가 아니오?”
“하하.”
“내 어울리지 않게 맹주라는 직책을 갖고 있기는 하나, 후대를 위한 발판이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소. 그러니 가주께서는 이 사람을 너무 놀리지 마시오.”
“그런 의미로 드린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웃으며 연위를 보던 공공대사가 이내 표정을 굳히고 한숨을 쉬었다.
“발판에 불과하다고는 하나 그래도 맹주라고 안 바쁜 날이 없구려. 이렇게 친한 사람과 차 한잔하러 오는 것도 눈치가 보일 정도로 말이오.”
“…….”
“가주 말이 맞소. 쉴 겸 해서 같이 차나 마시러 왔다면 얼마나 좋았겠소?”
연위가 담담하게 말했다.
“제게 시킬 일이 있으십니까?”
“광신삼교에는 참 기기묘묘한 술법이 많더이다.”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연위는 당황하지 않고 경청했다.
공공대사가 품에서 문서 한 장을 꺼내 연위에게 건넸다.
“의선각주의 보고를 군사가 자세하게 적어 놓은 보고서요. 한번 보시오.”
연위가 문서를 읽었다.
잠시 후.
“황궁을?!”
“그렇소.”
“신화교주가 직접 말입니까?”
“그렇다고 하더이다.”
천지가 경동할 보고였지만, 연위의 기도는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저 눈빛만 조금 바뀌었을 뿐.
연위의 부동심에 감탄하며, 공공대사가 말했다.
“화화술이라는 술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하오. 성화분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화교의 성물이라고 하더이다. 제조하기가 극히 까다롭고 한 번에 제조되는 양도 극소량이라 어지간히 중한 일이 아니면 쓰지 않는다고 하오.”
그처럼 귀한 보물을 써서까지 연락을 취했다는 뜻이었다.
연위가 고개를 저었다.
“신화교 측의 기만술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렇소. 군사도 그렇게 생각했지.”
“…….”
“다만, 무당에서도 연락이 왔소이다.”
“무당파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그것도 검선 탁무자께 직접.”
연위의 눈이 커졌다.
검선 탁무자는 천하에 산재한 모든 검사의 우상이요, 목표였다. 그것은 연위라고 다르지 않았다.
“탁무자께서 통천진인을 만났다고 하외다.”
공공대사는 담담하게 서신의 내용을 전했다.
통천진인의 타락과 교섭, 탁무자와의 대화, 그리고 신화교주의 움직임.
이야기를 다 들은 연위는 이번 일이 실로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삼교는 삼백 년 전, 혈교지란의 주축이었다고 하였지요.”
“그렇소.”
“즉, 삼교는 혈교의 지파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확히는 혈교를 떠받드는 세 귀족 가문이었다고 하더이다.”
잠시 생각에 빠져든 연위가 입을 연 것은 그로부터 일각이 지난 후였다.
“삼교에 내분이 터졌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공공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하지만 군사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오.”
연위가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서 익숙한 인기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빠른 속도지만 여유를 잃지 않는 특유의 신법, 제갈문호였다.
잠시 후.
“맹주님.”
“오셨소?”
제갈문호가 공공대사의 옆에 앉았다.
“얘기는 다 들으셨습니까?”
연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문호가 마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삼교에 균열이 생긴 모양입니다.”
“기만책일 가능성은 없는 것이오?”
“물론 그럴 수도 있지요. 하지만 통천진인이 교섭하려 든 대상이 검선이시기에 기만책일 확률은 낮습니다.”
“음.”
“만약 황궁으로 검선 어른, 혹은 여러 고수를 유인해 타격할 생각이었다면 굳이 통천진인이 직접 나서서 검선 어른을 찾아뵐 이유가 없습니다. 황궁이 위험하다는 소문을 흘리면 그만이니까요.”
적을 유인해 무너트리기 위해서는 해당 지점의 완벽한 점유가 기본이었다. 즉, 정말로 황궁을 점령했다면 굳이 통천진인이 직접 와서 신화교주를 죽여 달라 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오.”
“화화술이니 성화분이니 하는 거야 사실 우리가 알 바는 아닙니다. 그것들이 얼마나 대단한지야 의선각주의 언행만 봐도 짐작할 수 있지만, 우리는 신화교가 지닌 기기묘묘한 술법보다 시기를 보아야 합니다.”
“시기?”
“검선 어른께서 이르시길, 통천진인은 신기에 이른 점복술과 몇몇 술법을 잃고 혈신이라는 잡신에 홀려 그 지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솔직히 우리는 그가 어떤 상태인지 직접 보지 못했기에 가타부타 얘기할 수 없지요.”
“그렇소.”
“그러나 검선 어른을 직접 뵈러 갈 정도라면, 배포 이전에 지닌바 능력이 아직 출중하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 또한 맞는 말이오.”
“이곳에서 호북 무당산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입니다. 그리고 검선 어른과 통천이 대화를 나눈 것은 닷새 전이었고, 의선각주가 이 보고를 올린 것은 불과 한나절 전이었습니다.”
연위의 눈이 번뜩였다.
“시기가 너무 틀어지는군.”
“그렇습니다.”
제갈문호가 담담하게 말했다.
“의선각주가 말하기를, 화화술로 나타난 그녀의 오라비는 신화교의 소교주로 하늘에 이른 재능을 타고난 만큼 야망이 크다고 하였습니다. 가끔 지나친 욕심과 자존심 때문에 일을 그르친 적도 있지만, 워낙 재능이 출중하고 위치 또한 확고하여 문제 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음.”
“이 또한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덮어놓고 대응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자존심 강한 성격에 내친 이복동생에게까지 연락을 취할 정도면, 확실히 일이 터지긴 한 모양입니다.”
“결정적으로.”
연위의 눈이 깊어졌다.
“삼교는 중원과의 싸움에서 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오.”
제갈문호가 미소를 지었다.
“역시 척하면 척입니다.”
“즉, 그렇게 무리해서까지 기만책을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 군사의 생각이구려.”
“그렇습니다.”
제갈문호가 한숨을 쉬었다.
“사실 다 정황만을 보고 내린 결론이라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
“놈들과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 하나 확실한 증거를 잡고 움직인 적이 없었소이다.”
“그 또한 그렇지요. 다만 이번처럼 엄청난 영향력을 줄 만한 일도 없었다는 것이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군요.”
신화교주가 황제를 죽이고 황궁을 점거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간 삼교가 저지른 일 중 가장 큰 여파를 낳을 만한 일인 것이다.
때에 맞춰 이쪽에서 출중한 고수들을 보낸다 한들 황궁이 초토화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또한 그만한 전력이 움직였으니 소문이 안 날 리가 없으며, 음양으로 두 번이나 공격당한 황궁의 모습을 본 민심은 바닥을 뚫고 들어갈 것이다.
“의아한 것이 있소.”
연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분이 일어났다고 해도, 통천진인이 직접 검선께 찾아가 신화교주를 죽여 달라 한 이유는 무엇이오?”
“역시 거기까지 도달하시는구려.”
“중원과의 싸움에서 절대 지지 않을 거라 자신하고 있대도, 신화교주씩이나 되는 이를 그냥 죽이자고 할 만큼 바보들은 아닐 것이오. 어떻게든 회유하려 할 것이고, 정히 통하지 않는다면 그때 저희들끼리 해결을 보려 했겠지.”
침묵하고 있던 공공대사가 입을 열었다.
“검선 어른께서는 서신에 이런 말씀을 적어 주셨소.”
“어떤?”
“신화교주를 죽여 주면, 자신이 죽어 주겠다 했다고.”
연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검선 어른과 통천진인 사이에 어떠한 사정이 있었던 모양이오. 중요한 것은, 통천진인의 죽음이 우리에게 있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오.”
“…….”
“천하의 검선 어른께서도 그 작자의 속내를 읽을 수가 없었다고 하셨소. 해서 그때의 교섭은 결렬되었소.”
“음.”
연위의 얼굴이 굳어졌다.
“교섭이 결렬될 것을 예상하지 않고 무턱대고 와서 신화교주의 목적을 알려 주었다면, 통천진인은 정말 바보로군요.”
공공대사의 얼굴에 감탄이 어렸다.
“대단하시오. 연 소부주의 똑똑한 머리가 어디에서 왔나 했더니, 가주에게 물려받은 게 틀림없소이다.”
“중요한 건 천하의 대사를 논하는 교섭에서 그것이 결렬되었을 때의 결과를 생각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오.”
“그렇다면…….”
연위가 제갈문호를 바라보았다.
제갈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려 줘도 아쉬울 게 없다는 의미입니다.”
“……!”
“즉 삼교 중 신화교가 독단적인 길을 걸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신화교주의 독단이라고 봐야 합니다.”
어느 종교 단체든 교주의 말은 신도들에게 절대적이다.
교주가 움직이면 신도들도 움직인다. 교주가 물러나면 신도들도 물러난다. 즉, 교주란 종교라는 조직 자체를 움직일 수 있는 신이란 것이다.
한데 신화교는 그대로고, 오직 신화교주의 독단으로 황궁을 칠 생각이란다.
“가만히 지켜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움직이기도 애매하고…… 이거 잘못하면 우리가 제대로 독박을 쓰게 생겼습니다.”
제갈문호가 입을 열었다.
“하여 가주님께 부탁을 드립니다. 황제 폐하와 연이 있으시니, 가주께서 이번에 한 번 더 황궁으로 가 주셨으면 합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연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께서 위험하시다는데 당연히 가야지. 한데 나 하나로 괜찮겠소?”
현재 황궁에는 광혼귀군이 있다. 묵룡부주 양천을 보러 간 그가 다시 황궁으로 돌아간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신화교주의 힘이 어느 정도 되는지도 알 수 없고, 나아가 그가 어느 정도의 병력을 끌고 올지도 확신할 수 없다. 독단으로 움직인다고 하여 신화교의 모든 고수가 교주를 외면했을 리는 없을 테니까.
연위의 질문에 답한 것은 공공대사였다.
“해서, 닷새 전 검선 어른께 연락을 받은 후 곧장 호남으로 서신을 보냈소. 지급으로.”
“호남이라면…….”
연위의 눈이 커졌다.
“설마?”
“크게는 일국의 주인이시고 작게는 빙장 어른이 될 분이 위험하다는데, 가만히 앉아서 자리만 지켜서야 되겠소이까.”
“……!”
“날까지 받아 놓았다고 하니 사실상 혼인은 이뤄진 것이나 다름이 없소이다. 처의 부모가 위기에 처했는데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투왕이라는 별호가 울 것이오.”
“……허!”
제갈문호가 고개를 숙였다.
“투왕 양천이 움직였습니다. 그와 함께 황궁으로 가 주십시오.”